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스크랩] Re:참고로 이광호목사님의 글입니다,(정신지체아의 성찬참여와 유아세례에 관한 글)

baromi 2008. 2. 8. 13:12

'정신지체자의 성찬참여'에 대하여

(이 글은 고신대학 교회 송영목 목사님의 질의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의 답신입니다)

송영목 목사님, 안녕하세요? 귀국 후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지난번 보내주신 논문은 감사하게 잘 받았습니다. 이번 가을 출간 예정인 '진리와 학문의 세계' 11권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최근 황창기 교수님을 만났을 때 우연히 송 목사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송 목사님에 대한 황 교수님의 학문적 신뢰가 매우 높더군요. 송 목사님의 학문활동이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바르게 세우는데 기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송 목사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신 정신지체자의 성찬참여 문제에 대한 저의 소견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찬은 세례교인으로서 입교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성찬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장로회(당회)의 철저한 신앙교육과 더불어 전 교회 앞에서의 순전한 고백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정신지체자일 경우 그런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선 지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철저한 신앙교육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인 교회 앞에서의 신앙고백이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형편을 감안한다면 정신지체자의 성찬참여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정신지체자를 자녀로 둔 부모가 자기 자식을 성찬에 참여케 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부모가 그렇게 바라는 것은 그 부모에게 그만한 신앙이 있는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특별한 케이스로 다루어 그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에 대한 저의 좀 더 구체적인 견해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린다면 그 보호자인 부모가 자기 자녀가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 자녀를 주 안에서 양육해 온 부모가 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부모가 자기 자녀의 성찬 참여를 원할 때는 그에 대한 내적 검증이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당회의 신중한 살핌과 결의를 거친 후 교회 앞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선언에 의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유아세례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가 아직 신앙적 사고를 할 수 없고 아무런 교육이나 고백이 없는 상태에서 그로 하여금 유아세례를 받게 합니다. 물론 교회는 그 아이의 부모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장로회의 신앙적 보증에 의해 그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아직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그 아이가 성장하여 입교할 때까지 교회와 부모는 신앙을 통한 양육을 책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유아일 때도 교회는 마땅히 그를 언약의 자녀로 받아들여 교회에 속한 성도로 인정합니다. 이는 마치 일반 가정에서 아직 독립하지 못한 모든 어린 자녀들을 식구 속에 포함시키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유아세례와는 다소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정신지체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신지체자의 신앙 교육 역시 그 부모와 교회가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판단능력이 부족하고 온전한 사고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부모와 교회는 그를 언약의 식구로 받아들여 교회의 가족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부모와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고백적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신지체자인 성도가 성장했을 때 혈통적 보호자인 그 부모가 자녀의 성찬참여를 원할 경우 그의 성장을 지켜본 교회는 신중한 검토를 통해 그 허용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즉 장로회(당회)는 성찬 허용에 앞서 그 부모의 증언과 더불어 그가 언약의 자녀임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회는 정신지체를 가진 이가 본 교회의 입교인으로 받아들일 만하면 교회에 공포하고 성찬에 참여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입니다만 다른 학자들의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서 학위과정을 마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한 건전한 개혁교회들은 이럴 경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교회적 적용과 신학적 연구가 어느정도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만 혹 그런 논문을 접하게 되면 저에게도 자료를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의 가정과 고신대학 교회 위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연구활동에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4. 10. 1

이광호 목사

 

 

유아세례에 관하여

(이 글은 대구 은진교회 박상현 목사님이 질의해온 '유아세례'에 관한 목사님의 견해입니다)

 

박상현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목사님이 유아세례에 관한 저의 견해를 물으신데 대한 답변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유아세례 문제는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신학적 해석을 요구받아 온 분야입니다. 종교개혁시대의 아나벱티스트들은 개인적인 뚜렷한 결단이 없이 진정 교회에 속할 수 없다고 여겼으므로 유아세례는 부인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장로교에서는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세례 뿐 아니라 유아세례 역시 형식적으로 의례화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확한 신학적 해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신실한 분들 가운데는 그런 형식적 유아세례에 대한 영향으로 인해 유아세례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건전한 교회에는 유아세례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유아세례가 왜 꼭 있어야 하는 교회의 제도인가 하는 것을 논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대한 설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교회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 교회는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영적인 경험을 한 성도들이 그 고백과 함께 세례의식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 교회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자녀를 얻었을 때 교회가 그들에 대해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아세례 자체가 구원의 효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자기 판단에 의해 세례를 받을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 아이를 주님의 뜻을 좇아 양육하겠다는 교회적 고백과 결단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정회원인 육신적인 부모는 유아세례 의식을 통해 그 아이를 '교회의 아이'로 인정하고 더 이상 자기 개인의 사적인 자녀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를 받은 자녀들에 대해서는 그 부모가 자기 욕심이나 욕망에 따라 양육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 대신 주님의 몸된 교회의 거룩한 뜻에 따라 양육해야만 합니다.

유아세례를 받게 한 부모가 자기의 욕망에 따라 자녀를 세속적으로 훌륭한 인물로 키우려 하고 세상의 조류를 따라 양육하려 한다면 유아세례를 잘못 받게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아세례에 있어서 유아세례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유아세례의 수혜자는 원리적으로 그 부모와 전체 교회가 일차적 수혜자라고 믿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유아세례 자체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녀가 태어났을 때 8일만에 할례를 행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아이의 신앙이나 고백을 확인하여 할례를 베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그 부모들이, 이스라엘을 할례받은 민족으로 이어가겠다는 하나의 중요한 언약적 선언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겠다고 하는 중요한 선언적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유아세례 제도가 있음은 유아세례를 받는 그 아이를 위해서라기 보다 차라리 교회의 정회원인 그 부모와 전체교회를 위하는 것이라 해야 옳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아세례를 받지 않을 경우 교육상 그 부모가 자녀양육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질 것입니다. 그러나 유아세례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속에 들어오게 되어 교회의 준 구성원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전체 교회가 공유하게 됩니다. 즉 모든 세례교인들이 그 유아세례 받은 아이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누구누구의 아이가 아니라 '교회의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받게 한 부모는 내용상 그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자기 주장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그의 몸된 교회의 양육의사를 늘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교회의 회원들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향유하고 교회의 조직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반해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은 자기의 고백에 의해 입교하기 까지 별다른 책임과 의무를 가지지 아니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유아세례의 수혜자가 유아세례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원천적으로는 그 부모 및 세례받은 전체교회 성도들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시대에 건전하고 올바른 유아세례 제도는 잘 보존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의미없이 아무렇게나 베풀어지는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마땅히 검증이 되어야겠지만 올바른 유아세례의 의미도 아울러 교회 가운데서 끊임없이 확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제도는 늘 말씀을 좇아 잘 해석되는 가운데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잘못 시행되는 예들을 보며 그냥 없애 버리자고 할 것이 아니라 참다운 의미를 찾아 그 의미를 교회 가운데 회복하는 것이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자들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의 견해가 성경의 가르침에 가장 잘 조화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완벽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는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 유아세례에 관련된 문제를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설명드린 바 그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를 권면드립니다. 어지러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잘 상고해 볼 수 있는 겸손한 성도들을 통해 주님의 교회가 잘 세워져 가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그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 4. 22

이광호 목사

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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