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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지 골수분자가 분석하는 기독교 ‘새 영성’

baromi 2010. 6. 9. 16:52

북리뷰 <기막힌 속임수>
뉴 에이지 골수분자가 분석하는 기독교 ‘새 영성’
2010년 06월 07일 (월) 06:05:57 전정희 gasuri48@amennews.com

   
뉴 에이지 운동의 골수분자였던 저자(워렌 스미스)는 1984년에 거듭난 이후 충격에 휩싸인다. 교회 안에는 이미 그가 아는 뉴 에이지 영성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더욱 놀란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 지도자들을 보면서다. 그들이 이끄는 운동이 바로 뉴 에이지 운동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1984년에 거듭난 이후 뉴 에이지의 가르침에 대해 경고해 왔다. 나의 원함이나 의도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뉴 에이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강권에 의해 뉴 에이지 영성에 대항하여 입을 열게 되었다”(p.5).

“주의 재림과 관련한 사건들에 대한 바른 이해는 내가 뉴 에이지 가르침에 얼마나 속아왔는지를 아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거짓 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을 알게 되면서 바로 내가 무지 중에 오랫동안 거짓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중에 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p.24).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미국의 라이트하우스 트레일스 출판사를 통해 뉴에이지·관상기도·요가·새 영성 등에 관해 광범위한 저작활동을 하며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뉴 에이지 영성의 가르침에 대해 경고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2002년에는 <재개발된 예수 그리스도: 새 복음>이라는 책으로, 2004년에는 <목적이 있는 속임수>를 써서 오늘날 뉴 에이지가 얼마나 엄청난 속임수를 가지고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고발했다.

이 책 <기막힌 속임수, A “Wonderful” Deception>(BAND OF PURITANS 발행)는 이러한 책들의 후속편으로, 교회 가운데 분명히 들어와 있는 뉴 에이지 영성을 심각하게 꾸짖지도 않으며 그런 영성을 드러내지도 않는 목회자들을 향한 경고다.

“새롭게 등장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교회 지도자들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경륜’을 선포하면서 영적인 미혹에 대해 경고하기보다는 로버트 슐러가 지난 35년 이상 대중화해 왔던 개념인 ‘하나님의 꿈’(God's Dream)을 완성하는 일과 세상 문화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의 꿈’은 비성경적 개념이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뉴에이지 지도자들이 이 꿈을 품고 있다”(p.5).

본서를 통해 저자는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며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노먼 빈센트 필의 ‘긍정적인(적극적인) 사고’, 로버트 슐러의 ‘생각의 가능성’,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사고’가 어떻게 뉴 에이지 성향을 띄고 있는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노먼 빈센트 필은 1952년에 매우 유명한 책 <긍정적인 사고의 능력>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오는 새 세계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제시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는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가르침이다. 필은 수백만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 안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 후 약 50년 후에 로버트 슐러는 그의 전 세계의 방청자들에게 그의 스승인 필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그는 각각의 모든 사람 안에 있습니다!’ 릭 워렌도 유사하게 그의 <목적이 이끄는 삶>의 독자들에게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P.54).

사실 뉴 에이지 운동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만유 안에 계신다”는 만유내재신론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모든 것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범세계적으로 구상화하고 확신함으로써 “긍정적인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그러나 ‘하나 됨’을 확증함으로 긍정적인 미래를 창조하려는 뉴 에이지 운동의 시도는 매우 그럴듯하지만 이는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미혹이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와 구세주로 믿고 인격적으로 헌신할 때에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3:23~25, 갈 3:26~28).

저자는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고대 신비주의 용어인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용어를 노먼 빈센트 필이 차용했으며, 이후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수됐다고 지적한다.

‘새 영성’이라는 용어도 보자. 2001년 9·11 테러 이후, 대부분의 뉴 에이지 지도자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뉴 에이지 영성’ 대신에 ‘새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뉴 에이지 영성에서 간단하게 ‘에이지’라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갑자기 ‘새 영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레너드 스윗이나 브라이언 맥클라렌과 같은 이머징 교회운동 지도자들도 ‘새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그리스도인들’ 및 ‘뉴 라이트 지도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새 기독교’를 설명하는 데 이 용어를 사용한다.

“뉴 라이트 영성은 여러 뉴 에이지 만유내재신론의 형태처럼 피조물의 질서를 넘어서는 내용까지 다룬다. 한편(범신론적이든 또는 초월신론적이든) 신의 내재함 즉, 우주의 영·물질(The spirit·matter of the cosmos)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영성은 기독교라 할 수 없다. 양자 영성은 절대로 존재 그 자체로부터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다 ― 레너드 스윗”(p.138).

저자는 이처럼 본서를 통해 ‘새 교회’의 지도자들과 뉴 에이지 인사들과의 연관을 그들의 책들을 통해 샅샅이 파헤친다. 십자가의 복음을 외면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종교 다원화로 향하는 그들과 뉴 에이지의 관련성을 고발한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늘날 뉴 에이지 영성이 새롭게 등장하는 ‘새 세계관’(new worldview)의 영적 바탕이 되었으며, 이 새 세계관이 교회와 세상에 의해 수용될 경우 거짓 평화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상과 교회에 끼치는 뉴 에이지 영성의 영향이 그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기독교는 더욱 ‘긍정적인’ 뉴 에이지 기독교가 되고 있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뉴 에이지 기독교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실제로는 참된 믿음을 거부한다(딤후 3:5). 뉴 에이지 기독교 새 영성은 기독교적인 용어들을 사용할 것이지만 ‘다른 예수’, ‘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을 위해 이용될 것이다(고후 11:4)”(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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