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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순전한 복음만으로 마음을 꿰뚫은 설교자 , 스펄전

baromi 2015. 10. 18. 23:18

순전한 복음만으로 마음을 꿰뚫은 설교자, 스펄전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출간된 지 백 년이 훨씬 넘은 스펄전의 옛 설교집과 며칠째 씨름 중이다. 오래전 스펄전의 설교는 온통 그리스도의 붉은 보혈로 흠뻑 젖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제는 더 이상(?) 듣기 힘들어진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오래전 그의 순복음 설교를 듣노라면 한 시대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도 불충한 종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 가슴 깊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교회사의 거인들의 설교들을 읽으면서 절감하게 되는 사실 중 한 가지는 오늘 우리의 많은 설교가 기독교의 핵심 진리에서 이탈하여 성공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을 섬기는 일종의 현대판 ‘잠언’으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의 설교는 이 땅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한 처세술과 위대한 성공을 이루는 원리, 그리고 지금 당면한 우리의 “문제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원리를 설파하는 데 지나치게 집중된 듯하다. 물론 현대에도 어떤 신실한 설교자들은 이러한 거대한 세속화의 물결을 거스리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충실히 전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더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풍성하게 알고 전하는 데까지 자라가야 할 것이다(엡 3:18).

 

오래전 마틴 로이드존스가 조지 휫필드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집을 읽으며 자신은 한 번도 설교한 적이 없다고 느꼈던 것처럼 사도와 옛 설교자들의 설교를 정직하게 대면한다면 우리 역시 주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겸손히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1)

 

 

 

그렇다면 현대 강단이 사도의 복음으로부터 이탈한 단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 없는 회심과 많은 기독교인이 사는 별 변화 없는 오늘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성경과 옛 교회사의 기록들이 보여주듯, 참된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언제나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와 깊은 회개가 있었으며, 이로 인한 역동적인 삶의 변화가 존재했다. 왜냐하면 로이드 존스가 적절하게 말했던 것처럼 근본적으로 “평범한 그리스도인”(ordinary Christian)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오래전 복음이 이 땅에 처음 전파되던 시기와 달리, 오늘 현대 교회는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얻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회심자를 더 이상 얻지 못하는 듯하다.

 


 

스펄전은 어느 한 설교에서 말한다.

 

“모든 참된 회심들에는 본질적인 일치가 있다. 거기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전적인 통회와 그것의 용서를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그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마음의 참된 변화가 있다. 만약 이러한 본질적인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회심이라 할 수 없다.”3)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러한 어두운 시대와 설교자로서 우리가 가진 많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영광스러운 설교자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며, 여전히 이 복음만이 영혼을 살리며 이 땅을 살리는 유일한 희망임을 의심치 않는다. 또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전파자로서 사람들을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옛 사도의 후예는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설교를 위하여 귀 기울여야 할 여전히 유효하고 값진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복음 전도가 아닌 것

 


 

첫째, 전도는 타교회에 소속된 신자를 빼내오는 것이 아니다. 스펄전은 이미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그 교회에서 빼내오는 것을 전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설교자를 “다른 교회의 양들을 훔쳐오는 도적”이라고 비난한다. “우리는 우리 이웃의 저택을 무너뜨리고 우리 자신의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을 아주 비열한 짓으로 규정합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채석장의 돌을 파내는 것이 백 번 낫습니다.”

 


 

둘째, 전도는 교적부의 신자수의 증가나 통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스펄전은 교회의 교적부에 새신자의 이름이 오르는 것을 귀한 것으로 보지만 그것을 전도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음전도란 본질적으로 회심자를 얻는 것이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펄전에 따르면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을 신자로 간주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약화시키고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그것은 교회의 신자로 분류된 사람에게도 영적으로 유익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교회에 잡아두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른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신자로 취급하는 것은 결국 그들을 위선자로 만드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이러한 교회의 경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아직 부화되지 못한 병아리들의 수를 계산하는 것과 완전히 수중에 넣지 못한 전리품을 과시하는 것을 혐오합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할 시험을 한 순간의 통계로 대체해 버리는 무익한 허세에 불과한 이 같은 숫자노름을 피합시다.… 그것은 성령을 근심시키고 큰 죄악을 낳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스펄전은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순전함을 보존하기 위하여 터버너클교회의 교인 자격을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로 제한했으며, 교인으로 받아들이는데 보다 엄격한 원리를 적용하였다. 스펄전은 말한다. “주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교회에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목사직을 포기하겠습니다.”4)

 


 

셋째, 전도는 단순히 감정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펄전에 따르면 “광란과 흥분과 열광은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이비 열정의 산물”이다. 스펄전은 설교 중 사람들이 흥분하여 춤을 추는 것을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넌센스”로 간주하였다. 스펄전은 말한다. “만일 어떤 부흥회에서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접하면 그 차이를 항상 잘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몸에 일어나기보다는 심령에 일어납니다. … 나는 그런 일이 악한 사탄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복음사역을 방해하고자 사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사역이 전혀 아니며 인간적인 흥분일 뿐입니다.”5) 또한 흥분 상태에서 변화를 일으킨 개종자들은 흥분이 사라지면 믿음도 사라져 버리는 일이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에 비록 대규모의 전도집회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고 부르짖는 현상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어떤 “감정과 느낌”을 목표로 하는 것을 스펄전은 경계한다.

 

 

 


 


 

참된 복음 전도 설교

 


 

그렇다면 참된 복음전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알도록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스펄전에 따르면 복음은 주술적인 주문이 아니라 “이성적인 체계”로서 “생각과 고찰을 요하는 문제이며, 양심과 사고능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복음의 진리가 올바르게 설명되지 않는 설교란 진정한 의미에서 전도설교라고 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참된 고침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은 걸치고 있는 옷을 결코 벗어 버리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인간의 상태와 이런 상태가 가져오는 끔찍한 결과에 관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마음을 자극하고, 양심을 각성시키는 설교를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펄전은 복음이 아니라 심리학에 기대어 설교하는 현대 강단의 풍조에 관하여 이렇게 경고한다.

 

“어떤 진리에 대해 무지하도록 함으로써 영혼을 구원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성령의 마음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또 단순한 사탕발림과 같은 말이나 감정을 흥분시킴으로써, 혹은 웅변과 같은 말솜씨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애쓰는 것은 새를 잡는 올무로 천사를 잡거나 노래 하나로 하늘의 별을 낚으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소망에 불과합니다. 영혼을 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순전한 복음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가장 강퍅한 마음을 꿰뚫는 화살이요,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낫게 하는 약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오직 그것만 설교하십시오. 그 오래된 복음, 그것만 절대적으로 의존하십시오.”

 


 

둘째, 참된 전도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감동을 주는 것이다. 스펄전에 따르면 이성에만 호소하고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가르침은 불구에 지나지 않는다. 스펄전은 말한다. “죄인은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둘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가 죄에 대해 슬픔을 느끼지 않는 한, 그리고 말씀을 받아 들일 때 어느 정도 기쁨이 없는 한, 여러분은 그에게 큰 기대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감정 없는 종교는 생명 없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들이 일어나는 과정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은 영적이지 못한 감정들을 조장하거나 자극하는 것에 놀아나는 것이다. 설교 시에 행해지는 감정의 일어남은 영적인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어야지 단순히 어떤 이야기들을 통한 자연적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별로 가치가 없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진리에 먼저 감동되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자신이 먼저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설교자는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을 들려주지 못하는 법입니다.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먼저 “들어야” 하고, 그래야 회중들에게도 들려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생명력 없는 설교를 무감각하게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 복음 설교자의 자격

 


 

그렇다면 복음설교자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복음 설교자는 거룩한 성품의 소유자여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의 성취를 위해 자신의 거룩한 성품을 손상시키는 더러운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직 거룩한 도구만을 선택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스펄전에 따르면 상당한 능력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전도나 교회의 부흥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설교자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마땅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거룩한 삶의 결여에 있다. 설교에서 그것이 끼치는 영향을 스펄전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인격이 그 설교에 미치는 영향만큼 영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설교의 가장 강력한 힘은 설교 이전에 행해졌던 일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진실하게 거룩한 인격을 보여줌으로써 삶이 예배가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둘째, 복음 설교자는 수준 높은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설교자의 사역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영적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의 중요성을 스펄전은 이렇게 강조한다. “생명은 생명이 있는 도구를 통해 전달되지 않으면 안되고 생명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생명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설교자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절반만 살아 있는 삶”이다. 스펄전은 강단에서는 천사처럼 은혜로운 말로 설교를 잘하지만 강단을 내려와서는 “벌레나 구더기”처럼 말하는 설교자의 이중성을 경계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증거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전체가 천사가 되고 조금이라도 벌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머리 끝 면류관에서부터 발 끝 바닥에 이르기까지 전부 살아있어야 하리라!”

 


 

셋째, 그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며 자신을 낮추는 자를 사용하신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전도 사역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영광을 돌리지 않을 사람들을 쓰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전도자는 성공한 전도에 관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반면, 그 실패에 관한한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실수로 책임을 돌린다. 만약 전도자가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면 정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넷째, 복음 설교자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스펄전에 따르면 이러한 살아 있는 믿음은 네 가지 차원에서 요청된다.

 

(1)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는 믿음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에서 그러하셨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불신하는 이들에게 많은 역사를 베푸시지 않는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는 하나님 나라의 변할 수 없는 법칙이다.

 

(2) 목회의 소명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복음설교자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것이 설교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스펄전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음의 설교자로 택하신 것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은 담대하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자신이 그것을 전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역을 자신 있게 감당하게 됨을 느낄 것입니다.”

 

(3) 설교자는 자신이 전달할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의심과 의혹으로 가득 찬 설교는 의심하는 청중을 낳으며, 그러한 설교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여러분이 믿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도록 전혀 설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설교자는 복음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주님의 사역에 합당한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설교를 사용하실 것이라 기대하고, 그러한 확신 속에 힘 있게 설교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거룩한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

 

(5) 설교자는 철저한 진지함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이야기에 대한 보고와 같은 밋밋하고 맥빠진 설교는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슬피 우셨는데 여러분도 여러분을 통해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울어야 합니다.”

 

(6) 설교자는 단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서 단순한 마음이란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주저 없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설교자는 무슨 일을 하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동기에서 모든 일을 행하는 자이다.

 

(7) 설교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시켜야 한다. 사람을 구원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진리를 설교하기로 결심하는 자이다. 그는 설교를 행할 때에도 자신의 원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보다는 성령의 인도에 자신을 맡긴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본 복음 설교자의 자격

 


 

첫째, 무지한 사람은 설교자로 전혀 적합하지 않다.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원하는 설교자는 그것을 위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록 그가 아무리 선한 뜻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무지한 사람은 영혼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설교자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에 관한 충분한 진리를 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둘째, 설교자는 명백한 중심이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하는 진리들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음을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만약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내용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지 않으면서 믿으라고 권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그러한 설교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스펄전은 이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배우처럼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일종의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들이 여러분의 진정성을 의심하면 그들은 진절머리치며 설교를 절대로 듣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설교자는 불타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만일 어떤 설교자가 영혼을 구원하기를 바란다면 진실한 마음과 함께 열정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열정은 우리가 다루는 진리의 가치 때문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우리가 감당하는 사역이 불멸의 영혼과 그 영향이 영원한 죄와 죄에 대한 무한한 용서,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지속되는 두려움과 즐거움 등을 다루는 것임을 기억할 때, 정말이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할까요! 이같은 메시지를 다룰 때 열심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일까요?”

 


 

넷째, 설교자는 영혼을 향한 분명한 사랑을 가져야 한다. 만약 한 설교자가 회중들에게 진정으로 큰 영향을 끼치기 원한다면 그들을 향한 깊은 애정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청중은 그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진 설교자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스스로를 격리시키기보다는 사람들 속에서 거하며, 온전한 사랑과 동정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자 힘써야 한다.

 


 

다섯째, 설교자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각인된 설교자의 설교는 더 이상 회중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못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마음속의 이기심을 경계하고 자족함을 배워야 한다. 이에 관해 스펄전은 이렇게 조언한다. “여러분이 자신을 덜 생각할수록 사람들은 여러분을 더 생각하고, 여러분이 자신을 더 생각할수록 사람들은 여러분을 덜 생각할 것입니다.”

 


 

여섯째, 설교자는 거룩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만약 설교자가 거룩한 생활에 관하여 설교하고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러한 설교는 회중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회중들은 설교자의 거룩에 관한 설교뿐 아니라 그의 거룩한 삶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받는다.

 


 

일곱째, 설교자는 진지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상의 유머와 웃음은 침체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성경의 진지한 주제마저 농담처럼 말하는 설교자는 청중으로 하여금 그 메시지를 불신하도록 만든다.

 


 

여덟 번째, 설교자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설교에서 담대함은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동시에 부드럽게 선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듣기에 굉장히 부담스러운 진리를 전달할 때는 단호하지만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항상 사랑이 담긴 말로 진리를 말하고 특별히 죄를 책망할 때에는 더욱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

 


 

스펄전은 회중의 회심은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함을 강조한다.6)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보다 적절한 수단의 선택이 설교자에게 필요함을 또한 역설한다. 그렇다면 영혼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먼저, 선포되는 설교는 분명히 청중들의 회심을 목표로 한 설교여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 또한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설교에서 더욱 역사하신다. 스펄전은 말한다. “만일 여러분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회심하기를 바란다면 설교의 내용은 분명히 회심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하나님도 그런 목표가 있는 설교에 역사하기를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을 기대해도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둘째, 사람들을 구원하는 설교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청중들의 주목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스펄전은 이것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청중의 주목은 필수적입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7)

 


 

이를 위하여 스펄전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회중의 수준에 맞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만약 설교자가 일반 노동자나 불신자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신학적 술어로 설교한다면 그들은 그 설교에 귀를 닫거나 교회를 등지고 말 것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휫필드가 “시장언어”라고 부른 말로 설교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

 


 

둘째, 흥미롭게 설교해야 한다. 설교를 하는 동안 흥미를 잃지 않도록 설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는 동안에는 회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는 지식적인 설교이다. 설교는 구원을 위한 지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8) 만약 설교에 열정만 있고 지식이 없다면 그것은 결함이 있는 설교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느낌, 감정, 정서, 마음의 권능 등은 올바로 사용하면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지식도 필요합니다. 영원한 복음을 선포할 때,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선포하십시오.”

 


 

넷째,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는 감동을 주는 설교이다. 스펄전은 성경을 마치 빌려온 물건처럼 냉담하게 사용하고 가슴으로 설교하지 않는 설교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스펄전이 믿기에 “회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적합한 설교는 설교자의 마음으로부터 곧장 흘러나온 설교”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여러분이 먼저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느낀 사람으로서 설교하십시오. 단순히 느낀 것처럼 하지 말고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설교하는 자가 되십시오. 사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다섯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회중의 회심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스펄전이 믿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설교 스타일은 가장 옷을 잘 입는 스타일과 흡사하다. 곧 옷을 잘 입는 것이란 옷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듯 최고의 설교 스타일은 청중으로 하여금 설교 자체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중의 정신을 분산시키거나 흩뜨려 버리는 요소들이 설교에 포함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설교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함으로 메시지를 혼란스럽게 제시하는 것이나 설교언어에서의 문법적 실수는 이러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러한 방해 요소들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설교다.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설교자가 회중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항상 그리고 어디서든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십시오. 설교할 때마다 그 설교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최대한 많이 다루십시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설교 속에 복음이 충분하게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은 설교의 열매를 가져오는 가장 실제적인 방편이기도 하다. 스펄전은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당신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복음 - 복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 - 곧 성육신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신 하나님, 곧 충분하고 값없고, 영광스러운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 외에 다른 비결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일곱째, 영혼을 회심시키는 설교는 진실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설교이다. 비록 한 설교자가 지적으로 유능하며 그의 설교가 내용적으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회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회중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인들을 위해 울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 준비를 할 때 지나치게 지적인 연구 작업에 몰두함으로 인해 영적 생명이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여러분의 영혼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룬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크게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덟 번째 영혼을 얻는 설교는 기도가 동반된 설교이다. 스펄전은 설교를 위하여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는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설교자는 자신을 너무나 과신한 나머지 성령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람을 회심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그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설교자로서 그 사람은 이름은 가지고 살지만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두 다리가 서로 똑같지 않아서 절뚝거리는 잠언에 나오는 절름발이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그의 기도가 그의 설교보다 짧으니 말입니다.”9)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자

 


 

스펄전은 그의 설교를 통하여 무엇보다 영혼을 구원하기 원했으며, 이를 위하여 성경의 모든 본문 속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원했다. 그리고 옛 사도들이 그러했듯,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의 설교의 중심에 두었다. 스펄전은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은 절대로 설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모르기 때문이며, 오래 전에 사도바울처럼 나도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은 알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학자의 혀 주 : 존 스토트는 경계해야 할 인물임.)가 항변하듯, 이 시대 모든 설교자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엄숙하게 부탁하며 명령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복음을 지킬 것(딤후 1:14)과 복음 안에 거할 것(딤후 3:13,14)과 복음을 전파할 엄중한 책무(딤후 4:2)를 지고 있다.

 


 

자신의 생명이 다해 감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타오르는 불꽃처럼 설교하다 죽기를 소원했던 스펄전의 영웅, 조지 휫필드의 기도는 오늘 다시 사도들의 후예로 동일한 복음을 설교해야 할 우리에게 이 임무의 엄중함을 일깨워 준다.

 

“주 예수여 나는 피곤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역에 싫증이 난 것은 아닙니다. 만일 나의 갈 길을 아직 끝마치지 않았다면 한 번 더 밖에 나가 주님을 위해 외치게 하소서. 그리고 진리를 외치고 집에 돌아와 숨지게 하소서.”

 


 

 

 

 


 


 


 

주)

 

1) D. M. Lloyd-Jone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45.

 

2) Lloyd-Jones, Life in God: 1 John 5, 94.

 

3) C. H. Spurgeon, MTP Vol. XX (London: Passmore & Alabaster,1875), 398.

 

4) Spurgeon, MTP Vol. VII (London: Passmore & Alabaster,1862), 260.

 

5) Spurgeon, NPSP Vol. IV (London: Banner of Truth, 1964), 161.

 

6) 스펄전은 말한다. “그 어떤 목사라 할지라도 스스로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땅위에 있는 성도들이나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단 한 영혼도 중생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역은 우리가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지 않고 그 분의 능력으로만 충만하게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Spurgeon, Soul Winner, 31.

 

7) Spurgeon, Lectures to My Students, 127.

 

8)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그들은 하나님과의 불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이 이 상태로부터 그들을 이끌어 낼 의무가 없다는 사실과 이러한 상태에 그대로 두신다고 할지라도 그 분은 여전히 의롭고 정당하시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관하여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그 분 앞에 호소할 자격이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은혜, 오직 은혜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설교자의 직무는 죄인들에게 그들이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유일하게 그들을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Spurgeon, Soul Winner, 24.

 

9) Spurgeon, Lectures to My Students,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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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섭섭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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