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독일찬송

baromi 2009. 5. 16. 13:41

독일찬송


엄격한 의미에서 독일찬송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생긴 독일 개신교회의 회중찬송을 의미하지만 독일어로 된 찬송은 이미 종교개혁 3,4세기 이전부터 독일에 나타났었다.


1. 종교개혁이전의 독일찬송

 종교개혁 이전부터 독일 사람들은 모국어로 된 찬송을 불렀으며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이미 독일어로 된 찬송을 가지고 이를 근거로 복음을 담은 개신교회의 찬송을 만들 수 있었다.


 2.종교개혁과 루터의 코랄(chorale)


1)종교개혁이란? 16세기에 가톨릭교회의 부패상에 대하여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올바른 신앙관을 세우고자 독일을 중심으로 M, Luther 스위스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J, CalvinU, Zwingli 등이 일으킨 종교개혁 운동이다.


2)개혁음악사상: 루터는 전적인 옹호자,

                칼뱅은 선별주의자,

                쯔빙글리는 절대거부주의자였다.

개혁시기의 찬송가의 발달은 이와 같은 두개의 큰 흐름으로 마틴 루터와 쟝 칼뱅의 교회음악관을 배경으로 독일회중찬송인 코랄과 프랑스어로 된 운율 시편가를 탄생시켰으며 코랄과 시편가를 통하여 회중찬송이 발달되었다.


3) 루터의 종교개혁과 교회음악사상

1517년 비텐베르그 성당에 95항목의 반박문을 붙임으로 개혁을 시작한 루터는 교회음악에 있어서도 개혁적으로 찬양을 사제로부터 회중에게로, 라틴어에서 모국어로 불리어 지기를 원하였다.

 예배의식에 대한 그의 견해를 (미사전례, 1523)와 (독일미사, 1526)에 서술하였다.

  a.미사전례: 라틴어 미사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배의식을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채택한 형식이고 의식적인 예전음악이며 교육을 받은 지식층과 도시교회 신자               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의식으로 존속시켰다.

  b.독일미사: 창의적인 것으로 가톨릭교회의 예배자료를 독일 신자들의 특수성에 맞도록                하여 서민층과 교육받지 못한 농민들을 위해 독일어 사용을 권장하고 독                   일어 회중 찬송을 넣어 성가대와 회중이 적절히 나누어 부르게 하였다.

그는 “음악을 하나님의 선물이며, 영혼을 즐겁게 하고, 마귀를 몰아내며, 죄 없는 기쁨을 일으킨다”고 하였고 새롭게 번역, 수정하여 신자들이 익숙한 찬송과 성가의 곡조를 알아듣고 새로운 교회에 오히려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루터의 코랄(chorale)


루터에 있어서 1523-1524년은 가장 중요한시기로 23편의 찬송을 완성하고 생애 모두 37편의 찬송을 만들었다. 특히 유명한 찬송가로는 “내주는 강한 성이요”( 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이며 종교개혁초기 루터는 하우스만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국어 찬송을 만들 작사자가 부족함을 이야기 하고 이에 응한 많은 독일의 시인과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타스 요나, 한스 작스, 니콜라우스 데시우스, 니콜라우스 헤르만 등이 있으며 초기 코랄 작가들은 새롭게 가사를 창작하기도 했지만, 옛날 카톨릭 교회의 예전, 종교개혁 이전의 비예전 찬송 세속민요 등에서 자료를 가져다 만들기도 하였다. 16세기에 174개의 콘트라팍툼에 의한 찬양곡이 있었다.


초기 코랄의 특징

  a. 생동력있는 리듬을 들 수 있는데 신앙의 찬송은 짧은 음표로 명상 찬송이나 기도의

    찬송은 긴 음표를 사용하였다.

  b. 소절형식(Barform, AAB)의 사용- 이것은 독일의 마이스터징거의 음악적 전통에서 온      것이다. 마이스터징거는 중세의 미네징거에서 파생하여 주로 15-16세기에 활약한 시       인, 작곡가들로써 정기적으로 모여 시와 음악의 기예를 닦곤 하였다. 소박하고 유머 스      러운 시에다 무반주 단선율 곡조를 불렀다.


루터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공헌

 코랄에 있어서 독창적으로 이오니아선법을 사용한 것과 진보적인 음악이론에까지 손을 대어 중세의8개의 선법을 12개로 확대하는 것을 통해 오늘날의 장조와 단조의 조성을 낳게 하는 길을 열었다. 루터의 첫 번째 찬송가는 1524년에 출판된 “몇 편의 기독교노래”와 에르 푸르트 찬송가집이며 발터와 루프의 협조를 얻어 루터교 찬송가를 편집 출판하기도 하였다. 봘터가 출판한“비르텐 베르그 영가집”은 성가대를 위한 다성 코랄곡집이며 루터가 마지막 감수한 마지막찬송가는 120편의 찬송과 97개의 찬송곡조가 실려있는 바프스트(1545년)의 찬송가이다. 이러한 루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중찬송의 발달은 미미했으며 16세기말경이 돼서야 회중찬송이 널리 사용되었다. 회중은 무반주 유니슨으로 찬송을 부르고 성가대는 테너성부에 코랄선율이 있는 세련된 다성 합창곡을 불렀다.

  

17세기 독일찬송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대립으로 시작된 종교전쟁(1618-1648)은 유럽전역에 걸쳐 정치적, 종교적 싸움으로 번져 나가게 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한 질병과 고통이 찬송가에 그대로 반영되어 개혁초기의 객관적인 성격의 찬송이 개인적인 찬송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대상이 “우리”에서 “나”로 바뀌었고 회중찬송보다 가정에서 사적으로 부르기에 더 적절한 것이 많았다.

17세기 초 오피츠를 중심으로 일어난 독일 시문학의 순화운동의 영향을 받아 언어의 순수성과 운율을 강조하였다. 17세기의 유명한 찬송작가로는“귀하신 예수”의 헤르만, “다 감사드리세”의 게르하르트 등이 있으며 리스트(1607-1667)는 680여편의 찬송과 영가를 작사하였지만 대부분 사적인 용도를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17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독일찬송가는 크뤼거의 “Praxis Pietatis Melica(음악을 통한 경건의 훈련)”로 1736년까지 45판이 나왔으며 1300 여 편의 찬송이 수록되어 있다.


경건주의 시대의 독일 찬송

30년 전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경건주의 신앙운동은 17말 절정에 이르렀다. 1670년 할레에서 스페너에 의해 창설한 “신앙동지회”는 생명력 없는 형식주의, 교리주의에 대항하여 깨끗하고 실제적인 종교경험과 경건을 강조하였다. 루터교 찬송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찬송가는 후라이링하우젠의 찬송으로 그는 유니슨으로 부르고 한 개의 건반악기로 반주할 것을 주장하였다. 750편의 가사와 250개의 곡조가 수록되어 있으며 후라이링하우젠 찬송가집의 특징은 바로크 음악의 가장 두드러지고 기본적 요소인 통주저음숫자저음의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의 곡중 어떤 곡은 기악적 요소가 두드러졌고 멜로디의 장식음이 많았으며 즉석편곡연주나 멜로디장식을 요구하고 있다.


18세기 독일 찬송

18세기 가장 유명한 찬송 작시자는 벤야민 슈몰크 인데 경건주의에 속한 자는 아니지만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고교회파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12권의 찬송가를 출간하였고 900편이상의 찬송을 작사하였다. 오늘날 가장 많이 불리고 있는 “내주여 뜻대로”(찬431,개294,새602, 합291) “아름다운 시온성아” “영원한 빛 예수” 등이다. 슈몰크의 본을 따라 보수적인 루터교회의 찬송 작사자 가된 너이 마스터의 대표적 찬송“천성 길을 버리고” 등이 있다. 바하(1685-1750)가 교회음악 전체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컸지만 회중찬송에 기여한점은 보잘것없었다.

바하시대에는 경건주의와 세속음악의 대두로 회중음악은 쇠퇴하고 오르간과 성가대의 비중이 커졌다. 개신교음악의 코랄의 역할은 매우커서 코랄 칸타타, 코랄 모테트, 등의 합창곡과

코랄 변주곡 등의 오르간 곡의 기초가 되었다.

출처 : 한결어린이집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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