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자료

한국의 어린 순국자들

baromi 2008. 7. 5. 19:44
 
한국의 어린 순국자들
Little Martyr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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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보국(Korean Information Bureau)

스스로 선택한 정부(政府) 밑에서 살겠다는 열렬한 소망과, 한국(韓國)에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확립하겠다는 불굴의 노력은, 국민의 어느 한 계급에 국한되거나, 한때는 평화로왔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농부, 기능공과 노동자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계급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독립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소액이나마 헌금을 하는 데 열성적이다. 또한 조국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남자들에게 국한된 일만은 아니다. 수백의 여자와 소녀들은,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가하는 무시무시한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 데모에 참가해 왔던 것이다.
이 운동의 가장 괄목할 만한 사건의 하나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한 역할이다. 조직을 가지고 있고 지도자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이들 어린이들은 그들 자신의 방법으로 그들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매우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데모에 참가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본사에 들어온 수많은 보고서 가운데에는 이 비극에서 한국의 어린이들이 한 역할을 말해 주는 이야기가 많다. 어린이들의 역할은 한국의 투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적들이 퍼뜨린 악랄한 말들, 즉 한국인은 저열한 인종이어서 스스로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말들을 일축할 생각으로 이 보고서 중 약간을 선택하여 이 소책자에 다시 싣는 바이다.
여기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한국에 있는 미국 선교사들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이름은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현재에는 밝히고 싶지 않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보내 준 많은 다른 비슷한 이야기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생략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고 그의 진실성에 대한 명망이 높은 사람에 의해 진실하다고 확증되는 이야기 들만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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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나는 한국의 독립운동 기간동안 내가 겪었던 경험을 당신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당신은 이 주목할 만한 운동에서 한국사람들이 행한 역할의 주요 부분에 관한 보고서는 이미 다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당신은 이 시련기에 한국 어린이들이 무엇을 했는가는 모르실 것입니다. 내 임무는 미션스쿨에서 소년소녀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어린이들에 관한 약간의 이야기를 하겠읍니다.’
○ 데모에 참가한 어린이들
지도자들과 어른들이 서울에서 데모를 하고난 후에, 그 도시에 있는 모든 학교의 소년 소녀들이 어른들 몰래 파고다공원에 모여서 그들도 어른들과 같은 생각임을 발표했다. 그들은 독립선언서를 읽고 ‘독립만세’를 부른 후 그 도시[서울]의 주요 거리로 쏟아져 나와 주먹을 위로 올리고 모자를 흔들며 힘차게 독립을 부르짖었다.
이 어린이들은 곧 장검을 빼들고 대검(帶劍)을 총에 꽂은 일본 경찰들과 부딪쳤으며 많은 사상자를 내고 뒤로 밀려났다. 6시쯤 해가 서산마루로 사라졌을 때, 이 용감한 어린 애국자들도 거리에서 사라졌다.
○ 일본인에 도전한 남학생들
황제의 장례식이 거행되기로 되어 있던 3월 3일에 일본인 당국자들은 학생들에게 단체로 장례 행렬에 참가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기를 전적으로 거절해 버렸다.
그들의 저항의 제2선은 일본 관할 하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어떤 한 학교는 약간의 학생들을 건물 속으로 들여보내는 데 성공했으나 그것이 거의 고작이었다. 왜냐하면 아침 자습 직후에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청년 한 명이 일어나서 말했다.
“우리는 이제 아침 자습을 했고 우리의 국가(國歌)를 불렀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일어나서 대한독립만세를 합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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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모자란 모자는 모두 공중으로 날아갔고 소년들은 책을 거두고 밖으로 행진해 나왔다. 일본인 교장은 대단히 분노하여 학생들이 돌아오도록 사람을 보냈고, 강력하고 반복적인 설복으로 마침내 그들은 다시 교실 안에 모여서 조용히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약 5분 후에 한 소년이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 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한국을 위하여 만세3창을 합시다. 만세! 만세! 만세 !”
모든 어린 동료들의 손이 올라갔고 그들의 금속성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한국 국민의 함성인 “만세! 만세! 만세!”라는 고함소리로 대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책을 내던지고 그들은 다시 밖으로 행진해 나갔다.
4백 명의 남학생이 등록한 이 학교는 문을 닫도록 강요되었으며 그 이후로 결코 문을 열 수 없었다.
○ 자유를 위하여
또 하나의 데모의 특징은 많은 미션스쿨 소녀들이 두드러지게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 학교의 대부분의 소녀들은 데모장소까지 시간에 딱 맞게 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가 파한 후에 거리 모퉁이에 그룹별로 모여서 자유의 노래를 불렀다. 일본인들이 즉각 그 현장에 나타나서 손으로 소녀들을 이리 저리 밀었다. 이것이 소녀들을 놀라게 하지도 않고 해산시키지도 못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총과 곤봉을 사용하며, 민족적 함성을 외쳤다고 그들을 잔인하게 때렸다.
많은 소녀들이 전차에 타고 있던 중 체포되었다. 그들은 경찰서에 끌려갔으며 간수와 취조관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온갖 모욕을 당하며 더러운 감방에서 10일 내지 12일 간 죄수로 잡혀 있었다.
모든 질문에 그들은 간단히 이렇게 대답했다.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행해진 것이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도 기꺼이 바치겠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어떻게 되는가를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한국이 살고 독립을 얻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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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겁 없는 소녀들
3월 1일에 어느 미션스쿨에서 교장은 사감으로부터 여학생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그 여자 교장은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소녀들이 휴일을 즐기겠거니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해 주의하지 않았다. 사감은 매우 창백하고 두려운 표정을 하고 두 번째로 교장실에 뛰어 들어 왔다.
“오, 부인! 소녀들은 뒷길로 밖에 나가서 데모에 합세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고 있읍니다.”
하고 그녀는 외쳤다.
교장은 이제 완전히 놀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급히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그 때까지 운동장에 있던 몇 명의 소녀가 교장이 오는 것을 보고 저지할까 두려워하여 담벽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그녀는 두 세 명의 소녀를 간신히 붙잡아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소녀들은 그들의 이상한 행동의 의미를 그녀에게 말해 줄 것을 약속하며 그녀에게 학교 안으로 돌아가도록 청했다. 그들이 학교에 다시 들어왔을 때 소녀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교장에게 제출했다.
“우리 이 학교의 여학생들은 조국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바치기로 결정했읍니다. 우리는 ‘만세’를 외칠 작정입니다. 우리가 체포되게 두어 주시고 필요하다면 죽음을 당면하게 버려두어 주십시오.
우리는 교장선생님에게나 학교에 어떠한 비난이라도 가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날짜로 이 학교 학생으로서의 자퇴서를 제출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학교와 어떠한 관계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서류는 그 학교 학생들에 의해 서명이 되어 있었으며 한 소녀의 이름도 빠져 있지 않았다.
교장은 이 자퇴 사건으로 매우 고민했으며 여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그들을 되돌아오게 할 방법과 수단을 토의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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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명의 소녀들은 그들이 이미 데모에 가담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으며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잠시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교장은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전화선 반대쪽 끝에 있는 사람이 경찰서장임을 알았다.
“부인! 당신 학교의 여학생들이 경찰서 앞에 서서 커다란 혼란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만세’를 외치고 있소.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소. 체포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1백명이나 되는 소녀들을 체포할 수는 없소. 그들을 가두어 놓을 감방도 없단 말이요. 그렇지만 그들은 저지되어야 하오. 그러니 청컨대 부인께서 오셔서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주시오.”
하고 그가 말했다.
“그 소녀들은 학교에서 자퇴했읍니다. 그들은 독립운동에 공감한다는 것을 선포하기로 결정했읍니다. 나도 또한 그들을 어찌할 수 없읍니다.”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러나 경찰서장 편의 애원에 못이겨 그 착한 부인은 현장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나 보기로 결정했다. 그녀가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주위의 산 언덕이 수천 명의 남자와 여자와 소녀들로 뒤덮여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 가운데 그녀 학교의 여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골짜기 아래에는 그녀 학교의 여학생 들이 더 많이 있었다. 그들은 언덕에 있는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었고 군중들은 소녀들에게 충심으로 환호를 보냈다.
그녀는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리고 경찰서장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찰서장은 그녀에게 소녀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끊임없이 애걸했다. 그녀는 점차적으로 하나의 계획을 세워서 서장에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그 소녀들을 체포해야 합니다.”
하고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을 가두어 둘 곳이 없읍니다. 저 군중 가운데에는 1천 5백명 가량의 소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감방에 우겨 넣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지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그들 대신에 나를 체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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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교장이 말했다.
경찰서장은 그녀가 미쳤다는 듯이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으며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부인,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효과를 낼까요? 그들이 그것을 상관치 않지 않을까요?”
“당신은 우리 학교 여학생들을 모르십니다. 그들은 결코 내가 체포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계획을 실험해 봅시다.”
여전히 그녀를 의심하면서 서장은 그녀를 경찰서 앞으로 인도해 나갔다. 거기에는 소녀들이 여전히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교장을 보자 소녀들은 조용해졌다. 무엇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흥분으로 홍조띤 소녀들의 앳된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말했다.
“여러분, 경찰서장은 나에게 여러분을 학교로 돌아가게 하도록 노력하라고 청했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여러분 대신에 나를 체포했읍니다. 자 여러분 집으로 돌아가 주시오.”
“안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하고 수백 명의 젊은 목소리가 분노에 차서 외쳤다.
“당신은 이 일과 아무 관계도 없읍니다. 당신은 미국인입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독립투쟁계획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십니다. 일본인들은 당신에게 손 댈 수 없읍니다. 당신은 우리 대신에 체포될 수 없읍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체포할 것에 틀림 없읍니다.”
교장이 대답했다.
“자 여러분들은 해산해야 합니다. 유일한 길은 내가 여러분 대신에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소녀들은 잠시 동안 의논을 했다. 그리고 나서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서 교장 앞에 서서 또렷하고 울리 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돌아가겠읍니다. 한국의 소녀로서의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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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은 완수되었으니까요. 민중들을 깨우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읍니다. 임무는 성공적이었으니까 이제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읍니다.”
그리고 줄을 서서 소녀들은 미션스쿨로 행진해서 돌아갔다. 그 뒤를 경찰서장과 미국인 교장과 많은 일본인 경찰과 군인이 따랐다.
○ 한국의 귀중한 상징
우리 미국인들이 성조기(星條旗)를 사랑하고 그것이 ‘자유인의 땅과 용기있는 자의 고향’ 위에 장엄하게 펄럭이는 것을 볼 때 기쁨의 전율을 느끼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그들 나라의 국기를 사랑하고 그것이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땅 위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 그들의 국기에 대한 불멸의 사랑을 말해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 매우 깊은 인상을 나에게 주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국기를 게양하는 작업에 있어서 매우 크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녘에서 장미빛 먼동이 틀 때 이 용감한 어린이들은 서둘러 일어나서 거리로 나가 신호기와 전화기의 기둥, 그리고 그 도시 구석구석의 수 백의 다른 장소에 조그만 한국 국기를 매달곤 하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그만 한국 국기가 신선한 아침 공기 속에서 용감히 펄럭거리는 광경은 일본인들에게는 괴롭고 성가신 광경이었다. 일본인 경찰들이 이 꼬마 애국자들이 해 놓은 것을 파괴하기 위해 기둥 위로 기어 올라가고 이리 저리 쫓아다니는 광경은 어린 소년들을 기쁘고 우습게 해 주었다. 그러나 국기가 찢어졌을 때, 그것은 그토록 사랑스러움과 조심성을 가지고 국기를 매달았던 작은 친구들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이 어린이들을 굴하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음 날 아침이면 마찬가지로 많은 국기들이 또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이었으며 그들이 일본 경찰에 대해 결정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한 떼의 소녀들이 커다란 깃발을 만들어서 매우 높은 벽의 꼭대기에 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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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 경찰이 왔다가 그것을 보고 매우 화가 나서 그것을 끌어 내리기 위하여 사다리를 가지러 달려갔다. 그는 사다리를 가지고 돌아와서 그것을 벽에 기대어 놓고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소년들은 아래의 포장도로에 서서 좋아라 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경관은 꼭대기에 다달으자 줄을 끊었다. 그 때, 보라! 그 깃발은 펄럭거리며 내려와 아래에 서 있는 작은 소년들이 뻗친 조그마한 팔 위에 떨어졌다. 그들은 열심히 국기를 움켜잡더니 그들의 사랑하는 국기를 가지고 거리를 달려가 버렸다. 놀란 경관은 사다리 꼭대기에 앉아서 작은 모습들이 귀중한 짐을 가지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 숨바꼭질
3월 5일에 나는 이 국기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을 보았다. 전체 운동 중에서 가장 큰 데모는 아마도 3월 5일에 벌어진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길 모퉁이에 서서 수 천의 청년과 여자들이 주먹을 위로 올리고, 독립을 절규하며 거리를 휩쓰는 것을 보았다.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은 거의 성령(聖靈) 같았으며 그들의 눈에는 속박된 조국을 자유롭게 하려는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갑자기 한 청년이 인력거 위에 뛰어 올라가더니 국기를 머리 위에 높이 들고 민족의 함성인 “만세! 만세! 만세!”를 외쳤다. 항상 경계 태세에 있는 일본 경찰도 또한 이 조그만 장면을 목격하고 그 깃발을 빼앗으려고, 있는 노력을 다 했다. 그러나 청년은 경관이 급히 군중 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자 국기를 접어서 가까이 있던 소년에게 넘겨주었다. 경관은 빈 손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는지 깃발은 없이 청년을 체포하여 서둘러 감옥으로 끌고 갔다.
깃발을 받았던 소년은 그것을 펼치더니 다른 한국인이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것을 머리 위에 흔들었다. 그 깃발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또 한 번 행해졌으나 깃발은 또 다시 재빨리 접혀져서 군중 속으로 넘겨졌다. 경찰은 그 깃발을 빼앗으려고 몇 번이고 노력을 되풀이했으나 그것은 몇 번이고 접혀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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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으로 넘겨졌다. 내가 길 모퉁이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이 깃발을 흔들다가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깃발이 노획되는 것은 결코 목격하지 못했다.
○ 은둔(隱遁)왕국의 자유의 종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자유의 종에 대한 영광스럽고 스릴있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그렇지만 독립을 위해서 역시 자유의 종을 울렸던 두 어린 한국 소년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독립운동이 절정에 달해 있던 어느 날 밤에 두 명의 어린 한국 소년들이 독립의 종을 둘러싸고 있는 난간을 기어 올라가서, 한일합병(韓日合併) 이래로 침묵을 지켜왔던 그 종을 있는 힘을 다해 울렸다. 그 종의 맑은 첫 번째 종소리가 고요한 저녁 공기를 흔들었을 때 그것은 지친 한국인들의 가슴에 환희와 용기를 가져다주었고 일본 경찰에게는 두려움을 주었다. 그들은 도대체 누가 종을 울렸는지 궁금해 하며 종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난간 안에 두 어린이가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너희들 뭘 하는 거야?”
하고 경찰 한 명이 거칠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들은 독립의 종을 울리고 있읍니다.”
하고 소년은 겁도 없이 대답했다.
“오늘 우리는 독립을 선언했읍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모든 국민들이 그것을 알도록 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거기에서 나와!”
하고 경찰의 굵직한 목소리가 고함을 쳤다.
“독립을 위한 타종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면 나가겠읍니다.”
하고 한 소년이 똘똘하게 대답했다.
경찰은 화를 내 봐야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소년들이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가슴이 후련해질 때까지 종을 울린 후에 그들은 스스로 경찰들에 연행되었다. 경찰은 소년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에서 소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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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고문을 당하고 맞았을 것이다.
○ 용감한 꼬마 병사
내가 사는 구역의 작은 소년 하나는 한국 국기를 만들어서 한 총독부 건물의 문에 붙이고 그 아래에 이렇게 써 놓았다.
‘이 문은 총독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의 독립정부에 속한다. 만세! 만세! 만세! 김○○ 씀. 나이 13세, 집 주소 ○○○동 21번지’ 이 국기와 메시지는, 그 길을 지나가다가 멈추어 서서 어린 한국 소년의 그 글을 읽은 지친 한국인들에게 한 줄기 광명과도 같았다.
그것은 또한 항상 경계태세에 있는 경관의 눈을 끌게 되어 그는 그 장소로 급히 달려갔다. 소년의 이름과 거리 주소를 베낀 다음에 그는 소년이 한 일을 자취 하나 없이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경관은 즉시 소년의 집으로 갔다. 그러나 그 작은 친구는 전날 밤의 용감하고 영광된 일을 하고난 후에 매우 소심해져서 어딘가에 숨어 버리고 없었다. 소년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경찰은 소년 대신에 그의 아버지를 체포하여 감옥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 어린 소년이 마침내 용기를 짜내어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버지가 체포된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즉시 경찰서로 가서 자진 체포되고 아버지의 석방을 요구했다.
○ 한국의 얼
우리 학교의 여학생 하나가 교장에게 가서 말했다.
“저는 매우 중요한 일로 집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 보아야 합니다.”
교장은 즉시 그녀에게 허락을 내려서 그녀는 자기 물건을 꾸려서 고향으로 출발했다. 집에 들어가자 그녀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젊은 얼굴에 매우 확고한 표정을 띠고,
“어머니 저는 잠시 동안 어머니를 뵈오려고 왔읍니다. 저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읍니다. 다시 한번 어머니를 뵙고 작별을 드리고 싶어서 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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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고 있는 데모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서 딸에게 설명해 달라고 청했다. 작은 소녀는 그녀가 들었던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몇 가지 어머니에게 들려주고,
“어머니 저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저는 세상에 나가서 독립을 외치고 우리의 자유를 위해 제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하고 외쳤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그녀의 작은 딸을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머리를 숙이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딸아, 함께 저녁을 들자. 그리고 나도 또한 너와 함께 가겠다. 우리 둘다 나라를 위해 죽기로 하자.”
한국인의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여기 또 하나 있다. 한 젊은 여자가 일본 경관에 의해 온 거리를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한국인의 자유의 함성인 ‘만세’를 외칠 때마다 경관은 그녀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몇 번이고 구타가 되풀이된 후에 마침내 경관은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년아 너는 만세를 외치기 때문에 구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몰라?”
하고 그가 말했다.
“내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은 만세의 얼이요.”
하고 고통으로 이그러진, 그러나 겁없는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때릴 때마다 그것이 나와야 합니다. 당신이 나를 많이 때리면 때릴수록 나는 더 많이 만세! 만세! 만세!를 외치겠읍니다.”
○ 천진한 어린 수인(囚人)
한 작은 소녀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녀는 경찰서장 앞에 끌려 나갔다. 그러나 서장이 소녀에게 질문을 하기 전에 소녀가 시장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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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녀가 겁먹은 듯이 물었다.
“여기는 경찰서이다.”
하고 서장이 대답했다.
“아, 물건을 잃어 버렸을 때 찾아와서 불평을 하는 곳이 여기군요?”
하고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
하고 서장은 소녀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대답했다.
“아, 그러면 저는 똑바로 찾아 왔군요. 왜냐하면 저는 잃은 것이 있거든요.”
하고 작은 소녀가 소리쳤다.
“무엇을 잃었느냐?”
하고 서장은 인내심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저는 조국을 잃어 버렸어요. 절 위해 그것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이 꼬마 소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작은 얼굴은 그녀의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두 눈은 경찰서장의 놀란 눈을 도전하듯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 자그마한 휴매니티의 소유자는 어떤 대답을 받았던가? 옆에서 있는 경관이 욕설을 퍼부으며 그녀의 입 위를 때려서 천진한 어린이의 피를 흘리게 했다.
○ 세명의 용감한 꼬마 애국자
수가 4백명 가량 되는 초급반의 소년학교가 있었다. 소년들은 경찰과 또 딴 측의 강요가 심해 4월에는 학업에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소년들이 일과를 위해 모이고 있을 때, 나이 많은 소년 하나가 그들을 한 그룹으로 모으더니 그 가운데 서서 그의 젊은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조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조국과 국민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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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우리의 가슴과 목숨을 바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겠읍니다.”
잠시 동안 그들은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나자 ‘만세! ’소리가 수백 명의 젊은 목에서 터져나왔다. 일치 합심하여 전 군중은 앞으로 돌진하여 방에 있는 창이란 창은 모조리 부숴버렸다. 물론 일본인 교사들이 곧 그들을 진압했고 각 학생은 개별적으로 심문을 받았다. 마침내 그것은 약 열 서너 살되는 세 소년에게 집중되었다. 이 소년들은 그시 자신이 계획을 짜고 실행했다고 말하면서 다른 어떤 사람도 데모에 연루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 소년들은 경찰서로 보내졌으며 그들의 부모에게 일어난 일을 알려주고 경찰은 소년들을 위협하여 사실을 말하도록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는 말을 그들의 부모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어린이들은 음식도 없이 24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다음과 비슷한 심문을 받았다.
“누가 이 데모를 시작했는가? 누가 그것을 하라고 말했는가? 너희들의 아버지가 그 계획을 세웠는가?”
“아닙니다.”
하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너의 이웃에 사는 상인이 너희들에게 그것을 하라고 말하던가?”
“아무도 우리에게 시키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그 모두를 우리 자신이 했읍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했다.
“아 나는 누가 너희들을 선동했는지 알지.”
하고 경찰이 냉소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나라를 갖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우리는 부모 형제에게 공감하여 자유를 위하여 이 데모를 함으로써 돕기로 결정했읍니다.”
고 소년들이 외쳤다.
이 소년들은 몇 번이고 혹독하게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반대심문을 당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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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경찰관이 소년 중의 한 명에게
“너의 아버지가 이 데모를 선동했다고 고백했다.”
고 말했다. 어린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만약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면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이 다 한 것입니다.”
이 소년들은 감옥에 보내져서, 단순히 사랑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외쳤다는 죄목만으로 2주일 동안 갇혀 있었다.
○ 피를 쏟고도 행복한 소녀
고등학교 여학생 하나가 담당 경찰의 점검을 받은 후에 감옥에 갇혔다. 그녀는 5, 6명의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감방에서 하루 밤과 하루 낮을 보냈는데 너무나 만원이어서 그들은 앉을 수도 없었고 그동안 쭉 그녀는 먹지도 못했고 얼굴이나 손을 씻을 물도 없었다. 그날 저녁 여덟 시에 그녀는 한 경관에 불리워 다른 방으로 갔다. 그녀가 들어가라고 명령받은 방은 완전히 암흑 속이었고 그 소녀는 불이 들어올 때까지는 그 안에 한 발짝도 들여 놓기를 거부했다. 불이 켜지고 그녀가 8×16피트 크기의 방에 끌려 들어갔을 때 그녀는 27명의 남자가 칼과 박차(拍車)를 가지고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방 중앙에 웅크리고 앉아야 했고 그 날 밤 2시까지 이 야수같은 사람들 앞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녀는 온갖 질문을 다 받았는데 음탕한 짓이 많았으며 질문을 할 때마다 저주를 하고 얼굴에 침을 뱉았다.
그녀는 다른 소녀들을 연루시키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만세’를 외쳤다고만 말했다. 그들은 그녀로 하여금 선교사들에게 죄를 씌우도록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4시간이나 반대심문을 한 후에 그들은 그녀를 방에서 끌어내어 계단 밑으로 차 버렸다. 그녀는 굴러 내려가면서 머리를 부딪쳐 진홍색 핏줄기가 상처에서 솟아 나왔고 삽시간에 그녀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계단의 중간 지점에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었다.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정신을 차렸는데 피를 보고 그녀는 힘없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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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도 또한 조국을 위해 피를 흘렸구나.”
○ 네 형제의 최고의 희생
네 아들을 가진 한 노인이 있었는데 제일 맏이가 18세를 넘지 않았고 제일 막내는 12세였다. 이 소년들은 다른 사람들에 합세하여 사랑하는 조국의 국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경찰이 이 네 소년을 함께 모아 가까이에 있는 숲으로 데리고 가서 종래의 주장을 버리고 일본천황을 위해 외칠 것을 요구했다. 네 소년은 이것을 하기를 거부했고 따라서 그들은 함께 묶여서 나무에 결박되었고 그 동안 경찰들이 그들을 개처럼 총을 쏘아 쓰러뜨렸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시체 주위에 잡목들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그 동안 소년들의 아버지가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숲으로 달려왔다. 아들들이 살해되고 시체마저 불에 탄 것을 발견하자 노인은 군인들을 향하여 자기도 또한 쏴 죽여 달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일본 군인들은 그를 조롱하듯 비웃기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너의 아들들이 감히 정부에 반항한 데 대해 받은 보상이다.”
○ 작은 신문배달 소녀들
한국인의 자유의 주장에 한국 소녀들이 일으킨 가장 가치있는 봉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인쇄물을 배포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인쇄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신문을 출판할 수 없었으나 어떤 방법으로 그들은 ‘독립신문’이라 알려진 신문을 매일 등사기로 찍어냈는데 이것은 10세 이상의 소녀들에 의해 배달되었다.
소녀들은 옷 속에 신문들을 감추고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다른 구역의 지도자들에게 신문을 전달했다. 이런 방식으로 해서 전 운동이 심각한 어긋남이 없이 실행되었다. 이 신문을 몸에 지닌 것이 발각되면 목숨이 위험했으며 이 소녀들은 매우 자주 경찰의 수색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용감한 신문배달 소녀들을 겁나게 하지는 않았다. 신문지를 감추는 가장 좋은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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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등의 속이었다. 많은 소녀들이 바구니에 신문을 감추었으나 그것은 곧 발견되었고, 신문은 찢겨지고 소녀들은 체포되었다.
3월 5일이 들어 있는 1주일 동안에만도 1백명이 넘는 신문배달 소녀들이 체포되었다고 하며, 틀림없이 그들은 그들의 언니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무서운 운명을 당했을 것이다.
○ 일본 문교부장관의 창피
한국 어린이들이 독립운동의 대의(大義)에 공감(共感)을 보여주는 많은 표현 중에서 가장 흥미있는 사건의 하나는 아마도 6백명 이상의 생도들이 등록한 서울의 한 커다란 초등학교와 관련해서 일어난 것일 것이다. 많은 설복과 강요를 받은 후에 소년들은 4월에 학교에 돌아와서 마지 못해 학업을 다시 시작했고 후에 학년말 시험을 치뤘다.
학교의 재개(再開)에 대하여 일본 신문들은 상황이 정상적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한국 어린이들이 마침내 정복되었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졸업 때가 다가왔고 일본의 성대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생도들과 부모들 그리고 문교부의 관리들이 모두 함께 모였으며, 초대된 손님 중에는 일본군대의 고급장교, 문교부장관 그리고 총독의 사적(私的) 대리인 등이 있었다.
프로그람의 제1부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모든 것이 훌륭했고 관리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미소 띤 찬사를 늘어놓았다. 졸업식에는 독립운동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3월에 학생들이 학교에 출석하기를 거부했던 사실은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았다.
프로그람이 거의 끝났다. 관리들의 기념사에 대한 답으로 소년 중의 한 명이 답사를 할 것이 남아 있었고, 그것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참이었다. 미리 준비된 계획에 맞추어서 약 14세 가량 되는 졸업생 한 명이 관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졸업식에 참석해 준 데 대해 감사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을 모두 했읍니다. 이제 할 일이 꼭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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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있읍니다. 그것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 삼창을 하는 일입니다.”
그와 함께 소년은 급히 손을 호주머니 속에 밀어 넣더니 그의 나라의 성스러운 상징인 한국의 국기를 꺼내었다. 이것을 신호로 6백개의 한국기가 시야에서 번쩍거렸으며 6백명의 소년들의 목소리가 ‘만세!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건물 밖으로 행진해 나와 일본 당국이 그들에게 준 졸업장을 갈기갈기 찢어서 그 종이조각을 일본 경찰과 교문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래서 그 큰 졸업식은 한국인들의 눈에는 커다란 성공리에 끝났으나 일본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망신 속에 막을 내렸다.
○ 일본인의 야만성을 나타내는 미술
평양미션스쿨에 다니는 한 소녀가 우리 외국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신비한 경로를 통해서 독립선언서 한 부를 얻어서 만세를 외치는 다른 소녀들과 합세하기 위하여 평양시 중심가로 나갔다. 이 소녀는 학교에서 마리아로 알려진 학생인데 나이에 비해 몸집이 좀 작은 편이고 매우 약했다. 그러나 이 작은 여걸(女傑)이 그 날 행동한 태도나 나타낸 용기로 미루어 보건대 그녀는 군인의 심장을 가졌음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신호기 기둥 위에 얼마만큼 기어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이 즉시 나타나서 그녀에게 기둥에서 내려오라고 말했다. 작은 그녀는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고 읽기를 계속했다. 이 건방진 언행이 일본인을 분노케 해서, 그는 총 끝에 꽂은 대검을 꺼내 그것으로 그녀의 팔을 마구 찔렀다. 그녀는 기둥에서 떨어졌고 한 쪽 팔이 얼마쯤 절단되었다.
군인은 그녀의 생명을 잃은 손에서 떨어져 땅에 굴러 있는 선언서를 잡아채려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군인보다 훨씬 빨랐다. 왼쪽 손을 뻗쳐서 소녀는 그것을 주워 올렸다. 비틀거리는 발로 버티고 서서 그녀는 약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낭독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이 야만인은 대검으로 그녀를 찔렀는데 이번에는 왼쪽 팔이었다. 그리하여 이 작은 여걸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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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자료와 함께 자비로운 무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것은 우리 외국인들이 본 많은 광경 속의 하나이다. 피가 끓어오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고
“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이 약간의 이야기들은 한국민족의 진실한 특성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나타내 준다. 한국을 비방하는 자들이 한국인에 대해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어떤 형용사를 사용하건 간에 한 가지 뛰어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의 정신을 정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이 한 가지 공통 목표 아래 단결하여 기꺼이 그들의 모든 것을 바치려 하는 2천만의 단일 민족은 어떤 다른 나라나 나라들에 의해서도 꺾어질 수 없을 것이며 꺾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정당하며 때가 되면 전 세계가 그것을 알 것이다. 세상은 이기적이고 냉정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그러한 민족이 멸망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을 것이고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 가운데에는 아직도 정의의 정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비극에서 한국 어린이들이 한 영웅적 역할은 우리들에게 그들이 질서와 체제를 유지하는 능력과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현재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한국의 모든 친구들은 한국이 곧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되어 또다시 이 세상의 저쪽 부분에서 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민주주의의 이상을 확립하는 데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거주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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