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통한 상행위(商行爲)'에 대하여 |
(이 글은 H기독교신문 S기자님이 이광호 목사님의 견해를 물은데 대한 답신입니다) ------------------------------------------------------------------------------------------------------ S 기자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제가 없는 동안에 집으로 전화를 주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수련회 강의차 출타했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귀가했습니다. 집에 와보니까 기자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이 도착해 있네요.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교회내 상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교회를 통해 상행위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미 그것은 커다란 문제입니다. 설령 악의가 없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은 교회 가운데서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 교회내 상행위에 대해서는 대략 세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각종 교회용품을 판매하면서 신앙적인 것인 양 선전하여 상행위를 하는 경우와 교회를 통해 다소간 자기 사업에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 그리고 특정 목적을 위한 물품 판매행위 등으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의 세가지는 그 성격을 뚜렷이 달리합니다만 저는 이 모두를 넓은 의미에서 상행위로 간주합니다. 우선, 교회용품을 판매하면서 그것을 신앙적 행위로 선전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합니다. 우리시대에는 교회당에 사용되는 물건들을 판매하면서 더 나은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마치 신앙의 정도를 나타내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회당을 짓는데 더 나은 건물을 짓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생각하게 한다든지 교회당 안의 강대상이나 의자, 그리고 찬양대원들이 입는 가운이나 각종 장식품을 예술화 내지는 고급화하는 것이 더 훌륭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가르치는 것 등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문들에 실려진 광고들을 통해서 그런 사실들을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통해 사업의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변호사가 있는데 그 변호사는 큰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자기의 업에 유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게 되면 그것 자체로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자기의 변호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인수가 얼마되지 않는 작은 교회에 속해 있으면 교회를 통한 자기의 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큰 교회를 선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예를 들자면 이사짐 센타를 하는 교인의 경우입니다. 그런 직업을 가진 교인들은 사업을 위해 큰 교회에 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교회내에 이사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며 큰교회에 속해 있으므로 자기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은 제가 직접 알고 있는 교인들을 통해 들어 알게된 것들입니다. 그런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시대에 종종 보고 들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러한 직업을 가지고 큰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므로 오해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판매행위를 하는 것도 없어져야 합니다. 근래 한국교회들 가운데는 전도회를 비롯한 각부서에서 물건을 파는 행사를 벌이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물건을 팔아 남긴 수익금을 선교비로 사용한다거나 어려운 교회를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좋은 일에 돈을 사용하면 좋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교회내의 상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가지고 이런 저런 종교적 사업을 하다보면 상당한 재미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에대한 재미를 얻게되면 점점 더 큰 규모의 상행위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조그만 규모의 판매행위를 통해 백만원을 벌어 선교활동을 하는 것 보다는 대규모의 판매행위를 통해 1억원을 벌어 선교활동을 하면 더 훌륭한 것이라 판단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적극적, 소극적 상행위들은 교회내에서 근절되어야 합니다. 비록 특별한 악의가 있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행위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다분히 있습니다. 교회의 표지인 하나님 말씀, 성례, 권징사역 보다 오히려 그러한 사업을 통해 더 많은 의미를 찾으려 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교회는 그러한 상행위를 통해 이익을 남김으로써, 교회가 돈을 가져야만 복음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입니다. 거기에는 부의 정도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으며, 물질이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추호도 없어야 하는 곳입니다. 단지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살면서 성실하게 일한 대가로 얻은 물질 가운데 일부를 주님의 교회를 위해 연보함으로써 그것을 가지고 필요경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자세는 철저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억지로 돈을 모으려 하지 않았으며 돈의 위력을 거부했습니다. 단지 성도들이 힘써 연보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교회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연보를 모았지만 모여진 돈을 통해 주님의 일을 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성도들 상호간 삶의 관계를 통해 교회를 세워갔던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교회는 물량화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물량화란 물질을 추구하여 목적을 이루려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교회의 물량화란 물질이 많고 적음이 마치 하나님의 일을 좌우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S기자님, 저는, 이 일이 우리의 시대에는 말하기 참 어려운 부분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경우에 해당되는 대다수 교인들은 사실 별다른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렇게 얻은 수입으로써 십일조나 일반연보를 많이 한다면 교회를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생각할 것이며, 교회의 공적인 기관에서 하는 행사를 통해 얻은 물질을 이웃을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도가 좋을 수 있으며 그들의 마음에 아무런 악의가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행위는 교회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믿음보다는 돈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며 결국 돈의 위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돈으로써 이웃의 가치를 가늠하는 습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실로 삽시간에 우리 생활을 파고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교회내에 편만해지게 되면 돈의 많고 적음이 교회에 필요한 인물 여부를 결정짓게 되는 위험에 빠져들게 됩니다. 돈이 많아 연보를 많이 하는 교인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교인이며, 돈이 없어 연보를 하지 못하는 교인은 교회가 덜 필요로 하는 그저 그런 인물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과 연보를 많이하고 적게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신앙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무엇을 해결하려 들거나 돈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S기자님, 급히 몇자 썼습니다. 기자님께서 저의 견해를 물으셨기에 저의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짧은 글로서 이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에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 정도에서 그칠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1. 1. 22 이광호 목사
|
'교회문제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Re 성경과 현지 이해 없이는 땅 밟기 의미 반감돼 (0) | 2007.11.17 |
---|---|
[스크랩] 해리 포터와 사타니즘(Satanism) / 펌 (0) | 2007.11.17 |
[스크랩] 수정교회 슐러 목사의‘재사고’는 무엇? (0) | 2007.11.15 |
[스크랩] 죽음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덫 기복신앙의 물질관 (0) | 2007.11.13 |
[스크랩] 베니힌등 "헌금으로 화화생활" 美 유명 목사 6명 탈세혐의 수사 (0) | 2007.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