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자료

[스크랩] 영혼을 진리로 인도하는 사람들(약5:19-20,완결)

baromi 2005. 7. 11. 09:23

런던양무리교회주일설교(고국방문전주일)                                                                    10/07/2005

 

                           영혼을 진리로 인도하는 사람들(약5:19-20)

 

 

  오늘로 야보고서 강해설교를 마치게 됩니다. 그 마지막 본문의 입장에서 야고보서 전체를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말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서신의 결론부분에서, 서신의 본론에서 얘기해 왔던 것을 다시 요약하면서 말하기를, 인내하며 오래 참을 것(7-11절), 참되고 신실한 말을 할 것(12절), 그리고 꾸준히 기도할 것(13-18절)을 강조하고,이제 마지막으로 “영혼을 진리로 인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습니까? 바로 “진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면”이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미혹되는 것일까요?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이 야고보서를 살펴왔습니까? 바로 사도행전을 강해하다가 예루살렘회의에서 대변자역할을 하고 있는 야고보가 지니고 있었을 복음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이 복음이 되는 것은 복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마지막 점을 찍습니다. “너희가 알 것은…”(20절).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이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까?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그 영혼이 사망 가운데 빠진 자들에게 진리를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진리를 배우는 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진리를 증거하고 증거하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첫째, 미혹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진리가 무엇인가 알아야 합니다. 셋째, 진리가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미혹의 실상이 무엇입니까? 특별히 현대는 미혹(error)의 영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미혹이란 “혼미하게 해서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왜 혼미해지는 것일까요?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참인지 분명치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의 혼란이 있습니다. 특별히 현대사회에서는 “진리”라는 개념자체가 이상하게 혼미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진리”라고 하면 생명과 인생을 내어 걸고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발견하면 저녁엔 죽어도 좋다고도 하였습니다. 요즘엔, 진리를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고 혹은 개인마다 제각각 자기 좋은 대로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 번 이것에 대해서 비판해 왔습니다. 오늘은 이런 예 하나로 비판하겠습니다. 영국에서는 차를 타고 가다가 외길에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먼저 전조등을 깜빡거리는 사람이 양보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전조등을 깜빡거리면 상대방을 보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니깐 오지 말라는 표시입니다. 이렇게 관습이 다릅니다. 그래서 진리가 상대적입니까? 전조등을 깜박거리는 표시방법의 차이가 있을 지라도 공통된 것이 무엇입니까? 외길에서 다른 차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은 공통됩니다. 그래서 전조등이든, 표시방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표시를 하든지 하는 것은 문화적, 관습상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표시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공통적입니다.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할 공통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발견해야 어떻게 전조등을 깜빡거려야 할 지에 대해서 일치한 그 무엇을 찾을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차는 그만 박치기를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내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제 삼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서로가 사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우리의 이성의 힘으로나 감성의 어떤 체험으로 확보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라고 파악한 그 진리는 언제든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인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한계를 지닌 진리이지만,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에 넉넉하고, 또한 우리가 생명을 걸기에 충분한 그런 진리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도,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한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현대의 미혹의 영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니고 또한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야고보는 도대체 무엇을 진리라고 생각해서 우리로 하여금 영혼을 진리로 돌아오게 하라고 권하는 것일까요? 야고보는 그 진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진리는 그렇다고 어떤 관념적이고 지식에 그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무시하고 혹은 미쳤다고 놀렸을 바로 자신의 형님, 나사렛 예수가 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편지의 첫마디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영광의 주 곧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기초이고 원리였던 것입니다. 야고보의 “진리”가 이상합니까? 어떻게 개념적으로 정의해서 진리는 무엇 무엇이라고 답변하지 않아서 이상합니까? 1+1=2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는 식의 명제가 진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진리란 그 사실이 사실되게 하는 근원이고 근본을 말합니다. 왜 1+1=2가 됩니까? 반드시 그런 것일까요? 물방울 하나와 또 다른 물방울을 합치면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됩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일 뿐만 아니라, 구면체 위에 그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이상이 됩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그런 사실들이 작용하는 세상을 전제로 합니다. 1+1=2라는 원리가 작용하는 세상이 있고, 1+1=1이 작용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삼각형의 내각이 합이 180도라는 것이 작용하는 세상(유클리드기하세계)이 있고, 그 이하, 혹은 그 이상이 되는 원리가 작용하는 세상(비유클리드기하세계)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저런 세계가 어떻게 생겼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떤 법칙과 원리가 법칙과 원리로서 작용하는 그 근본과 근원이 무엇에서 말미암은 것일까요? “무”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자연)일까요?

 

  성경은 이 점에 있어서 솔직합니다. 그런 세상을 만드신 분이 존재하시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되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 분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야고보는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진리의 모든 것을 깨우치지는 못했었어도, 자신의 생명과 젊음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진리”의 “종”이 되었습니다. 여러 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야고보는 지금 이 진리를 알아야 영혼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 진리로 그럴 듯한 거짓된 진리들에 속아서 살아가고 있는 미혹 당한 자들을 돌아서게 하라고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 단순히 머리(마음=mind)의 깨우침으로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heart)의 변화가 있어서, 행함이 동반되는 믿음으로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2장14-26절). 그리고 그 진리를 발견한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하였습니다(3장 이후). 이제 최종적인 권면으로 그런 자들이 그 진리를 증거하고 그 진리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사실 강조되어야 할 욧점이 이것입니다. 거짓된 하나님, 거짓된 진리, 거짓된 구원에 미혹되어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미혹된 영혼들을 진리로 인도할 것인가? 첫째, 사랑입니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사랑합니다. 야고보의 권면이 그것입니다.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이 거짓임을 스스로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진리를 발견한 것이 증명됩니다. 그 사람이 발견했다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서 질문하게 됩니다. 성도끼리, 또한 세상의 필요에 깨닫게 된 진리로 반응하는 것이 요청됩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둘째,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았다 하더라도 온전치 못합니다. 진리를 안 사람은 더욱 더 그 진리의 맛을 그리워하면서 더욱 알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것에 꿀과 송이꿀 같은 진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갈급해 합니다. 저는 특별히 성경암송을 강조합니다. 60개구절성구암송을 저의 양육목표로 삼고 강조합니다. 암송하면서 음미하는 중에 우리의 영혼의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체험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암송하다 보면, 어떻게 전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진리를 증거할 수 있을까 쉽게 훈련되어집니다. 셋째, 이론보다도 실행이 중요합니다. 실행하다 보면 훈련이 됩니다. 전도해 보십시오. “와보라” 하십시오. 더듬거리는 성구암송으로도 내 삶을 간증하려고 해 보십시오.

 

  한 달간 고국방문을 하게 됩니다.고국방문 중에 기회있을 때마다 이 진리를 증거하다가 돌아올 것입니다. 이곳에서도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진리로 영혼을 인도하려고 힘쓰는 교우들이 될 수 있기를 권면하면서, 오늘 야고보서강해와, 고국방문을 위한 고별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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