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민신조.대소요리

[스크랩] 제44강 - 불완전한 인간 /토마스빈센트소요리문답

baromi 2008. 9. 23. 21:10

44 강. 불완전한 인간

제82문 :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가?
답 : 인간은 타락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 오히려 날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 계명들을 어긴다.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의향과 성향, 생각, 열정, 말, 대화에 있어서 이것들 중 어떤 것도 범하지 않고 언제나 지킨다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가 과거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킨 적이 있었는가?
최초의 인간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그에게는 최초 창조시 행위언약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어 있었으며, 그 행위 언약에는 온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이후 어떠한 인간도 이것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이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으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능히 지킬 수 있으셨고, 또 그렇게 행하셨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한 인격 속에 신 . 인 양성을 지니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롬 9:5).

앞으로 어떠한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성도들은 비록 이 땅위에서는 불가할지라도 이후 천국에서 온전함을 입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순종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그러나 KJV 역에는 "우리가"로 나와 있음)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히 12:22.23)

이 땅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가?
이 땅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성실하게 지키지만 온전하게 지키지는 못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어떠한 성도도 여기 이생에서는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⑴ 모든 성도들은 완전에 이르기 위해 힘쓰고 애쓰며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⑵ 그러나 어떠한 성도들도 여기 이 땅위에서는 언제나 범사에 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른바 절대 완전한 상태에 이른적이 없었다.

어떠한 성도들도 이생에서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증거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성도들도 이생에서 완전하나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로서 증명된다.
⑴ 가장 고상한 성도들이라도 이생에서 부분적으로 밖에 변화 받지 못하며, 육체와 부패의 남아 있는 것들로 인해 성령을 거스리고 대항하는 소욕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⑵ 성경은 우리에게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고 명백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 8:46),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2:8,10)
⑶ 성경은 역사상에 살았던 가장 거룩한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내에 대해 속임. "아브라함이......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창 20:2). 이와 마찬가지로 이삭이 속임. "그 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창 26:7) 야곱이 아버지를 속임.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창 27:24) 요셉이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함.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창 42:15) 모세가 망령된 말로 함부로 함.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 106:33). 성경에는 노아의 술취함. 롯의 근친상간, 다윗의 살인과 간음, 욥과 예레미야의 조급함과 생일을 저주한 것, 베드로가 맹세와 저주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하고 나중에 유대인들 앞에서 모른 체한 것, 바울과 바나바가 분쟁을 일으킨 것 등에 대해 기록되었다. 이같은 사람들이, 즉 성령으로 충만함받고 많은 은혜를 소유한 자들이 죄없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안심하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생에서 어떠한 성자라도 절대 완전의 상태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성도들이 이생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들은 완전한 자들이 아닌가?
⑴ 만일 이 구절의 의미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면 하나님께로서 난 모든 신자들에게는 죄 짓는 것이 발견되지 않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위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많은 중생한 신자들의 죄악을 열거해 주었고 또 인간 경험이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 전혀 죄를 짓는다는 것을 증거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일 수 없다.
⑵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도 죄를 짓는다. 즉,
① 그들은 그들의 의지가 완전히 동의하는 죄를 짓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부분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점차로 변화되어 갈 때 죄를 거스리고 대항하게 된다. 비록 그들이 이따금씩 시험의 완력과 세력에 의해 넘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을 점차로 이겨나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② 그들은 불신자의 경우와 같이 죄의 저주 아래 살고 있지 않다.
③ 그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는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즉,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5:17,18)

하나님은 욥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증거하지 않으셨던가?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a perfect man")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나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또 히스기야가 병들어 누웠을 때 여호와께서 간구하기를 그가 완전하게 행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 20:3) 그리고 바울은 자신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내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빌 3:15). 그런데 어째서 성도들이 이생에서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단 말인가?
⑴ 성경에서 성도의 완전성에 대해 논했던 것은 절대적인 완전이나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입은 그러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실성에 관계하는 이른바 복음적인 완전이며 절대적 완전이 아닌 상대적인 그러나 극도의 완전을 의미한다.
⑵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욥에 대해 증거하신 완전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a perfect man")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즉 그는 "완전하고 정직한 인간"이었다. 그의 완전성은 정직과 성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욥이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나중에 그의 난 날을 저주하였던 죄에서 나타난다.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욥 3:3) 나중에 그는 죄 지은 자로 정죄 받는다.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 34:37)
⑶ 이와 같이 히스기야가 간구했던 완전함도 그의 성실함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with a perfect heart) 주 앞에 행하며..........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왕하 20:3), 그리고 성경은 그가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나중에 조그마한 죄를 지었다고 하였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대하32:25)
⑷ 사도 바울이 자신과 다른 그리스도인이 완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동일한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완전치 못하였음을 시인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그러므로 그가 15절에서 말한 바 그가 이루었던 완전은 복음적인 완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이루지 못했던 완전은 절대적인 완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성도도 이생에서 절대적인 완전에 이를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것에 도달하였다고 위안 삼는 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의 범위에 대해 무지함에서 나온 결과이다.

모든 사람들과 성도들은 이생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가?
성도들과 성도 아닌 자들은 더욱 더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과 말과 행위로 범한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3:8) ,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모든 죄된 생각은 그것이 악한 말이나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 것인가?
모든 죄 된 생각은 악한 말이나 행위로 나타나지 않아도 그것이 악한 성향이나 소욕, 욕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9)

성도들은 이생에서 죄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로 끊을 수 없는가?
⑴ 성도들은 이생에서 모든 죄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를 전적으로 단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성화된 성도라도 남아 있는 부패성으로 인해 매일 연약과 약점에 굴복해 있기 때문이다.
⑵ 성도들은 이생에서 모든 큼직한 죄악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를 끊을 수 있다. 그들은 죄의 지배하는 세력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큼직한 죄와 지배하는 죄의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큼직한 죄와 지배하는 죄의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⑴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도록 해야 한다.
⑵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시초에서부터 끊어 버려야 한다.
⑶ 생각에 죄가 틈타지 않도록 경성해야 한다.
⑷ 죄에 기회를 주지 않고 그것에 이르는 시험은 근절시켜야 한다.

제83문 : 율법을 어기는 일은 모두 하나같이 가증스러운가?
답 : 어떤 죄는 본질적으로 악하고 또는 여러 가지 무서운 죄로 발전하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죄들 보다 더 가증스럽다.

죄가 가증스럽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죄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진노케 하기 때문에 가증스럽다.

모든 죄가 하나님에게 가증스러운 것이 아닌가?
모든 죄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우나 하나님께 똑같이 가증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떤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죄보다 더 가증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죄보다 더 가증스러운 죄는 어떠한 것들인가?
⑴ 어떤 죄가 그들 자체 안에서 더 가증스럽다.
⑵ 어떤 죄는 여러 가지 다른 죄를 유발시키기에 다른 죄보다 더 악하다.

죄 자체에 있어서 다른 죄보다 더 악한 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⑴ 율법의 첫 돌판에 기록된 것을 어기는 죄는 율법의 둘째 돌판에 기록된 것을 어기는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간음보다 더 가증스러우며, 불경죄는 도적질보다 더 가증스러우며, 신성모독 죄는 이웃에 대하여 악담하는 것보다 더 가증스럽다. 이에 따라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진 극악한 죄는 인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진 극악한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진 가장 보잘것 없는 죄는 인간에 대하여 가해진 가장 보잘 것 없는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삼상 2:25)
⑵ 둘째판에 기록된 계명을 어기는 어떤 죄는 같은 돌판에 기록된 계명을 어기는 다른 죄보다 그 자체에 있어서 더 가증스럽다. 이를테면, 살인은 간음보다 더 악하며 간음은 도적질보다 더 악하며 도적질은 이웃의 집을 넘보는 것보다 더 악하다. 그리고 지금 이 부분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죄가 행동으로 결과되었다면 그것은 생각이나 의향 속에만 맴돌던 죄보다 그 자체에 있어서 더 악하다. 하나님이 둘째 부분의 계명을 어기는 어떤 죄보다 첫째 부분의 죄들을 미워하며 죄된 생각보다 죄된 행위를 더 미워하신다는 것은 성경에서 볼 때 명백하게 드러난다.
⑶ 복음에 역행하는 죄는 율법에 역행하는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복음에 역행하는 죄는 지금까지 인간에게 나타났던 가장 위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리는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은 가장 악명 높고 사악한 이교도들이 받아야 할 형벌보다 더 클 것이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0-24)

보다 가증스러운 죄로서 다른 어떤 죄를 유발시키는 죄는 무엇인가?
보다 가증스러운 죄로서 다른 어떤 죄를 유발시키는 죄는 죄를 짓도록 자극을 주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죄의 최초의 요소는 무엇인가?
이러한 죄의 최초의 요소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는 것이다. 관리, 사역자, 부모, 연장자 그리고 모든 통치자의 죄는 똑같은 죄를 지어도 백성, 하급자, 어린이, 연소자 그리고 통치를 받는 모든 사람들의 죄보다 훨씬 더 가증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의 나쁜 본이나 악영향은 아랫 사람의 그것들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 14:16), "내 백성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14:16),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미 3:5). 또한 고백자들과 하나님 백성들의 죄는 똑같은 종류의 죄를 지어도 행악자와 불경건한 자들의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것으로 인해서 더 모독을 당하며 행악자들은 그들의 죄에 더 완악해졌기 때문이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3,24)

이 죄의 두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죄의 두 번째 요소는 장소에 관계되는 죄이다. 즉 빛을 받은 곳에서 범해진 죄는 어두움의 땅에서 범해진 동일한 죄보다 더 무겁다.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사 26:10) 이와 같이 큰 구원과 자비가 있은 땅에서 범해진 죄는 다른 곳에서 범해진 동일한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며 주의 많은 인자를 기억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시106:7). 또한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유혹받고 오염될 수 있는 공공 장소에서 범해진 죄가 은밀한 곳에서 범해진 동일한 죄보다 더 악하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삼하 16:22)

이 죄의 세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죄의 세 번째 요소는 시기에 관계한다. 안식일날 범하는 죄는 평일날 범하는 동일한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술취함과 간음은 어떤 날에도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다. 그러나 술취함이나 간음 혹은 이와 같은 죄들은 안식일 날 하나님 앞에서 더욱 가증스럽다. 고통이나 고난의 때 혹은 그 바로 직후에 범하는 죄는 다른 때에 저질러진 죄보다 더 악하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대하 28:22),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사 1:5) . 이와 같이 여호와께 회개한 후나 언약을 세운 후 범한 죄는 회개와 그러한 언약 전에 범한 동일한 죄보다 더 악하다. 또한 충고와 책망을 들은 후 범한 죄는 충고와 책망을 받기 전에 범한 죄보다 더 악하다.

이 죄의 네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죄의 네 번째 요소는 태도의 문제이다. 알면서 짓는 죄는 모르면서 짓는 죄보다 더 악하다. 고의적으로 짓는 죄는 어쩔 수 없어 짓는 죄보다 더 악하며, 순간적으로 심사숙고하여 짓는 죄는 돌발적인 감정이나 시험에 급작스런 이끌림을 받아 짓는 죄보다 더 악하다. 즐거움과 욕심에 이끌려 짓는 죄는 유감과 소심함으로 짓는 죄보다 더 악하며, 반복적으로 장기간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은 단 한번 혹은 드물게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악하다.

제84문 : 모든 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은 무엇인가?
답 : 모든 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은 이생에서와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 일이다.

모든 죄가 보응을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죄가 보응을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하나님께서 죄지은 자에게 그의 죄 값으로 지불하는 모든 형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그의 죄값으로 지불하시는 형벌들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죄지은 자에게 그의 죄값으로 지불하시는 형벌들은 금생에서 현세적인 심판과 영적인 심판을, 내세에서 지옥의 형벌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19문에서 보아왔던 바이다.

모든 죄가 금생에서와 내세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는가?
모든 죄가 금생에서와 내세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무한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며 그의 공의는 무한한 만족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죄인이 어떤 현세적인 형벌에서는 회피하게 될지언정, 영원한 지옥의 형벌은 피할 수 없다.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로이드존스연구사이트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