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스크랩] 소명과 중생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나는가?

baromi 2007. 10. 5. 08:46

 중생의 필요성은, 인간은 본래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이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기뻐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기기 위하여 새로운 영적 생명을 부여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소명과 중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나느냐는 문제인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는 성인의 경우에는 외적 부르심이 항상 선행하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중생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새 생명을 심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중생은 내적 부르심보다는 앞서며 외적 부르심은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 또는 신생(新生) 보다 앞선다.   

 

 우리는 이 순서의 지시를 루디아의 전환에서 찾아 볼 수 있다.(행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외적 부르심),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엄밀한 의미에서의 중생)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한지라(내적 부르심)."

 

루이스 벌코프, 기독교교리요약 p.156

 

--> 이 책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 조직신학 하권, 구원론을 살펴보면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되면 그 글도 함께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코프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주장하기를... 부르심과 중생과 회심은 동시적 사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구원론의 (시간적 순서가 아닌) 논리적 순서상, (좁은 의미-엄밀한 의미에서의) 중생이  내적 부르심 보다 앞선다고 말합니다. 그의 조직신학 구원론 편에서 중생은 잠재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내적 부르심은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통상적으로 구원의 순서를 "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수양(양자됨)-성화-성도의 견인-영화"로 흔히 들어 왔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마치 구원의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라 하더라도 소명이 중생에 앞서는 것으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벌코프는 이와는 다른 견해를 펴고 있습니다. 중생이 소명에 앞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이전에 알고 있던 바 구원의 순서에 대한 개념에 혼동이 오기에 두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구원의 흔히 소중회신칭양성성영(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양자됨-성화-성도의 견인-영화)으로 자주 외워왔던 그러한 구원의 순서는 누가 제일 먼저 또는 어떤 책을 보면 그렇게 구원의 순서가 제시되나요? 이것이 저의 첫번째 질문입니다. 물론 대개의 조직신학 책에서 이렇게 소개되어 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책에서 어느 학자가 그렇게 주장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일전에, 이것을 알아보고자 소교리문답을 보았으나 소교리와 웨신에서도 이러한 순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순서로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웨신에서는 효과있는 부르심(10장) 다음에 바로 의롭다 하심(11장)에 관하여가 제시되어 있고, 중생과 회심에 관한 내용 특히 회개에 관한 내용이 뒤에 제시되어 나옵니다. 소교리문답에서는 윌리암슨의 소교리문답 강해의 개요에선 효력있는 부르심 다음 회개가 그리고 신앙에 대한 내용이 개별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칭의,양자 이런 순으로 이어집니다. 내용상으론 소중회신칭양성성영이 다 다루어지는 지는 저도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 할 일로 여겨집니다. 일단, 형식상으론 소교리든 웨신이든 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양자-성화-성도의 견인-영화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위의 구원의 순서에 대한 전개가 일반적인 것이라면 어느 학자가 어떤 책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지를 알고 싶습니다. 소중회신칭양성성영을 주장하는 학자는 누구이며 어떤 책에서 그렇게 주장되어지는지 말입니다.

 

 두번째로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애초에 묻고 싶었던 질문인데, 소명과 중생이 동시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논리적 전개상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논의의 범위를 좁힐 필요성을 느낍니다. 소명에는 외소와 내소가 있기 때문이고, 중생도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질문 드리고자 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 즉, 좁은 의미에서의 중생과 내적 부르심에 관한 것입니다. 둘 중 어는 것이 먼저 라고 보아야 하나요? 위의 벌코프의 글에 따르면, 외적부르심이 먼저고 그 다음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중생이며 그 다음이 내적 부르심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소중회신칭양성성영"을 주장하는 학자는 누구이며 어느 저서에서 그렇게 주장되어 집니까?

2.좁은 의미에서의 중생과 내적 부르심 둘 중 어느 것이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논리적 전개상 먼저라고 보아야 합니까?(위의 글대로 본다면, 루이스 벌코프가 엄격한 의미에서의 중생을 내적 부르심 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는 것은 분명한 듯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혁파 정통신학이 루이스 벌코프와도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을 수 있다고 보기에 질문 드립니다. 만일, 중생 보다 내소가 앞서는 것으로 본다면 그 근거도 분명히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주장하는지 말입니다. 아니면, 성경을 토대로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열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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