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물자료

[스크랩] 스테판 챠녹

baromi 2008. 1. 25. 08:27

     


 

스테판 챠녹은 런던에서 출생하여 1642년에 케임브릿지의 임마누엘 대학(Emmanuel College)에 입학하여, 거기서 회심하였다. 그는 그 대학에서 신학사(B.D.) 학위를 받은 후에, 런던의 사우스웤(Southwark)에서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였다.

1650년에 옥스퍼드의 뉴 대학(New College)에서 평의원의 지위(Fellowship)를 얻어,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과 죤 하우(John Howe)와 함께 일하였다. 1655년에 아일랜드 주지사 헨리 크롬웰(Henry Cromwell)의 전속 목사가 되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게 된 것은 더블린(Dublin)에서였는데, 거기서 원고없이 하는 그의 설교가 청중을 크게 감화시켰던 것이다. 왕정 복고 시대가 열림으로 해서 그는 그의 직위를 상실하고, 거의 은거하다시피 런던에서 살다가 죽었다. 잠시 동안 그는 크로스비 홀(Crosby Hall)의 교회에서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과 더불어 협동 목사(joint pastor)로 일한 적이 있었다.

차녹은 그의 생전에는 단 한 권의 설교집만을 출간하였으나, 사후에 그의 위대한 저자들이 출간되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논문』(4 Treatise on Divine Providence)이 1680년에,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관한 강화』(Discourses upon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가 1682년에 출간되었다. 그의 저작들은 1815년에 전 9권으로 완간되었는데 웨드워드 파슨스(Edward Parsons)가 표제를 붙인 전기(傳記)가 곁들여져 있다.

 

 

스티븐 챠녹

 

그런 런던에서 태어나서 케임브리지의 임마누엘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챠녹은 대학 시절에 은혜에 의한 구원의 변화를 체험하였다. 그의 첫 목회지는 런던의 사우스워크(Southwark)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24세의 나이에 옥스퍼드의 뉴 칼리지(New College) 교수가 되었다. 그 다음 더블린(Dublin)의 고관 가정에서 봉사하였다.

 

찰스 2세가 왕위를 확보함에 따라 챠녹의 앞길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는 15년 동안 런던에서 사역지 없이 살아야 했다. 그는 52세로 사망하기 전에 잠시 회중교회를 섬겼다. 그의 개인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높은 명망은 탁월한 저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너 오브 트루스(The Banner of Truth)는 중생에 대한 훌륭한 시리즈를 포함해서 그의 메시지를 3권으로 출판하였다. 챠녹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4권으로 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Teh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 이라는 시리즈 강해이다.

 

챠녹의 전집은 1815년과 1866년에 수집되어 출판되었고, 1997년에 5권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다음은 편집자의 말이다. "경건은 그의 생애의 장식이었고, 유용성은 그의 사역의 특징이었으며, 그가 그처럼 자주 설교했던 복음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에 위로였다."

 



챠녹의 문체는 당당하고 장엄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선언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썼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진술함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다루실 때 인지(認知)될 수 있는 자질(qualitie, 비인격적인 추상적 개념들이 아님)로 묘사하였다. 그의 문체는 중후하되 둔하지 아니했고, 세밀하되 결코 지루하지 아니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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