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만약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글을
잘못 읽어 양태론이라고 했다고 치자,
그래서 윗트니스 리의 삼일성이 양태론은
아니라는 가정하에서 아래 질문을 한다.
위의 윗트니스 리의 "안에"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글을 보자
(윗트니스 리의 글)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수는 없다.
경륜의 첫 단계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아들 안에 넣으셨고,
아들은 자신 속에 일곱 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기 위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단계,...
둘째단계는 아들이 인성 안에서 성육신되심으로 일곱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하신 것이다.
셋째단계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그 영 안에 계신 것이다.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아들은 성령 안으로 이끌려졌다.
위의 글은 바로 윗트니스 리가 말하는 "안에"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개념해석이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지방)교회는 여태까지 삽질만 해왔다는 뜻이다.
즉 리의 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소리이다. 그냥 봐도 위의 글이
(지방)교회에서 말하는 "안에"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설명이다.
즉 (지방)교회의 "안에"라는 개념은
1) "안에 넣으셨고"
2) "안으로 이끌려졌다"
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우리는 과연 이러한 개념으로 하나님으 불가시적 개념이
온전하게 설명될 수 있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삼위일체의 위격의 구별에 있어서 가장 전통적인 기본 상식적 견해는
제1위 아버지의 위격에는 인성이 없다.
제2위 아들의 위격에는 다른 위격에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 데 바로 인성이다.
제3위 성령의 위격에도 역시 인성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각기 독립적 존재로 존재하나 이 위격들은 단일하신 본질안에서
서로 상호내재하신다.
그러나 위의 리의 글을 보면 각 위격의 독특한 특성이 전혀 없다.
즉 복사판들이다. 아버지의 제1위격이나 제2위격이나 제3위격이나
결국은 같은 위격들이라는 뜻이다. 삼위격의 존재는 있긴 있으되
각 위격들이 각기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향? 혹은 존재감이 없이 오로지
복사판들이다.
(질문1)
경륜의 첫 단계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아들 안에 넣으셨고,
아들은 자신 속에 일곱 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
아버지는 제1위격이시다. 그 분께서 제1위격을 제2위격에 넣으셨고
아들은 자신 속에 일곱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라고 한다. 질문이다.
제1위격이 제2위격에 제1위격을 어떻게 넣는다는 소리인가?
(분명 "안에 넣으셨다"는 말은 그동안 리가 말하는 "아버지는 내 안에"라는
라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
(질문2)
둘째단계는 아들이 인성 안에서 성육신되심으로 일곱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하신 것이다.
리가 말하는 일곱가지 놀라운 성분은 성육신되심으로 얻은 인성의 요소를 가지는 것임을
위의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 맞는가?
(질문 3)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아들은 성령 안으로 이끌려졌다.
안버지 안에 있는 모든 위격이 아들인 제2위격에 있고
제1위격과 제2위격이 가지는 모든 요소들(성육신으로 인하여 포함된 일곱가지 놀라운 성분포함)이
성령인 제3위격으로 이끌려졌다.... 는 소리이다.
즉 제1위격은 아버지 위격은 아들의 위격인 제2위격으로 들어가셔서
인성을 교류?하게 된다는 논리가 형성된다. 즉 전통적으로 삼위에서 인성을 소유한
위격은 제2위격이라는 교리가 자연스럽게 파괴되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 인성을 가지고 계신 제2위가 제3위격 안으로 이끌려졌기에
성령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인성의 요소를 같이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결론적으로 질문하자.
결국 이 말은 삼위격의 독특한 독립적 특성을 모두 무시를 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제2위 되시는 위격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 중에
그 인성을 제1위도 소유하게 되었으며, 제3위인 성령도 소유하게 되었고
결국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기에 성령안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그 놀라우신
인성을 우리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논리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질문한다.
(1) 윗트니스 리는 현재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실때 얻은 그 인성이
제2위격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위격과 단일하신 본질을 같은 개념으로 보기에
제2위격안에 있는 인성이 결국 본질 안에 있는 것이기에
그 단일한 본질안에 있는 제1위와 제3위도 역시 이 인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2) 윗트니스 리는 아들의 위격에 있는 인성이 제1위와 제3위격과 같이 공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본인이 볼때는 처음 삼일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었으나
제2위 아들로 인해 인성을 제1위와 제3위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이 들린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 요약해보자.
1) 아들은 자신 속에 일곱 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
--> 일곱가지 요소(인성이 성육신되심으로 일곱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
즉 일곱가지 요소는 예수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된 요소들라고 제한을 둘 수 있다.
2)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아들은 성령 안으로 이끌려졌다.
제1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제2위격 안에 들어왔고, 제1위와 제2위 동시존재에서
일곱가지 놀라운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제2위격은 제3위 안으로 이끌려졌다.
만약 최삼경 목사가 글을 잘못읽었다고 할 경우에도 역시 위의 문장으로 볼때
전통적인 삼위일체론과는 전혀 합당치 아니하다.
아마 교회사에서의 논쟁에서 각 위격들 간의 독특한 관계에 대해서 언급할때
제2위격안에 있는 인성은 제1위와 제3위로 이동 혹은 교류가 불가능한 요소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의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면
제2위격 안에 있는 인성이 제1위와 제3위격과 같이 공동 소유 혹은 인성의 그 요소들을
같이 누리는 식으로 이야기를 함으로 각 위격들간의 독특한 독립성을 파괴하고 있다.
즉 윗트니스 리의 말대로라면 다음과 같이 되어버린다.
소위 전통적 삼위일체라고 본인이 우기는 주장 (지방)교회측의 삼위일체 1) 제1위격에는 신성만 있다 (아버지 위격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2) 제2위격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다. (아들 위격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3) 제3위격에는 신성만 있다. (성령 위격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이 세 위격은 단일하신 본질안에서 서로 상호내재하나 각 위격들만이 고유하게 가지는 독특한 특성은 교류되지 않는다. 교류가 된다면 누가 아버지며, 누가 아들이며, 누가 성령인가?. 1) 제1위격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다. (제1위가 제2위격 안에 들어가 인성요소를 획득) 2) 제2위격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다.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인성요소 획득) 3) 제3위격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다. (인성요소를 가진 제2위가 3위로 들어가 제2위의 인성요소를 획득) 이 세위격은 단일하신 본질안에서 서로 상호내재한다.
이 글은 얼마든지 수정가능하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지방)교회측 사람들의 주장과
워치만 리와 윗트니스 리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지방)교회는 윗치만 리와 윗트니스 리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제1장 "위격"과 "본질"의 개념 사용하는 원리는
윗트니스 리와 최삼경 목사는 똑같으나
(지방)교회는 위 두 사람의 원리와 다르다.
서론
먼저 위격과 본질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 단어들인 "분" "영" "하나님" ... 등의 단어들이
사용하는 문장에 따라서 위격이 될 수도 있고, 본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윗트니스의 글과
최삼경 목사의 글을 통해 그들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윗트니스 리의 위격과 본질의 설명까지도 최삼경목사와 똑같다는 소리는 아니다.
단지 위격이라는 단어와 본질이라는 단어 사용하는 원리만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교회는 위격과 본질을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기에 윗트니스 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말함에도 불구하고 최목사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즉 (지방)교회측은 윗트니스 리의 신학사상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이다.
---------------------------< 선행되는 질문 >-------------------------
(윗트니스 리의 글 하나님 제3장 에서...)
그들과(삼위양식론)는 달리 우리는 신격의 셋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를
믿는다. 즉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본질적으로 모두 동시에 같은 상태로 존재하심
을 믿는다. 그러나 신성한 경륜에 있어서 그 세 분은 연속적인 세 단계 안에서 제각기 역사하시며
존재하신다. 그러나 그분들은 경륜적인 역사와 나타나심에 있어서조차도 여전히
그 셋은 본질에 있어서 동시 존재하며 상호내재 하신다.
(질문)
1) 위에서 윗트니스 리의 글에서
(1) <신격의 셋의 동시존재>라는 문구에서 "동시 존재"라는 개념이 무엇인가?
(2)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본질적으로> 라는 문구에서 "본질적"이라는 것은 "위격"을 말하는가?
(3) <본질적으로 모두 동시에 같은 상태로 존재하심>이라는 문구에서
"동시에 같은 상태"라는 말은 무슨 개념인가?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자 비판을 보면 좀 유치하다. 아버지가 활동하신 후 그 아버지 퇴장후
아들이 나오고 아들 퇴장후 성령이 나오는 식의 순차적인 것만이 양태론의 전형적인 모델이라는
식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양태론이란 근본적으로 1위1체의 개념으로 여러가지 적용을 하는
모든 무리를 양태론이라고 한다. 양태론도 여러가지다.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 시각을 보면
오로지 한 가지 양태론의 모습만 알고 있는 듯하다.
1) 1위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양태론이다. (대표적인 1인 3역)
2) 1위가 세모습으로 동시에 존재를 한다해도 이는 양태론이다.(셋이 동시에 구별되나 결국 위는 하나)
3) 1위안에 2, 3위가 들어와 한 위가 된다는 것도 역시 양태론이다.(즉 셋이 합쳐 하나가 됨)
------------------------------< 질문 1 >----------------------------
<2> (윗트니스 리의 글)
오늘날 어떤 근본주의 성경 교사들은 사실상 삼신론적인데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 같다. 이들 교사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구별된다고 말할 뿐 아니라 그분들이 분리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구별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분리시킬 수 없고, 그 영에게서 아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셋 모두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아들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그분 안에 있다고 하셨다(10:38, 14:10-11).
아들은 아버지안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데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또 주 예수님은 그분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요10:30).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비록 구분이 되긴 해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더 전진된 증거이다." (39쪽)
위의 글에서 두 가지 입장에서 질문을 해보겠다. 어느 입장이 윗트니스 리의 입장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질문을 골라서 대답해보기 바란다.
(입장 1) 질문-위격과 본질을 따로 구별하는 (지방)교회측의 입장에서 위 글에 대해 질문한다.
윗트니스의 삼신론 개념은 약간 이상하다. 삼신론은 위격이 셋이기에 본질도 셋이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위의 글을 보면 위격이 분리된다는 것이 삼신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말하길 각 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서로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윗트니스 리의 삼신론의 잘못된 개념을 알 수 있다.
삼신론은 단일하신 본질이 셋이라는 것이다. 즉 삼신론의 가장 큰 문제는 단일하신 본질이
셋이라는데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자면 삼신론을 말하면서 상호내재를
말하고 있다. 단일하신 본질이 상호내재를 하는가? - -? 동시존재라는 말도 역시 위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질문 1)
위의 윗트니스 리가 말하는 삼신론은 위격이 셋으로 분리가 된다는 개념에서의 삼신론인가?
전통적으로 단일하신 본질 자체가 셋으로 분리가 된다는 개념에서의 삼신론인가?
(만약 삼신론자들이 위격이 분리가 되나 서로 상호내재하고 상호침투한다. 라고 반격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삼신론의 절대적 오류는 바로 단일하신 본질이 셋으로 나뉘거나
셋이라는 것이다. 위격이 셋으로 분리된다는 것만으로는 삼신론자라고 할 수 없다. 본질까지
셋으로 분리가 되어야만 삼신론자라 할 수 있다.)
(입장 2)-위격과 본질을 분리되지 않는 개념으로 문장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해야 된다는 입장에서
만약 위의 윗트니스 리가 삼신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하는 글이라면 아마도 윗트리스는
위격과 단일하신 본질을 동일시 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교회에서는
위격과 본질을 따로 개별적으로 생각한다는 문제가 있다. 최삼경 목사가 한 분을 세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당연히 위의 글 윗트니스 리가 말하는
삼신론 비판을 왜 위격의 구분으로 비판했는지 전혀 이해를 못한다는 증거이다. 즉 이 말은
(지방)교회측은 윗트니스 리의 위격과 본질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최삼경 목사의 윗트니스 리에 대한 비판을 자신들 나름대로의 위격과 본질 개념으로 비판을
하고 있고 또한 윗트니스 리의 글을 그의 본 의도가 아닌 (지방)교회 측의 수준대로
재해석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질문)
윗트니스 리는 위격과 본질의 단어를 완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만약 완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면 윗트니스 리는 삼신론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윗트니스 리는 위격과 본질을 같은 개념 혹은 분리되지 않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의 주장에서 잘못된 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삼경 목사의 한분과 세분의 언급을 이해하고 그러한 주장이 올바른 것임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분의 글을 보니 한 분이라고 했다가 세분이라고 했다가
최목사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린다는 식으로 쓴 글을 수 없이 읽어왔다...)
--------------------------< 질문 3 >----------------------------
1) 한분과 세분에 대해서...
만약 본인이 (지방)교회측에서 이렇게 질문한다치자.
"하나님의 위격은 한분이신가 세분이신가?" 라고 하자 그 대답으로 밑의 글을
보고는 본인이..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본질이 한 분이 아닌 세분이라고 한다.
라고 공격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지금 밑의 윗트니스 리의 글에서 "그 세 분"이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들리는가?
참고로 최삼경 목사의 글도 같이 올린다. 비교해 보기 바란다.
분을 단지 본질로만 이해하고 문장 무시하고 읽는다면 윗트니스는 삼신론자가
되기도 하고 양태론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윗트니스 리의 글)
"그러나 신성한 경륜에 있어서 그 세 분은 연속적인 세 단계 안에서 제각기
역사하시며 존재하신다 그러나 그 분들의 경륜적인 역사와....."
만일 그 메시지들 안에 있는 어떤 문장들을 그 문맥으로부터 끄집어 낸다면,
내가 삼위 양식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또
어떤 문장들을 그 문액으로부터 밖으로 끄집어 낸다면, 마치 내가
삼신론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최삼경 목사의 글)
셋째, 삼위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한 분'이란 말도 가능하고 '세 분'이란 말도 가능하다.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측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 가능한 말이다.
칼빈도 '한 분'이란 말도 하고 '세 분'이란 말도 하였다(기독교강요, 13장 2. 16. 17.).
즉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분'이라고 할 수 있고,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는 '한 분'이란 말도 사용할 수 있다.
(질문)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이 서로 달라 보이는가?
(왜 (지방)교회 측은 최 삼경 목사의 저러한 글은 삼신론자라고 비난하면서
같은 식으로 같은 단어를 쓴 윗트니스 리의 글에서는
똑같은 식으로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하는가? 단지 "세영들"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가?)
----------------------------- < 질문 4 > ------------------------
2) 영에 대해서...
(윗트니스 리의 글)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일곱 가지
놀라운 성분을 포함한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이 놀라운 성령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공급되는 것이다“(위트니 리, 하나님의 경륜, 1987, 16쪽)
(질문)
위의 윗트니스의 글을 보에서 그는 "세영들"이라는 말을 무슨 의미로 사용하는가?
위격인가? 본질인가?
분명 우리는 위의 질문들에서 보았듯이... 그가 위격과 본질을 따로
분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윗트니스의 문장을 자세히 보면 그가 말하는 영이
인격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격이 아닌 본질이라면 번역을 다시 하라.
아래의 리의 글에서 영이 "본질"로 보이는가?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영을 "본질"로 바꾸어 문장을 만들어 보자.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본질들이 아닌 하나의 본질이다.
문장 구성이 올바른가? 하나님의 세 인격은 결국 하나의 본질이라는 소리인가?
그렇지 않다면 위의 영은 위격이라는 개념 밖에 더 되겠는가?
결론은 우습게 된다.
즉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지방교회측은 본질이라고 한다)이 아닌 하나의 영이라고 한다.
즉 세인격과 본질을 동일한 개념으로 연결시키되 문장에 따라 본질과 위격으로 해석을 하게
하는 형태로 윗트니스 리는 사용하고 있다. 즉 최삼경 목사가 세분이나 한 분이나
문장에 따라 그 단어를 위격과 본질로 구별해서 해석해야한다는 원리나 같은 식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윗트니스와 최삼경 목사의 위격과 본질을 연결시키는
원리는 비슷하다. 그래서 윗트니스 리 역시 자신의 글에는 삼신론적 글이 있고 양태론적
글이 있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방)교회는 올바르게 이해하길 바란다.
아래의 글은 파울님이 올린 글이다. 이 글에서 윗트니스 리의 글을 두고 하는 소리가
있는듯 하니 (지방)교회에서는 살펴보길 바란다.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은 '영'(Spirit)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영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제3위가 사실상 있는 그대로의 신적인 본성의 가장 충만한
계시라는 것이다. 삼신론이라는 불가피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프랑크의 수도사였던 고트샤크
(Gottschalk)는 위격들의 신격성(the diety of the persons)과 신적 본성의 '신성'(the divinity
of the divine nature)을 구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는 라임스의 힝크마르(Hincmar of Reims)에 의해 배격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고트샤크는 853년에 스와송(Soissons)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이 공의회는 단 하나의 신적인 영의 소유자들로서 세 위격의 상호점유를
재 확인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위격'과 '영'이 동의어라는 사상을 배격했다.
(파울님이 올린 글)
영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제3위가 사실상 있는
그대로의 신적인 본성의 가장 충만한 계시라는 것이다.
(윗트니스 리의 글)
경륜의 첫 단계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아들 안에 넣으셨고,
아들은 자신 속에 일곱 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기 위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단계,...
둘째단계는 아들이 인성 안에서 성육신되심으로 일곱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하신 것이다.
셋째단계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그 영 안에 계신 것이다.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아들은 성령 안으로 이끌려졌다.
위의 글을 보아도 결국 가장 충만한 계시가 아버지와 아들의 위격의 모든 요소를
포함한 성령을 제일로 취급하는 듯한 문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의 문장 중에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은 '영'(Spirit)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
여기에서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 라는 문장을 볼때
세 이름=세 위격, 하나님 안에=단일하신 본질, 세 영의 존재=세 위격(혹은 위격의 실채)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 문장상 그렇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위격이겠는가? 본질이겠는가?
뻔한 사실이다. 하나님안에는 위격이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세 이름은(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 안에 있는(단일하신 본질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세위격의 존재)를 지시한다... 좀더 쉽게 풀어보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단일하신 본질 안에 있는 세위격의 존재 혹은 실채를 말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 사용을 배격했다.
문장상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이 영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라는 문장만
보아도 뒤의 문장의 영이 위격이라는 말은 너무 뻔한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위의 스와송 공의회는 "세위격"을 "세영들"이라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을 "세영들"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는 것을 배척했다는 소리이다.
------------------------------ < 질문 4 >------------------------------
(윗트니스 리의 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 분의 삼일성을 나타내는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셨는데(창1:26) 이는 그 분이 사람과 하나 되실 것이며
또 그분의 삼일성 안에서 사람을 통해 그 분 자신을 표현하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질문)
하나님은 그분의 삼일성을 나타내는 "우리"라는 그 구성요소는
세 위격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두 요소를 지칭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위격들을 가르쳐서 "우리"라고 한다면 이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의 문장은 누가 보아도 그러한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로
'우리'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질문이 나온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문장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사람을 만들고? 라고 해석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 < 질문 4> ------------------------------
(윗트니스 리의 글)
비밀스런 삼일성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밝혀주셨다.
즉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며
그 영은 아들의 변형이시며 동시에 존재하면서 상호내재하시는
세분은 믿는 이들의 누림을 위해 그들 속에 거하고 계시며
또한 아버지가 갖고 계씬 모든 것은 아들의 것이요. 아들이 소유한
모든 것은 그 영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믿는 이들에게 밝혀지고
계시된다는 것이다.
(질문)
위의 아들과 아버지와 그 영은 각 아버지의 위격과 아들의 위격과 성령의 위격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영(제3위)는 아들의(제2위의) 변형이시며 동시에 존재하면서
상호내재하시는> 이라는 말에서 <변형이시며>라는 말은 무슨 개념인가?
1) 2위격이 3위격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2) 2위격이 3위격으로 변했으나 2위의 특성이 그대로 제3위와 같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3)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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