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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는 이웃 돕기" 1년간 도심 울린 사랑의 하모니

baromi 2005. 9. 22. 23:23
"굶는 이웃 돕기" 1년간 도심 울린 사랑의 하모니
[조선일보 안준호 기자]

주먹콘’. 서울 중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이 매주 수요일 낮에 여는 ‘주먹밥 콘서트’의 약어다.

그 주먹콘이 21일 1주년을 맞았다. 누구도 기대하기 힘들었던 1주년이었다. 공연(公演)의 요소들이 모두 턱없이 부족한 콘서트이기 때문이다. 음악가들은 무료로 출연하고, 공연장은 날씨에 좌지우지되는 성공회 앞마당이고, 주먹밥은 자원봉사자들이 만들고, 관람객은 공짜로 주먹밥을 먹되 성금은 마음 내키는 대로 내고….

주먹콘을 주관해온 성공회 푸드뱅크 대표 김재열 신부는 “막상 시작은 했지만 이렇게 공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날까지 45회의 공연에 전인권, 안치환, 이상은 등 총 67팀이 무대에 섰다. 날씨가 더웠던 지난 8월 한 달 휴가를 겸해서 쉬었을 뿐 성공회 무대는 빈 적이 없었다. 공연자들은 대부분 ‘인디밴드’ 등 아직 유명세를 타지 못하는 신인들이다. 푸드뱅크 본부장인 김한승 신부는 “대학가 클럽에서 자유분방하게 공연하던 인디밴드들이 처음엔 성당에서 공연한다니까 점잖은 곡을 준비해왔다가도 직장인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다시 신나게 소리지르며 뛸 수 있는 곡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한 사람은 가수 소히(27)씨와 인디밴드 ‘스트로베리TV쑈’. ‘스트로베리TV쑈’의 기타리스트 진마(22)씨는 “인디밴드들도 어렵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히씨는 “우리 사회는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 같다”며 “작지만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먹콘은 관람객들이 성의껏 낸 성금으로 결식 이웃을 돕는 행사다. 캐치프레이즈는 ‘나눔이 있어 행복한 점심’이다. 현재까지 총모금액은 3600만원. 개인 기부자는 9000여명이다. 관람객들은 인근 직장인 ‘넥타이부대’를 비롯해 행인, 아이와 함께 찾는 학부모, 노숙자 등 직업과 연령도 다양하다. 보통 200여명이 찾는다. 성공회 푸드뱅크 무료급식 차량을 운전하는 안효식(44)씨는 “요즘은 경기가 어려운 탓인지 성금을 내지 않고 그냥 주먹밥을 달라는 사람도 많은데 매주 오는 한 노숙자가 꼭 동전 몇 개라도 내고 가는 것을 보면 없는 사람들이 더 ‘나눔’을 실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먹밥을 만드는 사람들은 서울 천호동에 사는 고광단(여·52)씨 등 7명의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장을 보고, 우엉을 조리는 등 음식을 준비한다. 수요일에는 아침 7시까지 와서 쌀 20㎏을 씻고, 고기를 삶고, 야채를 다듬어 빨강, 노랑 등 형형색색의 주먹밥 300여 개를 만든다. 행여 목이라도 멜까 된장국도 빠지지 않는다. 고씨는 “비가 와 실내에서 공연하게 되면 관람객이 반으로 줄어 애써 준비한 주먹밥이 남아 속상하다”고 했다.

김한승 신부는 “사람들이 대낮에 공연을 한다는 것과 매주 공연을 빠짐없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며 우리 사회가 아직 따뜻하고 살 만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주먹콘의 공연 일정은 10월 말까지 꽉 짜여 있다.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시작한 ‘주먹밥’과 ‘도심의 콘서트’가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힘찬 걸음걸이를 떼고 있는 것이다.

(안준호기자 libai@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