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조직신학,907쪽, 영어원문, 715~6 pp.
I believe, however, that Murray is too restrictive in his view of what God's summons effects. He insists, but offers no scriptural support for his contention, that it only actually unites one to Christ, and that it is from this actual union with Christ that every other inwardly operative saving grace, including regeneration, thereafter flows. Murray conceives of regeneration not as the effecting force in God's effectual summons as the Confession of Faith plainly does, but as a divine work which comes after God's effectual call and before the human response, and which "provides the link between the call and the response on the part of the person called."
But is it so that it is effectual calling per se, apart from regeneration, that actually unites one to Christ?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효력을 나타내는 것에 대한 머레이의 견해가 너무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대지도 않으면서, 그것만이 실제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며, 또 중생을 포함하여 그 이후 따라 오는 다른 모든 내적으로 역사하는 구원을 얻게 하는 은혜가 바로 이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머레이는 중생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 안에 있는 유효한 힘이라고 분명히 하듯 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 후에 오고 또 사람의 반응 전에 오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또 그 사역이 "그 부르심과 부르심을 받는 사람 편에서의 반응 사이의 연결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효한 부르심은 그 자체가 중생을 별개로 하고 사람을 실제로 그리스도에게로 연합시키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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