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Re:회심과 성령(2)손성은목사님

baromi 2009. 3. 23. 13:20

회심과 성령(2)

 

제목 : 회심과 성령 2
설교 : 손성은목사

말씀본문 : 고린도전서 12장 1~3절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http://www.samil.org/board/vod.php?Code=J&No=256 (동영상)

 

삼일교회주일설교/2009년3월22일 

회심과 성령(2)

고린도전서12:1-3

 

지금 이 시간에 WBC 경기가 진행 중입니다. 베네수엘라팀과 한국팀이 대결하는데, 이 경기에서 이기게 되면 일본과 결승에서 맞붙게 됩니다. 이상한 경기운영방식 때문에 일본과 계속해서 붙어서 지금까지는 2승2패로 무승부입니다.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까 더욱 흥미가 진진해집니다. 이것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일이 지금 우리들 가운데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일은 이기고 지느냐 하는 야구게임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지옥을 가고 있느냐 아니면 천국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을 갑니다. 영생이냐 영멸이냐는 문제가 바로 거듭남에 달렸습니다.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주신 생명의 능력으로 능동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회심입니다. 지옥을 향하여 가다가 천국을 향하여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회심을 위하여 성령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오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중에서는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고 보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그렇게 저주받은 표시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요.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까? 전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해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게 되면 바로 이것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저주받을 죄를 지은 자들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죄에 대해서 분명히 정리하고 있습니다(제15장4절): “아무리 작은 죄라도 멸망에 해당되지 않는 죄가 없다.” 천원 훔친 것이나 천억원을 훔친 것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죄입니다. 죄의 성질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죄의 성질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한다”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저주받지 않으셔야 할 분이신데 나를 위해서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다든지 하는 뜻이 아닙니다. 나쁜 말, 저주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예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약간의 호감이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진정으로 구원얻은 것으로 보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단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나아간다고 보아야 할 뿐입니다. 아직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현대교회 교인들의 간증을 보면, 내가 어떻게 죄인된 것을 깨닫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내가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던가, 어떤 질병에서 고통하다가 낫게 되었거나, 아주 곤란한 일 가운데서 극복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비참과 곤경으로부터의 구원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성령님께서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회심하게 될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단순히 죄를 깨닫게 되는 것만 아니라, 나아가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3절 후반부에서는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로 깨닫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단순히 죄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는 것이라고 해서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유다의 회개가 그러했습니다. 사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들이 이렇습니다. 이번 달 추천도서로 존 번연의 ‘지옥역정’이란 책이 있습니다. ‘천로역정’이란 책은 천국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 ‘지옥역정’은 지옥을 향해가는 ‘배드맨’이란 사람의 삶의 여정을 그려놓았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악하게 살고 음란하게 살다가 죽을 병이 듭니다. 죽음 앞에서 그는 두려움으로 회개를 합니다. “나는 망하게 되었네 망하게 되었네, 악한 일만 하다가 이젠 지옥가게 되었네”하면서 밤새도록 떨기도 하였습니다. 생각도 많이 바뀌고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내를 향한 태도도 바꿨습니다. 교인들이 찾아와서 심방을 하자 반가워하면서 자기가 지옥을 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고 병이 낫게 되면 열심히 교회도 다니겠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병세가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습니다.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전의 결심은 모두 없어져 버리고 결국은 지옥에 가고 말았습니다. 거짓된 회심이었습니다. 회개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불뱀처럼 장대위에 높여들려진 주님을 바라볼 때에 거듭나게 되고 회심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회심을 위하여 이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참된 변화가 일어나게 합니다. 이 변화는 겉모습의 변화가 아닙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변화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변화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갖게 되는 의지의 결심만도 아닙니다. 마음의 변화입니다. 마음의 변화란, 우리의 기질과 습관이 변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의 본성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었습니다. 때로는 나도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를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전혀 믿음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는 아직 마음을 확정짓지 못한 것입니다. 바알과 여호와의 사이에서 주저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마음의 방향이 정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마음을 변화시켜주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과연 내가 말못하는 짐승을 좇고 있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였구나 싶습니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이제 즐거움의 대상이 바뀝니다. 목적이 바뀝니다. 기대하는 것이 바뀌고, 생각하는 것이 바뀌고 위로와 만족을 하게 되는 대상들이 바뀝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고집스러움과 완고함이 제거됩니다. 책망을 들어도 그 책망이 달게 여겨집니다. 누구든지 저를 책망하여도 달게 여겨집니다(안내부에서의 안내지시를 잘 받으려고 합니다!. 실은 이것은 자신감이기도 합니다! 성령충만의 특징이 서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를 통해서도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칼럼!). 은사문제를 다루게 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로 인하여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목적도 변화되고, 즐거움의 대상도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에게 은사가 주어진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봉사하고 섬기게 됩니다. 교회의 건덕을 위하여 자신의 은사를 절제할 줄도 압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를 주님이라 부르는 분들은, 지금 이 시간 천국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어도 천국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그렇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자들도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하지만, 지옥을 향하여서 그렇게 합니다. 똑같이 죄를 짓고, 넘어지는 것 같아도 그 방향이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가 지옥을 향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서 한 분도 계속해서 지옥을 향해서 걸어가시는 분들이 안계시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천국을 향하여 방향전환을 하시고, 줄곧 천국만을 바라보시면서 달려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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