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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혁주의신학과 신앙소개특강(폴워셔목사의 설교이해를 위해서)

baromi 2012. 8. 7. 03:37

개혁주의신학과 신앙소개특강

-폴워셔목사의 설교이해를 위해서-

손성은목사(삼일교회, 부산)

 

폴워셔목사는 침례교목사입니다. 제가 회심하기 전에는 침례교회에 대해서 별로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단순한 삶을 강조하는 것 때문에 교리와 신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제가 회심하게 된 것은, 바로 한 침례교목사의 가르침을 통해서입니다. 바로 스펄존목사가 목회했던 현재의 런던 메트로폴리탄타버너클의 담임목사인 피터 마스터스목사의 가르침을 통해서 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목사가 되도록 중생이 중요한 줄을 알면서도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어떻게 점검하는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점을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장로교회임을 자랑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장로교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요즘같이 신학이 느슨해져있고, 교파의 간격이 희미해져가는데 있어서 장로교회의 어떤 목사들보다도 더욱 침례교회목사가 더 가깝게 여겨지고 동질감을 갖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개혁신학과 신앙이 그것입니다. 칼빈주의라고도 표현되는데, 대로는 "five points-칼빈니스트", "five points-스펄존니스트"라고도 합니다. 칼빈하면 장로교회니, 침례교목사들은, "five points-칼빈니스트" 보다는 "five points-스펄존니스트"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five points-칼빈니스트" 와 "five points-스펄존니스트" 사이에 차잇점이 아니라, 공통점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바로 “five points”입니다.

 

일반적으로 “5대교리”라고 알려져 있고, “튤립”(TULIP)이라는 용어로 상징되는 이것은, 결코 개혁신앙의 모든 것을 말하지도 않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신앙을 대략적으로라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들어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기에, 오늘 이 시간을 빌어서 간단히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폴워셔목사 자신이 자신을 "five points-스펄존니스트"라고 소개하기 때문에, 이 분의 설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5대교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대략적으로라도 알아두는 것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너무 많은 분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신학의 관점에서 이 분의 설교를 이해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은혜란, 어떤 교리의 틀이나 체제를 넘어서서 우리의 주님께서 베푸시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칼빈주의, 스펄존주의, 혹은 개혁신학과 개혁신앙을 주장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폴워셔목사의 신학과 신앙이 어떤 조직과 체계속에 갇힐 만큼 협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개혁신학과 신앙이 또한 그렇게 협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섭리하시며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만물 속에 이 신학과 신앙에 관여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그 만물의 모든 것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유하고 또한 조직하며 또한 실행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오늘 다섯 가지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이것을 이해하던 방식과는 좀 다르게 강조하겠습니다. 먼저, 이 Tulip 신학과 신앙은, 사람의 문제점을 첫 번째로 부각하고, 그 마지막에는 그 해결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곧, 첫 번째,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과, 마지막의 성도의 견인교리(Perseverance of the Saints)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인간의 현 상황과 낭패당한 현실과 그 그것으로부터 문제가 해결된 것을 교리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낭패당한 현실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적으로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어떤 도덕적인 선행이나 무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은 거의 무한하다고 여겨질만큼의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인간 스스로는 구원에 이르게 할 만한 그 어떤 가능성도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 타락교리입니다. 인간의 일반적인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을 얼마든지 강조할 수 있습니다), 구원과 관련해서인 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곧 하나님의 참으신 바 되어서 끝까지 보존되어 영원한 생명과 천국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시작하셨으니,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교리를 듣고, 이제는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신다고 하니,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식으로 이 교리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대로 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요, 이 교리로 표현하고자 하는 은혜의 구원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낭패당한 현실에서 이런 놀라운 구원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교리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역사인 것입니다. 곧 외피에 담겨진 ‘앙꼬’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삼위 하나님이 모두 각각의 교리에서 담고 있는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시지만, 부각되시는 분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앙꼬’부분의 첫 번째는 성부하나님이 구원의 행위가 강조되는데, 곧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셨을 때 그 사람의 어떤 조건을 미리 보시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없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리 보시지 않으신 것은, 우리가 믿을 것이라는 사실조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성자 하나님의 구원행위로서 ‘제한적 구속’(Limited Redemption)입니다. 곧 성자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죽으셨으면서도 특별히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은, 모든 인류를 모두 다 구원하실 수 있는 효과가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으심은 제한된 사람들, 곧 선택된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선택된 사람들이 성자의 구속사건에 대한 복음을 들었을 때 반응하여 믿음을 갖게 되는 성령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것을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table Grace)라고 합니다. 이것도 간혹 오해되는데, 죄인이 복음을 들었을 때, 저항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항합니다. 하지만, 그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너무나도 강하고 또한 인격적이기 때문에, 기어이는 감화를받게 되어서 자원하는 심령으로 그 복음에 순종하게 되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탁월한 은혜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압축해서 한 마리도 표현하면, 삼위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튤립교리로 개혁신앙을 모두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신앙의 다섯 가지 솔라, Sola Scriptura (오직 성경),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 (오직 은혜),Sola Fide (오직 믿음),Soli Deo Gloria (오직 주만 영광 받으심)가 이 5대교리에 모두 암시되고, 포함되어 있습니다. Soli Deo Gloria! 폴워셔목사와 말씀을 상고하면서 이 놀라운 은혜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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