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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제 스펄젼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1)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1권)

baromi 2006. 2. 18. 17:58

서재 가운데 5년 넘게 묶혀 온 책을 어제 금요기도회 전에 잠깐 보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올려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연장을 항상 잘 수리해 두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것은 "쇠가 무딘데도 그 끝을 갈아두지 않으면 힘이 그만큼 더 들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아주 빈약한 설교를 유용하게 사용하셔서 회개시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설교자가 없이 직접 자신의 성령을 통해 말씀을 적용해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도구가 없이도 일하신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나님만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른 행동을 우리의 행동지침으로 삼을 수는 없다.

 

주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수단이 목적과 맞게 일치하게 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리의 영적상태가 최선일 때 우리는 가장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주님의 일을 최선으로 해 낼 수 있는 때는 우리의 자질과 장점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을 때요 그렇지 않고 이것이 헝클어져 있을 때는 가장 형편 없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자신의 연장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질서정연하게 정돈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 서재를 가득 가득 채우고, 무슨 회를 많이 조직하고, 많은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나 자신의 교양을 소홀히 한다면 모든게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거룩한 임무에 가장 가까이 놓여 있는 도구는 나 자신의 영과 혼, 몸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적 자질과 나의 내면의 생활이야말로 내가 전투에 들고 나서는 도끼자루요 전쟁무기다.

 

복음 선포자가 스스로 영적인 고갈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과 그의 일 양쪽에 하나의 더없이 심각한 재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쉽게 이런 악이 저질러지는지 모른다. 따라서 얼마나 눈을 똑바로 뜨고 이걸 경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는 유익하다 하더라도 어떤 작은 결점 때문에 심각한 방해를 받거나, 전적으로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결과가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가장 위대한 결과를 낳게 되어 있는 복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는 고약이 그것을 서투르게 바르는 사람의 실수 때문에 그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한심한 노릇이다.

물이 납으로 된 파이프를 통과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복음 그 자체도 영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사람을 통과할 때 그것이 변조되어 마침내는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칼빈주의의 가르침을 생활이 불경건한 사람이 방종에 대한 일종의 구실로 삼으려 할 경우 그것은 더 없이 악독한 가르침이 되고 만다. 다른 한편으로 알미니안주의를 가르치는 사람이 거기에 무한한 자비가 제공되고 있다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아무 때고 좋을 때에 회개해도 괜찮은 것으로, 따라서 복음의 멧세지에 아무런 급박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면 이것처럼 인간의 영혼에 큰 해독은 없을 것이다.

 

 

첫째 유의할 점은 우리들 자신이 구원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박식한 박사들에게 갖다 바친 돈이 제아무리 많고, 그 대가로 배운 고전 실력이 제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가 하늘에서 받은 부르심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으뜸가는 필수조건은

참되고 순수한 신앙심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종류의 "부르심"을 드드고 나오든 먼저 거룩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히 이 목회직에 대한 부름이 없는 사람이다.

 

"먼저 네 자신을 단정하게 하라. 그런 다음에 네 형제를 치장하라" 고 유대교의 율법학자는 말한다.

"남을 씻기려는 손은 그 자체가 더러워서는 안된다"고 그레고리는 말한다.

 

회심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필수조건이다.

정말이지, "여러분을 불러주시고 뽑아주셨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깨닫는 것"은 결코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다. 이 세상은 가짜로 가득차 있으며 육적인 기만을 부채질하는

사람들로 득실거리고 있는가 하면 독수리가 시체 주위로 몰리듯이 이런 사람들이 목사 주위에

몰려들고 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이라서 진리는 그 표면에 있지 않고

우물 깊숙이서 퍼올릴 수 밖에 없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각 사람은 자신의 속사람에게 속삭여 보라, "지금 내가 외치려는 진리의 힘을

내가 모른다면 얼마나 비참한 내가 되겠는가?" 하고 회개가 앞서지 않은 목회직에는

더 없이 부자연스런 관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은혜가 없는 목사, 그는 장님이 안과 교수로

선발되어 빛과 시야가 어덯다느니, 자신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있으면서 무지개 빛깔의 미묘한

혼색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얘기하는 격이다.

 

그의 타고난 재질이 무엇이든, 그의 정신능력이 무엇이든 그에게 영적인 생활이 없다면 그는

전적으로 영적인 일에 손을 댈 자격이 없으며 목회직을 중단하고 가장 간단한 첫번째 자격을

구비할 때까지 기다려야 마땅하다.(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것)

회개가 앞서지 않은 목회직은 또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하다.

그 사람에게 아무런 사명감이 없다면 그처럼 따분한 위치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주님께서는 그 사람은 부인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진리는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한 상담을 받을 때

당황해 할 모습을 눈에 그려보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이방인이 된 사람이 어떻게 날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초청할 수 있겠는가? 오, 여러분이여, 이것은 종신 노예살이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아무데에도 쓸모가 없다.

 

거듭나지 않은 목사는 또한 끔찍할 정도로 해롭다. 불신앙을 일으키는 모든 원인 가운데서 제일은

불경건한 목회자들일 수 밖에 없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회개한 일이 없는 목사가 한 교구를 맡고

있는데 그 교회의 오르간은 1,200파운드이며 성가대는 불경건한 성가대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교인들은 귀족적이라는 얘기이다. 그 글을 쓴 필자는 멸망으로 이끄는 무기치고 이정도면

일등품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예배당에 가서 편안히 앉아 있으면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이라는 것은 독창자의 노래를 듣고

음악으로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하며, 어쩌면 그들의 눈은 우아하고 격식에 맞는 태도로 흐뭇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극장에 가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미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것보다 못하며 조금도 영적인 특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거듭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가 없는 상태, 곧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경건의 힘은

부정하는 그런 삶을 살면서 자신들이 독실한 예배자라는 듯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스스로 자축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오로지 유일한 목표가 있다면 형식주의라는 것밖에 없는 제도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마귀의 종에 더 가깝다.

 

형식적인 설교자가 해로운 까닭은 이것이다. 곧 그가 겉으로는 짜임새가 있어 보이지만

경건이라는 지속적인 균형이 그에게는 없기에 언젠가는 그의 도덕적인 성격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강북연합가스님이 자꾸 생각나 마음이 아픔 T T) 이 때 그가 놓일 처참한

입장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모독을 받고 복음이 욕을 먹는 상황을!

그러한 사람에게 기다리는 죽음이 어떠하겠으며 그의 사후가 어떻겠는가!

이건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일이다!

 

선지서에 보면 바벨론 왕이 지옥에 내려갔다.

거기에는 그가 정복한 많은 나라의 왕들과 제후들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들의 수도

역시 모두 그가 쑥밭을 만들었다. 이때 이 왕과 제후들이 복마전에서 일어서면서

이쓰러진 독재자에게 "피장파장이십니다?"라는 신랄한 야유를 퍼부었다.

 

상상해 보라. 평생 목사 노릇을 했지만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지옥에 내려갔다. 거기에는 그의 설교를 듣곤하던 영혼들이 갇혀 있었다.

이때 그의 교구의 불경건한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피장파장이십니다? 의사선생님,

댁의 병은 안 고치셨던가요? 샛별이 영원한 흑암에 떨어졌다더니 그게 댁이던가요?"

하고 씁쓸한 말을 내뱉지 않겠는가? 오! 누가 멸망을 받더라도 제발 이런 꼴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지옥의 탄식" 이라는 존 번연의 책에 보면 이런 소름끼치는 대목이 나오는데

가끔 그 대목이 내 귀에 쟁쟁하게 울려오는 듯한 때가 있다.

"눈먼 목사들의 무지 때문에 멸망 받은 사람들이 그 얼마인가!

그들의 설교란 쥐약이나 다름 없었다. 온 도시가 멸망한 책임을 져야할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 친구여 부탁하네. 사람들에게 설교하겠다고 손에 쥔 내용이

사실은 자신 없는 내용이 아니길, 자네의 온 교구 사람들이 파도처럼

자네 뒤를 따라 지옥으로 몰려들면서, "이건 당신 책임이요. 그래 바보처럼

우리의 죄를 지적하지 못하셨구려. 우리가 당신 입에 제때 제때 먹을 것을

안넣어 줄까봐 그런거죠. 이 저주 받을 소경인 주제에 혼자 구덩이에

떨어지는 거로 만족치 못해 우리까지 끌어 들였군" 하고 삿대질하는 일이 없길 부탁하네.

 

리차드 박스터의 참목자에 보면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가 많이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 의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사람들은 반짝이는 별들과 같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지만 이것은 그들이 먼저 으의 길에 들어 서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자기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지옥을 피하라고 소리친 설교자들 가운데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이 많다. 남들에게는 구원을 제공하면서 본인은 싫어하는 사람들,

남들에게는 진리를 얘기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소홀히 하고 깔아뭉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는가?

 

형제들이여, 이것만은 꼭 믿으라.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사람은 설교자, 무슨 유능한 설교자가

아니라 의롭게 된, 거룩하게 된, 그런 다음에 주님의 일에 한결같이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그대가 남들에게 요구하는 인간상을 먼저 갖추라. 그리고 남들에게 밥먹듯이

타이르는, 믿으라는 말을 그대로 믿으라. 남들에게 전하는 그리스도와 성령을 다정하게

모셔드리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권면하신 분의 말씀 속에서 네 몸과 남들을

미워하고 멸망할 것이 아니라 네 몸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으니까."

 

 

두번째 문제는 목회자의 신앙심이 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과 동등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숙한, 앞서가는

신자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정말로 "가려서 뽑은 일 가운데 정수요,

선택 가운데 선택이요, 교회 가운데서 뽑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두뇌가 너무 약해서 높은 빌딩을 올라가면 현기증이 나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지구력이 필요한 두뇌와는 상관이 없는 땅 일을 하는게 상책이다.

영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가 너무 허약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높은 곳에서 일하도록 부름 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성공이 허용될 경우 그들은 허영으로 도취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모고히자들에게 너무 흔한 악이요. 모든 악 가운데 그들에게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악이자 그들에게 틀림없이 실패를 다짐하는 악이다.

 

우리의 어린 아이들에게 칼과 총을 쥐어 주면서 적을 막으라고 내보내겠는가?

마찬가지로 교회는 누가 말을 잘 한다 해서 그런 사람을, 또 경험도 없는 열심파를

내보내면서 믿음을 변호하게 해서는 안된다. 젊은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서

지혜를 얻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목회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의 영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르익지 않았을 경우에는 위에서부터 힘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더 낫다.

 

가장 고귀한 도덕적 성격은 공들여가면서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에서 단순한

교인으로서는 무방하지만 직분을 맡기에는 부족한 사람이 많다. 흉측한 죄를 범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나는 아주 엄한 견해를 고수한다. 물론 그들이 참으로 회개할 경우

희망과 경계하는 눈치가 뒤섞인 채 교회로 받아들이는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흉측한 죄를

저지른 사람을 너무 쉽게 설교단에 복직시켜도 좋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따지고 싶다. 죤 에인젤 제임스의 말과 같이 "의를 외치는 설교자가 죄인들의 길을 가로

막았을 때 그는 자신의 회개가 자신의 죄만큼 유명하게 소문이 나기 전에는 많은 회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는 입을 열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 공개적인 부도덕은 거기에 대한 회개가 제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성격에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전혀 없었다는 하나의 치명적인 상징이다...

황제의 아내는 털끝만치도 의심이 없어야 하듯이 그리스도의 신부되는 목회자의 과거경력에

일관되지 못한 점이 있었다는 창피한 소문 또한 금물이다........

 

겨우 풋나기를 벗어나지 못해 사탄의 유혹을 받고선 이리 저리 밀려 다니다가

교회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도 파멸당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 남들에게서 기대되지 않는 용감한 전투를 치를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겠다.

우리에게는 자기 부정, 자기 망각, 인내, 불굴의 용기, 참을성이 날마다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여러분의 영혼이 여위면 여러분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그 까닭도 모르고 여러분의

공중 기도가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여러분보다

먼저 여러분의 메마름을 눈치채고 말것이다. 다음으로 여러분의 강해에서 여러분의

쇠약이 드러날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엄선한 말, 꼭 맞게 정리한 문장을 예전처럼

내뱉겠지만 영적인 힘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삼손처럼 몸을 흔들며 힘을 내겠지만 여러분의 위대한 힘은 이미 빠져 나간 뒤일 것이다.

여러분의 교인들과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들은 어김 없이 여러분의 자질과 전반적으로

감퇴하는 걸 눈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심이 그 만큼 더 왕성해야 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우리들이 더 큰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볼때 목회직보다 유혹의 공격이 극심한 곳도 없다.

...... 그 가운데 가장 악독한 것으로는 목회자주의로 향한 유혹을 들 수 있다. 목회자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성경을 목사의 입장에서 읽고 목사의 입장에서 기도하고, 우리

신앙의 전반적인 문제를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상대적인 입장에서 처리하려는 경향이다.

개인적인 회개와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큰 비극도 없다.

"먼저 자기 마음에 맞는 설교가 아니면 남들에게도 잘 전할 수 없다."

 

우리 영혼의 큰 원수는 설교자의 파멸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러분 조심하시요":라고 박스터는 말하고 있다. "유혹자의 첫번째, 그리고 가장

얼얼한 공격은 바로 여러분에게 날아들 것이다. 여러분이 그 유혹자를 대항해서

싸우는 지위관 노릇을 할 경우 그것은 그가 여러분을 가만 놔두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제어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 유혹자는 자기에게 가장 큰 해를 끼치려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악의를 품고 있다. 그가 미워하는 대상은 우리들 가운데

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곧 전쟁터의 사령관이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시며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흑암의 나라에 위협적인 그리스도다. 그러기에 이 유혹자는

그 비중에 있어서 일반 병사들보다는 그리스도 밑에 있는 지휘관들을 주목하고 있다.

지휘관들이 그 병사들 앞에서 쓰러지면 나머지는 모조리 도망칠 것을 이 유혹자는

빤히 내다보고 있다. 그는... "목자들을 치면 양 떼가 흩어지니라"는 비결을 터득해 오고 있다.

 

그는 빛의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속일 수도 있다. 감쪽같이 여러분에게 파고들어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리게 할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분에게 요술을 걸어 여러분의

믿음과 정직을 빼먹어 버렸는데도 여러분은 그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게 없어진지가

오래되었는데도 그게 곱절로 늘어나거나 증가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것이다.

 

여러분을 파괴할 때마다 그는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의 파멸의 도구로 삼을 것이다.

한 목회자를 게으르고 불성실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한 목회자를 유혹해서 탐심이나

스캔들에 빠지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크나큰 승리로 여길 마귀이겠는가!

그는 교회를 상대로 이렇게 뻐길 거이다. "이 사람이 당신네들의 거룩하다는 목회자들이죠.

그들의 빈틈없이이 무엇인지 그 결과 그들의 꼴이 어떻게 되는 지 보여 주리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상대로 썼던 수작, 곧 여러분에게서 먼저 여러분의 힘을 빼고

다음에 여러분의 눈을 뽑고 다음으로 누워 떡먹기식 승리를 거둔 다음에 조롱하는 수법이

여러분에게는 통하지 않게 하라.

 

셋째. 목회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인격이 모든 면에서 자신의 목회와 일치하도록 유의해야한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바로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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