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물자료

[스크랩] C.H.스펄존목사의 회심과 그의 생애(이사야45:22):제2차영국역사탐방수련회를 앞두고

baromi 2005. 8. 22. 08:23

런던양무리교회주일설교                                                                                         21/08/2005

 

                            C.H.스펄존목사의 회심과 그의 생애(이사야45:22)

                                         -제2차영국역사탐방수련회를 앞두고-

 

  이번 주 토요일부터 3일간 “제2차영국역사탐방수련회”를 갖습니다. 토요일은 스펄존목사의 생애를 중심해서 그리고 월요일은 베드포드의 존 번연의 생애를 중심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주일은 본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스펄존목사의 생애에 대한 비디오를 상영하게 될 것입니다. 자주 강조해 왔던 것처럼 역사탐방의 의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입니다. 무심코 지나가는 길거리에 묻혀 있는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일종의 박물관이랄 수 있는 이 런던에서 살면서 그런 신비를 체험하는 것은 여기에서 거주하고 있는 우리들만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 특권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먼저, 영국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스펄존(1834-1892)이고 존 번연(1628-1688)이냐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현대교회(현대사회!)가 잊어버리고 있는 복음의 아주 중요한 요소들을 이들이 생각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는, 개혁주의(칼빈주의)신학을 견지하면서도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역사적 예를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개혁주의교회들은 개혁주의신학으로는 교회가 부흥,혹은 성장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편견,혹은 미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자들입니다. 셋째로 이들은 생애를 살펴보면 인간의 능력 그 이상이 그들의 삶과 생애에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삶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삶 속에서 영원한 삶을 묵상하게 해 줍니다. 이 점들을 오늘 간략히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스펄존은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어린 시절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담임하는 교회에 망나니가 한 명 있었습니다. 술집에 다니면서 교인답지 못한 행세를 하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가 마음에 근심을 하시는 것을 스펄존이 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스펄존도 그 술집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그 앞에 서서 큰 목소리로 일갈했답니다: “What doest thou here Elijah, sitting with the ungodly, and you a member of the church, and breaking your pastor’s heart. I’m ashamed of you! I would not break my pastor’s heart.” 이 말을 들었던 Tom Roads라는 사람은 처음엔 노기충천했다가 그것을 따지기 위해서 돌아오는 중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결국 회심하게 되고 스펄존과 참 좋은 사이로 지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스펄존이 10살 이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그는 일찍이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실상 회심한 것은 15살 때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험상궂은 날씨 때문에 부모님들과 함께 먼 거리의 교회당에 출석하지 못하고 스펄존은 가까운 곳의 조그만 교회당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청교도들의 글 특별히 존 번연의 글들이나 존 폭스의 순교자들의 일생 등을 통해서 알게 된 구원의 체험에 대해서 궁금해하면서 구원의 실체를 맛보고 싶어 해 왔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때에 설교자가 설교본문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이 이사야45장22절,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설교자가 이 구절을 통해서 오직 참된 구원은 “앙망하라 앙망하라 앙망하라”(Look! Look! Look!”는 것에 있다는 강조가 가슴에 비수처럼 찍혀서 이 말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한 스펄존의 회심을 기념해서 그의 메트로폴리탄 터버너클의 강단 전면에 이 성경구절이 지금도 새겨져 있습니다.

 

  현대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의 핵심이란, 많은 경우에, 10살 이전의 스펄존의 경건한 모습을 보고서 그가 이미 회심했다고 보지만, 스펄존 자신은 15살 때의 이 사건 이후로 그가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과 관계됩니다. 현대교회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도 역시 목사의 자녀로 태어나서 어쩌면 참으로 경건한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 못지 않게 모범적인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인됨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은 참으로 훗날의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만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많은” 경우 참된 회심에는 어떤 성경구절이 참으로 “살아있는 말씀”으로 체험되는 것과도 관계된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경우에는 로마서1:17절이 그랬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이 그를 살리는 생명의 검이 되었더랬습니다. 어거스틴의 경우에는, 로마서13장12-14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저의 경우에는, 갈라디아서2장22절이 그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런 말씀의 살아있음과 그 능력에 대한 체험이 위기에 빠진 현대교회를 살리게 될 능력의 복음으로 회복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부터 그러해야 합니다. 이번 탐방수련회의 목적들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둘째,현대교회에는 이상한 편견 혹은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나 원칙을 철저하게 강조하고 그것을 교회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신학을 강조하는 개혁주의(칼빈주의)신학이 인기가 없습니다. 대신에 교회를 부흥시켜줄 만한 것으로 실용주의철학이나 신학이 판을 칩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는 “알미니안신학”이라고 합니다. 16세기에 있었던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의 신학적 강조점을 따르는 것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의 활용을 강조하는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미니안신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현대교회가 이런 신학에 물들어 있습니다. 이들이 칼빈주의신학을 비판하는 요지는, 칼빈주의신학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영광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책임과 의지적 활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칼빈주의신학을 참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주의신학은, 스펄존의 회심구절이 강조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사야 45장 전체가 강조하는 것처럼,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행위와 열심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사야40장3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 새 능력으로 주님의 교회와 나라를 위한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스펄존의 교회는 그렇게 해서 칼빈주의신학을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게 했기 때문에, 부흥하는 교회였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1859년 런던대부흥”을 주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부흥할 수 없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저희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올바른 신학에 근거해서 참으로 부흥하는 것을 체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래서 스펄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펄존과 존번연은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인간의 능력 그 이상의 그 무엇을 묵상하게 합니다. 마이크가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스펄존은 2만여명 이상이 모인 곳에서 여러 번 설교하였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크리스탈 팰리스”라는 곳입니다(답사예정지중의 하나입니다). 원래 지었졌던 규모로 치자면 현금의 세인트 폴 성당보다 네 배 정도가 컸다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집회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성량을 테스트 해보기 위해서 스펄존은 어느 날 그 자리에서 설교연습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마침 청소를 하러 온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연습으로 하는 설교를 듣고는 회심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마담 터소에는 스펄존의 밀랍 인형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명인이었습니다. 빅토리아여왕이 몰래 변장을 해서 설교를 들으러 왔다고도 합니다. 그 당시 유명한 연극인(James Sheridan Knowles)이 화법과 제스쳐를 연구하면서 그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추천했던 사람이 바로 스펄존이었답니다. 그가 쓴 저술의 분량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의 두 배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이 주목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의 이런 초인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또한 주장하였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들은 그와 같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깨울 영적 거인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내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