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시간을 내어서 카페에 올려진 질문들에 대해서 답변을 작성할까 생각됩니다.앉았다 하면 연락이 오고, 아니면 밖에 나다녀야 할 일들이 연신 생깁니다. 하여튼 오늘은 시간을 내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Grace 님께서 출애굽기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구절, 곧 I am that I am. 이라는 구절을 I will be what I will be. 라고 해석해야 더 정확한 해석이라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제가 답글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랬습니다. 오늘 그것을 풀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에허웨 아쉐르 에허웨’라는 말입니다. 에허웨가 I am 혹은 I will be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아쉐르’는 관계대명사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에어훼’에 대한 정확한 이해입니다.
먼저, 분명한 것은, 이 ‘에어훼’라는 말의 어근이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되는 ‘하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다’(to be), ‘존재하다’(to exist), 혹은 ‘..이 되다’(to become)이라는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가 들어있는 구절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이 ‘하야’라는 동사의 ‘1인칭단수미완료형’(first person singular imperfect)이 바로 ‘에허웨’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미완료형’이라는 히브리어의 문법적 요소를 잘 이해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미완료형은, 일반적으로 ‘미래형’(future tense)로 이해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영어문법에익숙한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편의적인 전달에 의해서 생긴 오해입니다. 이 ‘미완료형’ 속에 ‘미래’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이라는 개념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 속에는, 어떤 동작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상들 중에 하나에 속한 것이다라는 식의 영어권세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상개념(tense-concept)보다는, 어떤 동작이 ‘완료되었느냐’ 아니면 ‘완료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완료형과 미완료형 두 개의 시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의 완료형은 영어의 ‘과거’와 ‘과거완료’, ‘현재완료’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면, 히브리어의 미완료형은, 영어의 ‘현재’와 ‘미래’ 혹은 ‘현재진행’의 개념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그 맥락을 통해서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히브리어해석의 관건이 되는 셈입니다.
문제의 본론으로 돌아와서, ‘에어훼’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출애굽기3:14의 앞뒤 맥락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묻기를, 이스라엘백성들이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자기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에어훼 아쉐르 에어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엉뚱한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나다’는 선언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나는 나다’라는 선언을 이어서 ‘에허훼’가 보내었다고 하시는 것(14절)과 동시에 곧 이어 ‘이어훼가 보내었다’고 말하라고도 하십니다(15절). 여기서 ‘에어훼’는 1인칭이라면, ‘이어훼’는 ‘하야’의 ‘3인칭단수미완료형태’(third person singular imperfect)입니다. ‘He is’ 혹은 ‘He will be’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입니다. 이 ‘이어훼’에 어떤 모음이 붙느냐에 대해서 논쟁들이 뜨겁습니다. 그 아래에 붙는 모음에 따라서 ‘여호와’라고도 발음되고, ‘야훼’라고도 발음됩니다. 원래의 문법적 형태를 따라서는 ‘이어훼’가 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될 것입니다. 문맥과 상황을 고려해서 그 단어의 의미를 추적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최근에 Baker출판사에서 나온 Evangelical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W.A.Elwell편집)의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항목의 기술들이 큰 도움을 제공해 줍니다. 이 사전에서는 ‘야훼’라는 신명의 뜻은 ‘구원에 있어서 지금 현재 활동하시는 분’(as present to act in salvatio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구원의 현장에 임재하시는 그 임박성(immediacy)과 임재하심(presence)을 강조합니다. 곧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지금 곧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 의도가 하나님 당신의 특성이요 성호이요 본질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에어훼 아쉐르 에어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견해인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나는 나다’는 단어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한글성경의 번역과 같이, 철학적인 탐구의 흔적을 드러내는 해석보다도 상당히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다’는 선언이 어떤 하나님 당신의 존재의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문맥과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스스로’라는 말은 히브리어본문에는 없는 말입니다. 나름대로의 번역자의 신학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출애굽기3장의 맥락에서, 이런 철학적 답변을 하셨겠느냐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모세가 질문한 것도 철학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불러 백성들에게 가라는 명령을 듣고는 질문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철학적인 답변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너희를 당장 구원할 자이다’는 식으로 답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는 지금 너희를 당장 구원할 자이다’는 식의 답변 자체가 그 분의 의도만 아니라 속성까지도 담고 있는 성호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야훼’로서 나타내시는 곳이나 때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시는 상황임을 고려할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훼’라는 이름은,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셈입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I will be what I will be라는 해석은 너무 좁은 해석입니다. 오직 하나님 당신께서만 구원자가 되시고 그 구원의 활동을 지금 나타내시겠다는 의도와 그 활동의 본질을 담고 있는 표현이 바로 ‘에어훼 아쉐르 에어훼’입니다. 아주 광범위하고 또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be 동사의 ‘미래’형태를 갖고 ‘보다 더 정확한 해석’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문법적으로 정확한 것 같으면서도 오해가 될 수 있는 ‘해석’임을 지적해 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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