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또한 성령으로 행합시다(갈5:24-26) /손성은목사

baromi 2008. 5. 28. 15:26

제목 : 또한 성령으로 행합시다
말씀 : 갈라디아서 5장 24-26절
설교 : 손성은목사

 

 

http://www.samil.org/board/vod.php?Code=J&No=212 (동영상)

 

 

 

 

삼일교회주일설교/2008년5월24일

또한 성령으로 행합시다

(갈5:24-26)

 

제가 영국생활하면서 놀랜 것들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데 자기는 크리스챤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성탄절이나 장례식같은 날에 교회당에 갑니다. 그게 문제라면, 그렇다면 교회당에 매주일 출석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성경에 정의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몇 가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24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까?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게 될 것이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못박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사도는 앞부분에서 신자들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성령의 소욕이란 성령님의 원하시는 바에 의해서 일어나는 소원입니다. 육체의 소욕이란 나의 옛사람, 자아중심의 삶에서 일어나는 소원을 말합니다. 이것들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셔서 여러분이 교회당에 오려고 할 때, 전화가 따르릉 옵니다. 오늘 동창회 하는데 기억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갈등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참석못했는데, 이번에도 못가면 친구들이 날 뭐라고 할까? 이런 유혹들이 우리 생활 속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유혹, 바로 육체의 소욕이라고 합니다. 이 소욕을 따라서 자꾸만 행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19절부터 21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추한 일들을 행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소욕을 쫓아서 행하게 되면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을 맺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해서 바울사도는 지금 그리스도인은 누구냐 하면서 24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옛사람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을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아직 죽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죽은 시체인데도 수염이 나고 손톱이 자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죽었는데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뿌리를 통째로 뽑아내었는데도 아직 잔뿌리들이 남아서 계속 기회가 있는 대로 땅 위로 올라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옛사람을, 육체와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일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못박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최소한 여러분의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셔서 육체의 소욕을 계속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유혹을 당할 때에 피할 길도 주시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증금으로 우리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사도는 강조하기 위해서 25절에서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살아났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서 무엇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당에 온 것은 성령으로 행한 것인데, 교우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에는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겠습니까? 


바울사도는 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우리들을 위해 26절을 기록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으로 행하는 것’을 대단히 낭만적으로 고차원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아예 평범한 사람들은 엄두에도 둘 수 없는 ‘성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성령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1)바쁘게 생활하다보면 부부간에 대화가 적어지고 그러다 아예 형식적인 이야기만 주고 받으면서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됩니다. “여자가 뭘 알아”, “돈도 못벌어오고” 이런 말들이 튀어나오려고 합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이런 말이 튀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부부상호간에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대개 부부싸움은 부부끼리의 자존심의 대결입니다. 당신집안은 왜 그래? 하는 말을 들으면 가장 신경질이 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자기집안이 더 잘났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왠지 누군가를 뭉개는 것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으쓱해 집니다. 이 자기도 모르는 우월감, 이것이 ‘헛된 영광’입니다. 좀 잘나고 못나면 어때요? 동내꼬마들이 놀면서 싸우는 것을 보십시오. 누가 대장이 될까 하면서 울고 불고 하는 것을 보면 우습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자존심대결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습니까?


2)교회생활을 하는 중에는 헛된 영광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교문화권에 있는 한국교회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직분을 명예직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직분이든지 직분은 ‘섬기는 것’입니다. 직분을 받아서 섬기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은근히 바라고 기대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목사가 부지런히 심방을 하고 교인들을 섬기기 위해서 부지런히 연구할 때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장로와 권사들이 받은 직분 감사해서, 기도하고 교우들의 형편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화하고 심방하는 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직분은 섬기는 것이지 대접받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12장8절에서는,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보살피고 돌아볼 때에 성령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삼일교회 교우 여러분! 3)이번 주일 직장에서 학원에서 여러분의 동료들과 만날 때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겠습니까? 헛된 영광을 다른 말로 하면 ‘허영’이라고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란 소설을 보면 주인공 ‘크리스챤’이 거쳐지나가는 곳이 ‘허영의 시장’입니다. 온갖 화려한 것들이 머물러 있기를 부추깁니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서 영국의 유명한 작가 새커리라는 사람은 빅토리아왕조의 영국사회를 ‘허영의 시장’이라고 묘사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사회는 어떻습니까? 허영의 시장이 아닙니까? 그런데, 존 번연은 바로 이곳에서 크리스챤의 친구 ‘믿음’이란 사람이 순교를 당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허영의 시장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참믿음인가 아닌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참믿음은 이 허영의 시장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시장을 통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 허영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성령으로 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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