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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7월, 윤치호는 조선기독교연합회의 결성으로 기독교의 내선일체와 황민화 체제가 완성됨과 동시에 평의원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1939년 10월 동경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감리교의 내선일체를 위해 조선의 감리교회와 일본의 메소디스트 교회의 합동을 논의하는 일선(日鮮) 감리교회 특별위원회가 개최되자, 정춘수, 김영섭(金永燮), 신흥우(申興雨), 양주삼, 유형기(柳瀅基) 등과 함께 전권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이 회의에 평신도 대표로 참석한 윤치호는 조선 감리교단의 자주권을 이양하고 일본 감리교단으로 종속시키는, 사실상의 기독교 황민화에 동의하고 말았다. 이로써 윤치호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인 십계명 제1조 "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규율을 어기며 하나님의 종에서 일본 국왕 종으로 '개종'을 하는 이단을 범하고 말았다.
http://happyvil.hani.co.kr/arti/happyvil/happyvil_news04/56050.html
대한감리회는 이와 함께 ‘친일 행각 대표적 참여자’로 정춘수, 박희도, 김영섭, 김응태, 김인영, 김종우, 박연서, 정등운, 전영택 목사와 평신도인 신흥우, 윤치호, 김활란 등을 꼽았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일제의 침략행위를 지지하거나 방조했던 독일과 일본의 교회들이 과거사를 철저히 규명하고 회개한 뒤 거듭난 것처럼 한국 교회도 과거사에서 벗어날 회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감리회가 자기 고백을 시작한 것이다.
대한감리회 본부 기획부 송병구 목사는 “일제 신사참배 등 친일 행위가 있었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상태”라며 “앞으로 역사위원회를 구성해 과거를 규명하고 각성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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