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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baromi 2006. 2. 17. 19:46

http://www.kungree.com/classic/popper.htm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지음, 이명현, 이한구 옮김 (전 2권), 민음사, 1982.


1. 포퍼의 반증가능성 이론: 과학과 사이비 과학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에서 자신의 이론을 확증시켜 줄 수 있는 사례로, 빛이 중력장 속에서 휘는 현상을 제시했다. 즉 중력장 속에서 빛이 휘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자신의 이론은 참이 되며 그렇지 못하다면 거짓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현상은 1919년 개기일식때 영국의 일식 관측대에 의해 처음으로 관측되었다. 같은 해 11월 16일 영국 왕립학회와 왕립천문학회의 합동회의에서 과학자들은 이 관측 결과를 검토한 끝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확증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통해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와 그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왜 엉뚱하게 아인슈타인인가? 포퍼는 위의 사건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만일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맞지 않았다면 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과학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거짓으로 밝혀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대담한 예측을 했던 셈이다.

 

바로 여기에서 칼 포퍼의 과학관, 그러니까 진정으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과학을 가장한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찾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던 이론은 과학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장한 이론이 진리가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빛이 중력장 속에서 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이론은 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일어나 이론을 증명해줌으로써 그의 이론은 진리가 되었다. 그러나 포퍼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과학을 자처하지만 과학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는 가능성, 그러니까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퍼에 따른다면, 마르크스가 역사발전 단계의 법칙으로 내세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과학적인 법칙이 아니라 예언에 가깝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점쟁이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올해 운수 대통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사람이 큰 사고를 당하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래서 점쟁이에게 찾아가 따져 물었다. 당신의 예언이 틀렸지 않느냐고. 그러나 점쟁이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은 운수가 대통해서 불행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점쟁이의 말은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 그러니까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질 가능성을 지니지 않는다. 따라서 점쟁이의 말은 과학이 아니다. 포퍼는 결국 이론이 반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준으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고자 했던 것이고, 이러한 그의 입장을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기 위한 '반증가능성 이론'이라고 부른다.

 

2. '열린사회' 개념

 

이상과 같은 반증가능성 이론은 포퍼의 과학철학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철학적 입장은 '열린 사회' 개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반증가능성 이론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기존 이론이 지니고 있는 오류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과학에서 반증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기존 이론이 지닌 오류를 찾아 보다 나은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이 계속될 뿐이다. 요컨대 오류의 발견과 새로운 이론의 정립이라는 과정이 계속 이어지면서 조금씩 진리에 접근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포퍼는 이러한 과학철학적 입장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자 한다. 어느 사회든지 계층 간의 갈등, 부정부패, 경제적 불평등 등, 많은 문제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갈 것인가? 포퍼는 과학 발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진적으로 구체적인 문제 각각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한 조건으로 포퍼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해보자. 먼저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상태이며 기존의 제도로는 그것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이루어진다. 물론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둘러 싼 논의가 이루어져야 진다. 그러한 논의를 통해 어떤 합의를 도출하고, 그 합의에 따라 기존의 제도나 법률을 수정하여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잘 해소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제도나 법률을 마련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경제적 불평등은 비록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에서라면 대략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사회 문제와 관련한 모든 주장, 이론, 제도 등이 비판과 반증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과거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은 자신들의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았다. 더구나 권력은 소수의 지배층이 장악하고 있었고, 때문에 시민들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에 의해 사회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런 사회를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독재 국가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사회는 결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해 나아갈 수 없으며, 기존의 제도와 법률이 고정불변의 진리인 양 자리잡게 될 뿐이다.

3. 이상적인 사회와 점진적 사회공학

 

사실 칼 포퍼는 젊은 시절에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태인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비엔나 대학에서 26세 때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1937년에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은 그가 뉴질랜드 망명 시절인 1938년에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고 집필하기 시작하여 1943년에 완성했으며, 1945년에 출간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앞서 언급했던 '닫힌 사회'로 인류를 이끌었다고 포퍼가 판단한 사상가들, 그러니까 '열린 사회의 적들'을 지목,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는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같은 사상가들을 바로 그런 사상가들로 지목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포퍼가 보기에 철저하게 '닫힌 사회'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철학자가 통치하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가능하지도 않고 가당치도 않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포퍼가 보기에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평등주의적 정의관의 적이다. 지배자는 지배하고, 노동자는 노동하고, 노예가 노예일 때 국가는 정의롭다는 플라톤의 주장,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결국 독재에 대한 옹호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국가는 비판과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혁명에 의해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또한 역사의 일정한 법칙을 상정하고 그 법칙의 절대성을 강조함으로써, 반증될 수 없는 사이비 과학을 주장했다. 더구나 그가 꿈꾸는 공산국가는 혁명을 통해 달성된다는데, 이것은 결국 사회 전체를 단번에 변화시켜 어떤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릇된 기대일 뿐이다.

 

포퍼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완전한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완전한 사회를 혁명과 같은 수단을 동원해서 단번에 이룩할 수 있다는 꿈을 버리고, 이 세상을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점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을 그는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engineering) 이라 부른다. 마치 결함이 있는 기계를 공학자나 기술자가 고치고 개선해서 좀 더 나은 기계를 만들어 내듯이, 사회 역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조금씩 개선하여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내세운 포퍼가 폭력과 유혈을 수반하기 마련인 혁명에 반대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에 따르면 폭력과 혁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더구나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고 더 많은 폭력을 불러오며 자유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가 폭력, 혁명, 독재 등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나치즘과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가져 온 비극을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4. 문제점은 없는가?

 

그렇다면 포퍼가 말하는 '열린 사회', '점진적 사회공학' 등이 지니는 문제점은 없는가?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점진적 사회공학을 통해서 과연 어느 정도까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혁명이나 폭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도저히 개선할 길이 보이지 않는 사회가 있다고 치자. 그런 사회에서도 포퍼가 말하는 점진적 사회공학만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모순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우리 나라의 과거 7, 80년대에 전개되었던 민주화 운동에서는 종종 시위와 폭력이 일어나곤 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비판하거나 토론할 수 없었고, 오히려 독재 정권의 억압이 시민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사회를 개선해 나아갈 수 있는 방법 자체가 무척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물리적인 시위와 폭력을 통해서 독재 정권에 맞서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포퍼가 말하는 점진적 사회공학은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사회에서나 유효한지도 모른다.

 

둘째, 열린 사회의 핵심적인 조건인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은 긴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모든 문제에 대해서 비판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면, 정말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위험이 없지 않다. 물론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토론과 합의 도출 과정은 사실상 어려우며, 때문에 의회라는 제도를 통해 시민들은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른바 대의 정치의 원리이다. 그러나 의회, 그러니까 우리 나라의 국회를 보면 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이 정당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잘못 처리되거나 처리 자체가 지연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셋째, 과학철학의 이론을 사회과학에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자연과학자들이 과학적 진리를 발견하고 이론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사회를 개선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회공학이라는 말은 적절한 기술을 사용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사물과는 달리, 사회는 욕구와 감정을 지닌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포퍼가 말하는 점진적 사회공학은 자칫하면 사물과는 다른 사회의 특성을 무시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전체주의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이자,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옹호인 것만은 틀림없다. 포퍼가 꿈꾸었던 '완전한 사회'(열린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는 포퍼가 비판했던 플라톤이나 마르크스의 '완전한 사회'에 못지 않게 실현되기 힘든 사회인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도 그런 사회는 아직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때문에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펼친 주장에 계속해서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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