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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카이퍼와 바빙크의 중생론 이해에 있어서 필수적인 구분

baromi 2014. 1. 24. 12:35

더욱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바빙크의 중생론에 대해서 바빙크의 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빙크가 중생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능동적 중생과 수동적 중생, 곧 하나님 편에서의 중생의 역사와 그 역사에 의한 인간의 반응이란 면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능동적인 중생의 역사를 설명하는 중에, 중생이란 “즉각적이고 또한 저항불가한 것”(immediate and irresistible)이라고 하면서, 이 표현들이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중에 irresitible한 것에 대한 설명이 81쪽에 나옵니다.

 

“In the second place, if the operation of God's Spirit in regeneration is absolutely independent of the human will, it may be called 'irresitible.' Augustine already stated: 'Aid must be given to the weakness of the human will in order that divine grace may be inexorably and invincibly effective.' Materially the Augustinians and Thomists among Catholic theologians, such as the Jansenists, also agreed with this position, for they assume an essential distinction between 'sufficient' and 'efficacious' grace, seeing the former as conferring the capacity and the latter as conferring the actual willing and accomplishing, and hence taught an infallible activity of efficacious grace. But Rome firmly rejected this doctrine."

 

 

곧 아브라함 카이퍼가 중생론을 설명하면서, 구분하였던 것 그 구분, 곧 눈의 시력을 갖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그 구분을 바빙크가 정확하게 인정하면서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이 대표적으로 로마천주교라고 합니다. 로마 천주교회안에서 철학자 파스칼이 속했던 잔센주의자들은 예외라면서 말입니다.

 

 

이런 중생의 설명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중생이론과 바빙크의 중생이론을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카이퍼의 중생론이 비판을 받는 것은 중생론 자체라기 보다는 그 중생론을 유아세례에 잘못 적용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구분이 없으면 그들의 중생론에 대한 천박한 이해에 머무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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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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