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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큰믿음교회 변승우목사의 오류(회개) |

baromi 2009. 2. 12. 10:22

푸른 글씨는 변승우목사의 주장입니다. 큰믿음교회에서 양육교재로 사용하는 “다림줄”이라고 하는 셀 교제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변승우목사의 책은 그 책명과 페이지수를 인용하였습니다.


구원의 조건

구원은 단순히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조건 중의 하나가 회개라는 사실이 망각되고,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원의 다른 조건 중에 하나인 믿음에 대한 가르침 역시 충분하지 않습니다.


변승우목사는 (1) 신학적인 뿌리가 아주 얕은 사람으로 보이며 (2)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하고 (3) 정직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어느 기독교도 “단순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변승우목사는 자기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마치 기독교가 단순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처럼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어느 기독교도 회개하지 말라고 하거나, 회개를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구원파가 아니며, 구원파를 이단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기독교를 왜곡 시킴으로서 변목사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셋째, 기독교가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 모자라는 것처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에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믿음이 형식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믿음 자체에 대해서 잘못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변목사는 믿음이 구원을 받는 다른 조건 중에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즉 구원을 받는 조건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회개와 믿음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란 헬라어로 “메타노에오”라고 하는데, 메타(....후에)와 누스(마음)의 합성입니다. 즉 회개란 “후에 돌이킨 마음”을 말하며 알기 쉽게 말하자면 “방향수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시 말하여 회개란 두가지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믿음에서의 방향수정을 말할 때에는 믿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죄에서의 방향수정을 말할 때에는 성화의 개념을 뜻합니다.


변목사의 주장을 살펴보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여 보겠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1.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하면 믿음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한 미혹이며, 답답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단순히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들이 회개를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지 않고 선택과목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수가 만연케 된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변목사는 믿음과 회개를 다른 것으로 구별하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회개입니다. 또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던 사람이 올바른 믿음을 갖게 되는 것도 회개입니다.

그래서 존 머레이는 “회개하는 믿음” 혹은 “믿는 회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며, 웨인그루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따라서 최초의 믿음과 회개는 생애 중 단 한번 있는 일이고, 그 일이 일어날 때 참된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믿음과 회개의 마음의 자세는 회심때 단지 시작될 뿐이다. 그 때의 그 자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345쪽)


다시 말하여 회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방향수정을 말하며, 그 회개가 곧 믿음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막 1:15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변목사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회개와 믿음을 구별하고 있는데, 이 구절은 회개와 믿음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방향수정)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행 20: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이 구절 역시 회개와 믿음을 구별한 것이 아니라, 방향수정이 곧 믿음이라는 구절입니다. 즉 변목사는 성화의 과정에서 반복적인 죄의 회개와 믿음의 과정에서 방향수정의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목사는 회개를 오직 죄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변목사의 책을 보면 회개를 죄에서 떠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54쪽)

- 성경에서 요구하는 회개는 죄를 떠나고 모든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57쪽)


변목사는 회개라는 신학적인 용어의 개념조차 모르는 것이 그대로 밝혀집니다. 그래서 변목사는 믿음과 회개를 다른 것으로 구별하여 서로 다른 구원의 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변목사는 자신이 웨슬레안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웨슬레의 주장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웨슬레는 죄에 대한 회개, 즉 중생 이후 성화과정에서의 죄에 대한 회개는 칭의에 선행하는 회개와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이 회개(중생후의 반복적인 회개)는 칭의에 선행하는 회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책이라든가 정죄라든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하는 것들과 연관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깨달음이니 곧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곧 육에 속한 마음입니다. 중생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것이 남아있으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웨슬레 조직신학, 성광문화사 199-200쪽)


그렇다면 믿음의 시작을 뜻하는 방향수정의 회개와 믿음을 웨슬레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물론 웨슬레안과 캘비니즘은 차이가 있지만, 변목사가 자신이 웨슬레안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웨슬레안의 신학으로 살펴보아서 변목사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 구원의 조건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결합되었다. 둘 다 선행은총에서 나오지만 구원의 믿음이 구원의 조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도구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은총으로부터 흘러 나오고, 회개가 뒤따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믿음은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고, 회개는 믿음의 조건이라고 자주 말한다. 둘 다 구원의 상태로 적절하게 인도하는 것이지만, 오직 구원의 믿음만이 책망의 구원으로 전환하는 지점이 된다. (웨슬리안 조직신학, 도서출판 세복, 317쪽)


웨슬레는 하나님에게 향하는 방향수정적인 회개와 믿음은 구별하지 않았고 결합시켰습니다. 하나님에게로 방향수정을 하는 것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개념적으로 구별한다면 하나님께 향하여 회개를 하여야 믿음이 시작되므로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고, 회개는 믿음의 조건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 그러면 ‘오직 믿음’이 무엇에 대하여 오직 믿음인지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롬 3:27-28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오직 믿음’이 율법의 행위를 상대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롬 4:13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서도‘오직 믿음’은 율법의 행위(율법)을 상대로 사용되었습니다.

빌 3:9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역시 ‘오직 믿음’이 율법이나 율법의 행위와 관련되어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직 믿음’은 율법 혹은 율법의 행위에 반하는 단어로만 사용이 되었습니다. 결코 회개에 반하여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회개와 믿음을 결합시켜서 보기 때문에 회개와 믿음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변목사의 주장과 달리, “오직 믿음”이라는 단어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구절에서도 사용되어집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에도 분명히 “오직 믿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있으며 히브리서에도 오직 믿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이 없습니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변목사는 그의 책에서 로마서1:17의 오직 믿음이 하박국의 오역이라고 주장하며, 세계 어느 성경도 오직 믿음으로 번역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기 위함입니다.


- 여기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역입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에서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합2:4,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므로 ‘오직’이라는 단어는 로마서에서 덧붙혀진 것입니다....단지 번역과정에서 우리말 성경이 ‘오직’이라는 단어를 덧붙인 것입니다. 세계 어느 성경에도 ‘오직 믿음으로’ 라고 번역한 곳은 없습니다.(아무도 너희를 미혹하게 하지말라, 23쪽)


변승우목사가 헬라어 원문에는 “오직 믿음”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 본문, 롬1:17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에는 “데”라고 하는 우위접속사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번역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라고 번역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만”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킹제임스성경은 “The just shall live by faith”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ASV 영어성경도 우위접속사를 번역하여 “but” 이라는 전치사를 넣어 번역하였습니다.


이미 증거자료로 올려놓은 변승우목사의 녹취록을 보면, 그동안 변승우목사는 그의 책과 설교에서 믿음보다 행함을 강조하였으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율법의 의로 천국을 간다고 주장하였으며, 그 의가 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의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또 그는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천국에 가는 조건으로 주장한 적도 있으며,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주장도 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죄라고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였으며, 오직 믿음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이신칭의를 다른 복음, 사탄, 사악한 바리새인, 종교의 영이라고 갖은 욕설로 비난해 왔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짜 구원을 받는 사람도 진짜 버림을 받을 수 있다” 혹은 “기독교인의 20%만이 천국에 간다” 또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어야만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변목사는 언제부터 자기 주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은 믿음과 함께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자신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라는 비판이 나타나자, 다른 이단들이 그래왔듯이 대외적으로는 “그런 뜻이 아니다”라는 모면을 할 필요를 느낀 것 같습니다.

변목사가 교회 안에서 주장했던 대내적인 발언에서 보면, 성경을 공부하면 바리새인이라고 주장하며, 예언은 성경을 초월한다고 하는 주장도 변목사 자신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이제 이단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하여 자신이 웨슬레안이라는 변명을 하며 웨슬레의 등뒤에 숨어보려고 하였지만, 그의 주장은 웨슬레 주장과 전혀 다릅니다.

결국 변승우목사는 믿음과 함께 회개를 강조한 것이라고 자기 주장을 완화시켜 보았지만, 그러한 주장은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발언과 너무나 거리가 멀며, 그 주장마저도 역시 “회개”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무지한 주장임이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구원파라고 하는 이단은 성화과정에서 죄에 대한 회개를 부정하고 믿음과정의 회개만을 회개로 간주하여 단회적인 회개만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자의적인 구원을 취소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변승우목사는 정반대로 믿음과정에서의 회개를 부정하고 성화과정에서의 죄에 대한 회개만을 회개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개를 믿음과 구별되는 인간의 의지적인 행함으로 알고 있어서 진짜로 거듭난 구원도 취소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승우목사는  믿음과 회개를 다른 것으로 알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변목사는 회개를 행함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겸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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