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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제22장 찬송가학 : 웨슬리 찬송가의 신학

baromi 2009. 5. 16. 13:21

현대 웨슬리신학 II. 찰스 W. 카터 외 지음 / 박은규·서인선·안석모 외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제22장 찬송가학 : 웨슬리 찬송가의 신학



제 1부 웨슬리 찬송가 속의 성령 

티모시 L. 스미스

 박은규박사 번역

 

  죤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는 영국에서 일어난 영적 각성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 이 운동은 초기 10년간인 1738년에서 1747년까지 감리교신학의 틀을 제공했고, 기독교를 일깨워 거룩케하시는 성령의 약속에 눈을 돌리게 했다. 웨슬리 형제는 사려깊고 자애로운 설교가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훌륭한 시인이자 찬양가들이었다. 그 10년간 그들은 수많은 설교, 논설, 소책자와 함께 「찬송가와 성시(聖詩)」(Hymns and Sacred Poems)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책들을 써서 출판했다. 이 책들에서 그들은 찬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거룩케하시는 은총에 대한 성서적 약속을 가르치고자 했다.

  1746년에 두 형제는 오순절 주일을 위한 얇은 책자를 발간했는데, 그 제목은 「아버지의 약속에 대한 감사와 회개의 찬송」(Hymns of Petition and Thanksgiving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이었다. 그 제목은 열한 사도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에서 나왔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한 누가복음 24장 49절(사도행전 1장 4절 참조)의 말씀이 그것이다. 32편의 찬송가 각각에는,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취된, 새 계약에 대한 옛 계약 속의 약속이라는 주제가, 믿음에서 나오는 의(義)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과 서로 섞여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께서 부활절저녁에 열한 사도에게 설명해 주신 모세와 예언자들과 히브리 시편들의 신학에서 뿐 아니라, 바울과 기타 신약성서 기자들에게서 이끌어 내 온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시들 자체의 본문은 요한복음 7장 37절 -39절과 요한복음 14장-17장에서 이끌어 낸 것이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그를 알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복종한 자들을 위로하고 거룩케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아버지께 성령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셨다.1)

  죤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는 분명히,성령의 약속에 대한 이 찬송가들이 성서의 신학을 가르치기를 원했으며,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 것을 기쁘게 노래하여,이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모든 기독교 저작을 통털어, 하나님의 "은혜의 성령"께서 죄인을 회개로 이끄시는 방법을 다음 구절보다 더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 또 있을까?


최초의 선한 생각 당신께서 불어넣으시니,

당신의 은혜로운 숨결로, 순수한 바램

처음엔 가냘픈 불꽃으로 불붙었나이다.

당신께서 타락을 깨닫게 하시매

죄인은 당신의 "뜻밖의" 부르심 듣고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나이다.2)


  또 다른 찬송가는 이렇게 권고한다.


죄인들이여, 너희 마음 들어

예수께서 친히 주신

"약속" 받아들이라

주님은 사람으로 살러 오시고

성령은 사람에게 주어졌으니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라.


  여기서 웨스리 부흥운동의 중심주제가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점에서 죤 웨슬리와 조오지 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그 주제는, 신생의 체험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령의 생명을 주시는 임재라는 선물이다.3)

  "그 [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18)라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여섯 편의 장엄한 찬송시 속에서, 저자들은 거룩케하시는 위로자(성령 - 역주)의 모든 사역을 선포했다. 그는 이른 바 기독교세계를 포함한 불신자들이 죄인임을 선포하신다. 그는 용서하시는 사랑 속에서 그들에게 "믿음의 의"를 가져다 주시며, 그의 안에서 "은혜가 죄보다 풍성하다." 그 용서하시는 은총의 순간 이후, 믿음에 의해 또 다른 것이 온다. 바로 그 성령께서 진실한 기독교인들의 마음 속에 주시는 것은,


…영원한 보좌,

위로부터 오는 내면의 왕국,

완전한 사랑의 영광스런 권능4)

이다.

  이 여섯편의 찬송시 가운데 첫번 째 것은 다음과 같은 기도로 시작된다.


우리를 깨우치고 돌이켜 주시며 영감을 일깨우소서

오셔서 세상에 불의 세례를 주소서


  이 두 행(行)은 각성, 회심, 내적 성화라는 결정적인 사건들로 시작되는 구원의 전(全) 사역을 요약한 것이다. 웨슬리형제는 이 사건들이,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 안에서 그 분의 거룩하심과 사랑의 형상을 새롭게 하시는 평생의 과정에 핵심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찬송시의 메시지는 확대되어, 마침내 심판과 영광 양 측면에서 모두 인간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 찬송시들은 소망에 대한 말로 끝난다.


당신의 천년왕국이 시작되오니

속죄받은 모든 자녀들과

모든 영혼이 무릎 꿇고

당신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기 위해 일어서리이다.5)


  순결과 온전한 사랑의 "두번째 은혜"라는 교리 - 우리가 중생 속에서 "손님"으로서 영접하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될 것이라는 약속 - 는 이 오순절 찬송가들, 특히 요한복음 14장에 근거해서 쓴 6편의 찬송가들에서 중심적인 것이다.6) 그들은 약속을 담고 있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에수의 말씀 따르고

그의 친절하신 계명 지키는 자는

더욱 더 친밀한 교제를 알고

이 세상에서,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리.


  그리고 또 기도문 하나에,


사랑의 길이와 넒이는

하나님의 높이와 깊이 드러내고,

영광의 모든 자녀들 인(印)치고 변화시켜

우리를 당신처럼 만드나이다.7)


  그러나 웨슬리의 역사에서, 첫 번째 순간인 중생 이후에 오는, 내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은혜라는 두 번째 은혜에 대한 교리는 이 때까지는 별달리 애써 정교하게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1744년 8월 24일 웨슬리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행한 마지막 설교는 "성서적 그리스도교"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 이는 오순절교회의 그리스도교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거기서 행한 마지막 설교였는데, 이는 <그들>(웨슬리일파 - 역주)이 성령충만케 되었느냐는 복음주의자들의 끈덕진 질문을 대학당국자들이 더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웨슬리는, 설교의 본문인 사도행전 4장 31절이 뜻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8) 더구나 이 오순절 찬송가들이 출판된 같은 해에, 웨슬리의 「몇가지 경우에 대한 설교」(Sermons on Several Occasions) 제 1권이 나왔다. 이것에는 "성령의 첫 열매"와 같은 설교들이 들어 있었는데, 이 설교는 중생으로 시작된 성화(聖化)와, "평화의 하느님이 너를 완전히 거룩케 하시리라"는 약속의 성취에 의해 내적으로 완전해진 성화 사이의 구별을 설명하고 있다.9) 그는 로마서 8장이 이를 확증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전 해에 「아버지는 이성과 종교를 지닌 인간에게 호소하신다」(Father Appeal to Men of Reason and Religion)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 비판자들을 논파했다. 이 긴 논설로 인해 그는 거룩케 하시는 은총의 두 순간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을 약화시켰지만,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이후 약속하신 위로자(the Comforter)가, 예수의 말씀대로 그의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리라(요 14:16)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그는 영국교회의 교리와 기도문, 설교, 그리고 초대교부들의 저작을 인용했다.10)

  만일 이 찬송시들의 저자들이, 어느날 성령이 부어지면 어떤 섭리의 메카니즘이 작동되어, 그 후 모든 믿는자들이 의롭다하시는 믿음의 시간에 성령충만을 체험하리라고 믿었다면, 이 찬송시들이 오순절에 사도들의 은총을 간구하는 진실한 감리교도들이 이 찬송가를 부를 수 있도록 기도문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실로 우스운 일일 것이다.11) 만일 그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면, 웨슬리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부시대 이래 모든 기독교사상가들도 과오를 범한 것이니, 그들은 오순절을 세례가 아니라 견진성사와 동일시했으며, 세례나 성령충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에 의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을 때 시작된 영적 순례 도중의 결정적 사건으로서만 생각한 것 같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성서적이라고 생각한 교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는 훌륭한 찬송가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나타나 있다.


믿음의 성령이시여, 내리사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소서


  이 찬송가는 은혜의 각 단계와 믿음에 의한 구원의 전과정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연에서 찬송가는 앞서 선포하신 분을 묘사했다.


내 구주 살아계심을 내 아오니

날 위해 죽으신 이 살아 계셔서

내 영혼 깊은 곳에서 그 목소리 듣도다.


  또 그는 바로 그 성령께서 믿음을 불어넣으시기를 (breathe in,웨슬리는 종종 그런 뜻으로 inspire라는 단어를 설명했다) 기도했다.


모든 것 정복하고

산을 움직이며

예수께서 부르시는 이마다 구원하여

사랑으로 완성케 하는 살아있는 믿음 불어넣으소서.12)


  성령에 대한 성서적 교리가 그러하듯, 오순절에 대한 이 책에서 구원의 드라마는 "영원"(eternities)을 한데 묶는 장대한 무대에서 연출된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제목이 붙지않은 한 찬송가에서는,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영이라는 고대 히브리의 교의를 선포했는데, 이는 어떤 그리스도교 신학자의 마음이라도 감동시킬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이, 그 가르침을 거룩케하시는 영에 대한 가르침과 결합시키고 있는데, 그 영은 파멸한 족속을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 속에서 재창조한다. 찬송가 구절을 보면 내가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불필요해진다.


모든 거룩한 일의 창조자시여,

두 번의 창조를 통해 빛나시는 분이시여,

자연의 하나님이시여, 은총의 하나님이시여,

모든 것 속에 당신의 영광스런 발자취 보오니

지혜와 권능과 위엄과 찬양이

당신께 속하나이다.


당신께서 권능의 날개 펴사

혼돈을 덮으시고

잉태한 심연 속에 생명을 부으시고

생명의 원리 부어 넣으사

무(nothing)의 태(胎)에서

천지와 만물을 낳게 하셨나이다.


당신은 만유를 기르시는 숨결이시니

끊임없이 생명을 주시며

세상을 존속케 하시는 분이니이다

저 푸른 하늘도 당신이 장식하셨으니

높은 곳의 아름다운 모든 천체도

당신께서 지으신 금빛 사슬에 의지하나이다


당신은 땅을 새롭게 하시며

(땅의 창조주요 보존주이시라)

당신의 권능의 팔로 그것을 유지하시나이다

자연은 당신의 비밀한 힘 <알아>

언제나 제 궤도 지키며

당신의 섭리의 통치 간직하고 있나이다.


당신은 만유(the whole)를 가득 채우고

땅과 공기와 바다와 하늘을 다스리시는

<보편적>(Universal) 영혼(Soul)이시요

창조의 능력이시나이다

모든 피조물들 당신의 숨결 받으니

당신께서 숨결 불어 넣으시매 살고

숨결 거두시매 죽나이다


무한의 영이시여, 영원의 마음이시여,

당신께선 잃어버린 인류의 영혼 위해

크나큰 자비로 일하사

멸망한 족속 회복시키기 즐겨하시며

당신 사랑의 모든 형상 속에서

은혜의 세상 새로이 창조하시나이다.13)


  웨슬리의 종교에서, 창조신학과 구원신학은 은혜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리하여 은혜는 이 신학들에서, 거룩케하시는 영이 우주와 하나님 자녀들의 삶 속에서 임재하시고(presence) 활동하시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 오순절 찬송집에서 발견되는 구원신학은 죤 플레쳐(John Fletcher)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이해한 1772년 이후의 발전에서 정점에 달한다.14) 나는 먼저 웨슬리형제가 「찬송가와 성시(聖詩)」(Hymns and Sacred Poems)라는 제하에 출판한 몇권의 책 속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구원신학의 빛 속에서 개괄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들이 같은 시기, 즉 1739년에서 1749년 사이에 각각 써서 출판한 찬송집과 간략히 비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먼저 찬송가들이 진실로 죤 웨슬리 사상의 지표인지, 아니면 단순히 챨스의 시적 기교의 발현인지 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죤 웨슬리는 설교가이며 챨스는 초기 감리교의 시인이었다고 보는 오랜 전통이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약간의 감성의 차이가 - 죤은 동생의 상상력이 비약하는 경향이 있으며,신비적 언어를 쓴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했다 -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교의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작지만 점증하는 차이를 만들었다고 보는, 비슷하게 오래된 전통이 잇다.

  이런 오래된 전통들은, 웨슬리형제가 1760년 이전에 쓴 어떤 글이나 그들이 말한 것을 기록한 어떤 글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15) 더우기 그들이 공동저작한 책들 속에서 1738년부터 1747년 사이에 해당하는 시들 중 두 형제 가운데 누구 것이라고 단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없다. 두 형제는 공동저작으로 처음 나온 시들의 원본에 대해 누구 것인지를 밝히지 않기로 한 합의를 죽는 날까지 지켰다. 그들이 사적인 기록을 보관했다거나, 또는 그 시들 중 어떤 것의 초고를 누가 썼는지에 대한 기억을 남들에게 이야기했다거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아무런 자료도 없다.16) 저자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모든 텍스트분석은 성서해석학의 긴밀한 유사성을 적절히 다루지 못했고, 그 10년의 기간동안 설교하고 출판한 죤 웨슬리의 최초의 세권의 설교집에 나타난 것들에 대한 찬송가 속의 비유를 바르게 다루지도 못했다.17)

  그러나 글을 누가 썼느냐 하는 문제가 대체로 챨스 웨슬리가 쓴 쪽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죤 웨슬리는 공동저작한 몇 권의 책들 서문에서 그 책들의 성서적, 교리적 내용을 자기자신의 것이라고 있다. 그의 선집과,그의 사상을 1780년과 1782년에 편집한 것은 그것들 중 최고의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의 「감리교도라 불리는 사람들을 위한 찬송가집」(Collection of Hymns for the People Called Methodists)은 웨슬리 찬송가의 영원한 보고(寶庫)인데, 그것은 웨슬리 형제의 시적 능력 뿐 아니라 그들의 신학도, 그의 관점에서는 시간의 시험을 견뎌냈음을 우리에게 확신케 하기 때문이다.

  1739년에 출판된 「찬송가와 성시」라는 책 서두에 있는 "성령찬가"(Hymns to the Holy Spirit)는 다음과 같은 연으로 시작된다.


오소서, 성령이여, 모든 것을 소생케 하시는 불이시여,

오셔서 내 안에 기쁨이 임하게 하소서!

강력한 욕망의 유혹에 이끌리는 나의 마음을

오, 오셔서 거룩케 하소서.

내 영혼의 성전을 준비하사

그곳에 당신의 신성한 임재 있게 하소서!


  오순절 비유와 바울의 비유를 성서구절을 섞어 짜엮으면서, 그 찬송가는 중생(重生) 가운데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과 증거를 찬양한다.


당신은 나의 평안, 나의 생명, 이제는 나의 위로시요

나의 보화이시며 나의 모든 것이니이다.

제가 당신의 아들된 진실한 증인은 당신,

제 가슴에 용서를 새겨 주신 분이시니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제 죄 용서받았다 인(印)치시니

진실한 사랑이시며, 천국의 보증이니이다.


  이어 찬송가는 그의 거룩케하시는 충만함을 갈구한다.


오소서, 나의 하나님, 당신의 후사(後嗣)를 구별하소서.

하늘의 더 큰 진실 주시어

더 밝은 빛으로 당신의 증거 감당케 하소서

제 안에 분명히 알 수 있게 거하시고

제 모든 능력으로 당신의 들어오심 느끼게 하소서

당신의 인(印) 더 깊이 쳐 주소서.18)


  그 책에 있는 "오순절의 성령강림"(On the Descent of the Holy Ghost at Pentecost)이라는 다음 찬송가는 무어(H. Moore)의 시를 개작한 것인데, 사도행전 1장과 2장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신실한 양떼는" "떠나가신 주님"을 갈망하며


약속하신 은혜와, 불어닥치는 바람과,

불의 갈라진 혀가 강림하기


까지 겸손하게 기다린다.

  이어 찬송가는 오늘날 신자들의 마음의 순결을 위한 기도가 되는데, 다음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다.


아버지! 우리가 이직도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이

우리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 베푸시어

생명의 불로 우리 머리 씌워주소서


정결케 하시는 불의 영이시여,

마음 깊은 곳을 살피사

모든 거칠고 추한 욕망 정화하시고

더욱 순수하고 온유한 생명 불붙이시나이다


당신의 율법이 우리 가슴에 써 놓으신

내면의 생명 성령께서 불어넣으사,

슬픔과 고통과 다툼 사라지오니

이는 당연한 일이며, 기쁨 자체이오리다


오 거룩하신 하나님, 진실로 이것을 허락해 주소서

당신께서 옛 예언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듯

우리에게도 약속을 지켜 주시어

우리에게 강림하사 불로 관 씌우소서


  이 싯구는, 웨슬리주의자들이 그후 항시 무엇을 가지고 "아버지의 약속"을 예수가 회복했다고 했는지, 또 베드로가 오순절에 행한 설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를 말해준다. 거룩케 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신구약성서의 중심적인 약속이며, 내면의 죄에 저항하여 싸우는 모든 믿는 자들의 특권이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 책의 서문에서도, 좀 분명하진 못하지만, 웨슬리는 "사회적 거룩함"(social holiness)이라는 입장에서, 신비가들의 "고독한 종교"(solitary religion)를 거부하여 같은 주장을 했다.19)

  이 싯구는 또한 그 책 앞부분에 나오는 "사도행전 1장 4절, '너희가 내게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제목의 찬송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첫 번째 연과 네 번째 연은 그리스도의 피의 "샘에서 씻김" 받음과 "약속하신 위로자"가 주신 "사랑의 빛과 자유"  속에 있는 내적인 중생(renewal)을 명백히 구별했다. 첫 번째 연과 여섯 번째 연은, 위대한 부흥의 해인 1739년 여름과 가을에 죤 웨슬 리가 반복해서 행한 산상수훈 서두에 대한 세 개의 설교와 병행을 이루고 있다. 일곱 번째 연은 1741년 초에 출판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행한 요한복음 8:37-38의 해설을 에고했다.


1. 만인의 구주시여, 제가 얼마나 오래

   당신의 발등상 앞에 잊혀진 채 누워 있으리이까!

   당신의 피의 샘에 씻기움 받았으나

   아직도 새로워지고자 신음하나이다


2. 은총의 기적과 죄,

  용서받았으나 아직도, 아아 개끗치 못하나이다!

  당신의 의(義) 내 것으로 <여김>받았으나

  언제나 그 의 내 본성 속에서 빛나리이까?


4. 어찌하여 당신은 첫 번째 선물 주사

  당신의 피 제 심장에 뿌리시어

  피뿌림 받은 제 심장이

  저 사랑의 빛과 자유 입증케 하셨나이까?


6. 그런데 속죄받은 당신의 종을 보소서

  주여 저는 당신으로 굶주리고 목마르나이다!

  저를 사랑으로 먹이시고, 당신의 성령을 주소서

  저는 성령 안에서, 당신 안에서 살기를 갈망하나이다.


7. 약속하신 성령을 주사

  제 심장 속의 샘물을 여소서

  거기서 성령이, 솟아나는 기쁨으로 흘러

  영원한 생명 속으로 솟게 하소서


8. 거기 담보요 증인이요 인장(印章)인 성령이 영원히, 영원히 거하게 하소서

  그러면 저는 나의 생명, 나의 사랑, 나의 천국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사함받고 기뻐하리이다!20)


  단순히 "사도행전 2장 41절"이라는 제목이 붙은 또 하나의 찬송가도 이러한 웨슬리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즉, 오순절에 신자가 된 많은 사람들은, 다락방에 있던 무리가 받은 것과 같은, 사랑 안에서 일어나는 완전한 신생(renewal)을 받지는 못했고, 그것을 미리 맛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 미리 맛봄이란 용서의 확신과 그들의 양자됨에 대한 성령의 증거,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함이다.


구주께서 수 많은 영혼들 속에서 역사하시어

3천명이 복종하고 믿으니라.


  마찬가지로, "오순절(whitsunday)에 대한 찬송"(whitsunday는 오순절을 뜻하는 엣 영어이다)은, 위로자가 오시기를 청한 구주의 기도가, 회개한 죄인들이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마다 부분적으로 응답되었음을 감사했다. 그 선물은 그들에게 내적인 거룩함이 시작되게 해 주고, 웨슬 리가 항상 선포한 대로, 그것은 그리스도 안의 신생(newbirth) 또는 새로운 생명의 표시였다.


그 분은 그들을 결코 떠나시지 않으리니

겸손한 마음의 동거자 되어

그 안에서 그 분 일 행하시되

그 분이 죄를 몰아내시기까지 애쓰시리라21)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찬송가는 예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것으로, "요한복음 16장 24절.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죤 웨슬리는 이것을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며, 15장 7절에 있는 "너희는 원하는 것을 구하리라"(KJV. 우리말 개역성경에는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로 되어 있음 - 역주)고 한 약속의 반복이고 완전한 사랑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시는 "자유"와 "완전한 사랑"에 대한 믿는 자의 소망을 명백히 표현했으며, 그것을 1인칭으로 하여,


모든 기쁨과 평화와 능력

내 구주께서 하늘에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


에 대한 소망을 표현했다.

  여섯 번째 연은 기도이다.


성자께서 나를 자유케하셨으니

나로 내 자유 맛보게 하시고

내 눈 열어 당신 보게 하시고

당신의 구원의 은총 속에서 승리케 하시며

당신의 크신 뜻 즐겨 밝히게 하시고

당신의 완전한 사랑 속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마지막 연은 내적인 거룩함에 대한 이 희망의 근거를, 예수께서 낙담한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는 "그 날에" 기대하라고 하신 것에 대한 기쁜 체험에 두었다.


하늘의 <아담>이시여, 거룩한 생명이시여

나의 본성을 당신의 본성으로 변화시키소서.

내 영혼을 움직이사 완전히 펼치시고

만유(the whole)를 움직이사 충만케 하소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당신이게 하소서


성령이시여, 더 이상 지체치 마소서

오셔서, 당신의 전(殿)에 거하소서

이제 당신의 내적인 증거

힘있고, 영원하고, 분명하오니,

당신께서 친히 주신 생명의 샘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솟나이다!22)


  1740년 봄에 출판된 「찬송가와 성시」의 제 2권 서문에는 마음의 순결의 체험 속에서 거룩케하시는 은총의 두 번째 순간에 대한 죤 웨슬리의 최초의 포괄적임 묘사가 들어 있다. 그 묘사와, 그 뒤의 시에서 밝힌 대로, 그것이 의존하고 있는 성서적 근거는 그 해부터 감리교구원자가 즉을때까지 그러했다. 웨슬리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디한 평이한 해설」(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속에서 약간의 편집 상의 분류만을 덧붙여 이를 다시 출판함으로써, 이를 교리에 대한 자신의 설명의 핵심으로 삼았다.

  1970년 서문에서는 단언하기를, 성령께서 행하신 구원이란 "우리의 가슴에 새롭게 찍힌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일 뿐"이며, "믿는 자들의 마음의 영 속에서 그들을 창조하신 분의 모습을 따라 그들이 새롭게 되는 것일 뿐"이다(골 3:10).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게 하시려고, 나무뿌리에 도끼를 놓으셨으며"(눅 2:9과 행15:9), "자신의 성령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의 모든 생각을 깨끗케 하셨다".(롬 8:17)라는 성령의 계속적인 증거를 지닌 후에라야만,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죄, 즉 "깊은 자만과 자기의지와 지옥"의 "모든 숨겨진 더러운 것들"에 대한 성령의 폭로를 감당할 수 있다고 웨슬리는 썼다. 그 후에 그들은 "의와 진실한 거룩함"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완전한 신생"을 간구한다(엡 4:24).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하나의 눈(a single eye : 이는 마 6:22의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에서 온 말인데, 이의 KJV판은 "if therefore thine eye be single"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a single eye란 '밝은 눈'이란 뜻이다 - 역주)과 순수한 마음을 주신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인(印)치시고 자신의 표시를 하시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는 당신의 아들과 복된 성령과 함께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의 영혼에 거처를 정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있는 안식"으로 이끄신다.23)


  이 두 번째 책에 있는 찬송가들은 성서에 있는 사건들과 비유들을 전범위에 걸쳐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 후 웨슬리는 믿음에 의한 완전한 성화(聖化)의 약속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것들을 인용했다. 단순히 수와 범위에서 보면, 에수의 피에 의한 완전한 내면의 정화, 속죄 속에서, 이 약속의 근거가 되는 그 설명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도들이 오순절 때 그러했던 것처럼, 믿는 자들이 성령에 충만되어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고 단언한 강력한 말들을 가리워 버리지는 못했다. 여기 웨슬리언들이 한세기 이상 불러온 유명한 시가 처음 나온다. 그 네 번째 연은 이렇다.


예수여, 모든 것 이기는 당신의 사랑

내 마음에 온통 뿌리소서

그러면 하나님 안에 귿건히 뿌리내려

제 발 더 이상 방황치 않으리이다


  여섯째 연에서 아홉째 연까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는 세례요한의 예언을 가리킨다.


오 내 안의 저 거룩한 불

이제 타오르기 시작하니

비루한 욕망의 찌꺼기 모두 태우고

산맥(the mountains)이 흐르게 하소서!


오 이제 그 불 하늘에서 떨어져

내 모든 죄 소멸하소서!

오소서, 성령이시여, 내 당신을 부르오니

오소서, 태우시는 영이시여!


성결케하시는 불이시여, 내 가슴 꿰뚫으사

나의 영혼 밝히시고

구석구석에 당신의 生命흩뿌리사

온통(the whole) 거룩케하소서.24)


  그러나 1740년에 쓴 책 서문의 사상과 언어와 비유는 저 위대한 "성결케하시는 하나님 찬양"(Hymn to God the Sanctifier)에 가장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 첫 연과 마지막 연은 "오소서, 성령이여, 모두를 소생케하시는 불이시여"(Come, Holy Ghost, all quickening fire)의 첫행에서 따온 말로 시작한다. 이 두 연은 찬송가 전체가 그렇듯이, 오순절에 베푸신 은혜의 두 차원을 차례로 강조한다. 그것은 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자들의 중생(the regeneration) 가운데 나타나는 성령의 선물과 증거로,


이제 제 영혼에 당신을 알려 주소서

당신의 권능의 사역 느끼게 하사

제가 하나님께로서 났음을 알게 하소서.


와, ⑵ "자만과 자기의지와 지옥"과 "증오와 시기와 질투"와 온갖 악한 욕망을 믿는 자에게서 제하시는, 거룩케하시는 성령충만의 체험이다.25)

  "양자 삼으시는 성령을 갈망함"(Groaning for the Spirit of Adoption)이라는 찬송가는 이와 아주 유사하다. 그 제목은 여섯 연 중 처음 세 연에 들어 있는 내용만을 말하고 있으니, 즉 신생(the new birth)에 대한 성령의 증거에 대한 간청이다. 그 증거가 "타고난 죄를 정복하는 권능"의 영, "사랑과 건강한 마음의, 내면적 권능의 영"을 오시게 했다("구속과 양자됨의 성령 "The Spirit of Bondage and Adoption이라는 그의 설교에서처럼, 웨슬리는 언제나, 신생이 "타고난 죄"에 대해 승리하지만 그것을 없애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세 번째 연의 마지만 두 줄에서 이 간청에 대한 답변을 찬양한다.


그 분이 오시도다!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와 함께한 모든 것이 나의 것이로다!


그 다음에 마음의 순수함에 대한 기도로 나아가는데, 여기서 사도 바울의 말씀이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오순절의 약속을 보강해 준다.


오, 안위자가 오시리니

잠시 들르는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내 안에 영원한 집 지으시고

내 마음 소유하시어

내 영혼 그의 사랑스런 거처로 삼으시고자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 삼으시고자 하시도다!


오소서 성령이여, 내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내가 다시 태어났음을 증거해 주소서!

오셔서 이제 나를 불로 세례 주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당신의 이전 선물 모두 헛되나이다.

나는 이미 용서받은 죄 가운데 머물수 없으니

내 천국에 대한 보증은 어디에 있나이까?


나의 천국 확증해 주는

확실한 인(印)은 어디 있나이까?

권능의 인치심, 하나님 사랑의 표시

느끼기 갈망하나이다.

오 그 표시 내 마음 곳곳에 뿌리사

사랑과 천국과 하나님으로 충만케 하소서!26)


  수많은 찬송가들이 이렇게 성령의 성화하시는 은총의 사역 두 가지를 묘사하고 찬양했다. 그냥 "마태복음 5장 3, 4, 6절"이라는 제목이 붙은 찬송가는 죤 웨슬리가 산상수훈에 대한 자신의 설교에서 이 세 성서구절에 붙인 의미들을 연마다 요약하고 있는데, 이 설교는 1739년과 1740년에 반복해서 행해진 것이다. 그가 여기에 붙인 의미란 용서와, "내면의 하나님 나라"의 체험, 거듭남에 대한 성령의 확증 또는 증거("그리하여 나는 위로자를 <영접한다>")와 완전한 사랑이다.


당신에 대한 모든 갈망

어디서 축복 속에 충족되리이까?

나는 당신으로 인해 굶주리고 목마르오니

…나를 당신의 의로 채우소서.27)


  다른 찬송가들도 이 은총의 순간 중 오직 하나만을 다루고 있다. 그 일곱 번째 연이 유명한 찬송가의 첫 번째 연이 된 시의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현행 찬송가 23장 - 역주)는 완전히 거듭남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로 그리스도와 그 분의 속죄의 희생에 대한 것이지만, 네 번째 편에서 저자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그 때 내 <진심>으로, 처음 믿었고

하나님 신앙으로 믿음 얻었네.

성령으로 받은 권능

나의 구주라 부르게 했네.28)


  반면, 죤 웨슬리가 좋아하던, "그리스도는 …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라는 구절에 근거해 쓴 네 개의 찬송가 중 위대한 세 번쩨 찬송가는 오순절 기간 내내 겪은 마음의 순결의 체험을 설명했다. 첫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연은 이렇게 되어 있다.


예수여, 내 생명 당신께 드리니

당신의 성령 불어넣으사

내 악한 기질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나로 당신의 즉음 따르게 하소서


내 죄의 나머지 흩어 버리사

나를 당신의 거처로 인치소서

오, 나를 내면의 모든 것에서 영예롭게 하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전(殿)이 되게 하소서.

당신은 내 내면의 거룩함이오니

믿음으로 당신이 내 구주 되셨음이니이다

내 모든 것 당신 것이 되기까지

내 가슴을 당신의 충만함으로 채우소서!29)


  "성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신 제 11장에 예시된 믿음의 생활"이라는 제목의 가장 긴 시는 제 12장 첫 구절을 언급함으로써 시작된다.


믿음의 주님, 영원하신 말씀이시여

당신의 성령으로 살아있는 불기 불어넣으시니

믿음의 완성자이신 주님과 같이

그 믿음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나이다


그 다음 부분에서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구약의 제 11장에 묘사된 성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것을 분명한 말로 확언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족장들이 완전히 성취하지 못한 약속들은 "영혼의 충만함이신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성령께서 거하시는"그리스도인들에게서 성취된다고 선언했다.30)

  1740년의 책에 있는 마지막 찬송가는 "히브리서 4장 9절.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에게 평화가 있느니라"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는 "믿음의 평안"(Rest of Faith)이라는 죤 웨슬리의 설교내용에 대한 최고의 색인(index)이다. 웨슬리는 그 설교를 1740년 6월 1일 킹스우드(kingswood)광부들에게 처음 했으며, 후에 런던에 있는 새로운 집회장소인 "파운더리"(the Foundery : "주조장"[鑄造場]의 뜻 - 역주)에서 행해진 첫 예배에서 두 번째로 했고, 그 후 여러 곳에서 했다. 그 찬송가에서는 본문에서 지적하는 대로 순례와 약속의 땅이라는 상징이 많다. 그러나 그 절정에 이른 연들에서는 히브리서에서 하듯이, 믿는자들이 그에 의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새 계약"의 피를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 연들은 오히려 요한복음 14:15-23에 나오는 오순절의 약속과, 믿는자들이 "약속의 성령에 의해 인치심을 받는다"고 한 에베소서 1:13의 바울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오소서, 오 나의 구주시여, 오소서

내 영혼 속에 내리소서

당신의 피조물을 더 이상 멀리하지 마소서

나의 주님, 나의 목적이시여….


오소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여

나를 당신의 거처로 인치소서

내 모든 것 당신 안에서 사라지고

내 모든 것 하나님이 되게 하소서!31)


  1742년에 죤 웨슬리의 「찬송가와 성시」 제 3권이 나오기 전 2년 동안에, 웨슬리의 설교와 출간서적들을 통해, 그가 내적으로 성결케하시는 은총의 "두번째 순간"이 신앙의 전과정의 통합적 부분임을 믿고 있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게 되었다. 그 것을 통해 성령께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것이다.32) 1742년 4월 그의 동생 챨스가 대학 앞에서 설교를 통해 옥스퍼드를 비난했으며, 즉시로 그것을 출판하여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당신은 "성령을 받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당신은 종교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에 동참하는 것이며,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는 것이며, 그 마음에 그리스도가 임하시는 것이다. "그대 안의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인가?… 그는 성령안에 있는 의며 평화의 기쁨이다."33)


  이 주장은 에베소서 5:4의 본문인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에서 나온 것인데, 설교자인 시인은 그 다음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시리라"는 말이, 나아가 바로 성령의 거룩케하시는 충만함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했다. 이 "아버지의 약속"은 이사야와 에스겔에 의해 주어졌고, 부활 수 예수께서 반복하신 것인데, 오순절 때 성취되었다.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겠느냐고 묻는 3천명의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한 답변(행 2:38)에 대한 단락에서, 챨스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단언했다. "이것[죄사함]을 받으면 당신은 믿음으로 거져 의롭게 됩니다. 당신은 또한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성화될 것입니다." 세상은 성령의 증거나 충만함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말씀하셨듯이, 그들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계속하여 말했다. "하나님의 영이 내면에 거하심은 믿는 자들 공통의 특권이며, 복음의 축복이며, 말할 수 없는 선물이며, 보편적 약속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입니다." "이 <성령이 불어넣어짐>(inspirition), 이 <성령받음>(receiving of the Holy Ghost)과 성령을 <앎>(sensible)을 부정하는 것, "성령에 <감동>하거나 <충만>해짐"을 부정하는 것은 "성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진리와 약속과 증거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외쳤다(강조는 챨스가 한 것임).34) 현대의 웨슬리언들은 챨스 당시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이 설교에 익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마음을 채우소서"라는 찬송시의 마지막 두 연이 은총의 두 번째 사역을 구하는 은밀한 기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1742년 출판된 세 번째 찬송가집 서문에서, 완전한 성화가 그 책에 있는 많은 시들의 주제라고 선포한 것을 보고도 아무도 놀라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챨스가 1740년 후반에 에스겔 36장에 근거해서 쓴 "성화의 약속"이라는 찬송시가 나왔다. 이는 그의 형의 유명한 설교인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출판본에 덧붙이기 위해 쓴 것이다. 24년 후 죤은 「평이한 해설」(A Plain Account)속에 다음의 두 연을 다시 인쇄했는데, 이는 비판자들에게 그 찬송가집의 중심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세상에서 선택되어

하나님의 의로 덧씌워졌다면,

만일 내가 약속의 땅으로 이끌려

구주를 내 주님이라 부르고 있다면,


구주여, 이제 당신의 거룩케하시는 영 부으사

내 목마름 축이시고, 나를 정결케 하소서.

그 은혜의 비 내리가

나를 죄에서 벗어나 순결케 하소서.35)


  한참 후에 죤의 것이라고 알려진 또 다른 시에서는, 주기도문을 거룩함에 대한 간청이라고 해석했다. 그것은 4년후 산상수훈에 대한 그의 6개의 설교에 덧붙여져서 다시 등장했다. 성령에 대해 이야기한 그 연은 이렇게 되었다. "은혜와 건강과 권능의 영이 우리의 가슴을 완전한 사랑으로 불태우시도다."36)

  1742년의 책에 있는, "완전한 성화를 구하여"라 되어있는 긴 부분은 "오순절을 위한 찬송"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단언하기를, 오순절에 회심한 3천명이 그랬던 것처럼, 성령충만의 약속이 주를 영접한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고 한다. "성령께서 오시면 죄인들이 살아난다"고 앞부분의 싯구가 표현하고 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소망속에서,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당신의 사랑하는 영원한 집"으로 삼으시기를 기다린다. 이 소망 속에서 그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저희는 사도들에게 주신 약속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우리 것임을 믿나이다….

주여, 이제 위로자를 보내 주시사

우리 안에 하나님의 손님이 되게 하소서.


여기 한 마음으로 모여

약속하신 은총 조용히 기다리오니

우리 주님 죽으심으로 사신(purchase)

성령이시여, 오셔서 이 곳을 충만케 사소서.37)


  이어지는 찬송시도 오순절 주일을 위한 것인데, 완전히 동일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안정된 위로와 온전한 사랑과 영원한 의"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을 말하는<죄인들>이란 말과, 그 즈음 죤 웨슬리의 습관이 되어있었던, 선천적 죄에서 구원되었다는 의미의 "죄에서 구원받은"이란 말이 쓰고 있어, 20세기 웨슬리언들의 용어에 젖어 있는 독자들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구절들을 해석하는, 그래서 시 전체를 해석하는 관건은, 완전한 사랑과 성령의 영원한 내재를 다루는 말들이다. 죤 웨슬리가 후에 회상하고 있듯이, 그 당시 두 형제는 완전한 성화에 대한 성령의 인치심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애를 확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에게 기울어 있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끝나는 찬송가를 썼다.


아버지, 보소서, 예수의 이름 속에 있는

그 선물 주시기 바라오니

약속하신 위로자인 그 분을

우리 모두의 영 속에 부으사

그로 여기서 거처를 정하게 하소서.

오셔서 다시는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38)


  "하나님을 진실한 분이라 하고, 모든 인간을 거짓말장이라 하라"(Let God Be True, and Every Man a Liar)는 제목의 논쟁적인 찬송시에서처럼, 오순절에 대한 주제는 이렇게 변형된 모습으로 여러번 나오는데, 이는 "지상에서는 완전이 없으며, 두려움을 몰아 낼 사랑도 없다"고 믿는 모든 사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 시의 앞의 두 연은 이렇다.


당신의 영 제게 부어주사

죄인을 졍결케 하시리이다

저는 확신 속 가운데 기다리나이다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를

저는 믿으니, 당신께서 제 영혼

하나님의 생명으로 회복시키시리이다

그때 저는 당신 형상 속에 빛나고

그때 저는 더 이상 죄없으리이다


  아홉 번째 연은 이 소망이 믿음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는 사랑 가운데 완전해 지리니

당신께서 그 말씀하신 까닭이니이다

종이 자기 주인보다 높을 수 없으나

주인처럼 되기는 하리이다.39)


  이 책에 나오는 성서본문과 비유의 풍부함과 다양성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활달한 시적 상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것들은 사실 저 두 형제를 서로에게 또 주님께 오랫동안 묶어 준 상세한 성서연구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그들의 설교와 소책자들에 중심이 되는 구절들에 대한 조심스런 설명을 보여준다.40) 많은 찬송시들이 성령충만을 말했고, 몇몇 찬송시들은 성령으로 세례받음을 언급했다. 그것들 중 수십 편에서는 명백히 성화하시는 은총의 두 번째 순간, 두 번째 축복을 말하고 있으며, 그리고 나서 그것을 다음과 같은 용어와 비유로 언급하고 있다. 즉, 내재하시는 영, 내면에 즉위하신 그리스도, 정화하는 불길, 그리스도인의 자유, 구원충만, 죄에서 구원됨, 마음의 순결,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짐, 장조주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짐, 완전한 사랑, "온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음"등이 그것이다.41) 저 아름다운 "거룩함을 위한 기도"는 각 연 끝의 후렴이 "주여, 저를 도우사 말씀하시고, 사랑 안에서 저를 완전케 하소서"로 되어 잇는데, 일곱 째 연에서 이렇게 간청한다.


주여, 만일 제가 당신을 믿는다면

두 번째 선물을 주시고,

내재하는 성령과 함께

새로운,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42)


  널리 사랑받고 있는 다음의 찬송시는 이러한 성서적 비유가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 마음이 나의 하나님 찬양하고

죄에서 자유케 되기를!

나를 위해 그토록 기꺼이 쏟으신

당신의 피 언제나 느끼기를!


내 마음 내 사랑스런 구주의 보좌에

내맡기고, 복종하고, 온유하여

그리스도만이 말씀하심을 듣고

예수만이 다스리시기를…


내 아오니, 당신께서 평화 창조하시기 전까지

당신께서 나의 낙원 회복하시기까지

자아와 죄에서 내 벗어나기까지

내 마음 결코 쉴 수 없나이다.


  단지 "시편 51편 10절 : '오 하나님, 내 마음을 정결케 하소서'"라고 되어 있는 이 찬송시는, 내 생각으로는, 시편이 만들어 낸 도덕적으로 타락한 왕의 모습에서보다,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이 그리스도의 즉위로 성취되었다고 선언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끌어 내고 있다.43)

  1742년의 찬송가집 또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교리의 근원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두 형제가 오랫동안 믿어온대로 구약성서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그 책은 신약성서에서 세례요한의 설교로 성취된 이사야 40장에 대한 긴 시로 시작된다.

  다른 구약성서 본문에 의거한 10여개의 시들이 그 뒤에 이어진다. 그것들을 보면 웨슬리형제가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교리를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최근까지 생각해 온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창세기 3:15에 근거한 한 편의 시는 타락한 사탄에 대한 저주를 사실상 이브에 대한 약속, 이브의 씨, 그 아들을 통한 낙원회복의 약속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 당신의 아들을 제게 나타내시고

그 완전한 본성을 가져다 주시어

이제 적의(敵意)를 깨뜨리시고

죄의 인간을 소멸하사…

나의 영혼을 당신의 순결한 거처로 삼으시고

모든 거룩함으로 충만케 하사

하나님 안에 완전히 삼키워지고 사라지게 하소서.44)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본문에 근거해서 지은 두 편의 시는 속죄의 피와 성화하시는 성령을 결합시킨다. "이사야서 4장"이라는 제목의 시는 기도이다. 그 시의 두 연은 다음과 같다.


오, 이제 그 은혜 충족되었나이다!

사랑하시는 주님, 더욱 순수한 흐름 넣어 주소서

당신의 샘 여사

우리의 더러운 모든 피 정화시키소서

심판하시고 태우시는 영 불어넣으사

오 그로 하여금 자기 성전에 오셔서

정화의 불길로 좌정케 하사

우리 모든 죄 밝히시고 소진케 하소서.45)


  이사야 32:2의 "또 그 사람은 [웨슬리형제는 그를 예수라고 믿었다] 피하는 곳 같을 것이며"(And  a man shall be as a hiding place(KJV))에서 영감을 얻은 또 다른 찬송시는 이렇게 애원하고 있다.


당신의 구름같은 공적으로

우리 사이를 중재케 하시고

제가 죄에서 깨끗해지기까지

당신의 피로 인한 속죄 옹호하소서


당신께서 내재하시는 영 불어 넣으시기까지

저는 피곤하고 애타게 목마르고 지치오니

주여, 매 순간 저는

당신의 죽으심의 공적 고대하나이다46)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이, 웨슬리형제도 ⑴ 위로자에 대한 예수의 약속과 제자들의 성화를 위한 예수의 기도(요한 16-17장에 기록되어 있다)와 ⑵ 오순절 사건 사이의 관계를 명백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약속의 처음에 있는 예수의 말씀의 주제에 대한 변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7)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고찰해 보라.


왜냐하면 당신은 저와 함께 계시고 또 내면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47)


그는 나와 함께 거하시며 당신을 오라 명하시니

당신 자신의 힘있는 기도에 응답하소서.48)


내 아노니, 성령은 나와 <함께> 거하시며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리이다

그 분이 내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사

내 마음 정화하시기까지.49)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들어오사 우리를 진실로 자유케 하소서

… 이제 당신의 영 나와 함께 거하사

주위에 계시며 그 날개 아래 나를 숨기시니….

온갖 장애 제하시고

내 사랑하는 마음에 거하시기까지 그리하시리이다.50)


성령이시여, 위로자시여

예수의 선물이시여, 오소서…

우리는 당신을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 느끼오니

오소서, 오 오사 우리 가운데 거하소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사시고 거하소서

영원히.51)


  요한복음에서 나온 이 주제는 또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딛 2:11-14)에 대해 바울이 디도에게 한 말씀을 설명하는 시에서도 중심적이다. 그 본문은 1742년의 책 첫 페이지에 인쇄되어 있다. 하나님이 "죄책감은 없애시나 죄의 능력은 남겨 두실" 것이라는 개념을 비웃으면서, 작가는 단언한다.


믿음이 오면 모든 사슬이 끊기고

우리 진실로 자유케 되나

그리스도께서 네 안에 사시지 않는 한

그는 너를 위해 헛되이 죽으셨도다.


그리고서 그들은 웨슬리 찬송가로 길러진 사람들에겐 유명한 다음과 같은 말로 당당하게 물었다. "우리가 부름받은 영광스런 소망이 내적인 성화 외에 무엇인가?" 찬양자들은 기도하기를, "죄를 뿌리뽑고 내 마음을 정결케 하는 믿음을" 내게 주소서 라고 했다. 마지막 연은 이 모든 것을 내재하시는 성령과 연관지었다.


예수께서 내 영혼 당신 거처 삼으실 때

내 모든 죄 떠나리라.

그런데 보라, "내 속히 와서

네 마음 정결케 하고 가득 채우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도다


당신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나를 모든 죄에서 구하소서

주여, 이제 내 마음 당신을 영접하오리니

들어오소서, 내 주님, 들어오소서!52)


  믿는 자에게 "이 산을 들어 욺기우라 하라" 하게 할만큼 위대한 믿음을 약속하시는, 마가복음 11:22-24의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시 한 편에는, 비슷한 오순절의 상징이 가득차 잇다. 죤 웨슬리는 이 구절이 성화를 위한 믿음을 달라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요한복음 16:24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네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는 위로자에 대한 예수의 말씀과 연결시켰다. 이 비유는 위에서 인용한 "에수여, 모든 것을 이기시는 당신의 사랑이시여"라는 유명한 찬송가에 있는 "산들을 흐르게 하라"는 구절에서 이미 나왔다.53) 여기서 그것을 보자.


그렇게 되소서. 내 의심 없으니

산이 옮기우리이다.

믿는 내 마음에서 죄가 순식간에

모두 사라지니리다


나는 기도하고 열렬히 갈망하는

일들 있으니

예수여, 내 모든 죄 떠나게 하시고

당신의 불기로 나를 세례주소서.54)


  그러나 1742년의 책에 있는 찬송시는 웨슬리가 마음의 순결에 대해 설교할 때 사용한 모든 성서적 주제들을 가장 완전하게 통합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12:50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해설하고 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그 시에서, 모든 제자들이 요구한 예수에게 고유한 세례란, "성령과 불", "사랑, 권능있는 사랑"으로 세례받는 것이며, 이는 "성령의 인(印)치심"이다.


주여, 저는 불에 의한 내적인 세례

받아야 하오니

이는 제 갈급한 영혼의 갈망이오니

이것이, 이것만이, 제 영혼 구할 수 있나이다


이것 이루어지기까지, 제 마음 답답하오니

제 안에 생명의 불꽃 피우소서

아버지, 제 안에 당신의 아들을 나타내소서

저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주소서


제 본성을 당신은 본성으로 변형시키시고

제 모든 능력 당신의 것으로 확증하심 느끼게 하소서

제 영혼 온전히 하나님 것 되게 하시고

저를 당신 성령의 인(印)으로 인치소서


사랑이시여, 권능의 사랑이시여, 제 마음에 임하소서

아아! 당신은 왜 그리 오래 지체하시나이까?

당신의 일 신속히 하시고, 시간을 앞당기사

저로 당신의 완전한 날 보게 하소서.55)


  나는 이 찬송시들에 나타난 주의 깊은 말들로 인해 이 두 형제가 훌륭한 시인이 되엇을 분 아니라, 경탄할만한 성서신학자가 되기도 했다고 본다.56) 성서의 사상에 대한 시적 표현의 정확성은 명확한 사고와 솔직한 해석에 대한 그들의 존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또한 그들이 형제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분위기 속에 있었던 옥스퍼드 대학 시절 이래 길러진, 개방성과 긴밀한 상호비판에 대해 평생동안 간직한 사랑을 반영한다. 그들은 기쁨을 위해 시를 썼으며, 그 시들로 인해 성서의 가르침을 가르쳐,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필요한 진리에 대한 비젼을 풍성케 하고자 했다.57)

  이러한 의도로 죤은 「최후의 만찬에 대한 찬송시」(Hymns on the Lord's Supper)라 이름한 책을 자비(自費)로 준비하여 1745년에 출판했으며, 같은 해 「아버지께서 이성적이며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호소하신다」(Father Apper to Men of Reason and Religion)를 세 부분으로 출판했다. 「호소」(위의 책의 약칭 - 역주)에 있는 각 주장들의 핵심에서처럼, 이 책(「최후의 만찬에 대한 찬송시」- 역주)에 있는 각각의 찬송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경탄을 깊게 하고, 성령을 통해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성화하시는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여기서 그 중 한 편의 시로 그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 - 즉, 31번 찬송시가 그것이다.


오, 우리 구원의 반석이시여, 보소서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는 영혼들을.


  이 시의 주요한 상징은 돌아가시는 그리스도의, 물과 피를 쏟으시는 상처난 옆구리인데, 다음의 싯구에서 잘 나타나 있으며, 이는 31년 후 출판된 어거스트 탑레이디(August Toplady)의 장엄한 시, "만세의 반석, 나를 위한 찢기심"(Rock of Ages, Cleft for me)의 싯구들을 상세하게 예견한 것이었다. 다만 웨슬리의 경우에는, 그 메시지가 거룩함과 마음의 순결과 완전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시원한 그늘 아래 우리를 숨기소서

오 주여, 우리를 당신의 옆구리에 품어 주소서

물과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섞인 강물 속에서 우리를 씻으소서


그 죄사함의 피 바르시고

그 물로 거룩하게 하시어

용서와 거룩함 베푸시고

그 피와 물 뿌리사 우리 마음 순결케 하시며

죄의 마지막 찌꺼기 썻어내사

우리의 내밀한 본성 깨끗케 하소서


그 피와 물의 흐름 용서 속에 흘러

당신의 사랑 우리 영혼 속에 넣어주시니…

우리 여기서 당신의 지고한 능력,

완전한 사랑의 지고한 능력 아리이다.58)


  어떤 특별한 시적 아이러니로 인해, 여섯 세대의 미국 웨슬리언들은 오랫동안 국민적 애창곡이 된, 탑레이디의 찬송가를 불러왔는데, 이는 그 시의 저자가 철저한 캘빈주의자이며, 자신들의 교단의 창시자의 잊혀진 싯구에서 그가 많은 혜택을 입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고려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서의 상징 속에 나오는 물은 거의 언제나 거룩케 하시는 성령을 뜻한다는 죤 웨슬리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탑레이디의 웅장하기 짝이 없는 싯구 속에서 감리교적인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다. 19세기에 거룩함을 가르친 교사들은, 웨슬리와 사도 바울이 했던 것처럼 예수와 분리된 성령 - 그 이름은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다 -을 생각하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완전한 성화를 위해 기도했는데, 탑 레이디의 말을 인용하면,


당신의 상처받은 옆구리에서 흐른

물과 피로 인해

우리 죄 이중으로 치유되오니

나를 분노에서 구하시고, 순결케 하소서.59)


  2년 후인 1747년, 챨스 또한 자비로 한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그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속에서 구원을 찾고 얻은 이들을 위한 찬양시"(Hymns for those That Seek and Those That Have Redemption in the Blood of Jesus Christ)이다. 죤은 그 시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1782년에 그 시 전체 52편 중에 24편을 오랫동안 표준서로 쓰이게 된 「감리교도라 불리는 사람들이 쓰기 위하 찬송가집」(Collection of Hymns for the Use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속에 넣었다. 그 시들 중에 웨슬리언들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애송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로서 내리사(개편 찬송가 55장 - 역주)

(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 Joy of heaven to earth come down)


제 아무리 날카로운 분석의 칼로도 여기의 아들에 대한 교리를 성령에 대한 기도와 나눌 수 없다. 그 찬송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당신의 낮은 거처 우리 안에 두사

당신의 모든 신실한 자비 이루소서.

당신은 순수하고 무한하신 사랑이시오니

당신의 구원 가지고 우릴 찾아오사

떨리는 가슴 지닌 모든 이에게 들어오소서.


넣어 주소서, 오오 당신의 사랑의 영

고통받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불어 넣으사

우리로 당신 안의 모든 것 상속받게 하시고

우리로 저 두 번째 안식 얻게 하소서.

우리의 죄 짓는 힘 제거하사

알파와 오메가 되고

믿음의 마지막이 처음과 같게 하시어

우리 마음을 자유케 하소서


오소서, 전능하신 구원자시여,

우리 모두 당신의 생명 받게 하소서.

불현듯 돌아오시어, 다시는

이제 다시는 당신의 성전들을 떠나지 마소서

우리 언제나 당신을 복되시다 하며

당신의 천군(天軍)들처럼 당신을 섬기고

당신께 쉬임 없이 기도하고 찬양하며

당신의 완전한 사랑 속에 기뻐하리이다.


당시에 모든 감리교도들이, 웨슬리가 성화하시는 은총의 두 번째 사역을 선포한 근거가 되는 핵심적인 문구라고 여겼던 것에 대한 비유가 이 위대한 시의 구절구절마다 나타난다.60)

  남은 것은 두 개의 각주인데, 여기 본문 속에 넣었으므로 독자들이 아래의 작은 글자를 찾아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챨스 웨슬 리가 홀로 써서 1749년 브리스톨에서 출판한 「찬송가와 성시」 두 권을 상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성화하시는 성령에 대해 두 형제가 함께 글을 썼을 때 사용한 시적 언어의 의미와 비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성서 본문을 인용하는 데도 전혀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예는 제 1권에 있는, 이사야 26장에 근거한 장시(長詩) 제 3부에 나온다. 이 시는 증거의 형태로, "번민과 고뇌와 비판" 속에서 진실로 "다시 태어나려고" 애쓴 사람의 체험을 다시 고찰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고대의 성인들이 그러했듯이.


한 분 안에서 부름받고 완전해지기까지

그들은 목자 없는 영혼이라 하염없이 방황했네


그 증거는 믿음의 선포로 마무리된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주님 일으키신 성령께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사

거룩케 하시어 불로 세례 주시리라.61)


죤 웨슬리는 그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평이한 해설」에서 선언하기를, 그는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바쳐진 챨스의 두 번째 책의 주요한 찬송가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한 예로 다음구절을 인용했다.


예수여, 우리의 生命이시여,

당신의 죽음 매일 죽는 우리 안에 나타나소서

당신이 완성시키시는 자이심 보여주시고

당신의 소생케 하시는 영 불어 넣으소서.62)


  1775년 죤 웨슬리는 「신약성서에 대한 해설적 주(註)」(Explanatory Notes on the New Testament)라는 제목으로 성서에 대해 쓴 그의 상식적 주석 제 1부를 출판했다. 그는 13년 전 독일어로 출판된, 경건주의자 죤 A.벵겔(John A. Bengel)의 주석을 기본틀로 해서 이를 저술했다. 웨슬리는 이 작업에 히브리어와 그리이스어에 대한 엄청난 재능과, 3년 간의 공동연구로 축적된 성서본문에 대한 모든 지식,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의(義)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려는 모든 열망을 쏟아 넣었다. 7,8년 후 챨스 웨슬리도 성서에 대한 해설적 주를 출판했는데, 이는 자기자신과 그의 형의 학문 및 체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챨스는 그들의 구원신학을 시로 표현하여, 2030편의 시가 담긴, 「성서에서 뽑은 구절들에 대한 짧은 찬송시」(Short Hymns on Select Passages of the Holy Scriptures) 두 권을 냈다.63) 챨스 웨슬리가 신학을 가르치려는 목적에 문학적 재능을 이보다 더 확실히 기울인 적은 없었다.

  1765년 4월까지, 챨스는 5권의 추가 필사본을 지었는데, 주로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구절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1788년 죽기 전까지 이것들을 적어도 여덟 번 이상 충실히 교정했다. 그의 형이 이 사본들을 다시 교정하여, 월터 쳐치(Walter Churchey)에게 출판권을 주었다. 죤 웨슬리는 쳐치에게, 비록 자기가 평생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약간의 신비주의 냄새가 나는" 것들을 "고치거나 삭제하기는"했지만, 많은 시들이 지금껏 출판된 것들 중 가장 훌륭한 시들보다 조금도, 또는 전혀 못하지 않습니다." 라고 썼다.64) 이 추가된 시들로 인해 「짧은 찬송시」(Short Hymns)의 오스본(Osborn)판에 있는 전체 숫자가, 구약에 대한 시 1609편, 신약에 대한 시 3491편으로 증가했다. 예레미아 31장, 에스겔 36장, 요한복음 14장(이 한 장에 대해서만 31편의 시가 있다!), 사도행전 1-2장, 또는 4복음서에 "그분은 너를 성령으로 세례주시리라"는 세례요한의 선포를 인용한 부분에 대한 훌륭한 찬송시들을 읽어보면, 마음의 순결에 대한 웨슬리의 선포에 오순절의 비젼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65) 그 비젼은 분명히 그 시집의 초판이 준비되고 있었던, 1759년에서 1762년간의 대부흥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주제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이 부훙운동은 다음 반 세기 동안 웨슬리적 종교문화의 색조를 영국과 미국에 정착시켰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고찰해야할 것이 있다. 음악과 종교의 관계는, 히브리와 그리스도교문화에서 뿐 아니라, 인도, 중국, 희랍 등 모든 문화의 역사 근저에 놓여있다. 그 수렴점도 신비체험인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웨슬리의 선포가,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가득 차"야 한다고 선언하는 예수와 바울의 말씀 속에서 주조되었고, 신비적 불꽃을 음악의 불길 속으로 쏟아 넣었다는 것에 놀라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두사람의 손에서는 거룩함에 대한 찬송이 항상 의미 - 아름답고 서사적인 의미 - 가 있다는 사실에는 당연히 놀라게 된다. 복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성서와 이성(理性)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 아니 아마도 나는 성서에 대한 이성적 탐구 속에(in reasoning about Scripure)라고 말해야 한 것이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 주는, 그러나 결코 영지주의적이지 않고 도덕적이며, 의와 완전한 사랑에 대한 수세기에 걸친 그리스도인의 탐구에 일맥 상통하는, 살아있는 신앙을 이해했던 것이다.66)



Notes

1) John Wesley and Charles Wesley, Hymns of Petition and Thanksgiring for the Promise of the Father(Bristol, 1746; reprinted in The Poetival Works of John and Charles Wesley, Coll. and arr. G. Osborn, 13 vols. [London, 1809]), 4:162-204.

2) Wes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4:199.

3) Wes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4:168 ; p.180의 John 16:1-4와 p. 185의 John 16:18에 대한 찬송가를 비교하라. 또한 John Wesley, sermon, "On the Death of Rev. Mr. George Whitefield"(1770), in John Wesley, Works, 14vols.(London, 1872; reprint ed., Kansas City, Mo.: Beacon Hill, 1978), 7:179(section Ⅲ, 4)를 보라.그리고 John Wesley, Journal, ed. Nehemiah Curnock, 8 vols. (London, Culley, 1909-1916)에 있는 July 6, 1739의 서두와,Curnock의 注, 2:242를 보라.이는 웨슬리의 설교 "The Indwelling of Spirit"을 Whitefield가 준비하여 웨스슬 리가 출판한 데 대한 것이다.

4) Wes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4:185, 187, 190.

5) Ibid., 4:184, 190.

6) Ibid., 4:172-79, p. 173에서 인용. 200-201과  203-4의 마지막 찬송가를 비교하라.

7) Ibid., 4:178.

8) John Wesley, semon, "Scriptural Christianity"(1744). in Works, 5:88, 91, 96-97.

9) John Wesley, semon,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1745), in Works, 5:88, 91, 96-97.

10) John Wesley, "A Father Appeal to Man of Reason and Religion"(London, 1744), in Works,   8:76-106(Part Ⅰ, sections Ⅴ-1 through Ⅴ-27), p. 76 이하에서 딴 인용문. "Primitive Christianity"라는 시는 John Wesley, An Earnest Appeal to Men of Reason and Religion (London, 1743) in Works, 8:43-45에 있는데, 웨슬 리가 그 안에서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이러한 모든 가르침을 단언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Earnest와 Father Appeal(1745) 사이의 시적 연결로, 1744년에 출판된 마지막 옥스퍼드 설교가 산문의 연결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시는 Appeals와 Part Ⅰ의 마지막 두 연과 part Ⅱ의 두 번째 연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거룩케하시는 은총이라는 두 번째 순간에 대한 가르침을 분명히 해준다. 마지막 것은 이렇다.

      진실로 당신을 부르고

      당신의 거룩케 하시는 말씀 기다리며

      당신을 진정한 구주라 하는 소수의 사람들

      묶으사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하소서.

이 시를 "An Act of Devotion, "published at the end of Part Ⅰ of A Father Appeal in Works, 8:155와 비교해 보라.

11) As argued variously in D. Bruner, 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The Pentecostal Experience and the New Testament Witness(London: Hodder & Stoughton, 1971), and James R. Dunn, Baptism in the Holy Spirit: A Reexamination of the New Testament Teaching … (Naperville, Ⅲ.: Allenson, 1970).

12) Wes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4:196-97, reproduced in John Wesley, A Collection of Hymns for the People Calle Methodists, 3rd ed. (London, 1782; facsimile reprint, London[1889?]), p. 86.

13) Wed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4:199.

14) Timothy L. Smith, "How John Fletcher Became the Theologian of Wesleyan Perfectionism, 1770-1776," Wesleyan Theological Journal, vol. 15, no. 1 (Sprong 1980): 73.

15) John Wesley,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 (London: 1766, reprinted, with a few insignificant verbal changes, several times before the author's death in 1791), in Works, 11:391-93, is decisive on the point. Cf. John Wesley, Journal, December 15, 1775, December 10, 1788; John Wesley, "Preface"(1779) to Collection of Hymns(1782) in works 14:340-41; and John Wesley, St. Ⅰves. September 15, 1762, to Miss Furley in Works, 12:207.

16) John and Charles Wesley, Poetical Works, 7:ⅹⅴ-ⅹⅵ에 있는 저자문제에 대한 Osborn의 주를 보라. 웨슬리형제는, "오순절 찬송가들"이 죤의 사상이 아니라 챨스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1771년 죤 플레쳐의 어색한 추론을 무시했던 것 같다. 어쨌든 플레쳐는 An Essay on Truth를 출판한 1774년에는 인식을 다르게 했는데, 나는 이것을 "How John Flecher Became the Theologian of Wesleyan Perfectionism, 1770-1776," Wesleyan Theological Journal, vol. 15, no. 1 (Spring 1980):73-75에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17) Henry Bett, The Hymns of Methodism, 3rd ed. (London : Epworth, 1945), pp. 21-33 ; J. Ernest Rattenbury, The Evangelical Doctrines of Charles Wesley's Hymns (London : Epworth, 1941), p. 337.

18) John Wesley and Charles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London, 1739), reprinted in Poetical Works, 1:164-65. 이 책은 1739년 말에 3판에 이르렀다. Poetical Works, 1:ⅹⅵ에 있는 오스본의 서문을 보라. 여기 인용된 제 2연의 3행은 다음과 같다. "<이제> 제 아들됨의 진실한 증언을 " in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 358.

19)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39), pp. 165-66 ; 12-14연은 오순절을 의(義)안에서 온 세상의 신생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온 세상에 도래하는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서문은 John Wesley, Works, 14:320-21에 있다.

20)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39), pp. 95-96. Cf. John Wesley, Journal, entries for July 21, August 26, and October 19, 1739 ; John Wesley, "The Sermon on the Mount," Discourses Ⅰ, Ⅱ, Ⅲ, in Works, 5:247-93 ; and John Wesley, sermon, "Christian Perfection," in Works, 6:17(section Ⅱ, 26). 나는 그가 이 두편의 설교 모두 실제는 1739년 가을에 했다고 믿는다.

21)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39), 1:171-72, 188-89.

22) Ibid, 1:193. John Wesley, Plain Account (1766), p. 370은 완전한 성화에 대한 그의 초기 신앙을 묘사하기 위해 "Heavenly Adam"으로 시작되는 연을 인용하고 있다. John Wesley, sermon, "Christian Perfection" (1741), in Works, 6:17 (section Ⅱ, 25)는 마음의 순결을 가르치면서 갈라디아서 2:20절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연의 마지막 두 행이 여기에 근거해 있다. 그리고 그의 Plain Account, p. 377는 이 설명을 인용하고 있다. 요한 복음 16:24의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약속에 대한 웨슬리의 설명은 John Wesley, The Character of a Methodist (1742) in Works, 8:342를 보라, 그것은 이어서 완전한 성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의 Plain Account (1766), p. 371에 인용되어 해석되고 있다.

23) John Wesley and Charles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London, 1740), preface, reprinted in Poetical Works, 1:197-204. Osborn, Poetical Works, 1:ⅹⅶ에 의하면, 이 책은 Wesley의 Hymns and Sacred Poems (1739) 제 3판과 제 4판의 3부와 4부가 되었고, 그 서문은 1743년과 1756년에 출판된 합본의 제 3부에 나온다. Wesley, Plain Account, pp. 380-81과 비교하라. 거기서는 "그는 자신의 거룩한 약속을 기억하신다"라는 말이 빠져 있다. 내가 여기서 인용한 네 구절 속의 성서에 대한 언급은 마태 6:22, "그가 인치신다" 등이며, 또한 에베소서 1:14이나 고린도후서 2:22의 (John Wesley, Explanatory Notrs Upon the New Testament [London : 1755과 후에 나온 여러 판들]에 있는 이 두 구절에 대한 주석을 보라) "그가 창조하신다" 등. 고전 5:17 ; 요한 14:17, 19, 23 : 그리고 히브리서 4:9.

24)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0), 1:205-372, 산견, 인용한 찬송가는 1:328-29.

25) Ibid., 1:240-42. 여기 인용한 행들과 앞 단락의 행들은 웨슬리가 뽑아 그의 Collection of Hymns (1782), pp. 333-34, 346에 실은 두 편의 찬송가 속에 나온다.

26)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0), 1:307-8. 여기서 인용한 두 번째 언의 두 번째 행에 있는 Attest라는 말은 witness와 다른 말이며, 훨씬 더 강력한 말임에 주목하라. 여기서 이 용어를 쓴 것은, 작가가 거듭남에 대한 완전한 확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구도자가 "불로" 세례받음으로써 신생을 체험하는 사실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을 증언하고 있다(attest).

27) Ibid., 1:258.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같은 단락의 또 하나의 찬송가에 대하여는 "Blessed are they that mourn," 1:330-31를 비교해 보라. 또 위의 n. 20을 보라.

28) Ibid., 1:300.

29) Ibid., 1:284. "A Prayer Against the Power of Sin," 1:271, verse 14를 비교하라.

      당신의 권능의 성령께서 제압키 어려운 죄 정복하시리니

      저의 이 추한 마음 정결케 하사 새롭게 하시고

      그 속에 당신의 율법을 새기소서

또한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p. 328-29는 제 6연을 제외한 모든 연을 싣고 있다. The elder Wesley, Hymns and Spiritual Songs, Intended for the the preceding paragraph for the earliest general songbook used widely among Methodists : John Wesley, Hymns and Spiritual Songs, Intended for the Use of Real Christians of All Denominations, eighth ed. (London, 1761 [first ed., London : 1753] ; see pp. 18(no. 11), 37(no.25), 42(no. 30), and 63(no. 40).

30)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0), in Poetical Works, 1:209, 221. 그외 산견. John Wesley, A Collection of Hymns, p. 95에 있는 축약판에 실려있는 동일한 첫 연을 비교하라.

31)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0), 1:370-72 ; John Wesley, Journal, June 1 and August 1, 1740. Wesley, Plain Account, p. 382 에 여기 인용한 두 연을 포함하여, 이 찬송가의 아홉 연이 인용되어 있다.

32) Hymns and Sacred Poems (1740), 1:197-204의 서문에 덧붙여, 이 2년 동안의 핵심자료는 Wesley의 설교, "Christian Perfection"(1741)과 두 개의 글, John Wesley, The Character of a Methodist와 The Principles of a Methodist (London, 1742)인데, 둘다 Works, 8:340-47, 359-74에 다시 인쇄되어 있다. 아울러, 웨슬 리가 이 기간 동안 산상수훈에 대한 자신의 최초의 3개의 설교와 "The Law established by Faith"(1741), "The Spirit of Bondage and Adaption"(1739)이란 제목의 설교들을 반복해서 설교한 것은 적어도 감리교도들에게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웨슬리의 가르침 중 은혜의 두 순간과 과정의 결합에 대해서는 Harald Lindstrom, Wesley and Sanctification (Stockholm, 1946), pp. 174-78을 보라.

33) Charles Wesley, sermon, "Awake Thou That Sleepest" ([London : 1742]), in John Wesley, Works, 5:30.

34) Charles Wesley, "Awake Thou," 5:32-34.

35)  John Wesley and Charles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 London, 1742), in Poetical Works, 2: 서문, 45-48, 이 찬송가는 319-22에 있음. 여기 인용된 서문과 두 연 중 두 번째 연은 Wesley, Plain Account, pp. 383-86에 있고, 물론 찬송가는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 374에 있다.

36)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335-36 ; John의 저자문제에 대하여는 John Wesley, Standard Sermons, ed. Edward H. Sugden, 2 vols. (London : Epworth, 1921), 1:445를 보라.

37)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227-28. 마지막 행은 마태 10:24-25를 말하는데, 이는 항상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에 대한 죤 웨슬리의 설명에서 핵심구절이다.

38) Ibid., pp. 229-31 ;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 87. Plain Account, pp. 426, 442와 비교하라. 웨슬리가 마지막 보류에 대한 그의 생각을 1758-1759년 경에 바꿨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39)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285-86. p. 46과 비교할 것. 마지막 행에서 말하고 있는 마태 10:24, 25 ; 누가 6:40 ; 요한 13:16에 대한 주석이 서문에 있기 때문이다. (이 서문은 John Wesley, Works, 14:329에 1745년 판부터 실려 있다). 그 주석은 Works, 6:16-17 (section Ⅱ:21, 22, 24)에 있는 웨슬리의 설교 "Christian Perfection" (1741)에 나오는 마음의 순결에 대한 체험을 가르치기 위해 누가 6:40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그가 "완전히 성화된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거로서 요한일서 4:17 "그와 같이 우리고 이 세상에서 그러하도다"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예시하고 있다. in Minutes of the Conferences …, August 2, 1745, in Alvert C. Oulter, ed., John Wesley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p. 153.

40) 내가 이름 붙인대로, 일련의 탁월한 성서적 '연도(連禱)들'은 완전한 사랑의 교리에 대한 웨슬리의 주장에서 핵심이다. 이 기도들이 말하고 있는 성서구절들은 거룩함에 대한 찬송가에 대단히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도들은 그의 저작에 연대순으로 나타나 있는 바, 다음과 같다. preface to Hymns and Sacred Poems (1740), pp. 198-202 (reproduced also in Works, 14:323-25) ; sermon, "Christian Perfection"(1741), on Works, 6:16-19 ; preface to Character of a Methodist (1742), on Works, 8:342-46 ; An Earnest Appeal (1743), 8:21-22, 40-41 ; John Wesley, Minutes of Some Late Conversations Between the Rev. Mr. Wesley and Others ([London : 1747]), in Works, 8:294-96 ; Hohn Wesley, A Letter to the Reverend Doctor Conyers Middleton, Occasioned by His Late "Free Inquiry" ([London, 1747]), in Works, 10:72-73 : John Wesley, "Thoughts on Christian Perfection"(1759), in Outler, John wesley, p. 289 ; and John Wesley, sermon (see Journal, November 3, 1761), "On Perfection," in Works, 6:413-17. 이 중 마지막 글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은 1766년에 그의 Plain Account에 요약되어 있거나 광범위하게 옮겨져 있다.

41) 이 중 마지막 것에 대하여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보라. John Wesley and Charles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276-77. 이사야 28:16에 대한 장시(長詩)와 비교하라. Part Ⅱ, 1-2, 5연과 Part Ⅲ, 5연, 같은 책, pp. 330-34.

42) Obid., p. 275.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 336에 있으며, 인용된 마지막 행은 "새로운, 회개한 마음"이라 되어 있다.

43)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77-79.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 324에 있는 판본은 여기 인용한 행을 "내가 모든 죄 그만 두나이다"로 고쳤다.

44)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49-89. 외 산견. 인용된 시는 pp. 67-68에 나옴. pp. 249 (8-9연), 257, 281과 비교.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초기의 잘못된 인식과 대조해 보라. in Timothy L. Smith, "The Cross Demands, the Spirit Enables," Christianity Today 23 (February 1978) : 26 ; and John N. Oswalt, "John Wesley and the Old Testament Concept of the Holy Spirit," Religion in Life 48 (Autumn 1979) : 283-91.

45)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 249. 나는 이 두가지 방식의 표현이, 미국의 웨슬리언들이 챨스 G. 피니 (Charles G. Finney)의 오순절에 대한 가르침을 정화와 십자가에 대한 그들의 전통적 수사학과 통합시켰던 때 쯤 나타났다고 가정함으로써 오류를 범했다 (Smith, "the Cross demands, " p. 26).

46)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 207.

47) Ibid., p. 179과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 196. John wesley의 현대 편집인인 느헤미야 커녹(Nehemiah Curnock)은 Journal, 1:477n.,에서 이 찬송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의 사랑을 갈망하나이다"를 죤 웨슬리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그것이 올더스게이스(Aldersgate)의 체험 이후 몇 개월 사이에 지어진 것임을 암시했다. 여기의 일반적 관점에 대한 실제의 증거는 그 전 해에 출판된 "그리스도인의 완전"(1741)이라는 그의 설교 속에 있는 요한복음 7:38에 대한 죤 웨슬리의 설명이다(그의 째간, 6:10-11을 보라). 또한 요한복음 14:17-23에 대한 주석도 그것인데, John wesley, Explanatory Nores Upon the New Testament (London, 1755, 그리고 이어 나온 여러 판본들)에 있다.

48)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 197. 오직 삼위일체 교리를 지키는데 대단히 관심이 있던 한 시인만이 이 무리한 시를 지었을 것이다.

49) Ibid., p. 243.

50) Ibid., pp. 256, 272, and John Wesley, Collection of Hymns (1782), pp. 287, 301.

51) "Hymn for the Day of Pentecost,"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 229 ; 죤 웨슬리는 Hymns and Spiritual Songs (1753), p. 119와 Collection of Hymns (1782), p. 471을 위해 이를 택했다. 그 첫연에서는 이렇게 간청한다.

      죽으시는 우리 주님의 아버지,

      그가 기도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사

      아버지, 당신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

      그의 진리와 권능과 은총을 보이시고

<그 약속>을 내려 주소서.

52)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title page, and pp. 304-5. 마지막 연은, "오소서, 당신, 하늘의 손님이시여, 당신의 성전으로 오소서"라고 시작한다. 같은 모음집 p. 365에 있는 12연, "성령과 신랑이 말하도다. 오라!" 및 Part Ⅲ, 1,2연, p. 361의 "라오디게아 교회의 천사에게"와 비교하라. 같은 주제가 다음에 계속된다. 이 주제는 Charles Wesley, Short Hymns on Select Passages of the Holy Scriptures, 2 vols. (London, 1762), reprinted in Wesley and Wesley, Poetical Works, 12:13에서 계속되고, 다시 The Arminian Magazine (London) 3 (May 1780) : 282-83에서 죤 웨슬리에 의해 "그가 당신과 함께 거하시니,당신 안에 거하시리라"(He dwelleth with you, and shall be in you.)는 제하에 다시 논해지고 있다.

53)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0), 1:329, 위에 인용한 시는 p. 12에 있음. 또 Wes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in Poetical Works, 4:197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많이 불리는 찬송가 "믿음의 영이여, 내려오소서" (Spirit of Faith Come Down)의 마지막 연과도 비교하라.

54)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1742), pp. 308-9.

55) Ibid., pp. 196-97. 마지막 연의 O'erpower는 "overwhelm"과 동의어로 "세례하다"를 뜻하는 희랍어 단어의 적절한 번역어 중 하나이다.

56) 적어도 한 자매가 자기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시를 썼다. S[amue] Wesley, The History of the Holy Bible From the Revolt of Ten Tribes to the End of the Prophets …. 2 vols. (London : ["Printed for John Hooke"], 1716)을 보라. 그러나 예레미아 3장, 에스겔 36장, 호세아, 요엘에 대한 죤 웨슬리의 찬송시에서 임의로 추출해 보면, 아래 주 60에 인용된 이 구절들에 대한 챨스 웨슬리의 시들과 유사성이 없다.

57) Mark A. Noll, "Romanticism and the Hymns of Charles Wesley," The Evangelical Quarterly (Exeter, England), 46(Oct.-Dec. 1974) : 212-15.Mark A. Noll, "Romanticism and the Hymns of Charles Wesley," The Evangelical Quarterly (Exeter, England), 46(Oct.-Dec. 1974) : 212-15.

58) John wesley, Hymns on the Lord's Supper… (Bristol, 1745), in Wesley and Wesley, Poetical Works, 3:238-39. 찬송가 no. 33의 마지막 연과 비교하라. ㅔ. 240. 탑 레이디는 칼빈주으적인 Gaspel Magazine, March 1776에 "A Living and Dying Prayer for the Holiest Believer in the World"라는 제하에, 우리가 "만세반석"(Rock of Ages)라고 알고 있는 찬송가의 본문을 출판했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도덕률에 대한 자신의 논문을 덧붙였다. 그 논문에서 그는 이 생에서 절대적인 거룩함의 기준에 대한 모든 타협을 거부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돌려지는 것이지 (be imputed),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not imparted) 주장했다.

59) 성화하는 성령의 상징인 물에 대하여는, Wesley, Plain Account, p. 435, 그리고 John 7:37-39,에 근거한 찬송가는 Wesley and Wesley, Hymns of Petition, p. 171을 보라. Cf. National Camp Meeting 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Holiness, The Double Cure, or Echoes from National Camp-Meetings (Philadelphia? [c.} 1890).

) "죄 짓는 힘"(power of sinning)이란 말은, 1750년데 후반 웨슬 리가 완전한 사랑의

   체험이 마지막 인내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정한 수, "죄 짓는 경향"(bent to

   sinning)으로 바뀌었다.

60) Charles Wesley, Hymns for Those That Seek and Those That Have Redemption in the Bleed of Jesus Christ (London, 1747), reprinted in Wesley and Wesley, Poetical Works, 4:219 ; Richard Green, The Works of John and Charles Wesley : A Bibliography, 2nd ed. (London ; Methodist Publishing House, 1906), entry no. 105.

61) Wesley and Wesley, Hymns and Sacred Poems, 2 vols. (Bristol, 1749), Ⅰ, in Wesley and Wesley, Poetical Works, 4:290-91.

62) Wesley, Plain Account, pp. 391-92.이 두 권의 책에 있는 다른 절들의 특별히 "신비주의적인" 단락들에 대해 그가 특별히 예외적으로 쓴 글들을 보면, 그들이 함께 지은 개념들과 표현들이 그의 것임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비교, 일반적으로 챨스의 두 번째 책에 있는 오순절에 대한 주제는Wesley and Wesley, Poetical Works, 5:295, 305, 315 (세례요한의 예언을 오순절 및 사랑 안에서 이루어 지는 완전함과 연관지은 찬송가)와 317-18(바울의 말을 오순절에 행한 베드로의 설교와,또 "완전히 성화되고","사랑 속에서 완전해지는" 것과 연관짓고 있는,에베소서 4:8에 대한 찬송가)에 있다.

63)Charles Wesley, Short Hymns On Select Passages of the Holy Scriptures,2 vols.(London,1762),서문,in John Wesley, Works,14:334; Green, Bibliography, item No.214.

64)John Wesley, Journal, December 10, 1788; John Wesley, 1789, to Walter Churchey, in Works,12:438.

65)Charles Wesley, Short Hymns on...the Holy Scriptures, Ⅰ, nos. 1336, 1354, 1392, 1457, in Wesley and Wesley, Poetical Works, 10:34, 41, 58, 82-83; and Ⅱ, nos. 20:22, 782-3, in Poetical Works, 11:127-28, 326: and Ⅱ,nos. 2092-93, 2096, 2353-54,2367-69, in Poetical Works, 12:12-15, 135-36, 142-43.

66) 영지주의자들의 도덕폐기론 적인 경향 때문에 그들을 배척한 것에 대하여는 다음을 보라. John Wesley, "An Answer to the Rev. Mr. Dodd." 이는 아마도 1760년대에 쓰여졌을 것인데, Works, 11:453에 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바로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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