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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 카토릭교회의 정체

baromi 2008. 8. 1. 15:26
 

카톨릭  (출처: 빛과 흑암의 역사)

 

저도 어릴 적에 성당에 다녔고, 천주교에 순수한 믿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저는 무조건 기독교가 옳고, 천주교는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천주 교회 보다 깨끗하지 못한 기독 교회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천주교의 시스템이 잘못되었고, 역사적으로 많은 과오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종교에서 시스템을 이루는 것은 교리와 관습과 의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초대 교회의 순수한 믿음을 잃어 버리고, 이방 종교의 풍습과 성경에 근거 없는 인간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첨가했습니다.

또한 한 때 성경을 금서 목록에 포함시키고, 수 많은 기독교인들을 교황에게 복종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고문하고, 살해했습니다.
이는 마귀들이 교회 내에 더더욱 역사하기 때문이고, 진리 위에 서 있지 못하면 이런 종교적 변질은 피할 수 없으며, 현재 기독교도 자유주의, 은사주의, 교권주의, 기복주의로 오염돼 조만 간에 천주교 못지 않게 변질되리라 예측됩니다.

카톡릭은 역사적으로 순 기능도 가지고 있는데 삼위 일체론을 확립했고, 신본주의적 사상을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교황의 교시나 교리를 성경보다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전통과 권위도 성경에 적혀 있는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적혀 있는 진리대로 믿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요,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 목차


1. 로마 카톨릭의 기원


2. 카톨릭의 비 성경적 교리 역사


3. 교황 제도


4. 마리아 숭배


5. 카톡릭 성직제도와 고해 성사


6. 우상 숭배


7. 종교개혁과 기독교 박해




1. 로마 카톨릭의 기원 3세기까지도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 많은 교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로마교회가, 중세기를 장악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되고, 지방 교회의 일개 장로에 불과했던 로마교회의 감독이, 세계 교회의 머리가 되어 중세기를 호령한 것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그 후의 신성 로마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콘스탄틴 황제(AD 306-337)와 유스티니안 황제(AD 527-565)는 교황권을 양육하여 중세기의 주인으로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312년 10월 27일 콘스탄틴황제가 꿈과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났다는 "불붙는 광채의 십자가"를 힘입어, 적수였던 막센티우스황제를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이긴 뒤, 그리스도인에 대한 로마의 태도는 일대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313년 3월에는 「밀란의 칙령」이 반포되어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고, 성직자들에게는 병역, 세금 및 각종 시민의 의무가 면제되고(AD 313), 사법상의 특전도 베풀어져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성직제도는 졸지에 타락하여 성직매매가 성행했고, 민중의 호응과 인기를 얻기 위해 교회의 문지방은 낮아질대로 낮아져 세속과 이교(異敎)의 물결이 넘쳐 들어왔습니다.
예배는 극도로 이교화하였고, 321년 3월 7일에는 아직도 콘스탄틴황제가 현직 대제사장이었던 페르샤의 태양신 미드라(Mithras)의 예배일인 일요일에 휴업하라는 포고가 내려졌습니다.
이러한 틈 새에서 국가의 비위를 맞추며 꾸준히 정치적 기반을 굳혀 온 로마교회의 감독은 황제의 이러한 종교정책을 열렬히 환영하며, 세계교회의 머리가 되기에 안간 힘을 썼습니다.


326년 콘스탄틴황제는 선동죄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는 황후 파우스타 (Fausta)의 라 테란 궁전을 로마교회 감독 실베스터(Sylvester)에게 주어 공관을 삼게 했습니다.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틴노플로 옮기게 되자, 로마교회의 감독은 황제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교권을 확장하게 됐습니다.

375년 이제까지 로마황제들이 공식명칭으로 쓰고 있던 이교 대제사장의 칭호인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를, 그리스도인인 그라시안(Gracian) 황제가 비로소 포기하자,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했던 로마교회 감독은 즉시 이를 채택하여, 자신의 칭호로 삼아 오늘날까지도 교황의 공식 칭호가 되고 있습니다. 476년 서로마가 망한 뒤, 로마교회 감독은 황제의 이미지로 군림하여 정치와 종교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496년 게르만 민족의 강자인 프랑크의 국왕 클로비스(Clovis)를 개종시켜, 로마교회의 양자로 삼음으로써 중세기 동안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했습니다.
특별히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안은 로마교회 감독으로 하여금 세계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서로마의 잃어 버린 통치권을 되찾고, 이전의 통일된 대제국을 이룩해 보려는 목적으로 황제는 로마교회의 영항력을 십분 이용하려 했습니다.
유스티니안은 493년 아리안주의(Arianism) 게르만 민족으로 하여금 이탤리 반도와 로마교회를 위협해 온 헤루리를 정복하고, 534년에는 같은 이유로 반달족을 정복했습니다.


533년에는 로마교회 감독을 "세계교회 머리"로 공식 인정하고 이 사실을 534년에 그의 법전에 편찬했습니다. 538년에는 아직도 이탤리 반도와 로마교회 감독의 지상권에 도전하는 마지막 아리 안주의 게르만족인  동고드를 군사력으로 정복하여, 마침내 교황권을 중세기의 권좌 (權座)에 앉혀 놓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서유럽의 실력자가 된 프랑크왕 피핀(Pepin 741-768)은 왕위를 찬탈한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준 데 대한 감사로, 로마교황을 적극 후원하여, 754년에는 롬바드에게서 빼앗은 동로마제국의 영지를 교황에게 주어 교황령이 되게 함으로써, 로마교회는 이제 영토를 가진 국가가 되었습니다.

피핀 왕의 아들 촬스 대제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곤경에 빠진 로마교황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원한 뒤, 서기 800년 크리스마스에 성 베드로 사원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음으로써, 역사적인 신성 로마제국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막을 내리기까지 1,000여년 간 교황권의  성실한 보호자 구실을 했습니다.
십자군을 일으켜 알비젠스, 왈덴스등 개혁파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허스와 제롬을 불사르고, 루터의 종교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편의와 힘을 제공한 것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따라서 카톨릭은 초대교회를 계승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이방종교를 흡수한 혼합종교이고, 정치적 후원으로 성장하였으며, 권력과 금력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세상적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카톨릭의 비 성경적 교리 역사

1.
루시안이 장로를 사제라고 처음으로 부름 --- 2세기
2.
시프리안이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만들어 냄 --- 3세기
3. 죽은 자를 위한 기도(바빌론 종교의 풍습) --- A.D. 300
4.
십자가 형상을 만듦 --- A.D. 300
5.
촛 불 --- A.D. 320
6. 천사, 죽은 성인들, 형상 숭배 --- A.D. 375
7.
미사가 매일 드리는 예식이 됨 --- A.D. 394
8. 에베소 공회를 통해 마리아를 높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 --- A.D. 431
9.
사제들이 특별한 옷을 입기 시작 --- A.D. 500
10.
최후의 도유(치유를 위한 의식) --- A.D. 526
11. 그레고리 1세가 연옥의 교리 확립 --- A.D. 593
12.
예배 때 라틴어 사용 --- A.D. 600
13.
마리아, 죽은 성인들, 천사들에게 기도 --- A.D. 600
14. 최초의 교황 (보니파 3세) --- A.D. 610
15.
교황의 발에 입 맞춤 --- A.D. 709
16.
프랑크 왕 페핀이 교황에게 세속 권력을 넘겨줌 --- A.D. 750
17. 십자가, 형상, 유물 숭배 인정 --- A.D. 786
18.
소금, 기름을 섞은 물에 사제가 축성해서 성수로 만듦 --- A.D. 850
19.
성 요셉 숭배 --- A.D. 890
20.
추기경 대학 숭배 --- A.D. 927
21.
교황 요한 13세가 종(鐘)에 세례를 베품 --- A.D. 965
22. 교황 요한 15세가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선언함 --- A.D. 995
23.
금요일과 시순절 금식 --- A.D.  998
24.
미사가 점차 희생제사로 발전하고, 참석이 강요됨 --- A.D. 11세기
25.
사제들의 독신생활 --- A.D. 1079
26. 은둔자 베드로가 묵주 사용(이교도 관행)도입 --- A.D. 1090
27.
베로나 공회 떼 종교재판소 제정 --- A.D. 1184
28. 면죄부 판매 --- A.D. 1190
29.
피터 롬바르트가 일곱가지 성사 확정 --- A.D. 12세기
30. 이노센트 3세가 화체설 확립 --- A.D. 1215
31.
이노센트 3세가 죄를 하나님이 아닌 사제의 귀에 들리게 고백하는 의식(화해의 의식)제정 --- A.D. 1215
32.
교황 호노리우스 3세가 성병 숭배 제정 --- A.D. 1220
33. 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됨 --- A.D. 1229
34.
영국의 사이몬 스톡이 성의를 만들어 냄 --- A.D. 1251
35.
콘스탄스 공회 때 평신도들은 영성체 때 잔은 받을 수 없게 됨 --- A.D. 1414
36. 플로렌스공회 때 연옥이 교리로 확정됨 --- A.D. 1439
37.
트렌트 공회 때 교회의 전통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 됨 --- A.D. 1545
38.
트렌트 공회 때 외경도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결정됨 --- A.D. 1546
39.
교황 피오 4세가 만든 신조가 원래의 사도들의 신조 대신 공식 신조로 채택됨 --- A.D. 1560
40. 교황 피오 9세가 마리아의 무염시태 (죄없이 잉태됨)을 선언함 --- A.D. 1854
41.
교황 피오 9세가 "유설표"를 공표하고 바티칸 공회가 인준함, 로마 카톨릭교회가 승인하지 않는 종교, 양심,
언론, 과학적 발견의 자유를 정죄함, 교황이 세상 통치자들의 세속 권세 위에 권위를 가졌다고 인정함 - A.D. 1864

42. 바타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 선언 --- A.D. 1870
43. 피오 12세가 마리아의 몽소승천 선언 --- A.D. 1950
44. 교황 바오로 6세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부름 --- A.D. 1965


3. 교황제도
카톨릭은 교황을 가르켜 베드로의 사도직분을 계승하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며, 전체교회의 머리이고, 거룩한  아버지며, 무오한(오류가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황의 교시를 성경보다 높게 생각합니다.그러나 교황에 대한 이러한 교리는 성경에 근거가 없으며 하나님, 예수님,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교황은 인간에 불과하며 역사상 많은 부도덕한 일(살인, 신성모독, 치부, 성직매매, 술취함, 간음, 동성연예, 근친상간)을 자행해 왔습니다. 중세시대 때에는 왕을 능가하는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예수님이 제시한 섬기는 지도자 상과는거리가 먼 일입니다.


교황 세르기우스 3세(A.D. 904~911)는 살인을 통해 교황직을 얻었고, 여자과 관계해 불법으로 사생아를 낳았습니다.교황 요한 12세(A.D. 955~964)는 성적으로 문란해 교황청에 창녀들을 불러들였고 도덕적 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
주교 50명이 성베드로 성당에 모여 교황을 절도, 성직매매, 위증, 살인, 간음, 근친상간으로 고소했으나, 교황 요한12세는 오히려 추기경과 주교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팔과 코와 귀를 자르는 보복을 하였습니다.

교황 요한 15세(A.D. 985~996)는 교회 재정을 자기 친척들에게 나누어 줘 부패한 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교황 베네딕트 8세(A.D. 1012~1024)는 공개적으로 뇌물을 주고 교황직을 산 부도덕한 인물입니다 교황 베네딕트 9세(A.D. 1033~1045)는 대낮에 살인과 간통을 자행했고, 순례자들을 강탈하다가 추방당했습니다. 교황 이노센트 3세(A.D. 1160~1216)는 종교재판소를 창설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백만명 이상 살해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A.D. 1410~1415)는 주교와 사제로 구성된 37명의 증인에 의해 음행, 간통, 근친상간, 남색, 성직매매,도둑질, 살인죄로 고소당했고, 300명의 수녀들을 겁탈하였습니다.
바티칸 기록에 의하면 그는 자기 형제의 아내와 변태 성행위를 자행하였고, 수백명의 처녀들과 성관계를 가졌고, 결혼한 여자들과 간음을 행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악마의 화신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교황 비오 2세(A.D. 1458~1464)는 육욕에 빠지는 방법을 가르쳤고, 많은 사생아의 아버지였습니다.
교황 바오로 2세(A.D. 1464~1484)는 비싸고 호화로운 왕관을 쓰고, 궁전에 많은 첩을 두었습니다.
교황 식스투스 4세(A.D. 1471~1484)는 교회 직분을 경매로 팔아 전쟁자금을 충당했고, 친척들에게 치부한 돈을 나누어 주었으며, 어린 조카 8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사치스럽고 화려한 잔치를 종종 열었습니다.

교황 이노센트 8세(A.D. 1484~1492)는 여러 여인과 성관계를 통해 16명의 자녀를 두었고, 자녀 중 몇 명은 바티칸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고, 교회 직분을 늘려 돈을 받고 팔았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투우 경기를 벌였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A.D. 1492~1503)는 추기경을 뇌물로 매수해 교황직에 선출되었고, 품행이 나쁜 자기 젊은 아들을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앉혔으며, 자기의 두 누이와 근친상간하고, 자기의 딸 루크레티아에게서 자녀를 두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A.D. 1513~1521)는 8세에 수도원장이 되었고, 13세에 추기경이 되었으며, 값비싼 유흥과 연회를
통해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았으며, 교황의 궁전에서 12명의 벌거벗은 소녀에게 저녁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3세(A.D. 1534~1549)는 전에 추기경으로 있을 때 자녀를 두었었고, 십대의 어린 조카 두 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가수와 무희와 어릿광대를 동원해 축제를 후원했고, 점성가를 불러 조언을 구했습니다.

교황이 머리에 쓰는 관은 바빌론의 인어 모양의 신인 다곤 신이 썼던 것과 비슷합니다.







바빌론 다곤 신


물고기 입 모양의 관을 쓴 바빌론의 다곤 신







삼중관을 쓴 교황


다곤신과 같은 관을 교황



다음은 교황에 대한 카톨릭 내의 평가입니다.

[교황만이 가장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으며…… 거룩한 군주, 지고한 황제, 그리고 왕중왕(King of Kings)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능력에 속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동일한 심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한 바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발해진 것처럼 여김을 받는다.] "Pope", Ferraris, Ecclesiastical Dietionary.


[우리(주: 교황들)는 이 땅 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June 20, 1894, The Great Encyclical Letters of Leo XIII, 304.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상권을 뜻한 것으로 성경에서 그에게 돌려진 모든 명칭들은, 교황에게도 마찬가지로
돌려진다.]
Bellarmine, On the Authority of Councils, bk. 2, ch. 17.


[세 관으로 꾸며진 이 삼층관을 받으소서. 당신은 군주들과 제왕들의 아버지이며, 세계의 주교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임을 생각하소서. 주의 명예와 영광이 영원하실 지어다]
경향잡지, 14.


4. 마리아 숭배
천주교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했고, 죽을 때 몸과 영혼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자 여왕이고, 하늘의 문이며 그녀를 통해서 용서받는다고 합니다.자녀를 7명 이상 가진 마리아가 평생 처녀인 동정녀로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에 불과한 마리아를 예수님의 자리에 앉힌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교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으며,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이방종교의 여신숭배사상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카톨릭은 사탄 숭배국가였던 바빌론 종교의 우상과 풍습을 그대로 수입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바빌론은 성경(창 10/~9)에 나오는 니므롯이라는 강력한 사냥꾼에 의해서 건설되었습니다. 니므롯이란 이름은 '그가 반역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대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물이 됩니다 니므롯은 아내 세미라미스와 아들 담무스를 두고 있었고, 온갖 악행과 사탄숭배를 자행하였습니다. 니므롯이 죽었을 때 그의 몸은 여러 조각으로 잘려져 여러 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고, 아들 담무스로 환생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니므롯이 태양신이 되었기 때문에 불과 촛불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니므롯을 나타내는 다른 상징물로는 태양, 물고기, 나무, 기둥 등이 있습니다.
또한 세미라미스는 담무스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잉태된 구원자라고 했고, 자신도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바빌론 지역에 흔히 있는 모자상(母子狀)은 여신 세미라미스가 자기 아들 담무스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빌론 풍습은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 여러 곳에서 모자상이 발견됩니다. 중국 사람들은 아기를 팔에 안은 여신을 '싱무' 즉 '거룩한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독일 사람들은 팔로 아기를 안은 처녀 '헤르타'를 숭배했습니다.
인도에서도 크리쉬나 아기를 안은 어미 데바키를 숭배했습니다.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는 이집트 최고의 신 호루스를 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방의 여신을 숭배해 예레미아서에 보면 하늘 여왕에게 분향했다고 나옵니다.(예레미아 44/17~19)







바빌론과 이집트 등 세계의 고대 종교에 나타나는 아기를 안은 여신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






부활해 승천하는 마리아

마리아에게 경배하는 교황

십자가에 못 박힌 마리아
(유럽)


십자가와 함께 있는 마리아 (로마)

A.D. 313년 로마 교회가 국교화 되면서 이방종교가 금지되었으므로 이교도들은 그들의 여신숭배 사상을 교회 내에 가져왔고, 로마 교회는 교세확장을 위해 이를 용인하였습니다.점차 이교도들의 여신 숭배는 마리아 숭배로 옮아가게 되었습니다.

A.D. 431년 에베소 공회에서는 마리아 숭배를 카톨릭의 공식 교리로 채택하였습니다. 에베소는 고대로부터 처녀와 어미의 여신 다이아나를 숭배하던 도시였습니다.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에베소 거민들은 스스로 여신 우상을 파괴하기도 하였습니다.
(행 19/24~27)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는 중보자라고 하나, 그 역할은 예수님의 역할입니다.

요일 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누가 1/46~47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드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느니

우리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 우리를 변호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하나님과 나를 이어주는 중보자(Mediator)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 잠시 몸을 빌린 사람일 뿐입니다.
단순한 사람이 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마리아 자신도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라고 했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라고 해서 평생 처녀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4형제 아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13/55) 또한 예수님은 누이들도 있습니다. (마태 13/56) 권세가 하늘에 닿는 카톨릭은 이와 같이 성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교리도 거리낌 없이 추가합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예수님을 잉태했다고 했고, 평생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1854년 교황 피오 9세가 선언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입니다.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명시합니다.(로마서 3/10~11)
천주교는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교리를 필요에 따라 잘도 만들어 냅니다.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해 하늘 여왕이 됐다고 가르칩니다.몽소승천 교리는 A.D. 1951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명시합니다. (요한 3/13)천주교의 마리아 숭배는 고대 이교도들의 여신 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천주교는 로사리오라고 불리는 묵주를 기도할 때 사용합니다.그런데 이 묵주는 불교에서 쓰는 염주와 다를 바 없고, 고대로부터 이교도들이 사용하던 기구입니다.수세기 동안 이슬람교도들은 염주를 사용해 알라신에게 기도했습니다.
B.C. 800년 경 페니키아 사람들은 원형의 염주를 이용해 여신 아프로디테를 숭배했습니다.




* 묵주 기도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십자가를 잡고 성호경을 한 다음 십자가에 친구하고
2.
사도신경을 외운다.
3. 다음 묵주알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4. 다음 세개의 알을 차례로 넘기며 각각 성모송을 한다. 각각에서 다음을 묵상한다.

1) 천주 성부의 지극히 거룩한 딸이신 마리아 2) 천주 성자의 평생 동정 어머니이신 마리아
3) 천주 성령의 지극히 정결한 짝이신 마리아


5. 다음의 묵주알을 잡고 (머리를 숙이며) 영광송을 한 후, 묵상 주제인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신비 1단을 외운고,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6. 묵주알 10개를 넘기면서 성모송 10번을 하는 동안 신비 1단의 내용을 묵상한다.
7. 다음 알을 잡고 영광송구원경을 바치면서 1단을 마친다.
8. 이어서 신비 2단을 외운 뒤, 마찬가지로 주님의 기도 1번성모송을 10번을 하면서 2단의 내용을 묵상하고,
영광송, 구원경을 바친다.
9. 같은 방법으로 3단, 4단, 5단을 바친다.
10.마지막 5단의 영광송, 구원경을 바친 뒤 성모찬송을 바치고 십자가에 친구하면서 끝낸다.

완전한 로사리오에는 성모송 53번, 주기도문 6번. 성체송 5번, 성체 묵도송 5번, 영광송 5번, 사도신경 5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는 성모송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보다 9배나 더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문 외듯이 같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은 이교도적인데,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교도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 6/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로 생각함이라.

5. 카톨릭 성직계급과 고해성사신부님에 대한 호칭이 서양에서는 Father로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쓸 수 있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술 더 떠서 신부(神父)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외에는 종교적으로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 23/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로마 교황을 나타내는 Pope란 단어도 아버지라는 의미의 단어를 조금 바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로마시대에 유행했던 이방종교인 미트라교에서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들을 아버지(Father)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미트라교 사제의 우두머리는 로마에 살았는데, 그는 '아버지들의 아버지'(Pater patrum)라고 불리었습니다. 성경의 사사기에도 이교도의 사제를 아버지라고 부름이 나타나 있습니다.(사사기 17/10)

천주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부정합니다. 속죄는 선행과 기도와 고해성사로 이루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의 권리는 예수님께만 있고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을 수 있는데도, 카톨릭은 죄 많은 인간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해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죄를 용서받습니다.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오직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사함을 얻습니다. 구약시대에 내 죄를 어린양에게 안수해 전해준 후 양의 피를 흘림으로써 죄사함을 받았듯이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오셔서 내 모든 죄를 가져가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내 모든 죄가 눈 보다 더 희게 씻어진다는 것을 믿을 때 죄사함을 받습니다.

카톨릭에서 교황 다음 가는 직분으로 추기경이 있는데, 성경에는 추기경이라는 직분이 없습니다. 추기경은 원래 로마 이교도들의 성직으로 추기경을 의미하는 Cardinal은 돌쩌귀(문을 여닫기 위해 경첩과 같이 쇠붙이로 된 물건)를 의미하는 라틴어 Cardo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추기경은 원래 문과 돌쩌귀의 신이던 야누스(Janus)를 모시던 사제였습니다.


1월을 의미하는 January도 시작의 신이란 의미를 가진 야누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닫는 자'로 알려진 야누스는 사탄이 하늘 시스템을 흉내낸 것이고, 천국과 지옥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계 3/7~8)
추기경은 붉은색 옷을 입는데 이는 이교도 카디날 사제들의 붉은 옷과 같으며, 바빌론 왕들도 붉은 옷을 입었습니다.


카톨릭의 교권체제는 이교도들의 대승원장(Pontifex Maximus)을 수장으로 하고 승원장(Pontiffs)들이 그를
보좌하는 제도와 비슷하며, 이같은 제도는 바빌론에 있었던 승원장 공회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은 제사를 드리기 전 사제를 세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추기경(Cardinal)과 주교(Bishops)와 사제(Priests)이고, 이를 로마 카톨릭에서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성경에 명시된 교회 직분은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감독과 목자(목사)와 장로는 같은 직분입니다.)와 교회 실무를 담당하는 '집사'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라고 했고, 장로는 양떼를 먹이는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모범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벧전 5/1~3)
예수님도 니골라당을 경계하라고 했는데, 니골라는 정복한다는 의미인 나카오(Nikap)에 어원을 둡니다.(계시록 2/6)

카톨릭의 대주교(archbishop), 대사제(archpriest) 등에서 'arch'는 지도자 또는 선생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선생(master)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셨고, 선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 하셨습니다.또한 교회에서 큰 자는 오히려 형제를 섬겨주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 상하관계는 있을 수 없으며, 개신교에서도 목사와 성도는 주님을 모시는 한 형제입니다.

마태 23/10~11 또 너희는 선생이라고도 불리지 말라. 이는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라.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6. 우상 숭배

그리스도인 감독(司敎)들은 이전에 희랍과 로마의 다른 종교의 숭배자들이 그들의 상상적인 신들에게 존경과 신앙심을 표현하였던 종교의식들과 제도들을 조금씩만 고쳐서, 그리스도교 예배에 끼어 넣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교도(異敎徒) 대중들로 하여금 이런 의식들은 자기들의 조상들로부터 전래(傳來)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바뀐 것이 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순교자들도 이전에 자기들의 신들이 경배받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예배되고 있는 줄로 안다면, 그들이 더욱 쉽사리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콘스탄틴 황제가 자기 조상의 종교를 포기하자마자, 곳곳에 으리으리한 성전들이 서게 되어, 여러가지 그림들과 우상들로 단장되었는데, 이것들은 외관으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이교 신들의 신전과 흡사한 것이었다.
J. L. Von Mosheim, Ecclesiastical History, I, 369.

실제로 8세기에 이르러서 카톨릭교회들은 각종 성상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것들에 입맞추고, 기도하고, 분향하고,절하는 일이 지나쳐, 오히려 우상을 섬기지 않는 회교도들로부터 우상숭배자라는 조롱을 받는 등 그 퇴폐함이 극에달했다.
보다 못한 동로마 황제 레오 3세(Leo III)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등은 종교회의를 열어 우상 숭배를 금하고  교회당에서 이를 제거할 것을 명하고 강제로 부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 3세(Gregory III)는 우상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섬으로써 동서(東西)교회 간에 장기간에 걸친 논쟁과 분쟁으로 들어섰다.  심지어 로마교회의 일각에서는 "하나님은 성만찬에서와 마찬가지로 만들어 놓은 우상(偶像)에도 임재하신다. 그려지거나 묘사되지 아니한 그리스도는, 실제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 라고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Qualben, 153, 153.

이것이 그 유명한 성상 파괴 논쟁(Iconoclastic Controversy)인데 우상에 대한 로마교회의 견해는 지금도 그 때와
변함이 없으며, 지금의 바디칸 성 베드로 성당에도 395개의 성상과, 44개의 제대(祭臺)가 차려져 있다.
경향잡지, 22


a) 오벨리스크 숭배






이집트 오벨리스크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고대 종교의 상징물로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됐는데 여신 이시스의 남편 오시리스의 성기를 의미합니다.
오벨리스크는 또한 태양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명백한 이교도들의 상징물이 로마 바티칸 성당 앞마당 한 복판에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구나 이 오벨리스크는 모조품이 아니라 이집트에 있던 고대 유물을 직접 가져온 것입니다.
A.D. 37~41년에 로마 칼리굴라 황제는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바티칸 언덕의 원형경기장으로 가져왔습니다. 헬리오폴리스는 고대 이집트 태양 숭배의 근거지였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24m이며, 기초까지 합치면 40m이고, 무게는 무려 320톤이나 나갑니다. A.D. 1586년에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령으로 오벨리스크를 성 베드로 성당의 앞마당으로 옮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옮기는 일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교황이 오벨리스크를 옮기다가 떨어뜨려 깨뜨리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폰타나라는 사람이 책임을 맡고 45개의 감아 올리는 기계와 180마리의 말과 800명의 작업대원을 이끌고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1586년 9월 10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벨리스크는 운반되었고, 성공적으로 세워지자 수백개의
종소리와 대포 함성이 울려 퍼졌고, 군중은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교황청은 이집트 우상 꼭대기에 십자가를 안치함으로써 신성 모독적인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후 교황은 미사를 거행하였고, 작업대원과 말들에게 복을 선포하였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 광장 주위에는 248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런 건축양식은 이교도들의 신전설계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b) 태양 숭배






성병(聖餠, host, 미사에 쓰이는 빵)


성체 현시대


성 베드로 성당의 제단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이방종교인 미트라교에서는 태양을 숭배했습니다.이러한 태양 숭배의 영향을 받아 성찬에서 쓰이는 성병(聖餠)도 동그랗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빵을 부수어 조작을 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지 동그란 형태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빵이 부서진다는 것의 의미는 예수님이 심한 채찍질과 십자가형으로 몸이 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비종교에서도 사제들이 태양신에게 둥근 빵을 재물로 드렸습니다.성체를 모시는 성체 헌사대는 좀 더 적나라하게 태양 햇살까지 표시되는 문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 중앙 제단에는 뱀처럼 꼬인 기둥 사이에 빛이 들어 오는 태양 형상이 있습니다. 바빌론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제단에도 이러한 형태의 금으로 만든 태양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의 태양 숭배 문양


바빌론의 태양 수레바퀴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수레바퀴


이집트에서는 건축가들이 신전에 태양 문양을 새기는 관습이 있었는데, 태양신이 악령을 쫓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커다란 수레바퀴가 태양을 상징한다고 믿었고, 태양신이 수레를 몰고 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바알과 태양신과 달과 행성에게 분향하던 제사장이 있어 요시아 왕이 이를 개혁한 적이 있습니다.(왕하 23/5)


바빌론의 벨 신전에서는 8개의 살을 가진 태양신을 상징하는 수레바퀴가 발견되어 현재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수레바퀴 문양이 성 베드로 성당의 앞마당에도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버젓이 새겨져 있습니다. 카톨릭의 성화 속 인물의 머리 주위의 밝은 원과 수도승의 로마식 둥근 삭발도 태양신 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찬란한 제복, 촛불, 종, 향, 음악 등이 모두 이교도의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c) 우상숭배 금지를 제거한 카톨릭 십계명

바티칸 성당은 온갖 우상으로 불교의 사찰(寺刹)을 방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로마교회가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5)는 둘째 계명을 달가와할 리가 없고, 첫째 계명에 포함되었다는 애매(曖昧)한 이유를 붙여 삭제(削除)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우상 숭배에 관한 둘째 계명이 삭제됨으로써, 한 조항이 모자라게 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아내나, 종이거나, 혹은 소유를 막론하고 탐심을 갖지 말도록 명한 열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결국 아래와 같은
천주(天主) 십계(十誡)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1.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2.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헛 맹세를 발하지 말고,

3. 주일을 지키고,
4.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5. 사람을 죽이지 말고,
6. 사음을 행하지 말고,
7. 도적질을 말고,
8. 망령된 증참을 말고,
9.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10.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천주교 교리, 제1권, 제28절.]

기독교 십계명







천주교의 중요 성당과 수도원을 채우고 있는 인간 해골 - 체코의 천주교 성당.
사교의 옛 터전 위에 세워진 파리의 '노틀담 사원' 옥상을 점령하고 있는 '바벨론' 종교의 '카발라' <미신의 괴물 - 왼쪽 박스 안의 사진


보석 등으로 치장하여 보관된 성자의 유골 (스위스의 천주교 수도원에서)


7. 종교 개혁과 기독교 박해

a) 종교 개혁


유물과 교회 직책, 면죄부를 파는 일은 중세의 로마 카톨릭의 큰 사업이었습니다. 교황 보니파스 8세는 A.D. 1300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였고, 성 베드로 성당까지 순례를 하는 사람에게 면죄를 허가했습니다.
그 해에 이백만명이 로마로 몰려 들었고, 성 베드로의 무덤이라는 곳에서 두 사제는 돈을 갈퀴로 긁어 모았습니다.

교황은 이렇게 모은 돈을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성과 저택을 구입함으로써 로마 사람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중세에 로마 카톨릭은 많은 도시와 땅을 소유했고, 교회에 강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게 함으로써 엄청난 부를축적했습니다.
카톨릭이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연옥의 고통을 면하게 해 준다는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에 면죄부를 파는 사람들은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육적 쾌락을 위해 죄를 용서하는 문서를 팔았습니다. 마틴 루터 당시에는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했기 때문에 교황은 돈을 모으기 위해 더욱 면죄부 판매에 열중했습니다. 면죄부를 파는 사람은 도시를 방문해 교황의 공식 인가서와 교황의 깃발을 내 걸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면죄부를 사기 위해 줄을 섰고, 긁어 모은 돈은 큰 쇠금고에 넣었습니다.

돈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돈이 상자 속에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고통 당하는 영혼은 연옥에서 구원 받습니다."
부자들은 별 무리가 없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조상과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이에 루터는 면죄부를 비롯한 카톨릭의 모순을 지적한 95개 조항을 캐슬 교회 문에 못 박았습니다.

카톨릭 신학 박사이자 교수였던 루터는 면죄부와 면제부를 파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면죄부는 경건한 사기다. 면죄부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아무 효력을 주지 못한다."
면죄부가 엉터리라는 가장 큰 증거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라는 연옥이라는 영계 자체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아직까지도 돈을 받고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습니다.


b) 기독교 박해 (종교 재판)

중세시대에 카톨릭의 타락과 모순에 대항하여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많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카톨릭에 >의해 이단자로 정죄되어 참혹한 고문과 희생을 당했습니다. A.D. 1252년 교황 이노센트 4세는 '박멸에 관하여'라는 교서를 내려 카톨릭과 카톨릭의 영향권에 있는 권력자들이
함께 이단자를 고문하고 화형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고문대를 사용하여 손과 발을 묶고, 밧줄을 감아 사지를 잡아 당겨, 사지가 떨어져 나가며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고문입니다.

'철갑처녀로 알려진 이 고문기구는 속이 비어 있는데
안에 칼들을 꽂아, 안에 갖힌 사람이 꼼짝 없이 칼에 둘러 쌓여 온 몸이 베임을 당하게 하는 고문입니다.

그들은 집게로 손톱을 뽑아냈고, 남녀 성기를 불로 지져댔으며, 큰 롤러에 송곳을 달고 개신교도 위에서 굴렸으며,고문기구로 손 마디와, 다리와 발가락을 뭉갰습니다.또한 희생자의 옷을 벗긴 뒤 줄로 팔을 등 뒤로 묶었고, 도르레를 사용하여 몸을 공중에 매달았다가 갑자기 떨어뜨려
신체 부위의 관절이 떨어져 나가게 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귀와 입에 끓는 납을 부어 넣었고, 눈을 빼거나, 살점이 튀도록 채찍질을 構킬? 긴 못이 박힌 낭떠러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종교 재판소에서 고문 당한 사람은 감옥에 벽의 쇠사슬에 묶였고, 피로 가득찬 고문실에 살고 있는 쥐와 해충의 먹이가 되어 죽어갔습니다.

종교 재판은 점점 대량학살로 이어졌는데 A.D. 1209년 베지에르라는 도시에서는 6,000명이 칼로 살육당했고, A.D. 1211년 라바우어에서는 10만명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학살당했습니다. 메린돌 대 학살에는 500명의 여인들이 창고에 갖힌 채 불어 타 죽었고, A.D. 1562년 오렌지 대학살에서는 교황 비오 4세가 이탈리아 군대를 보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A.D. 1572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만명의 성경대로 믿는 위그노 교도들(Huguenots)이 대학살을 당했습니다. 프랑스 왕은 많은 이단자를 살육한 것을 감사하는 미사를 들였고, 교황청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교황청은 조폐소에 명령을 내려 위그노 대학살을 축하하는 기념 동전을 만들었는데, 동전에는 칼과 십자가를 든 천사와 그 앞에서 겁에 질려 있는 위그노 교도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네델란드의 종교재판에서 고문하는 모습으로 프로테스탄트가 고문대에 발이 낀 채 거꾸로 매달려 있고, 밑에 있는 화로에서는 그의 눈을 지지기 위한 쇠막대기가 달구어지고 있습니다.



종교재판에 사용되었던 3가지 주요 고문방법을 보여주는 버나드 피카르트의 종교재판 고문실<도르래(풀리), 물고문, 불고문>

나무에 묶여 화형 당하는 개신교도 고문을 행하며 사제들은 십자가를 들고 이단자들이 자기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교황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단(異端)을 징치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의로운 성도들을 고문하거나 죽였습니다.
다음의 몇 인용문들을 로마 카톨릭교회의 문헌에서 발췌된, 공언하고 있는 박해의 정당성입니다.

만약 교회의 어느 신자가 불신실하게 된다던가, 이단에 빠져들던가, 혹은 어떤 다른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이러한 교인은 그가 의존돼 있는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을 견책할 수 있는 권한 뿐만 아니라 교회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외적인 형벌로써 고통을 줄 수 있고 세속적인 권력에 의뢰할 수도 있다. Schouppe, A Course of Religious Instruction, 74, cited by Gane, 53.

화폐 위조범이나 다른 범죄자들이 세속적인 당국자들에 의해서도 즉시로 합당하게 사형에 넘겨지거든, 하물며 이단으로 정죄된 자들이야말로 즉시 파문(破門)할 뿐더러, 분명히 사형에 처해야 하지 않겠는가.St. Thomas Aquinas, Moral Theology, cited by Gane, 53.

영적인 검과 물질적인 검 모두가 교회의 권한 안에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검도 참으로 교회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며, 영적인 검도 교회에 의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출처: 빛과흑암의 역사)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고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카톨릭
 
 
 
- 카톨릭교회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천주교는 다른 신을 믿고 있다. '하느님'을 믿고 있다. -


* 세계 최고의 관심을 끌었던 요한바오로 2세의 죽음에 대해 최근 한기총과 교회협에서 위로 논평을 내는 등 애도의 뜻을 표한 바 있는 카톨릭교회는 과연 복음적 교리를 가진 정통적 교회로써 한국교회가 형제교회로 받아들일만한 교회인가에 대해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하는 카톨릭, 그들은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

가톨릭교회는 17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적 교회이다. 그러나 전통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정통교회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을 뿐 아니라 관대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여러 가지 교리와 주장은 우리 개혁교회나 정통교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가톨릭교회에 계시하신 대로 믿지 않거나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 입장에서는 기독교는 모두 이단인 셈이다. 가톨릭과 기독교는 교리적으로도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다. 본서에서는 주요 핵심 부분에 대해서만 성경적 검증을 하고자 한다.


(1) 기원

초기 교회는 특별한 교파형성 없이 예수의 사도들을 통해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로마의 수 많은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회는 A.D. 300년까지는 어떤 형태의 교파도 없이 성장해 갔다. 이때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일하고, 기도하고, 죽는 성도들이었다.

이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숱한 박해와 순교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서 갑작스런 일이 발생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4세기에 기독교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개종은 로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개종으로 인해 로마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나 개종 이전에 섬기던 이교도의 사상과 의식을 버리지 못한 채 기독교로 유입되었다. 그러다가 378년에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Damasus)가 이교도의 최고 제사장직인 Fontifex Maximus(최고 고위사제, 최고 승원장)자리를 겸직하게 됨으로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이교도와 혼합하게 되었고, 드디어 590년 초대 교황인 그레고리 1세가 즉위함으로 ‘천주교(Roman Catholic Church)'라고 하는 종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부터 590년 그레고리 1세의 등장까지를 ‘니케아 시대’ 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기독교가 이교도와 혼합되기 시작했으며 로마 제국화한 시기이다. 그리고 590년 그레고리 1세 교황의 등장부터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까지를 ‘중세시대’ 라 하는데 천주교측에서는 가장 번성기에 해당되지만 신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는 가장 타락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세계역사에서는 이 시대를 ‘중세 암흑시대’ 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A.D. 451년 레오 1세와 A.D. 590년 교황이 탄생하면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유럽에서는 가장 힘있는 교회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로마 가톨릭교회는 A.D. 1054년에 동방정통교회(비잔틴 기독교)와 분리를 선언하였고, 종교개혁이라는 혹독한 시련기를 맞이하면서도 큰 변화없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로마 가톨릭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중국의 로마 가톨릭 서적을 접함으로써 개종하는 데 기인하였다. 홍유한, 이벽, 권철신,이승훈, 정약전 등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었다.


(2)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 기원

16세기 종교개혁은 당시 상황적으로 종교개혁을 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가령, 교황청의 부패, 수도원의 금욕생활과 스콜라 철학의 쇠퇴, 신비주의의 대두, 인쇄술의 발명, 신대륙의 발견, 희랍어 신약성경 출판, 자유사상 대두 등이 종교개혁의 배경이 되었고, 천주교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제2니케아회의에서 화상숭배를 승인하였고 제4차 라테란(Lateran)회의가 성찬교리에 대하여 화체설을 교리화시켰다.

또 신부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는 교리를 제정하였고, 당시 소위 이단자들(개혁교회신자들)을 죽이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플로렌스(Florence)회의는 교황권 지상주의와 연옥설을 교리화하였고, 고해 의식에 속하는 면죄부(indulgence)제도에 대한 강한 저항심이 루터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루터는 이런 내용을 지적한 95개 조항을 1517년 10월 31일 정오 경에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게시하면서 촉발되었다.

종교개혁 당시 알메리커스(Almeficus)와 그의 제자들은 화체설을 부인하고 유물숭배를 우상숭배라고 주장했다가 화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종교개혁이후 열린 트렌트회의에서는 모든 교리를 종전대로 지키기로 했는데 화체설, 연옥설, 성자숭배, 화상과 유물숭배 등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루터의 견해를 배격하여 그 사람과 ‘항의한 모든 사람들’을 강제 추방했다. 결과적으로 추방당한 그들은 별도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며 해석하고 이해한대로 그 교회를 떠났다. 이것이 ‘항의자’(프로테스탄트)라 일컫게 될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지류의 시작이었다. 이 용어는 가톨릭교회가 반 가톨릭파 신자들은 ‘항의자’로 부르면서 쓰여지게 되었다.


(3) 주요교리 및 비판

천주교에 대하여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세 가지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첫째, 천주교는 이단 내지는 기독교가 아니다. 둘째, 천주교는 기독교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셋째, 천주교는 이단이 아니며, 기독교와 형제지간이며 가정으로 본다면 큰 집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아마도 보수적인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는 첫 번째 견해일 것이고, 자유주의 신학적 입장이나 ,W.C.C. 적 연합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견해일 것이다. 아마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에서는 두 번째나 세 번째 견해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천주교를 이단 내지는 이교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천주교 입장에서는 기독교를 이단 내지는 이교도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기독교내에서 비롯되는 약간의 성경해석 차이나 주변적 진리만을 가지고 건전한 목회자나 교회들을 대이단인 것처럼 같은 형제를 매도하여 매장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기독교와 너무 다른 천주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교리적 비판을 가하지 않는 일은 매우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비판은 고사하고 천주교와 함께 공동번역성경을 내놓기까지 했다. 천주교에 대한 교리적 문제점을 간략하게 기술코자 한다.


A. 천주교는 다른 신을 믿고 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천주교는 ‘하느님’을 믿고 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하나님과 하느님은 엄연히 다르며,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고, ‘하느님’은 ‘하늘(天主)님’에서 ‘늘’의 이 탈락한 형태로서 범신론적인 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전지 전능하고, 우주만물을 창조, 섭리, 지배하는 유일 절대 주재자. 의와 사랑이 충만한 인격적 존재로 무소부재하며 삼위일체의 제1위임. 하느님(하늘님) 종교적 신아의 대상.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로서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며 불가사의한 능력으로서 선악을 판단하고 화복을 내린다고 하는 범신론적인 신」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천주교는 마리아를 여신(女神)으로 숭배하고 있다.
마리아 신격화를 위해 다섯가지 교리와 세가지 교리가 있는데 첫째는 마리아는 평생 처녀이었다.(마리아 종신 처녀설).

둘째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다(마리아 모성). 셋째는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태어났다(마리아 무죄 잉태설). 넷째는 마리아는 죄없는 삶을 살았다(마리아 평생 무죄설). 다섯째는 마리아는 죽은 후 부활 승천하였다(마리아 부활 승천설). (이상 볼프강 비이너르트,마리아 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심상태역, 총판, 성바오로출판사, 1983. p.107.)

천주교가 마리아를 신으로 숭배하는 교리들은 이 외에도 첫째, 마리아는 은총의 중재자이다. 둘째, 마리아는 기도의 중보자이다. 셋째, 마리아는 구원의 어머니이다. 등이다. 천주교의 주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렇듯 우리를 위하시는 어머님(마리아)께 완전한 봉헌을 올리기 위해서(가) 우리의 몸을 바쳐야 되고, (나) 우리의 영혼을 그 외의 모든 능력, 즉 지P, 자유 위지 등을 바쳐야 되며, (다) 세속의 모든 사물을 바치고, (라) 우리의 내적 및 영적인 재물 즉 과거,현재, 미래에 있어서의 모든 공로, 덕행, 선행 등을 바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바쳐 자신을 완전히 없이 하여야 한다.”(가톨릭출판사편, op.cit, p.296)
이같은 주장은 단순히 공경차원이 아니라 숭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B.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

천주교는 같은 성경을 쓰면서도 성경 66권 이외에도 ‘가경’과 ‘유전(전승, 성전)’을 믿으며, 성경의 절대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다.
천주교는 주장하기를 “천주교회는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성경보다 앞서고 있으며, 천주교가 없이는 성경이 존재하지 않지만, 성경이 없이도 천주교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루이스 뻘콥, 조직신학(서론), 고영민 역, 서울: 기독교문사, 1980)

다시 말하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절대적 말씀으로 믿지만 천주교는 “천주교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역으로 말한다면 지금이라도 천주교가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결정한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이는 천주교가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기독교는 39권의 구약성경을 가진 반면, 천주교는 46권의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다. 천주교는 7개의 가경을 성경에 포함시켜 가지고 있는데 곧, <토비아서,유딧서,마카비 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등이다(중요교리, 전례용어해설, 가톨릭출판사, 1979)

‘가경’이란 ‘아포크루파’로서 ‘감추어져 있다’ 는 뜻이며,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신학자 오리겐이었다. 당시에는 이 말이 ‘위경(가짜 성경)’ 과 동일시 되었다. 가경이 천주교의 성경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1546년에 ‘트랜트 회의’에서 정경속에 가경을 포함시켰는데 그 이유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천사들의 중보와 연옥설과 공덕축적설 등의 교리를 성경에서는 찾을길이 없으나, 가경에서는 이런 그릇된 교리를 얼마든지 정당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천주교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성경 외에 가경과 구전을 믿으며 성경보다는 구전을 앞세우고 있고 모든 성경이 그 사본까지 몽땅 없어져도 좋다는 성경무용론을 주장하는 천주교가 과연 정통교회인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C.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부인한다.

천주교는 주장하기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완전하신 구속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는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로 구속을 완성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미사’의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의 십자가 제사를 재연하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미사’란 기독교의 예배와 같지 않으며 천주교의 미사는 성찬의 요소인 떡과 포도주를 사제가 봉헌기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시켜서 신부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의식인데, 이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의 재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미사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와 똑같이 흠승(예배)와 감사, 보속(죄의 대가를 치룸)과 구원으로 무한한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미사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화체설’과 이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는 ‘희생제사설’의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D. 인간을 신격화 한다.

천주교는 교황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데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첫째는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의 최고 통치자이다. 둘째는 교황무오설(교황은 오류가 없다). 셋째는 교황의 면제권(사죄권과 비슷하지만 죄에 대한 형벌까지 면제해 줄 수 있는 권리)이다.

‘교황(pope, papa)’ 이란 말의 뜻은 아버지란 뜻이다. 따라서 천주교는 성례의식 외에는 하나님의 은혜나 구원을 받을 길이 없으며, 이 성례식은 신부에 의해서만 거행되기 때문에 결국 사죄(죄의 용서)와 그 외의 모든 은총이 오직 신부들의 중보를 통해서만 얻어지게 된다. 따라서 신부들을 떠나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이는 곧 천주교 밖에서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E. 믿음으로 구원얻는 것을 부인한다.

천주교는 행위(선행)를 의지한다는 점이요, 기독교는 믿음에 의존한다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즉 천주교는 자기들의 공로에 의존하고 기독교는 주님의 은혜에 의존하여 구원얻는다는 점이 다르다.

천주교의 칭의(의롭다고 인정함)에 대하여 ‘주입된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믿음만으로도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천주교는 구원이 세례(성세성사, 혹은 영세)를 통하여 이뤄지고(즉 생명 은총을 받는다)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침을 받는다(인호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구원과 세례와는 상관이 없다. 천주교의 구원관은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둘째, 구원은 세례(영세)를 통해서 온다.
셋째, 구원받았는지는 죽어봐야 안다.
넷째, 믿지 않은 사람도 구원받는다
.


F. 천주교는 연옥설을 주장한다.

연옥이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데가 있는데, 곧 사람이 죽은 다음에 죄의 그림자도 없는 깨끗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대죄(큰죄) 중에서 하나님과 영영 등을 진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 그런데 그 소죄(작은죄)나 불완전을 가지고 있거나 죄에 대한 적당한 보속을 완료하지 않은 영혼들은 연옥에서 그 나머지를 보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주교의 연옥주장은 주로 유전(구전)에서 연옥설의 근거를 찾고 있고 이외에 외경 마카비 하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연옥설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동방과 희랍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처음 오리겐의 영향을 받은 최초 교황인 그레고리 1세가 연옥설을 창시하였다. 그는 “낙원”이라는 말 대신에 “연옥”이란 말로 고쳐 썼다.


G. 천주교는 우상숭배와 미신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신다. 그런데 천주교는 마리아상을 비롯한 많은 성상(화상, 성인들의 우상)을 비롯해서 유골숭배, 성체숭배, 등 많은 우상숭배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천주교는 십계명 제1, 2계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 성경 내용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물건을 또는 잡신을 하나님처럼 만들어 공경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모상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똑바로 봅시다.” (『천주교와 개신교-하나인 교회』7판, 가톨릭출판사, 1983.)


※천주교는 많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성상 숭배
소위 “성인” 이나 교황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절하거나 기도한다.

●유골 숭배
성인이라고 칭하는 유골(해골, 성해라고 지칭)과 유품 숭배를 한다.

●성체숭배
성체 숭배란 미사 지낼 때의 떡이 그리스도로 화한다고 믿고, 그 떡에게 절을 하고 복을 달라고 빈다(성체조배와 성체 강복).

●천사 숭배
성인 숭배의 일부로 천사에게 기도하는 등의 숭배이다.

●십자가상 숭배
“십자가상” 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양을 만든 것이며 천주교 가정이나 성당, 혹은 경영하는 사업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성화 숭배
예수님의 일생이나 유명한 신자들의 성화를 숭배한다. 감상과 숭배는 다르다.


※천주교는 이외에도 미신적인 의식들이 많다.

●십자 성호
“십자 성호” 란 천주교인들이 기도할 때 흔히 볼 수 있는데 손으로 십자가를 긋는 것을 말한다. 저들은 손으로 열십자를 그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영육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으며, 그것은 사탄이 두려워 한다고 믿는다.

●성수
“성수” 란 보통의 물에다 소금을 넣어서 신부가 특별히 축복한 물인데 천주교의 의식에 사용하고 있다. 이 성수를 뿌리면 질병과 악령들을 추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묵주 기도
묵주는 불교의 염주와 같은 것으로 15개의 묶음으로 된 사슬로서 이것을 세면서 기도하는 것을 묵주기도라고 한다. 이 묵주 기도에는 교회와 사회와 개인 영혼을 위협하는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죽은자를 위한 기도
그들은 죽은 자 뿐만 아니라 죽은 조상에게도 제사하는 것을 허락한다.

●성로 신공과 성월 기도
성로 신공이란 예수님의 수난중 빌라도의 관저로부터 갈보리 십자가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그리스도의 수단을 묵상하는 것으로서, 대부분의 천주교인들이 그곳에 갈 수 없으므로 성당 좌우벽에 수난 사실중 중요한 것, 14가지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그 앞을 지나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이 천주교가 기독교와 다른 핵심적인 부분만 기술해 보았다. 천주교는 우리 기독교와 근본 교리가 전혀 다른데 즉 성경관,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중에서 기독교와 일치하는 것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
                                  
 
 
크리스찬트리뷴[ www.kctn.net ]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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