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자료

[스크랩] 저희 교회 중고등부 특강 원고입니다. 부끄....^^

baromi 2005. 7. 19. 11:40
개혁교회의 원리와 신앙(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
- 2005년 7월 명덕교회 벧엘수련회 전체특강 강의안 -

최재호 2005.7.17

1. 들어가는 말(8가지 질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받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는 죄에 대해 진노를 발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이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매주일 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의 자리에 서는 것을 습관적인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지겹고 따분한 시간으로 생각하지는 않은가?
우리는 시험기간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이나 수학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훨씬 가치없는 일로 여기고 있지 않는가? 누군가가 나의 장래에 훌륭한 직업을 가지게 해준다거나 엄청난 부를 약속하거나 명예를 거머쥐게 해 준다면 그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따르지 않겠는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교회에 대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어느정도의 의미와 가치로 다가오는가?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신앙의 선배들이 그토록 갈망하며 지켜내기를 원했던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2. 교회란 무엇인가?
창세전에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심에 대속의 죽으심,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임재로 가시적으로 시작된 지상교회의 역사는 2000년에 달하고 있다.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역사이며 구속사와 언약으로 이어져왔다. 이 가운데 교회는 빛과 어두움의 시대를 거듭하였지만 하나님은 변함없는 자리에 언약에 신실하심으로 계셔오셨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순교와 핍박, 상실을 의미하던 것이 초대교회 당시의 일이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노예신분으로의 전락을 의미했고 굶주린 맹수의 먹이가 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불구덩이에 던져짐을 의미했고 톱에 켜져 죽는 것을 의미하던 시대였다. 이 당시에도 이단의 무리들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순수한 신앙열정과 종말신앙을 유지하고 살았던 때였다.
그러다 4세기경 콘스탄틴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국가의 종교로 인해 공인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진리에서 떠나가던 기독교회는 중세 로마천주교회의 전횡과 타락, 배교의 시대로 치달았다.
말씀보다 교황의 가르침과 권위를 존중했고, 하나님의 진노를 살 우상숭배(성자숭배와 마리아숭배, 성상숭배, 미사와 비성경적 성례)와 성직매매, 잉여공로설, 고백성사와 면죄부의 판매, 교권의 제권추구, 성적 타락과 재산착취 등의 죄악이 넘쳐났다.

하지만 대다수 교회와 인간들은 타락과 배교의 길을 걸었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 남은 자들을 통해 새 일을 계획하셨고 그 일을 이루어가셨다.
그들은 시대의 위협과 회유 앞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움추려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바르게 서기 위해 기꺼이 화형대에 오르고 감옥에 갇히며 온갖 고문을 겪어냈다. 16세기에 이르러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등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자들은 개혁된 교회를 통해 말씀의 권위를 회복시켰고 참 예배를 드렸으며 오직 말씀의 정신으로 교회와 신앙의 기초를 다시 세웠다.
그들 중 일부인 ‘청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죽음과 굶주림, 전염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대륙으로 떠났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그들의 신앙을 따르는 후예들중 ‘장로교’ 선교사들이 미지의 땅 조선으로 복음을 가지고 떠났고 수천년동안 우상의 그늘아래 처참한 삶을 살던 조선인들은 복음의 빛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일제치하 신사참배와 황궁(궁성)요배, 신도침례를 강요했던 일제에 대항하며 순교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생각했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중 일부는 옥중에서 숱한 고문으로 죽음을 맞았으며, 거의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계속되는 고문과 회유에 시체와 방불한 모습으로 광복과 함께 출옥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총칼을 앞세운 일제앞에 신사참배반대운동을 전개하거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산간오지에 들어가 풀뿌리를 캐먹는 삶을 살기도 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순결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냈던 이들이 세운 교단이 바로 우리 고신교단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초대교회로부터 일제치하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신앙선배들의 신앙의 순수성과 목숨을 건 열정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결코 인간의 노력이나 결단으로 되어진 것은 아니란 점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사람들을 사용하신 결과란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교회에 대해 한가지 중요한 정의를 하고 지나가겠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하늘에 오르심과 다시 오심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믿고 고백하며, 영원한 하늘아버지의 나라에 가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배워가며 이땅 가운데 그분의 뜻을 이뤄가기를 결단한 무리’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온 하늘과 땅위에 높아지기를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만이 영광과 높임을 받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우리는 생각을 전개해 오고 있다.
진지하게 물어보자.
“나는 또 우리는 참된 교회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가지 내걸었던 신앙의 선배들처럼 참 교회의 일원인가?”

3. 교회의 본질, 표지는?
우리는 앞에서 교회의 정의를 생각해보았다. 교회는 신앙고백공동체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고백하고 믿는 공동체이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로서 교회가 아니라 우리의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같은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교회는 친목을 위해 모인 사교단체나 연령별로 모여 놀이하는 또래집단도 아니고 놀이집단도 아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는 재미있는 곳이 아니며, 오히려 교회는 재미없는 곳이지만 그 속에서 영원한 생명과 참된 진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계획과 사랑의 극치인 예수님의 구속의 죽음에 의한 참된 사랑과 기쁨과 소망이 있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이다. 창세전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성령의 부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양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형제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맏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우리는 한 가족이며 형제가 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과 우리, 우리 상호간에 거룩한 사귐이 있는 곳이며 그 사랑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이 있는 곳이다.
만약 교회안에 편가름이나 분열, 다툼, 질투, 시기가 있다는 것은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유에서이다.

또 교회는 말씀으로 인해 사도 바울이 있던 초대교회나 교부시대의 교회들,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들, 우리시대와 후손들의 교회가 다 한 교회로 존재한다. 이것이 ‘보편교회’이며 ‘우주적 교회’이다. 우리교회와 남의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의 한 몸된 교회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정체성이 시대와 거리,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기준과 원리인 말씀을 따라 존재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 교회란 이름을 가진 곳은 다 하나된 주의 몸인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란 이름을 내세우지만 이단도 있고 거짓된 교회도 있다.
개혁자들은 특정한 원리와 표준을 따라 참교회와 거짓교회로 구분지었다.
즉 참교회의 표지(sign) John Calvin <기독교강요> 제4권 9.교회의 표지에서는 말씀사역과 성례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권징사역은 말씀사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는 1. 말씀의 바른 선포와 청취, 2. 주 예수의 제정하신 성례의 바른 시행(개혁교회는 2가지의 성례만을 인정하고 지키지만 로마교회는 7성례-혼인성사, 관유(병자)성사, 고백성사 등-를 지킨다), 3. 권징의 바른 실시에 있으며 벨직신앙고백서에는 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 참교회의 표지를 찾아볼 수 있는 교회는 참교회로 규정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기준을 따라 우리교회가 참교회로서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4. 역사에서 거짓교회화된 로마교회의 참상
1) 교황의 권력화(교권의 국가권력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교황은 이제 황제와 권력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황제나 제후들을 출교시키거나 그 제국에 수찬정지를 명하는 조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 아래 세상의 권력을 복속시켰다.
이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 유럽 제(諸)국의 왕들과 정략결혼이나 권모술수를 일삼았다. 각 나라의 왕들을 마음대로 세우거나 폐했으며 이것은 교황의 권력화를 유지했고 교황의 힘에 의해 왕좌에 오른 왕들은 대가로 막대한 재산을 교황에게 바쳤다. 교황이 세상권력에 눈이 어둡게 되자 교회는 어둠속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교황의 세속권력 획득과 유지, 재물을 얻기 위해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세상을 2백년간 전쟁속으로 몰아넣었다.

2) 말씀의 가리워짐
교황의 권위를 세우던 로마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가감하였고 정경외에 외경을 채택하였고, 말씀을 따른 예배보다는 형식화되고 자의적인 예배를 드렸으며, 성경의 해석의 최종권위를 교황에게 두었다. 교황과 추기경, 사제의 친족들중 말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성직을 ‘하사하여’교회를 맡겼고,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는 것도 소지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상규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25p

성경속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평신도들은 소위 성직자들의 자의에 의한 말씀을 들어야 했고 참 예배가 아닌 우상숭배(마리아숭배, 성자숭배)를 했으며, 참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잉여공로설’과 면죄부 구매, 속죄선언에 의해 구원을 얻는다고 배운대로 믿었던 것이다.

3) 면죄부와 공로주의
중세후기인 13~15세기에 접어들자 교황과 교회의 타락상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교황이 되기 위해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에게 돈을 뿌려 매수했고 교황이 되기 위해 친족을 살해하거나 눈을 뽑아 페위시켰고 같은 시대에 교황이 여러명이 등장하기도 했다. 어떤 교황은 이름난 예술가의 작품으로 아비뇽에 있는 교황궁내 자신의 거처를 치장을 했고 예술가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다녔다 최덕성 <종교개혁전야> 448p
.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이러한 교황의 사치와 허영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같은 책 446p
. 또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거대한 교회당을 짓기 시작했다.
당연히 많은 돈이 필요했다. 교황이 되었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올라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채를 청산해야했고 자신의 허영과 사치스런 생활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경비가 소요되어야만 했다.

재원마련을 위해 고민하던 그들은 면죄부(免罪符)를 팔았다. 죄를 사해준다는 증서를 돈을 주고 샀다. 예를 들면 사제가 발행한 면죄부는 일주일, 추기경은 한달,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는 평생의 효력이 있다는 식으로 가격을 매겼다. 또 교회세를 걷었다.
재력을 가진 귀족이나 왕들은 자신들의 내세를 위해 전재산을 기꺼이 교회에 바쳤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것은 교황의 부채청산을 위해 조작된 비성경적인 사기극이었다.

또 로마교회는 교회에 재산을 바치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의 세속적인 삶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데 소위 성자(聖者)들의 ‘구원을 얻고도 남는 공로’를 교회에 연보를 바침으로써 얻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붙였다. 이른바 ‘잉여공로설’이었다.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서 떠나있는 새빨간 거짓말이요 사기극이었다.

4) 성적인 타락
로마교회는 성경을 잘못 해석함에 의해 사제들의 결혼을 금했는데 말씀을 버리고 타락한 로마교회의 ‘성직자’들은 온갖 성적 범죄를 저질렀다. 교황 중에는 정부(情婦)를 여러명 둔 이도 있었고 자녀를 여럿 둔 이들도 많았다. 사제에 의한 성폭행, 사제와 수녀들간의 간음이 빈번했다 이상규 위의 책 29p
. 혹자들은 중세시대 수도원이나 교회당의 지하에는 수없는 영아들의 시체가 유기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독신서약’을 한 수도원장이나 사제의 자제, 심지어 교황의 아들이 버젓이 교권을 물려받았다. 또 교회를 찾은 귀족들의 부인들은 사제나 수도사들과 불륜의 관계를 유지했고 임신이 되면 아이들을 몰래 죽여 유기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가 사탄의 모임이 되어있었다.

5. 종교개혁을 준비한 사람들
1)위클리프 최덕성 <종교개혁전야> 제15장 중세교회개혁운동

‘종교개혁의 새벽별’로 불리우는 존 위클리프(1330~1380)는 구원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외에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삶의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생각, 당시의 교황은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생각했다. 위클리프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강조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교황보다 우위에 있으며 성경만이 유일한 표준이라고 믿었다. 그는 나아가 교황제도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성경은 모든 교인들의 손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로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라틴어 성경 벌게이트(Vulgate)판 성경을 영어로 옮긴 이른바 ‘위클리프성경’을 펴냈고 그를 따르는 이들에 의해 이곳저곳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됐다.위클리프는 1384년에 뇌일혈로 죽었는데 그의 사후 30여년 후 인 1415년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유골을 파내 화형에 처하고 그 재를 강에 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2)윌리엄 틴데일(1494~1536) 위의 책 420p

위클리프의 성경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두는 정신을 따른 틴데일은 위클리프 성경의 오역과 잘못을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근거로 재번역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런던에서 유럽(쾰른, 브롬스, 브뤼셀) 전역을 도망다니며 신약성경과 구약일부를 번역해 출판했고 끝내 체포되어 목매달아 죽임을 당한 후 화형에 처해졌다.

3) 롤라즈운동 위의 책 398p

롤라즈(Lollards)는 ‘가난한 방랑 설교자들’이란 의미다. 이들은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예정과 성경을 강조한 무리들이었다. 성경은 교황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의 것이라고 가르쳤다. 성경의 최종권위를 강조한 그들이 로마교회의 화체설, 죽은 자들을 위한 예배와 기도, 면죄부, 성지순례, 성상의 사용, 독신서약 등은 잘못이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추종자 대부분들이 사형을 당하는 핍박을 받았으나 영국 서민들 저변에 확산되어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4) 얀 후스(1372~1415) 같은 책 401p 참조

위클리프의 개혁사상은 체코지역으로 확산됐다. 후스는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질타했고 교회개혁과 성직매매 금지를 요구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화체설’을 주장하며 평신도들은 떡밖에 받을 수 없었다. 후스는 평신도들도 예수께서 정하신 대로 언약의 피를 의미하는 포도주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1411년 교황은 그를 파문했으나 후스는 성경이야말로 교황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궁극적인 권위이며 성경에 복종하지 않는 교황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면죄부 판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중 콘스탄스 공의회는 후스에게 스스로를 변호하라고 요청해 참석했다가 교황 존 23세에게 체포되었다. 교황은 이단사상을 청회하라고 했으나 후스는 “내가 이단자란 것을 증명해 준다면 기꺼이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공의회앞에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전능하시며 공의로우신 유일한 심판관 예수 그리스도께 항소한다. 처분은 그분의 손에 맡긴다.” 그리고 1415년 7월 6일 후스는 화형장에 섰다. 수없는 고문으로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삭발되어있었다. 그를 태운 재도 호수에 뿌려졌다.

6. 16세기 종교개혁의 의미와 대표자들
16세기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황)의 권위를 우선시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인간적 탐욕과 권력을 위해 더럽힌 거짓교회 로마교회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앞에 복종하고 순복하는 원래의 교회모습을 회복한 데 있다. 신앙과 행위의 최종권위를 ‘오직 성경’에 두었던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후기 개혁운동의 열매이다. 순수한 교회를 지키려고 애썼던 사람들, 성경을 사랑하면서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용감한 신앙인들의 고백과 수고와 희생의 결과였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신앙과 삶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루터(1483~1546)
표면적인 16세기 종교개혁의 발단으로 꼽는 사건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자신이 교수로 재직중인 비텐베르크대학 게시판에 로마교회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면서였다. 95개조 항의문이라고도 하는 이 토론제기의 내용은 성경적 회개의 의미와 면죄부의 무효성을 주장하면서 교황(사제)의 사죄권과 공로사상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으로 인한 유일한 사죄의 길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상규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23p


<루터의 논리> 독일인들의 가난함과 베드로의 무덤 장식 대조 (차라리 폐허로!!)
교황이 과연 연옥에 대한 권세를 가졌는가? 그렇다면 왜 다 비워버리지 않는가? 교황은 지상에서 자신들이 부과한 형벌들만을 사할 수 있을 뿐이다. 면죄부는 연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죄를 사해 줄 수도 없다. 면죄부는 그릇된 심리 상태를 유발한다. 진정 용서 받으려면 먼저 죄가 얼마나 가공(可恐)할 만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공포에 사로 잡혀야") 그 고통 가운데서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평화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을 때 임한다. 이 평화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은 교황에게서 일백만번 사죄를 받는다고 해도 사실상 버림받은 사람이다. 이승구 <개혁자 루터의 구원론과 교회관>참조 2000.10.29



사제였던 루터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할수록 공의의 하나님, 의로운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다가옴을 괴로워했다. 그는 로마교회가 가르치는 예전을 통하고 참회의 행위나 고행을 통해서도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로마서 1:17 말씀을 통해 ‘이신칭의(以信稱義)-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음’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재발견해내고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회복하였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중요한 교리를 발견해 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생활을 공격했지만, 나는 교리를 공격한다." 그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병폐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 자체의 기독교 이해를 공격했다.

1520년 4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제(priest)이다."
1520년 5월 십계명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묘사. 일상 생활 가운데서의 온전한 순종: 만인 제사장 주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쉼표가 없는 악보를 보고 노래 부르는 것과 같다".
1520년 6월: 교황은 모든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이다
1520년 8월 교황은 세속 통치자들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교황은 성경의 최종적 해석자가 아니다. the universal priesthood of the believers=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강조
1520년 10월 성례를 둘로만 제시
1520년 자유를 선언, 그러나 그는 만인의 종이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믿음으로만 말미암는 칭의
1521년 공식 출교됨.

-루터가 던지는 문제제기 이승구 <개혁자 루터의 구원론과 교회관>참조 2000.10.29

(1) 신앙의 내용과 실천과 삶에서 과연 철저히 성경적인가? 성경 중시, 바른 성경해석
(2) 하나님의 은혜에 철저히 의존하는가? 이상한 성령 운동: 그것은 진정한 '성령의 사역'에 대한 무시이다.
(3)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의존하는가?
(4)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확신하며, 믿음으로만 사는가?
(5)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는가? 우리의 삶의 진정한 충동력은 무엇인가?


2) 칼빈(1509~1564)
그는 16세기적 맥락 가운데서 개혁 신학을 참으로 잘 정리한 사람이요, 우리의 믿는 바 신앙의 내용과 방식 모두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제시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다. 특히 그가 1536년 초판을 출판한 이래 1559년 결정판을 내기까지 계속해서 그 내용을 가다듬은 <기독교 강요>는 우리들이 믿고 알아야 할 바를 잘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536년 초판의 기독교 강요는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소책자였다. 그러나 그 책은 1559년 최종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증보되었다.
특히 최종판은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4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해서, 2권은 구세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관해서, 3권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축복과 효과들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4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초대하는 외적인 수단들에 대해서 다루었다.

신앙은 무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에 근거한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은 우리에게 경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존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바른 지식을 지닌 이는 반드시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에 근거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부터 바른 신앙의 고백이 나온다. 바로 이런 뜻에서 칼빈은 "그 누구도 입으로 시인하지 않고 마음으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고 말하며, "열과 빛이 없는데도 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신앙의 고백은 항상 순종의 행위와 동반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칼빈은 다음 같이 말한다: "그에 상응하는 삶이 없이는 우리가 말하는 것은 아무런 무게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백이란 말 뒤에 선한 양심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박해경 <칼빈의 신앙론> 2003.7.21(ACTS,조직신학)


또한 다른 곳에서 칼빈은 이렇게도 말한다: "선한 양심으로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사랑으로 그 자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모든 신앙 고백은 참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물론 우리가 믿고 순종해야만 하지만) 신앙은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신앙이 생기게 하시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은 하나님의 외적 예정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무차별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모든 이가 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빈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선택의 예정이 신앙의 궁극적 원인(the ultimate cause)이다. 이승구 <칼빈의 신앙이해에 대한 한 연구>

칼빈은 우리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만 기원한다는 것과 그 기원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었다. 즉 신앙을 가지는 것이나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에 의하면, "항상 (하나님의) 자비가 논리적으로 신앙에 앞선다"고 말하는 쉐퍼드의 말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

4) 존 낙스(1513~1572) D.Martyn Lloyd-Jones <The Puritans> 380p이하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청교도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운다. 또 1560년 장로교총회를 조직하여 장로교회의 창시자로 꼽힌다. 낙스는 기존의 전통과 관습보다 스스로 성경을 읽는 자세,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 관계없이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을 가진 이였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권위의 원리로 삼았던 사람이었다. 로마교회가 교회와 그 전통, 성경에 대한 교회의 해석을 우선하는 것과는 달랐다. 또 그는 전적인 말씀으로의 개혁, 즉 신약의 원리를 따르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으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종교를 만들거나 고안해서는 안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종교를 가감없이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사는 우상숭배요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며 성찬을 사악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낙스는 칼빈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무조건적인 수용적 자세를 가지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리 신앙의 위인들의 책을 읽을 때라도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 항상 성경의 잣대로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7. 개혁신앙의 후손(개혁교회의 지체)-우리
일본제국주의의 압제가 최고조에 달하는 1930년대에 접어들어 교회는 신사참배 참여라는 중대한 위기를 맡게 됐다.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일제의 압력과 회유에 못이기고 일본의 천황과 일본의 신앞에 그들의 머리를 숙이고 일본 귀신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고(신도침례), 목사들이 단체로 귀신을 모신 신사를 참배했다. 그렇게 그들이 우상숭배에 앞장 선 것은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교회를 타락시키고 우상숭배를 하게하며 바른 신앙을 저버린 것이었다.

(1) 찬송가의 선별제창 강요 2003 한상동 기념학술회 최해일 목사 <고신교단 50년의 명암>

371장 삼천리 반도금수강산, 389장 믿는 사람들아, 390장 십자가 군병들아, 391장 십자가 군병되어서
등 日本皇室에 反對되는 찬송은 一切 禁止시켰다.

(2) 동방요배(東方遙拜)와 신사참배 강요
禮拜 前에 東方遙拜를 하고 君が代は(기미가요)라는 日本노래를 부른 다음 예배를 드리도록 强要하였다.
이 神社參拜强要에서부터 高神敎團의 뿌리는 내리기 始作했다고 할 수 있다.
1935.12. 天主敎 敎皇 비오 11세 (Pius XI / 1922.2.12-1939.2.10)의 勅令으로 神社參拜를 國民儀禮로 인정했고 1938.9.3 監理敎는 總理師 양주삼의 이름으로 ‘神社參拜를 國民儀式으로 認定’하기로 決議公布 했다.
1938.9.9 20:00 朝鮮예수교長老會 第27回 總會가 平壤 西門밖敎會에서 開催되었고 여기에서 神社參拜가 可決되었다. 거의 모든 한국의 기독교회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嶺南에서는 朱南善, 韓相東, 李仁宰, 孫良源, 孫明復, 蔡廷敏, 崔德支, 趙壽玉, 朴仁順, 安利淑 等이 北韓에서는 朱基哲, 朴寬中, 李基豊 等이 신사참배반대운동 전개했다.
韓相東, 朱南善, 朱基哲, 孫良源, 李仁宰, 孫明復, 崔德支, 趙壽玉, 蔡廷敏 等 數많은 聖徒들이 投獄되고 獄死를 當했다. 같은 논문


해방후 친일파 목사들은 여전히 교권을 잡고 있었으며, 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치하에서 신도침례와 신사참배, 동방요배등 하나님께 불신앙, 불경의 죄를 범한 일을 공식적으로 참회하고 자성의 기간을 가진 뒤 다시 한국교회를 재건하자는 옥중성도들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들보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여 신사참배를 했다’고 하는 논리로 ‘바리새주의자’들을 쫓아냈고 이때 세워진 교단이 우리 고신교단이다.
우리는 신학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사도들의 가르침과 서신, 어거스틴, 칼빈과 개혁자들에게로 이어지는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따르고 제도적으로는 존 낙스가 수립한 <장로교회>의 제도와 전통을 따르고 있다. 또 우리의 경건의 색채는 영국의 청교도적 성격을 가진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사도신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신앙고백> <도르트신경> 등 역사적 전통 개혁주의의 고백을 따른다.

지금 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가지고 다니며 잘 펼쳐보지도 않는 성경책은 우리의 앞선 신앙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하고 번역하며, 그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읽고 또 묵상하며 살고자 애썼던 참으로 귀한 책이다. 그것을 우리에게 이어주며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믿게 하기위해 수없는 이들이 톱으로 켜져 죽었고 굶주린 사자의 먹이가 됐으며 끓는 기름에 튀겨졌고, 기름부은 장작더미 속에서 기도하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손과 발이 불에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주의 이름을 소리높여 찬양하며 자신들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소망 중에 그들의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바로 성경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들려지고 읽혀질 때 그 속에서 역사하신 성령의 능력 때문이 아닌가!

한국의 신앙선배들은 어떠했는가? 일제의 총칼과 숱한 고문속에서도 “잠시만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면 살려준다”는 회유 속에서도 ‘일사각오’의 신앙정신으로 죽음과 고통과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살았던 분들이었다. 그러한 신앙의 절개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신부로 살기 위해 이 땅에서 순교자로 죽었던 분들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경북노회 명덕교회의 학생신앙운동원 여러분!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 초대교부들과 어거스틴, 칼빈과 존낙스, 영국의 청교도들, 나아가 이 땅에서 신사참배반대운동을 전개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순결한 교회를 위해 살았던 신앙선배들의 신앙과 생활을 계승한 이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개혁자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성경말씀에 대한 권위를 가장 높은 곳에 둔다.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알 수 있으며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존 파이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참조
하나님께서 명하신 원리를 따라 예배하며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 속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삼위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삶을 배우게 된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준 것, 그토록 전수해주고자 했던 간절한 열정과 갈망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 하찮고 지루하게 여기는 바로 그것을 위해 그들은 이땅에서의 삶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이 땅의 실패자로 살았다. 동시에 그들은 바로 그것으로 인해 천국의 승리자이자 영광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 생활의 원리와 표준을 성경 말씀에 두고 말씀이 가라하는 곳으로 가고 말씀이 서라 하는 곳에 서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전해 준대로 말씀이 생각해라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라는 때에 그만두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늘 생각하며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항상 배우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우리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고 드러내며 선포하는 일에 우리의 전 삶을 걸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며 진정한 우리가 사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각주가 붙지 않아 자료실에도 올려놓습니다. 실력도 없지만 시간도 너무 촉박하여 아쉬움이 많습니다만 저는 일단 끝내놓으면 다시 잘 보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대로 올립니다.^^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최재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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