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신학자료

[스크랩] 율법이냐 은혜냐에 대한 양무리마을의 입장은 이미 덧글로 남겼습니다. 참고바랍나다.

baromi 2008. 5. 23. 18:24
신재연님의 글과 그레이스님이 양무리마을 주인장인 홀리조이님의 그 책에 대한 평을 이미 했기에
추가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그 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직접 루터신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시고 스스로 깨닫기 바랍니다.
이미 아래와 같이 밥상을 다 차려주었음에도 그 책의 문제점과 연관지어 생각을 하지 못하시면
저희로서 어떤 답변을 드려도 무익할 뿐입니다.
 
본 양무리 마을은 루터신학의 영향을 받은 디한의 책 "율법이냐 은혜냐"가
개혁신학과는 전혀 다르고 또한 율법과 복음의 관계가 서로 대립적 관계로
오해케 하는 글임을 재차 말씀드리면서, 그 책에 대한 그 어떤 언급이나
게시물에 대해서 올리는 것을 정중히 사양하는 바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율법을 이해합니다. 율법을 받아서는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곧 거듭나는 자들만 율법을 필요로하고 이해하게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기전에 먼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율법을 주기전에 먼저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본향을 먼저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후에 율법을 허락했습니다. 곧 은혜후에 율법은 필요한것입니다. 율법의 힘은 정죄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구원을 베푸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허락하시는것입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시는 것입니다. 08.05.17 00:26

율법이 먼저냐? 은혜가 먼저냐? 의 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은혜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이렇게 살라고 주신것이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순서를 보면 홍해를 건넌후(세례받은후)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 일점일획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08.05.17 00:27

문제는 제사에 대한 문제인데....구약과 신약의 차이로 생기는 문제로 율법을 어떻게 지킬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신약의 율법과 구약의 율법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통해서 깨닫기 바랍니다. 신약은 구약보다 더 엄격하다는 사실은 잊으시면 안됩니다. 08.05.17 00:29

구약은 문자그대로 행하는 것이라면....신약은 그 의미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듯 합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것이 율법의 핵심이고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니.......구약이나 신약이나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것 그것이 이 모든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키는것이 중요하지 않나...생각되어집니다. 08.05.17 00:31

 

예전에 홀리죠이님에게 배운 내용입니다, 엠알디한의 율법과 은혜의 개념은 루터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루터주의신학은, 루터의 복음과 율법의 "전적인 대립적 관계"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서 독일의 경건주의가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8.05.17 09:56
이러한 견해에서 독일의 경건주의가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카페나 , 이근호목사의 신학의 경향들이 이런 복음과 율법의 대립이라는 전제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반대해 온 것이, 개혁주의신학입니다. 개혁주의신학은, 율법과 복음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속에서 복음을, 복음 속에서 율법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해야 한다는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8.05.17 10:05
곧, 율법이 곧 복음이라는 식의 이해입니다. 물론, 율법 그 자체로서는 '죽이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율법이 성령으로 인하여 사용될 때에 그것이 복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율법이 어떻게 죽이는 의문이 되었느냐 하면, 성령없이, 그리스도없이 사용되고,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되고, 성령에 의해서 활용될 때에 그것은 생명으로 인도하고, 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좌표이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칼빈같은 이는, 율법의 세 가지 용법으로 잘 정리하였습니다 08.05.17 09:57
율법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소위 '성령의 법'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오류가 바로, 율법의 복음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루터주의적 발상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은, 결코 거룩하고 선한 '율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08.05.17 09:57
기록된 율법의 '정신'과 '영'을 깨닫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이시고, 그것을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행하게 하시는 이, 행할 수 있게 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을 '성령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상의 면에서 볼 때, '모세의 법'과 '성령의 법'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같은 것이면서 또한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셈입니다. 08.05.17 09:58

율법과 은혜를 디한과 같이 대조시키면 이스라엘과 신약의 하나님 곧 교회의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08.05.17 09:59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바로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