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자료

신학의 흐름(홍은개혁신학연구원에서 펌)

baromi 2007. 9. 19. 08:20

I. 신학의 발생기(1-3C)

이 시대는 고대 동방문화권(셈족의 문화-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유역) 안에서 기독교가 발생하고 신앙에 대해 이성적 이해가 싹튼 시기이다. 초기에는 이교도들의 중상이나 공격에 대한 답변이 필요해서, 또는 기독교 내에서 발생하는 이단에 대해 논박할 필요가 있어서 주로 변증학적 연구가 일어났다. 이 시기의 주 관심사는 말씀의 신비 즉 로고스(Logos)에 대한 탐구였다. 그래서 성삼위 교리, 창조 교리, 강생 교리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있다. 이 시대의 학자로서 많은 변증가(辨證家)들을 볼 수 있다.

 

A. 속사도시대 교부들

초 기에서 2세기 중엽까지의 학자들을 속사도시대 교부라고 한다. 그들은 사도들의 직접제자(直接弟子)이거나 그 가까운 제자들이며 초기에 새로 출발한 교회의 실생활을 보여주는 그들의 글은 문학적이나 철학적으로 보아 후대의 학자에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그러나 사도들의 설교에 가장 가까운 증인이며 또 반영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원에 관해서 볼 때 비길 수 없이 중요하다. 그들의 저서가 사도들의 가르침의 반영이라는 점은 그들이 인용하는 풍부한 성경구절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가르침은 교회의 실생활의 반영일 뿐 체계적인 논술은 결코 아니었다.

 

1. 성삼위론과 기독론

성삼위론은 초대교회에서 세례 집전 시에 사용하던 신경의 내용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 삼위와 그 일체를 말하고 나중에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으로 차츰 확실히 굳혀 나갔던 것이다.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성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임 (Docetism)을 강조하고 있다.

 

2. 교회론

속사도시대 교부들은 초기 교회의 조직과 제도들에 대해서 말해준다. 교회는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조직된 사회로 2C부터 지방교회에까지 교직과 성례, 예배 제도들이 잘 이루어지게 되었다

3. 신조론

1) 전능하신 성부를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자를
3)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4)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묻히시고
5) 제 3일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6) 하늘에 오르사 성부 우편에 앉으시고
7)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8) 성령을
9) 거룩한 교회와
10) 죄의 사함을
11) 육신의 부활을 믿음의 요조(要條)로 하였다

 

4. 주요 서적들

1) 디다케(Didache)(12사도의 교훈: 1C 말)

저자는 미상이고 70-90년 사이의 저서로 본다. 책의 내용은 신자들의 사회적 가변적 본분을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애덕(愛德)의 본분과, 죄를 피하고 덕을 베풀 것과 범죄하면 참회할 것 등,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세례의 집행과 수요일 금요일 집회를 지킬 것과 하루 세 번씩 주의 기도문을 외울 것과 성찬의 집전(執典) 절차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설교자의 의무와 선교자에 관한 것과 여행자에 관한 것과 예언자의 생활을 보장할 것과 주일을 지킬 것, 그리고 감독 장로를 선거하는 것과 형제에 대한 충고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2)로마의 클레멘스(Clemens)(1C):A.D 92-101년간 감독

제 4대 로마 감독 클레멘스의 고린도인에게 보낸 서간이 남아 있다. 1C 말엽에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서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이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사랑과 순종과 참회와 겸손과 양순을 권고하면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지키라고 권장한다. 그 질서는 감독, 장로, 집사, 평신도 등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파견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신 것처럼 사도들도 그들의 첫 신자들 중에서 감독이나 집사를 세웠으니 그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3)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69-2C초)

7 편의 서간이 남아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그리스도는 신성뿐만 아니라 참된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
감독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설명하고 주교, 신부, 부제의 교회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주교는 지역교회의 초석이며 지역신자 공동체의 장이 되며 감독으로 정통교회를 수호하는

수직자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처음으로 가톨릭 교회란 말을 사용하였으며 로마 교회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문장의 문맥으로 보아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영성 생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체험하고 있으며 순교를 통한 영생을 갈망하고 있다.

4) 허마스(Hermas)의 목자서(Pastor)

처음에는 평신도였으나 결혼 후 로마 교회의 사제가 되었다고 한다. 목자서(Pastor)의 1부와 3부는 그리스도의 현현에 관한 것이고 2부는 윤리에 관한 것인데 주로 초대교회의 대속(代贖)에 관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죄인에 대한 대속이 엄격했다는 사실은 상식이지만 허마스가 극단적 엄격주의자는 아니었다. 대속(代贖)의 필요성과 효과를 논하면서 통회와 대속으로 사해지지 않을 죄가 없다. 그리고 공식적 사면은 일생에 한 번 뿐이다(이 풍습은 동방에서 4C까지, 서방에서는 5C까지 계속되었다). 죄인의 회개와 사면 사이에는 중요한 대속(代贖)의 의무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B. 2세기의 변증가들

1세기 말경부터 기독교의 세력이 커가면서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여러 중대한 난관에 부딪히고 신생 기독교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첫째 : 외적(外敵)은 로마제국의 다신론자와 황제숭배자들이었다. 다신론으로 국가 통일의 기초를 삼고 있던 로마제국에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배타적인 신앙과 우상숭배라는 크리스챤들의 태도는 로마제국에서 볼 때 반역자들이었다.
둘째 : 내적(內敵)은 유대교이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키자는 유대화 주의자들이다. 기독교를 개량된 유다이즘(Judaism:유대주의)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순수 기독교를 주장하는 자와 유다이즘들과의 갈등이 있었다.
세째 : 위험은 영지주의(靈知主義)이었다. 영지주의는 고대의 다신론과 일신론과 희랍철학을 혼합한 것이다. 신화와 성경과 철학을 혼합하므로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철학으로 전락시켰다. 결과적으로 신앙보다는 지식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이론이었으며, 삼위일체 신비를 무시하여 인간의 지성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였다.
넷째 : 위험은 몬타니즘(Montanism)이었다. 몬타니우스(Montanius)는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계시는 구약의 계시, 신약의 계시, 자기들이 받았다는 성령의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임박하고,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이 세상에 천년왕국을 재건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위험에 대해 교부들은 교회를 옹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 중에서 대 학자로는 다음의 사람들이 있다.

 

1. 져스티누스(Justinus.165-6)

기독교에 귀의한 사람 중에서도 최고의 철학자로 희랍철학의 로고스(Logos)를 기독교 신학에 도입한 사람이다. 성삼위 교리에 대해서는 성자가 성부에게 종속되며,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만을 주장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구속사업은 진리의 계시와 사람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마리아는 구속사업에 관여하며,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설을 주장하고, 또 세례로 사람이 재생되고 조명되며 미사가 제사라는 것을 설명하고 미사의 절차를 보여주고 있다.

 

2. 이레네우스(Irenaeus 202-3)

원래는 동방사람으로 커서 갈리아에 건너가 리용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당시의 병폐인 영지주의가 주장하는 지식(Gnosis)에 대한 논쟁으로 유명하다. 그는 계시진리를 종합적인 안목으로 인식하는 노력을 통해서 신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전통신앙의 표준이 사도 전승을 해설하며 현재의 교회가 믿는 것으로 이 교회는 사도들에게서부터 대를 이어오는 주교들에 의해서 사목(司牧)되는 교회라야 하며. 로마교회의 계승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계시자요, 인간의 구속자요, 새로운 아담으로서 전 인류를 자기 안에 총괄한다고 하였다.

 

C. 3 세기의 신학자들

2C 말에서 3C 초에 걸쳐서 교회에 대한 박해는 더 치열해지고 교회는 새로운 이단들과 투쟁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서 3C에는 성삼위 교리에 대한 논쟁을 통해 신학이 학문으로 발전하였고 중요한 신학의 중심지는로마,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등이었다.

 

1. 로마의 히폴리투스( Hippolytus 175-235)

성삼위 교리에 있어서 성자의 위치를 강조하면서도 성삼위를 구별한 것이 특징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윤리를 강조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2C 말에 교리학교가 개설되었고 여기에 클레멘스가 있다. 그는 박학한 사람으로서 고전과 희랍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기독교가 진짜 철학임을 강조하고 세례, 견진, 성찬 및 참회를 성사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생활의 원칙을 가르치고 신비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2. 오리게네스 (Origenes 185-252)

클레멘스의 제자이며 고대 기독교 역사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서도 아우구스티노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학자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결정판을 내려고 노력하며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지도했으며 변증가로서 신비학자요 교의신학자이다.
그의 성삼위론은 {성부께 영광(Gloria Patri), 성자를 통하여(Per Filium), 성령 안에서(in Spiritu Sancto])}을 강조한다.

 

3.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0-220)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있는 라틴교회 최초의 신학자로서 그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를 만들어냈다.
本質: Substantia, 位: Personae, 性: Natura

 

4. 키푸리안(Cyprianus 258)

카르타고의 주교로서 주교권의 확립과 교회의 일치를 역설했고 배교자의 재세례 문제로 로마와 대립하였다 .

 

 

II. 신학의 정립기(4-7C)

이 시대는 3C 동안 단속적으로 가해지던 박해가 끝나고 비로소 교회가 드러나게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어서 찬란한 기독교 문화를 개척할 수 있었던 시기이다.

A. 시대배경

A .D 313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가 기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고(밀라노 칙령), 380년 테오도시우스(Theodotius)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391년에는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금지하였다.
교회가 오랫동안 칩거하던(蟄居) 상태에서 벗어나고 로마 제국 안에서 성행하는 희랍 문화와의 접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희랍문화의 골자는 매사에 합리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희랍철학은 기독교를 설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도를 넘을 때는 신앙을 이론화하고 또 종교를 철학화(哲學化) 하는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 교부들의 과제는 이 철학적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그 위험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둘째 문제는 교회가 숨어서 각자 신앙을 보존하기에 급급하던 상태에서 공식예배와 공적활동이 가능해졌으므로 로마제국 안에서 하나의 사회단체로 성장하고 있었다. 여기에 법률적인 로마의 여러 가지 사회제도를 모방하여 교회를 조직하고 운영하게 됨으로서 질서 있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 조직화 내지 사회화가 지나치게 될 때 교회의 신앙생활이 신학에 의해서보다 교회법에 의해 지배되고 교회와 국가가 병립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대립할 수도 있었다.
교회 자체가 로마 제국의 사회 조직을 본뜬 사회조직이 되고 또 국가의 보호를 받음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특권을 누리기 때문에 교회와 국가가 더욱 밀접히 결합되어 국가의 간섭이 늘어나게 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됨에 따라서 교회도 차차 동·서로 양분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따라서 동·서방교회의 분리는 중세기에 완결되었지만 4C부터 시작되었다.
4C 말부터 라틴어가 로마의 공용어로 되었으나 동방은 희랍어를 계속 사용하여 사고방식이나 율법이나 관습의 차이가 생기면서 신앙의 분리 이전에 민족 감정으로 인해서 분리되었다. 결국 이러한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써 신학에 있어

서도 동방 교부들과 서방교부들의 구별이 생겨나게 되었다.
동방 교부라면 희랍어 지역 학자들을 통칭하는 것인데 학문의 중심지로 알렉산드리아, 안티옥, 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이 있다. 이 세 학파들은 서로 학문적 논쟁뿐 아니라 주교들의 권력다툼도 겸하고 있었다.
서방 교부들은 라틴어 지역 학자들로 학문의 중심지는 첫째는 로마요, 둘째는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였다. 서방 교회에서는 로마의 권위가 너무 컸기 때문에 사소한 시비를 제외하고는 주교들의 권력다툼은 별로 없었고 항상 로마의 권위에 도전하는 동방 주교들을 견제하는 일에 바빴다. 그러나 아직까지 동·서방 교부들의 신앙의 일치는 완전하였고 두 신학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부들은 신앙의 이론적 탐구와 아울러 신학과 교회의 실생활의 연결에 주력하였고 그들은 학자로서의 활약과 동시에 목자로서 직무를 이행하면서도 그 시대의 사고방식인 신 풀라토니즘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신학을 전개할 때는 희랍 철학의 개념과 용어와 논리를 원용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희랍철학을 완전히 신학연구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B. 동방교부

동방 교부들의 신학 주류(主流) 경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교리였었다.

1.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373)

알렉산드리아의 총주교로 니케아 공의회(3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옹호하였다. 그는 희랍어와 라틴어의 성삼위 교리와 용어를 대조하여 일치시켰다.

2. 바실리우스(Basilius 329-379)

갑바도기아에 있는 카이사라의 주교로 삼위일체론을 확립하였다.

3.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azianze) 주교 (329-390)

시인이요 설교가인 그는 성삼위 교리를 옹호하고 체계적인 기독론을 시도한 학자이다.

4.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Gregorius-Nissa)

닛사의 주교-바실리우스(Basilius)의 친동생(335-394) 바실리오의 아들인 그는 철학자요, 신비신학자요, 설교가인데 성삼위 교리와 성찬교리에 대해 유명하다.

5. 키릴리우스(Cyrilus(Jerusalem 386)

아리안주의(Arianism)을 반대한 신학자요 유명한 교리문답을 남겼으며 그의 저서에서 그 시대의 성례를 잘 나타내고 있다.

6. 크리소스톰(Joannes Chrysostomos 354-407)

대웅변가요 콘스탄티노폴의 총 주교였고 고대 동방교회의 대 성경 주해가요, 설교가요, 윤리학자였다.

7. 키릴리우스(Cyrilus(Alexadria 444)

동방 최대 교리 신학자인 그는 성삼위 교리, 강생 교리, 성모 교리의 대가이며, 성서주석과 영성생활의 대 지도자였다.

 

C. 서방교부

서방 교부들의 주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론과 실천신학의 많은 연구가 있었다.

1. 힐라리우스(Hilarius 367)

포 이티어(Poitier)의 주교로서 특히 성삼위 교리에 대한 저서를 남겼으며 아리안주의 자들과 투쟁하였다.

2.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39-397)

밀라노의 주교가 된 그는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해 신학적으로 논하였고 성모숭배와 성직자의 의무에 대한 설교로 유명하다.

3. 히에로니무스(Hieronimus Jerome 350-419)

수도자이면서 동방교부들의 많은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서방 교회의 최대의 성경학자요, 성경전부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오늘까지 소위 벌게이트(Vulgata) 역이라 불리는 성경의 완성자이다. 또 그의 엄격한 수행생활은 유명하다.

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어거스틴)

교회 역사상 동서 고금을 통틀어 최대의 교부학자이다. 그의 신학은 12C까지 서방교회를 완전히 지배하였고, 13C 토마스가 계승한 이후 오늘까지 그의 영향은 지대하다. 플라톤(Platon) 철학에 심취한 그는 희랍철학의 개념과 논리를 자기 신학체계 구성에 이용하였으며 성경학자로서 특히 시편과 요한복음에 대해 무수한 걸작을 남기고 있다. 선악의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케우스(Manicheus) 이단을 반박하고 성인들만이 교회의 신자라는 도나투스 이단을 반박하며 교의 신학의 모든 면을 연구하고 말년에는 은총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펠라기우스}(Pelagius) 이단과 투쟁하였다. 그의 저서 {성삼위론}(De trinitate), {신국론}(De Civitate), {고백록}(Confessiones) {참회록}은 유명하다.

5. 레오 (Leo 461)

서방 교회의 강생 교리를 확립하였고 많은 목회(牧會) 설교와 서간(書簡)이 남아 있다.

 

 

 

III. 신학의 발전기

A. 중세 신학(8-15C)

1. 중세초기(8-11C)

5C부터 시작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그에 따른 고대 시대의 붕괴와 소단위 민족 국가의 형성기인 중세 초기에는 교회가 야만인들을 개종시키고 사회질서를 세우고 새롭게 생긴 신생 민족국가를 상대로 교회의 위상을 세우기에 바쁜 시기였다.
대중은 너무나 무식하고 겨우 주교좌 교회의 교리학교나 수도회 부속 학교에서 인문교육과 교리교육을 유지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조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그늘에서 맴돌았다. 10C는 정말 문화적으로 보아 암흑시기였다.
11C 후반부터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Anselmus 1109)는 신학을 이성의 요구와 구조에 맞도록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은 신앙을 전제로 하되 신앙과는 별도의 전적으로 독립된 지적 활동이었고 이 시대에 동·서 교회는 분리되었다(1054). 신학에 철학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고 교황권의 확립과 성장을 밑받침 한 교회법이 발달하였고 신학 안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2. 스콜라(Scholar 12-15C)

12C에 가까워지면서 중세 사회는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어서 도시가 형성되고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문물의 교환이 성행하면서 학문의 발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교회는 이 시기에 확고한 교황권을 세우게 되어 지방 주교들이나 지방 귀족들의 힘을 누르고 전 유럽에 교황의 명령이 통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전 유럽은 기독교화 되었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교회의 지도권이 확립되었다.
한편 십자군의 영향으로 서방에 도입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철학이 풀라토니즘(Platonism)을 대신해 모든 학문의 도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과 추리의 도구인 논리학과 인식론이 도입되었으나 점차 세상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인식 즉 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까지 신학에 도입되어 소위 스콜라 신학을 형성하였다.
스콜라철학은 글자 그대로 학교 교육으로서 논리적이고 실증적이고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이다. 이 스콜라 신학은 개념 구별을 엄밀하고 정확하게 하며 논리의 전개를 3단 논법에 의한 일사불란한 체계 안에 이룩하고 주관적 인식보다 객관적 인식을 중시하는 학풍이다.
이 학풍은 안셀무스에서 시작되었으나 아벨라드(Petrus Abelardus)는 이런 방법을 철저히 밀고 나가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 일반 사물은 물론이고 계시 진리까지도 철학적 설명을 가했고 데올로지아(Theologia)라는 단어를 보편화 시켰다. 아벨라두스식 스콜라 철학에 대해서 베르나르두스(Bernardus 1153)는 신학이 신앙생활의 일부가 아닌 순수학문이 되는 것을 맹렬히 비판하였다.
12C 말부터 13C 초에 걸쳐서 파리, 옥스퍼드, 볼로냐, 나폴리 등에 현대적 의미의 대학이 조직되고 거기서 스콜라 철학은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이 시대의 저명한 신학자로서는 알버투스(Albertus 1280)와 그리고 그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74)가 있다. 토마스는 알버투스를 따라서 객관적 인식으로서의 신학의 고유성을 주장하였다.
고대 교부들이 신학을 신앙생활의 일부로 간주한데 반하여 신심에서 독립한 지식으로서의 신학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위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인간인식과 세계인식을 그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채택하여 승화시키고 비상한 사변력(思辨力)을 동원하여 거대한 체계를 이루었다.
그는 신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관을 세우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찰하는 것이 신학이라 주장하며, 인생과 우주에 관한 그때까지의 지식을 신학에 흡수하여 조직화하였다. 그의 사고의 특징은 사물을 일단 세밀하게 분석하고 인식한 후에 대규모의 종합적인 건물로 재구성(再構成)하는 조직력이었다.
이 외에 유명, 무명 신학자가 무수히 배출되었으나 그들의 공통점은 자연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굳게 믿고 있는 자연신학과 초자연신학을 조직적인 체계 안에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13C 말경부터는 이 원칙에 대하여 회의가 생기게 되었다.
던 스코터스(Duns Scotus 1266-1308)는 인간의 자연이성은 자연계 밖의 것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개념을 하나님께 적용하는 유추법(Analogia)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의지에 의한 계시는 그대로 믿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학문과 신앙을 조화시키기보다 그저 병립시키는 태도로 윌리암 옥캄(William Occam, 1350)이 유명론(唯名論)을 주장한데 이르러 14-15C에는 스콜라신학이 정체(停滯)에 빠지고 종교나 신앙문제에 대한 인간 이성의 무력함이 사람들의 관심을 초자연 세계보다 직접적인 인간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생겼으며, 신앙문제는 무조건 승인할 따름이지 연구하고 탐색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 개혁 전의 개혁 주의자들

1) 죤 위클리프(John Wyclif 1324-1384)

옥스퍼드대학 졸업 후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 궁중 목사가 되었다, 국왕의 사절로 프랑스에 가서 교황 사절과 협상을 하기도 했다. 그는 1382년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표준이라 주창했고 속죄권(贖罪圈)을 부인하고 화체설을 배격하며 교황정치의 불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승려들의 독신주의를 비난하고 감독의 사치 풍조를 공격하였다.

2) 잔 훗스(Jan Hus 1367-1415)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그 대학 교수로서 총장까지 지냈다. 위클리프의 정신에 감화를 받아 교황 정치의 부패를 공격하고, 속죄권 판매를 반대하였다. 교회론을 저술하였다

 

B. 종교개혁 신학

르네상스(인본주의)의 영향으로 시작된 이 시대의 새로운 인간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연구함에 있어서 역사정신, 비판정신 뿐 아니라 세계를 정복하는 기술을 배우고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에 팽배한 비판정신은 종교계에서 마침내 종교개혁이라는 일종의 정신혁명으로 발전하였다. 종교개혁은 전통적인 모든 교리체계에 의문을 던졌고 교회생활의 모든 부분에 개혁을 주장하게 되었다.

1.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루터는 성경만 의지해서(Sola Scriptura), 은총으로서만(Sola Gratia) 구원이 가능하고 그것을 신앙만으로(Sola Fide) 얻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자기의 논거를 사도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에 두었으며, 율법과 은총, 행함과 신앙, 육체와 정신, 죄와 사죄, 죽음과 구원 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신학을 주장하여 세례를 제외한 모든 성례를 부인하고 성직을 부정하며 성경 외에 모든 교령(敎令)들을 부인하였다. 이런 상황은 대중에게도 호응을 불러일으켜 정치문제, 사회 문제화하여 결국 서방 교회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양분시키고 말았다.

2. 칼빈(Calvin 1509-1564)

칼빈의 이상은 정교일치로 신정사회를 건설하는데 두었다.
그는 기독교 강요, 신구약 성경 주석, 문답서, 설교와 서신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신학의 기초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에 두었다. 그의 5개 신조는 인간의 전적 타락, 무조건적 예정, 제한된 선택, 불가항력적 은총, 성도의 견인(堅忍) 등이었다
그의 신학을 보면 신 인식(神認識)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질은 알 수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참된 신 인식이란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광도 알고 그를 의뢰하고 찬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 무오(無誤)한 성령의 감동으로 된 말씀으로 보았고 이 성경에 의해 모든 것은 증명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을 고수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분이며, 이 삼위 안의 성령은 참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하여 일하시는 인격적인 영이라고 하였다.
칭의(의롭다함)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답했을 때에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의인으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신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이다.
칼빈은 이 칭의의 단계를 전제로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예정론에 있어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빚으실 때 벌써 선과 악, 구원과 버림 등이 정해져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 벌써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 할 자가 정해져 있다는 교리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이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인간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칼빈은 말하였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IV. 현대 신학기

A. 19세기 신학

19세기는 교회의 선교 확장의 위대한 세기였다. 이 세기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사회복음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 있어서는 신학적 곤란을 초래한 다윈(C. Darwin)의 진화론과 사회주의를 선언한 마르크스(Karl Marx)와 헤겔(Hegel)의 철학과 프러시아의 군국주의가 파시즘을 일으킨 때였다.
종교사상의 내부에도 18세기부터 내려와서 19세기에 영향을 준 사상이 있었다. 그것은 경건주의와 합리주의이다.

경건주의는 지나간 세대의 화석화(化石化)되고 경직화된 교리에 대한 반항으로서 회개와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헌신적 생활을 강조하고 열광적이며 인격적인 종교체험과 엄격한 도덕적 통합성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심을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강조하여 사회적 관심이 약화되었다.

합리주의는 희랍사상과 문예부흥(르네상스) 사상의 재현이었고 이신론(理神論)에 관련되어 있었다. 이신론은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였으나 그 세상을 방치해둔 채 무관심한 분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인간이성을 진리의 원천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죄와 구원의 교리를 가르치는 계시에 대한 사상은 불필요하게 되었다(계몽주의).

 

1. 칸트(1724-1804)

19세기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이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 이성의 유한성을 인정하였고, 도덕법을 강조하여 양심의 직관적 통찰인 지상 명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였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순수이성 비판)
{이성(理性)은 하나님 지식에 이르게 못하나 우리는 의지(意志)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선한 의지밖에는 선한 것이 없다.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은 지상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을 통해서인데, 논박될 수 없는 양심의 직관적 통찰을 의미한다}(실천이성 비판)
칸트는 신앙과 이성이 아니라 신앙과 경험 지식을 서로 대비시키고, 합리적 인간이 경험적 분석에 함축된 것을 인식하는 합리적 신앙의 형식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근대 신학에서 차지하는 칸트의 역할은 그가 종교적 신앙의 합리성을 주장하면서도 신학을 고전적 경험론의 침식으로부터 구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지상명령의 원천이 될 수 있고, 도덕적으로 되려면 어떠한 행위도 자유의지의 행위가 되어야 하며, 또한 선한 생활은 이 세상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보상을 받는 다른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실천이성 비판)
칸트의 도덕법에 대한 강조는 예언자의 종교에 그 배경을 두었으며, 그의 사상은 인간과 인간이성의 유한성(有限性)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칸트는 종교를 이미 인간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응답의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이신론적(理神論的) 하나님 개념은 잃은 자를 찾으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개념을 용납할만한 여지를 남기지 못하였다. 칸트에게 있어서 예배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이었다.

 

2. 슐라이에르마허(1768-1834)

종교를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고 말하면서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고 신학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아버지, 낭만주의의 창시자, 또 자유주의 신학의 효시라고 불린다.
슐라이어막허는 칸트의 합리주의와 도덕주의에 반대하여 반(反) 이성주의와 반(反) 도덕주의를 주장하였다. 그의 종교적 주관주의는 신이 단지 감정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본질 그대로의 신을 알 수 없고 신은 단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만 알려진다. 그는 또한 종교를 도덕적으로만 이해하려는데 반대하였다.
{종교는 감정이므로 지식과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구별된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직관(直觀)이며 감정, 즉 무한에 대한 지각(知覺)과 경험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그러한 마음이 아니라, 겸손하게 무한과 전체(하나님)에 자신의 감정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내어 맡기는 것이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정확한 신학적 이해나 형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신앙의 확실성이 계시에 대한 실존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것이다. 즉 그 신앙은 정확한 교리와 죽은 문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현존하는 관계(영적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신앙을 객관적 진리란 말 대신 종교적 경험이란 말로 해석될 때에 힌두교의 범신론과 구별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기독교는 혼합주의 때문에 약화되고 만다. 그는 종교가 역사 안에 뿌리내리지 못할 때와 그 종교의 실재가 자기 계시에서 인격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때에는 종교의 세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3. 헤겔(Hegel: 1770-1831)

헤겔은 철학적인 종합을 시도한 합리주의자로서 변증법을 주장하고,
{신(神)은 절대정신으로 그런 신은 모든 유한한 정신들의 본질이지 다른 정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자는 그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 속에서만 실재한다}
헤겔은 관념(Idea)과 생(生) 전체를 역동적으로 생각하였다. 정신이나 관념은 언제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계는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이 정신의 자기표현은 주로 그 관념을 체현(體現)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고 이 관념을 의미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과 집단들이 각 세대에 있는 것이다.
이 최고의 정신은 인간 생활에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변증법이란 방법을 사용하며, 주제(正)와 반주제(反) 및 종합(合)의 변증법이다. 그래서 헤겔의 변증법 중심에는 투쟁과 갈등이 있고, 진리는 대립에서 찾아진다. 종합으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일어나서 그것이 다시 새로운 반주제를 위한 주제가 된다. 이러한 투쟁과 고투는 전 생애를 통해서 나타난다. 칼 마르크스는 이 변증법을 경제영역으로 옮겨갔다. 그는 {절대정신}을 {물질}로 대체시켰기 때문에 마르크스 주의를 유물주의 사관(唯物主義史觀)이라고 말한다.
헤겔 변증법의 투쟁과 갈등은 국가를 통해서 표현되었다.
{국가는 지상에 존재하는 신적(神的) 관념이다. 그것은 신적 정신을 가장 충분히 표현한 것이다}
헤겔이 알렉산더와 시저, 나폴레옹 같은 군사지도자들을 이상적 지도자로 생각했으며, 마키아벨리와 독일 군인정신을 찬양한 것은 그가 얼마나 투쟁과 전쟁을 가치 있게 보았는가를 설명해준다.
칼 바르트는 헤겔주의를 자기신뢰(self-confidence) 철학이라고 하였다. 바르트의 글에서 헤겔은 이렇게 표현되어지고 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또 빗나가지 않게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 한 순간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바르트는 헤겔의 철학을 1700년-1914년까지 {현대인}이라고 불렸던 그 인간의 발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신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니체의 초인(超人)으로 인도하는 사상이었다. 헤겔이 보기에는 인간이 최고이며 가장 강력한 사람이 대중을 지배한다. 기독교 교리는 와해된 사변적인 추상개념이요 합리주의적 사고(思考)이다. 인간은 세계의 왕좌(王座) 위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세계 안에서 자기의 올바른 자리를 상실하였다.

 

4. 키에르케고르(1813-1855)

그는 개인적이며 실존적 인격적 헌신을 통한 그리스도의 경험을 주장하기 때문에 지식의 객관적인 측면을 무시하였다. 즉 신앙의 실존적 영역과 실존적 선택을 위한 이성의 부재나 불확실성을 강조하였다.
신학에 있어서 그는 신 정통주의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있다. 그와 신 정통주의자들은 기독교룰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부르조아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초월적이고 불가지한 신과 유한하고 죄악된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했다. 신정통주의는 신의 내재성과 계시의 직접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로부터 돌아서서 신앙의 위기와 믿음의 역설성과 부조리성을 강조했다.
종교적 신앙은 인간이 절망의 순간에 처했을 때 그 인간 영혼 속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신앙을 용납하면 인간이 비록 스스로 용납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용납해 주시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합리주의적 객관성}에 반대하였다. 그에게 진리는 주관성이요, 또 주관성은 진리였다. 신앙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주관적 헌신이었다.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되어진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합리적 이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혜로운 선물로써 각 신자들에게 임하는 계시를 벗어나서는 기독교에 관한 합리적인 변증은 없었다. 유한하고 죄 속에 있는 인간은 자신의 곤경을 타개할 자격이 조금도 없었다. 구원은 오직 전적 타자인 신으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눈에 뚜렷한 서양문명의 진보의 저변(底邊)에 정신적 사회적 붕괴(崩壞)를 보았다. 대중의 시대에 개인이 자기의 정체성(正體性)을 상실하고 인격이 저하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도록 인격적 헌신생활을 상기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항상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평을 남기고 있다.

{그리스도 자신 이외의 모든 수단을 깊이 불신했다는 점에서 그는 개신교에서 최상의 경우를 나타내었으나 하나님과 {나와 당신}의 관계를 수립하는데는 공공연한 인연들을 철저히 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는 최악의 경우를 나타내었다}

 

B. 자유주의 신학

1.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요소들

자유주의 학파에게 진리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역동적이며 복음의 진리는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신문기사들과 관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호튼(Walter Horto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 지식에 대한 자유주의의 특징 있는 접근 방법은 경험을 통해서이다}
호튼(Walter Horton)은 지적하기를 자유주의에는 신비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도덕적, 사회적 강조들이 들어있다고 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적 견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열거하고 있다.
1) 신앙과 이성(理性)간의 밀접하고도 생생한 관계의 유지.
2) 신의 초월과 내재의 결합.
3) 우리의 신앙과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인격의 확실성에 대한 주장.
4) 기독교의 생활방식에 있어서 종교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사이의 밀접하고도 생생한 관계.
{자유주의}라는 말은 라틴어의 {liber:자유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자유주의자는 자유롭게 탐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진리의 새로운 면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는 마음의 개방성은 남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모든 의견들이 균등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유주의는 또한 진보에 대한 신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윈(Darwin)의 진화론에 대한 해석들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스펜서(Herbert Spencer) 같은 사상가들은 진화가 불가피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2. 자유주의에 공헌한 요소들

1) 19세기의 철학과 신학의 발전

회의주의적(懷疑主義的) 색채를 띤 칸트의 합리주의와 신의 초월성이 제거된 쉴라이어막허의 경험의 신학과 성경의 계시를 위한 자리가 없는 헤겔의 변증법과 그 종교적 사색, 그리고 개인주의적 종교이해를 강조했던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등 이 모든 합리주의적 방법은 자유주의 사상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2) 과학의 발전
자유주의자들은 과학의 기능적, 객관적, 경험적, 탐험적, 귀납적(歸納的) 특징들이 신학의 특징도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3) 사회적 복음의 발생
사회적 복음은 19세기 마르크스, 모리츠, 리츨 등의 저작에 근원을 두고 있었다. 이 사상은 교회가 복음의 경제적, 정치적 의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던 1930년대의 경제공황으로 더 큰 자극을 받았다. 특히 물질적 의미에서의 진보사상이 매우 강하였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이 사상은 몹시 흔들리게 마련이었다.

 

3.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기본 신념들

1) 인간과 하나님과의 기본적인 관계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이 형상은 죄로 찌그러질 수 있지만 완전히 말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앙과 이성, 계시와 인간의 통찰력 사이에 구별이 있으면서도 연속성이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전적인 분리를 제외시킨다. 베네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한정 없이 질문하는 존재이며, 세계를 놀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창조적 인격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가장 비판적인 니이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비록 사소한 부조화가 있지만 현대문명의 전 과정은 현저히 조화 있게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그 수단이야 어떻든 인류의 구속(救贖)은 장래를 위해 확실한 것이었다}

2) 신학이 현대문명에 적응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신학이 현대문명에 적응될 때에만 신학사상은 현대생활에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기독교 진리를 심리학과 과학과 공학기술의 최근 발견에 적응시키려고 하였다. 그 결과 복음의 희석화(稀釋化)와 믿음의 모호성을 초래하게 되었다.
자유주의는 자연신학을 다른 종교나 기독교를 연결하는 교량(橋梁)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전통보다는 현재의 세계와 그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또 다른 특징은 귀납이라는 과학적 방법 때문에 기적에 대한 믿음이 설득력을 갖지 못할 때에는 버림을 받는 것이다. 즉 지나치게 과학적 방법에 의존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리챠드 니버의 평을 살펴보기로 하자.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봉직함으로서 죄 없는 인간들을 심판 없는 왕국으로 데려가는 노하심이 없는 하나님을 말한다}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적절하게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학설에 가치 있는 면들도 많지만, 한 종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용납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남김으로서 기독교 안에 혼란을 조장하며 믿음을 희석화(稀釋化) 시키게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범신론적이나 인본주의적 하나님 이상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다 유지하려는 시도가 때로는 초월성이 없게 되었을 때에 실패하였다.

 

C. 20세기 후반의 신학 동향

2 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학계는 큰 변혁을 경험하였다. 그 것은 새롭게 형성되는 세속문화와 기술과 과학의 급성장에 따르는 신학적인 유산의 정리요 새로운 해석, 적용, 강조점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신학적 특징은 {이 세상성}에 대한 강조일 수 있다. 신학적인 관심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전 인류와 역사, 그리고 사회로 �겨진 것이다.
신학적 사고는 실존적 언어가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이며 수직선적이 아니라 지평선적이고 현대적이 아니라 미래적이었다. 더욱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생명을 단순히 설교와 말에서 보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의 날마다의 삶 속에서 그 확증을 보려고 하였다.
기독교 선교는 단순히 말씀의 전파만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화와 해방을 위한 행동적 삶을 포함한다. 경제적 영역, 정치적 영역, 산업화에 따르는 모든 생태학적 인간 소외와 양심의 영역 등 모든 삶의 영역을 기독교 선교의 장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1. 해석학적 신학

이는 불트만의 신약성서에 대한 {비신화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가다머나 리꾀르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주어졌다.
가다머는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이해지평과 해석지평이 융합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그래서 이 해석학은 성경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기존의 서구 정통신학이 전해준 교리서로서의 성경이 아닌 해방과 혁명의 책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 다가오도록 만들었다.

 

2. 세속화 신학

{세속화}와 {세속주의}의 의미는 구별되어진다. 세속화신학은 교회가 세상일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교영역을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신학이다.
이는 {비종교화론}을 제창한 본회퍼에 의해서 강력히 제창되었는데 {성육신} 사건 속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역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가운데서 이루기를 말했다.
세속화신학은 고가르텐과 하비 콕스와 본회퍼에 의해 신학화(神學化) 되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을 창출하였다. 세속화 신학은 타계적 경건주의와 내성적 기독교에 대한 반동으로서, 신의 내재성을 초월성보다 더 강조한다. 인간은 자기의 눈길을 하늘로부터 땅 위로 돌렸다. 그래서 세속시대를 정죄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일부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세속화 신학의 특징들이다.

1) 세속적인 것을 축하하고 찬양
이 과정에서 인간은 종교의 길잡이로부터 해방되려고 한다. 또 그의 세계와 그 문화를 즐기고 세계적인 것을 찬양함으로써 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하비 콕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축제와 환상으로써 세속적인 것을 축하한다. 축제란 인간이 현재에서 자기의 일상적인 일로부터 풀려나서 과거를 기억하며 정황에 싸여있는 현재보다 더 큰 전체의 일부로서 자신을 즐기려는 축하의 성질을 띤 것이다. 환상이란 인간이 상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미래에 참여하게 되는 축하의 일면이다. 이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존중을 보존함으로써 세속주의는 진정으로 초월적인 종교의 가치들을 보존해보려고 하는 것이다}(바보들의 축제)
본회퍼는 기독교의 이 세상성을 믿게 되었고 또 신앙의 낡은 형식들이 하나님을 일종의 우상으로 믿는 믿음과 편협한 개인주의적 유형의 종교로 인도했다고 믿게 되었다.

2) 인간 찬양
세속신학은 세속적인 것에서 성스러운 것을 발견하고 여기서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생에서 거룩한 것을 보았다. 교회는 이제 세계를 악의 성육(成肉)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을 위해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모든 창조는 인간의 자유와 발전에 공헌하도록 되어 있고 그리스도인은 개개인의 존엄성과 가치와 자유를 드높이는 데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3) 신의 내재(內在)
인간이 신을 찾고 신이 인간을 찾는 것은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이다. 본회퍼는 그리스도가 알려지는 것은 실질적인 생의 정황(情況)에서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초월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비콕스도 {우리가 이 세상을 건설하는 데는 하나님이나 교회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4) 세속주의와 궁극적인 것
세 속신학자의 관심은 궁극적인 것 이전의 것에 집중되어 있다. 생은 과정과 변화의 문제이다. 그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고 또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논의를 피한다. 죽음은 모든 관심사에 대한 종지부를 찍기 때문이다.

5) 기능이 진리를 대신한다.
그들은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것의 용도가 무엇이냐?} 는 질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은 어떠한 과정의 결과들이나 또는 {이 방법은 효과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세속주의자에게는 이성(理性)은 행동주의로 대치된다.

6) 평 가
세속화신학은 도피주의자 심성을 가진 타계적(他界的) 경건과 내재적 종교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 또한 세계와 인간의 요구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뿐만 아니라 신앙을 인간화하여 복음의 주의력을 인간의 일상사(日常事)와 문제에 집중시키려고 한다.
세속화신학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꿀 필요가 있게 하였다. 세계밖에 고정된 신성(神性)이나 가끔 간섭해오는 하나님에 대한 신관(神觀)은 바꾸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존 맥쿼리(John McQuarrie)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르게 이해된 기독교 신앙은 철저한 세속주의나 도피주의자의 종교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성스러운 것이 세속적인 것 속에 삼키어지는 것을 허용할 수 없고 또한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것이 성스러운 것에 대한 배타적인 관심을 통해서 비실재적인 것의 차원으로 환원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없다}(신과 세속)
{인류가 도시화되면 될수록 사람들에게 더 큰 자유와 해방과 인간화가 조장된다}
하비 콕스는 말한다. 더 중대한 사실은 세속신학에는 강한 펠라기안 주의(Pelagianism)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본주의적이고 이 세상적이어서 인간 생활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위한 자리가 있다고 해도 별로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인간은 멀리 내다볼 때에 영적인 양식을 필요로 한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자유가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하비 콕스(Harvey Cox)
하비 콕스(Harvey Cox)는 그의 저서 세속도시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가 인간의 과제요 인간의 책임이 되었다…세계는 인간의 도시가 되었다…이런 일이 일어난 과정을 일컫는 이름이 세속화이다}(세속도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

{X께서 한 인간을 부르실 때는 그에게 와서 죽으라고 명하신다}라고 말한 것처럼, 본회퍼는 순교의 삶을 살았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즉 {기독교가 삶의 의미에 대해 기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뇌 속에서 그는 교인들과 세계 속의 사람들(the men of the world)에게 이야기한다. 교인들에게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라, 교회를 그 본래의 뜻처럼 그리스도가 존재하는 사회(X-existing-as-community)로 만들고 세속 사람들에게는 성숙해져서 인간의 모든 잠재능력들을 충분히 발전시킨, 특히 인간의 자유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발휘시킨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타자를 위한 실존적인 존재-윤리(Ethics)-책임적이고 자유로운 기독교인의 삶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윤리학}에서 그가 제안하는 인간형은 지혜와 단순성을 겸비한 인간이다.
단순한 인간은 그 시선을 하나님께만 고정시키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계명과 심판과 자비를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 자아를 형성하는 길을 찾는다.
그는 기독교의 비종교화(非宗敎化)를 말하고 잇는 것을 본다
본 회퍼의 옥중 서신(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절대권력과 절대선의 지고한 존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은 {인간 실존의 경계들}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이웃의 고통을 함께 하며 고난받으시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할 때에만 진정한 교회가 된다. 이는 비종교적인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남을 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그 초점이 되고, 교회는 구체적인 본보기로서 예수를 따라야 한다.

 

3. 역사 신학

독일어에는 일련의 사건들을 뜻하는 {히스토리: Historie}와 그 사건들의 내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다루는 {게슈힛테: Geschichte}가 구별되고 있다. 신학이 역사에 관심을 두는 것은 사건들의 해석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역사신학에서는 사건과 그 해석이 분리되지 않고 그 두 국면이 함께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1) 기독교에 있어서 역사의 중요성
기독교 사상에서 하일게슈힛테(Heilgeschichte: 구속사)라는 독일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첫째로 모든 역사 속의 사건들과 백성이다. 이 사건들과 백성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 역사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로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을 계시하는 성경의 사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이트(G. Ernest Wright)는 구약에 이러한 사건이 다섯 개나 된다고 지적한다.
(1)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음
(2) 애굽으로부터의 탈출
(3) 광야의 경험과 시내산 언약
(4) 백성 편에 주어진 의무가 동반되는 약속된 땅의 정복
(5) 노예상태로부터 자유와 안전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으로 여겨진 다윗의 통치


그리고 신약에서 보여주는 주요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
(2)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3) 그리스도의 부활
기독교는 초대교회에 의해서 해석되었고 또 그 뒤를 잇는 여러 세기 동안의 교회에 의해서 재해석되어 온 이 사건들에 기초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 선포되어졌던 복음은 나사렛 예수의 말씀과 행위, 생애와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역사적 현실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러스트(E. C. Rust)는 말한다. 즉 기독교가 실제의 역사에 뿌리박혀 있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건들에 기초하여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 기독교와 윤회적 역사관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고대 학자들의 견해가 대부분 {윤회적인 시간 이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생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죽음과 재생}이 되풀이되는 순환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구속에 대한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윤회설은 유한(有限)한 존재가 불가해(不可解)한 것을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이성이 무한(無限)하신 존재를 자신의 사상의 틀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쉬인(Roger Shinn)이 말한 것처럼 윤회설과 끝없는 {반복의 이론}은 사람들에게 숙명론적인 인생관을 주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윤회적 역사관과는 다르게 종말론적 목표를 향해서 전진해 나가는 직선적인 역사관을 선포한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역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의 역사관을 가지신 것이다.

 

3) 구속사(救贖史)에 있어서 구약의 중요성
구약을 제거하려는 운동이 이단자들에 의해서 있어왔다. 실존주의자들도 역시 구약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제거해버렸다. 이것은 모두 구약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율법 수여자(授與者)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 기록은 현대인이나 고대인의 자아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속사(救贖史:Heilgeschichte)에서는 구약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신약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되었다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은 숨겨져 있는 신약이요, 신약은 계시된 구약이다}(M. 루터)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역사적인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떠나서 다른 쪽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다.

 

4) 역사와 섭리(攝理: Providence)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자기 목적이 마침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연과 역사의 전 과정과 개개인의 생을 인도하시고 지배하신다고 하는 확언이다}(E. C. Rust)
기독교 신앙은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역시 세계를 지배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어떻게 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며 이용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예를 볼 수가 있다. 한 사람이 주어진 사명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이루도록 역사에 섭리하시는 것이다.

 

5) 역사와 종말론
이 신학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 역사 안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지만 이 목적은 역사를 넘어서 완성될 것으로 믿는다.
{처음부터 교회의 신앙은 종말론적이었다. 기독교 공동체는 역사의 의미가 단순히 사건들의 진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는 최후의 운명에 있다} (Roger Shinn)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의 역사에서 완성의 약속을 가지고 있지만 참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져올 하나님 나라에서의 장래에 있다. 종말론은 이 세상의 일을 말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려는 것이다.

 

6) 평가
기독교 복음의 역사적 기초를 용납할 수 있다면 성경의 내용 그대로 믿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다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가끔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의 중심적 위치를 배척하는 윤회적인 역사관을 더 좋아한다. 지난 세기의 니체(Nietzche)와 쇼펜하우어(Schopenhauer) 같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고 20세기의 쉬펭글러(Spengler)의 사고였다.
역사적 강조가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은 세계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섭리가 이 세상의 생을 유지하신다는 것이다. 역사신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관련된다는 것을 소홀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구속사(救贖史)를 떠나서는 성경에 대해서 아무런 해석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4. 사신(死神) 신학

{신의 죽음}이란 용어는 세 가지로 사용된다.
1) 무신론자들로서 이들은 인간보다 더 높은 어떠한 힘이나 존재를 부정한다.
2) 오늘날의 문화를 하나님이 없다는 관점을 반영시키는 문화로 보 는 사람들이 있다.
3) 하나님이란 용어는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의 어휘에서 탈락시키거나 바꾸어져야 하고 다른 용어가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신학의 기원은 칸트의 회의주의와 헤겔의 합리주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또한 모든 신학을 인간연구, 즉 인간학으로 축소시킨 포이에르바하(Feuerbach)도 있었다. 니체(Nietzsche) 또한 초월적 종교의 사망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신의 죽음}의 사상은 20세기의 인본주의적 자유주의와 실존주의적 회의주의에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주요 지도자들은 모두 미국 사람으로 이들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현대문화로부터 하나님이 사라졌음을 글로 쓰고 있는 바하니안(Gabriel Vahanian)과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와 하밀톤(William Hamilton), 그리고 뷰렌(Paul Van Buren)이다.

1) 서양 문화의 분위기 : 하나님이 불필요한 문화
이 학파의 저술가들에 의해 표현된 서양문화에서는 신앙이 퇴각되어 있다. 거룩한 것은 서양문화의 세속주의라는 안개로 흐려져가고 있다. 바하난은 이것을 {기독교 후기문화}라고 부르며, 람지(Paul Rams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의 죽음"이라는 기독교 후기의 양상에서 서양인이 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기독교 후기의 인간이다. 무신론은 단순히 예외적인 반역자들이 쳐드는 이론적인 주장만이 아닌, 이제 무수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가능성이기도 하다………우리 자신을 보라.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라.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은 불필요하다}

2) 해방에 대한 욕구
종교는 생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제한시키는 영향력으로 간주되었다. 종교는 현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상과 원칙과 계명들을 제시하지만, 현대인은 종교의 권위를 포함해서 어떠한 권위에도 반항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해방에 방해되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3) 순수 세속주의
신의 죽음의 신학은 순전히 세속적이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초월성이 말소되었다. 반 뷰렌은 복음이 근본적으로 하나님보다는 인간에 대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부활절에 일어났던 일은 예수 자신의 자유와 같은 무엇을 간파한 제자들이 두려움 없이 죽음에라도 직면할 수 있도록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오직 초월적인 하나님에게서만 찾아지는 그 힘의 원천인 복음을 끊어버리라는 것이다.

4) 영웅 예수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는 {빌2:5-11}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멸절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을 배격하고 다만 하나의 영웅, 즉 모범적인 예수를 따르라는 것이다.

5) 배격하는 점
(1) 그들은 전통을 배격한다.
(2) 도덕성을 배격한다.
(3) 교회의 필요성도 배격한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사라졌고 교회도 곧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신학이 신학교와 교회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 평가
그들은 생활에서 기도와 예배를 제거해 버렸다. 사람들이 생활에서 절실하게 하나님을 필요로 하려면 하나님의 현존을 믿어야만 된다. 그들은 파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의 죽음의 신학}은 조직화된 교회에 대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직 교회 편에서 개혁과 갱신과 재헌신(再獻身)을 계속함으로써만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5. 정치 신학

1970 년대의 신학의 기류는 정치신학이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 이는 몰트만과 카톨릭 신학자 멧츠(J. Metz) 등에 의해서 강조되었다. 정치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정치의식을 각성시키려 한다. 그것은 신앙 자체가 메시아적 관념과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신학 자체가 정치적 차원 속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정치신학은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의 희망의 근거 위에서 이 세상 현실에서 가난한 자와 눌린 자 그리고 인류의 고통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기독교의 책임성을 강조하려 한다. 정치신학은 복음의 정치적 해석을 지향한다

 

6. 해방 신학

해방신학은 1970년대 정치신학의 한 양태의 발전이며, 지역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해방신학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자유는 단순히 영적인 해방만이 아니며 죄와 양심의 고통, 죽음의 저주로부터 해방만이 아닌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비인간화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속박의 상태로부터 자기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며, 그 하나님은 인간의 영적 해방과 인간적 해방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기독교의 인간해방 운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억눌림을 당하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7. 신 정통주의 신학

1 920년이래 신 정통주의 신학은 하나님 말씀의 신학에 광범한 호소력과 커다란 영향력을 주었으며 또한 다른 신앙들과 세속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기독교의 독특한 진리를 여러 가지 주장들에 대한 재발견과 재확인을 나타내는 사실을 이루게 되었다.
신 정통주의는 본질적으로 신학이 위기 속에 있는 문화와의 결탁에서 파기(破棄)되기를 추구하는 {교정신학}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그 파기는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과 유일한 성경의 권위성을 인간들의 사역과 전통들과의 불연속선 상에 두는 {오직 은혜}와 {오직 성경}과 같은 믿음의 재확인 속에서 반영되고 있다.
고전적 기독교로 복귀하려는 성격 때문에 신 정통주의라고 불린다. 그러나 신 정통주의 신학은 단지 고전적 개신교 정통주의의 재현은 아니다. 신 정통주의 신학은 모든 형이상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리츨 학파의 교리를 수용했다. 자연신학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수용한 신 정통주의는 기독교 신학이 역사적 계시의 추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경 속에서 확증된 역사적 계시는 정통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무오(無誤)한 것은 아니다.
신 정통주의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계시(啓示)의 탁월성(卓越性)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계시를 통해서이다. 그 계시는 세 가지 형태로서 나타난다.
(1) 설교된 말씀
(2) 성경에 기록된 말씀
(3)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본회퍼가 말하는 {종교 없는 기독교}도 역시 이 계시 사상이었다. 이 계시의 사상을 수용한다는 것을 {인간의 하나님추구}를 끝난 것으로 바르트는 생각하였고 본회퍼도 이에 합의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인간추구}가 계시의 사상이다.

2) 자연신학의 거부
바르트는 인간의 추리와 사고로 {하나님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연신학적 사상을 배격하였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라고 표현된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모든 신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계시에 탁월성을 부여했으며,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는데, 인간이성에게 자율적 기능을 부여하려는 어떠한 종류의 합리주의에도 반대하였다.

3) 하나님의 신성
신 정통주의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자유주의적 신학의 수평적 강조에 대립하여 수직적 차원을 더 중요시하였다. 바르트가 하나님을 {전적인 타자(他者)}라고 표현할 때에 그 표현은 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하나님을 뜻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이사야의 선포(사59:9)에서 보여진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였다.

4) 인간의 죄성
죄는 어떤 결함이라기보다는 {자유의 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며, 하나님과 동등해지기를 갈망하는 중에 하나님이 주신 그 높은 지위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해버린 것이다. 인간은 자기 중심의 자리를 하나님께 드리기보다 자기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 바로 죄이다.

5) 신앙과 은혜
인간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 이 신앙은 어떠한 주장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와 순종을 뜻한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되어지도록 창조해주신 그러한 존재가 될 자유이다. 그러므로 신 정통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역설적인 자유, 의존과 연관된 자유를 의미한다.

6) 성경의 권위
기독교 신학의 원천은 성경 안에 있다. 바르트는 성경 안에서 신기한 세계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올바른 생각이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이야기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성경은 위대한 계시의 순간들, 하나님이 행하시고 말씀하신 사건들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것은 비인격적으로 읽혀져야 할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우리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올 때 그것은 이성(mind)을 굴복시키는 주장(主張)들로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심령(heart)에 도전을 일으키는 말씀으로 전인(全人)에게 오는 것이다.

7) 종말론
기독교에게 목적과 목표를 주는 것은 종말론이다. 그 목적과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성경의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 오고 있으며 장래로 지향되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인간의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에 기초를 둔 큰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은 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지향되어 있고 그 때까지는 교회가 그 나라의 모든 백성에게 소망 가운데서 열심히 일하도록 헌신해야 한다.

8) 평 가
자유주의가 춤추고 있던 시대에 신 정통주의가 교회를 위해서 신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회복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성경에 대한 연구를 회복시켜준 데 대해서 그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 정통주의는 인류학과 비교종교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을 무시하고 또 신학과 철학 사이의 관계를 등한시하게 만들었다. 또한 인간을 하나의 로봇처럼 격하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게 만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셨으며, 인간과 화해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다.

 

칼 바르트(1886-1968)

독일의 신학적 자유주의 속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후기(1950년대 이후)에는 하나님의 인간성을 강조하여 초월성과 내재성을 구별하면서도 동시에 강조했다. 바르트는 성서 교의학을 제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교회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성을 강조하였다. 즉 그의 사고는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철저하게 신 중심주의로 옮겨갔다.
{말씀의 신학}(a theology of the Word)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오직 믿음과 지식 (faith-Knowledge)만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한 사건으로 시작되며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낸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바로 계시이다. 이 하나님의 자기계시(自己啓示)가 신앙과 순종 가운데 응답을 받게 되는 때에,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행동은 스스로를 계시하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는 하나님은 계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시며, {하나님의 인간성} 즉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함께 계시는 성육신의 하나님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계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일련의 행동들이다.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죄인에서 은총으로 구원받은 존재가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계시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에밀 부르너

변증론을 사용하여 {선교의 신학}을 전개하고 선교신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바르트와 브루너의 공통적 관심은 오직 믿음(sola fidei),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us)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이 이 세계의 구원자시며,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롭게 선택하시는 은혜에 있을 뿐이다.
인간구원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비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고, 십자가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교회가 외치는 모든 선포에 있어서 오직 성서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규범이다. 교회는 그의 근거와 의인과 법과 가능성을 {오직 계시의 사건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제약을 초월하여 자유롭다. 교회의 사신은 계시와 이성, 혹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라는 두 가지 규범과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계시와 말씀만을 그의 근원으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라인홀드 니이버(1892-)

인간 집단의 악에 대항하여 정의를 도덕적 이상으로 주장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신앙으로써 의로워지고 소망과 힘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니버의 사상은 기독교 현실주의(Christian Realism)라고 불리는데, {기독교적}이란 기독교의 차원 안에서 개인과 사회의 양 본성을 지닌 인간의 완전한 차원을 탐구하고 설명하는 데 필요한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의미한다. {현실주의}란 오늘날 복잡다단한 인간과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면을 세밀하게 탐구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그에게서 인간은 애매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 애매성을 지닌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술은 변증법적 사고와 역설적 진술, 그리고 잠정적인 대답이었다. 그의 과제는 인간을 개인과 사회의 차원에서 온전하게 인식하고 그러한 후 기독교 신앙이 인간세계의 내적 삶에 던져주는 빛을 찾는 데 있었다.
1) 사회 속의 인간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인간은 신앙을 통해 한 기독교인으로서 사랑이 그의 삶에 있어 주된 요인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 것이 가능하고, 개인적 관계에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으므로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종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주인이다.

2) 인간의 본성과 운명(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기독교의 인간관은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 속에서 정신적인 성 장면에서의 자기 초월의 높이를 강조하고, 또 인간의 약함과 의존성과 유한성과 자연적인 세계의 필연과 우연에 영향을 받음을 주장한다.

8. 실존주의(實存主義) 신학

실존주의 신학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현재적인 실존에서 찾으려는 시도이다. 실존주의라는 말은 {존재하다}, {나서다}를 뜻하는 라틴어 existere에서 유래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생의 시련과 투쟁과 유혹에 휘몰려 들어가는 사람들의 매일의 생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합리주의에 대한 반항
부버(Martin Buber)가 말한 {나와 당신}의 관계에는 합리적인 생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생에는 합리적인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격 대 인격의 만남엔 초 합리적인 요소가 있다. {나와 당신}의 관계는 진정한 진리가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믿는 철학 또는 사상이다. 진정한 진리는 합리적인 것 이상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경험된다. 진정한 진리는 인격 대 인격의 만남에서만 알려진다.

2) 인격적 철학
개인과 그 실존을 강조하는 이 철학은 참으로 인격적인 것이다. 생을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생을 과학적 설명으로 측정하고 정의하려는 시도에도 반항한다. 과학적 지식은 단순한 지식일 뿐,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자는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세 가지 기능을 분리시키는데 반대한다. 실존과 생은 하나이다. 실존주의자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 생의 기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둔다.
그러한 대답을 찾는 중에 물질주의 문명의 풍요를 저버릴 수 있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생의 의미가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만 진정한 실존으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3) 현재적인 것의 중요성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현재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말한 사람은 불트만(Rudolf Bultmann)이다. 그는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서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실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하나님을 향한 결단을 뜻한다. 의지를 내어 맡기는 헌신(commitment)이 바른 신앙이다. 불트만은 신약성경을 비신화화(非神話化) 하려고 하는데, 현재의 신앙에는 신화나 기적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자유의 개념(槪念)
실존주의는 개인적 자유를 존중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자유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인이 자유로우려면 먼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생의 중심에서 우러나는 충성이라면 결코 어떠한 제도나 기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이 자유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만 찾아지는 것이다.

5) 생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생의 의미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 대개의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무의미성의 불안,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존재의 본질 또는 근거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불안은 실존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승리하시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 승리를 나누어주신다. 그리스도를 실존적으로 용납할 때에 승리하게 된다.

6) 평 가
실존주의는 종교와 신학의 교정자(矯正者)로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런데 인격적 종교에 건전한 영향력을 가져왔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문제점은 주관주의와 비합리주의라는 사실이다. 역사적 전망이 결여된 점과 전통의 가치와 중요성이 무시된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기독교 신학자의 과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자신의 실존적 경험을 과거로부터 전해진 전통적 신앙 안에서 진술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제도와 제도적 종교를 경시하였다. 키에르케고르는 조직교회를 참된 종교의 저해 요인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몸이 있어야만 정신적 가치가 큰 것처럼 사회적 종교적 기관들을 통해 인간의 내적 생이 표현되는 것이다.
실존주의자들 중에는 방종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로운 사상을 강조한경우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무질서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훈련되지 않은 자유는 반인간적이며 반사회적으로 될 수 있고 인격의 저하와 사회적 반란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인식하고 전통을 존중하며 역사를 진행의 과정으로 믿고 인격적으로 헌신할 때에만 실존주의가 교회와 신학에 공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9. 희망의 신학

오늘날 사람들이 기계화되고 비인격화된 기술공학적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선택한 문명으로 말미암은 멸망을 보게 될 때에 절망이 앞서게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하나의 희망이 있다.
{인간에게서 희망을 빼앗아버리면 절망이 따라오고, 생존의 무의미성과 무목적성에 대한 느낌으로 인하여 지적 정신적 힘의 마비를 초래한다}(E. Brunner, 영원한 희망:Eternal Hope)
희망의 신학이 고조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희망을 잃은 상태의식}과 {널리 퍼진 절망감} 때문이다. {신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동안에 일어난 새로운 신학으로 신학의 관심과 언어를 미래와 희망에 돌렸다. 희망의 신학에 있어서는 역사의 미래와 희망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부활하신 자의 재림에 있다. 기독교의 신앙,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희망은 단순한 꿈이 아닌 이 땅의 혁신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투쟁으로 이해된다. 이 희망 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러한 희망 때문에 이 땅에서 혁신을 위한 자기희생의 책임적인 삶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몰트만(1926-)
현대 과학기술과 문명의 내적 동인(動因)인 진보신앙과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는 세계대전과 산업을 통해서 착취되었으며, 파괴된 자연의 생태학적 위기로 말미암아 회의(懷疑)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신학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인간의 내면적 자기 경험의 문제, 인간의 주체성의 문제에만 관련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러한 신학적 성찰에서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과 정치신학이 형성되었다.

1) 기독교적 희망의 기초
성서적 종교의 모든 희망의 기초는 하나님의 목적과 본성에 있으며, {기독교적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믿음은 희망의 기초이며, 희망은 장래에 대한 믿음이다. 몰트만은 믿음과 희망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믿음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 잡아맨다. 희망은 믿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포괄적인 장래를 향해서 개방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희망은 믿음과는 떨어질 수 없는 동료관계이다}
신앙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주며, 지식이 없이는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만 이상향의 꿈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신앙이 장래를 향해서 발전하지 못한다. 신앙은 우리에게 진리로 가는 길을 보여주지만, 우리에게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은 희망이다.
부활신앙이 아닌 기독교 신앙은 정말 기독교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신앙도 아니다. 현실과 내세에서 유일한 희망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에게 있다.

2) 미래의 힘으로서의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희망은 결코 그렇지 않다. 판넨버그(Wolfhart Pannenburg)는 하나님을 {미래의 힘}으로 언급하고 그분의 힘은 이미 현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힘은 인격적이므로 사람들에게 인격과 사회의 조건들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희망의 근거를 하나님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인류의 장래에 선을 위한 힘과 의미의 놀라운 원천, 가능한 성취와 창조적 통찰의 놀라운 원천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인간의 힘은 세계 안에서 통일시키며 활력을 주는 창조적인 사랑을 떠나서는 {쓸만한 장래}의 창조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미래의 힘이기 때문에 미래는 열려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격성과 공동체의 완성을 지향하는 인류에게 점진적 향상이 실제로 있게 된다는 사실을 교회는 가르쳐주어야 한다.

3) 약속의 기대와 희망
구약에 있는 계시의 말씀은 사실 약속의 말씀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이 약속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백성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몰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기대는 생을 선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기대 가운데서 인간은 자기의 전(全) 현재를 용납할 수 있고 현재의 기쁨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슬픔 가운데서도 기쁨을 발견한다. 희망이 없는 것이 지옥이다}
약속과 기대와 희망은 예수 그리스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 속에서만 완성된다. 그러므로 현존과 재림은 함께 속해 있다. 성령을 통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알려져 있는 것들을 완전하게 계시하실 것이다.
희망과 기대가 희미해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애매한 때문이 아니다. 영원한 실재들에 대한 영적인 불명료성(不明瞭性)은 기대의 결핍에서 오며, 이것은 자기 신앙을 낡아지도록 방치했다는 뜻이다.

4) 희망의 관계에서 본 종말론의 중요성
신약성경(막1:15; 눅11:20)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계의 종말은 이미 왔다. 예수는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것을 선포한 예수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태동되어 있음을 사람들은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던 분이 선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재림의 지연으로 종말론은 세계의 마지막에 일어날 초자연적인 신비한 일들을 다루는 이론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몰트만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은 철저히 종말론적인 것이라고 하며 종말론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는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주요 교리로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앙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뜻하는 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세계 전체 속에서 실현되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된 종말은 자기의 주어진 상태에서 자기를 절대화시키려는 본성을 가진 인간과 그의 세계를 역사화 시키는 추진력이며, 그런 의미에서 종말론은 인간의 세계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모든 기독교적인 선포와 모든 기독교적인 실존과 모든 교회의 사역은 종말론적인 것이다}

5) 희망과 자유
미래에 대한 개방성을 강조하는 희망의 신학은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자유를 의미한다. 해방운동들이 고조된 것은 죽음 뒤의 희망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희망의 복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샤르뎅은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인류가 지향해서 노력하는 초인간성을 {자유의 승리}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부패와 다른 종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하나님 지향적인 미래는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배고픈 자와 목마른 자, 나그네와 병자와 갇힌 자들을 해방시키도록 강요하는 미래라는 것이다.
{약속의 성취자} 내지 {약속의 선행}을 의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세계 속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신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그의 삶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의 주가 되셔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그리하여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슬픔도 부르짖음도 고통도 없을} 하나님의 미래가 앞당겨져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미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것은 미래에 완성될 약속으로서 세계사의 목표가 된다.
이처럼 현실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예수의 부활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하늘의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십자가가 서 있는 땅의 미래를 인식한다. 그분 안에 인간은 바로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 그 인간성의 미래를 인식한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그에게는 이 땅의 희망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과 교회는 인간과 그의 세계로 하여금 주어진 현재 상태에 정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세계를 지향하여 그 자신을 언제나 새롭게 변화시키고 개혁시켜 나가도록 하는 내적인 힘이다. 즉 하나님의 미래를 향한 역사의 추진력이요 원 동기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의 의미가 성취되는 도상에 있으며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와 미래의 시작이요 도래}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선포는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미래가 이미 도래함}을 뜻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이미 {희망의 표징}이다.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성령과 새로운 창조의 계시}이다.

6) 희망과 죽음의 정복
신약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죽음을 정복했다}는 것이다. 죽음은 {마지막 원수}이다. 죽음을 대면하고서도 극복할만한 무엇이 없다면 모든 기대와 성취는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우리 희망의 근거이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 가운데 죽음의 정복도 포함시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경계선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7) 평 가
희망의 신학은 변화무쌍한 세계와 시대를 위해 적절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희망의 신학은 미래로 지향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창조적 가능성들을 용납하고 찾는다. 이들이 고정적 견해에 반대되는 역동적 신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과정신학과 유사점을 드러낸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부활하셨으며 또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와 신앙을 강조하므로 종말론이 이 신학의 강조점이다. 그래서 종말론적 기초를 가진 희망의 신학은 일상적인 사건들로부터 행동의 동기를 취하는 세속신학의 약점을 포함하고 있다.
평면적인 전망만을 가진 신학은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기인되는 역동적 동기를 결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항구적인 도시를 갖지 못하고 장차 올 도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몸으로 물질적 세계에 살고 있는 영적 피조물이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참 고향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사물들을 영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시간 가운데서도 영원한 생명을 발견한다. 그러한 성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큰 세계로 향하는 이동일 뿐이다.
그러나 이 신학에 비판이 가해지는 것은 이유 있는 일이다.
▶ 그들의 신학이 너무 지나치게 종말론적이라는 것이다. 종말론적 존재로서의 예수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다는 사상을 용납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이 평범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교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오히려 성경은 병든 이웃과 사회를 치료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가 현재에 승리하라는 뜻이다.
▶ 그것은 도피주의 신학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에 불어오는 변화의 강풍을 피하기 위해서 종말론으로 후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재에 있어서도 피난처가 되시며 위로의 원천이 되시기 때문이다.
▶ {미래의 하나님}으로만 묘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게 된다. 하나님의 불가지성(不可知性)을 포함하는 신비의 요소는 언제나 남아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유로우실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개념에 의해서 제한되실 수 없는 것이다.
▶ 행동과 노력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는 않는다. 신학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정치적 혁명을 정당화하거나 자기변호를 할 때에 그것은 더 이상 정당한 이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희망의 신학이 정치적인 혁명의 신학형태를 이끌어낸 것은 구속사(救贖史)의 의미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10. 혁명의 신학

혁명의 신학은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하는 비참과 가난이라는 혼돈의 상태로부터 일어나는 사고방식이다. 교회나 신학자들이 이러한 정황에 대면할 때, 그들은 정통적인 형태의 신학적 표현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생활을 더 이상 견디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혁명의 신학은 해방의 신학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러한 고난과 고통에서 살도록 강요받아 온 비인간적인 상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콘(James H. Cone)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예수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해방의 사업이다……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전연 없지만 부자들은 생은 세상 적인 것에 대한 자기 헌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학에 있어서 예수가 위대한 해방 자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은 콘이 뽑은 예수의 교훈의 발췌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해방이라는 의미에서 혁명을 정의(定義)한다. 혁명은 공동의 이익을 그 이상 보장하지 못하는 어떤 체계와의 결별이며, 그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새로운 질서의 수립이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인종 차별주의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제이며 이 신학의 중요한 문제는 인종 차별주의로 세계 여러 곳에 현존하고 있다. 몰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인종 차별주의는 오늘날 특정 국가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세계적인 문제이다. 외국인 공포증을 가진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에도 인종차별은 현존한다. 인종 차별주의는 정치와 경제, 사회적으로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을 때, 이것을 확보하기 위한 지배의 도구로 이용된다}
콘(James H. Cone)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흑인들이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흑인세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반드시 폭력에 의해서 획득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 안에서의 자기들의 자리를 주장함으로서 획득하도록 해야 한다. 흑인 신학은 흑인들을 위한 것이며 그 신학의 목표는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의 유산에 동참하고 있음을 믿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흑인신학의 목표는 흑인들의 마음을, 자유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줄 것을 각오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각처에 있는 교회들을 일깨워서 세상에서는 인종 차별주의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방해가 되며, 정의와 형제사랑의 사회를 실현하기에 앞서서 극복되어야 한다.

2) 빈곤(貧困)
혁명의 신학은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착수해야 할 일을 가난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거의 먹지 못하거나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은 인격성과 존엄성마저도 빼앗긴다. 가난이란 영양실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교육시설의 부족, 건강의 빈약, 높은 어린이 사망률, 빈약한 주택시설, 또 살려는 의지의 결여를 뜻한다.
혁명의 신학은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들이 그 안에 빠져서 살고 있는 곤경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교회를 각성시키려고 한다.

3) 자유(自由)
혁명의 신학은 자유 또는 해방을 많이 언급한다. 알베스(Ruben A. Alves)는 인간화라는 용어에서 자유를 생각한다. 즉 자신의 생활을 위해 책임지는 자유를 의미한다. 콘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존재의 성취를 명확히 보고 있을 때에 자유하며 그래서 마음에 그려진 자신을 실재(實在)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보이는 세계에만 집중하는 인본주의적 인간화는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는다. 그것은 현 세계의 정황에서 억압적이거나 비인간적인 것에 대항하여 투쟁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활동의 처음과 중간과 끝은 인간해방이다.

4) 폭력(暴力)
자유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교회는 {폭력적 수단에 의해 자유는 촉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범죄와 구타와 사형과 살인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완력이나 폭력을 사용해야 하고, 그러므로 교회는 비인간적인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해 폭력사용을 옹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는 자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간디(Gandhi)의 비폭력적 방법을 채택하였다.
{증오를 보복적인 증오로 대하는 것은 악의 존재를 강화시키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모든 종류의 가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비폭력적 방법은 마침내 그 어떠한 방법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 될 것이다}
세계 교회협의회(W. C. C)는 1966년도에 이렇게 성명서를 발표했다.
{폭력을 사용함에는 그것이 사용될만한 필요성을 엄격히 정의하고 본래부터 그 안에 들어있는 악을 명백히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그것은 언제나 자비에 의해서 완화되어야 한다}

5) 평 가(評價)
기독교적 혁명의 신학은 시기에 적절한 도전이다. 이 신학은 사회나 교회의 개혁을 위한 많은 운동들을 활동시켰다. 이 신학은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말든 혁명의 한 복판에 들어가 있으며, 그 혁명 중의 더러는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할 일은 교인들과 모든 인류로 하여금 건설적이고도 창조적으로 변화를 수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 안에 많은 위험과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몇몇 극단론자들의 부족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훌륭한 목적을 가진 운동이라도 그 자체의 극단론자들과 다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은 서로 대립함으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건설적인 비판이나 중도적 입장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혁명의 신학은 {외면적 인간의 요구}를 강조한다. 더 많은 자유와 먹을 것, 더 나은 사회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있어야 하는 생의 목적과 목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육체만을 먹인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인간을 참으로 자유케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다. 구치에레즈(Gutierrez)가 말하는 뜻은 전연 다르다. 그는 말하는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땅의 착취당한 자들을 해방시키고 가난과 인종 차별주의의 적대심과 분리의 무거운 짐들을 덜어주며, 인간의 생활을 질적으로 저하시키거나 비인간화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는데 적극 참여하도록 강요하신다는 것이다.

 

11. Post modernism과 종교다원주의 신학

1) Post modernism의 의미

Post modernism이란 말은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학계에 일종의 유행처럼 널리 퍼져가고 있다. 포스트 모던 건축, 포스트 모던 문학, 포스트 모던 의상, 포스트 모던 영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포스트 모던 신학까지 나올 정도로 {포스트 모던}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우리가 포스트 모던의 유행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스트 모던}이라는 용어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이후}란 뜻을 가진 post라는 말과 {근대 또는 현대}를 의미하는 modern이라는 말이 이루어져 {포스트 모더니즘}은 근대 이후의 시대를 특징짓는 주도적 사상 또는 시대 정신 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을 흔히 근대 후기, 탈 현대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의미의 변질을 우려하여 포스트 모던이라고 그대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포스트 모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스트 모던의 post를 가능케 했던 근대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서구사의 맥락에서 모던이란 지금은 낡은 개념이지만 이 단어가 등장했던 고대 말기, 초기 계몽기 17세기 프랑스만 해도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였고 그래서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졌고 순환적이며 고대를 지향하는 르네상스에 대항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과학적 합리주의적 세계관과 시대정신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혁명을 통한 사회 전반의 근대화를 가져 왔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서양의 근대 문화의 정신적 근간인 근대적 세계관이 붕괴되어 가는 조짐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자연 과학에서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근대 자연과학의 기초가 되었던 뉴턴의 절대시간, 절대 공간, 질량개념을 일거에 파괴해버렸고 1727년 하이젠 베르크가 그때까지의 양자론을 집대성하여 이론화시킨 [불확정성의 원리]는 고전 물리학의 철칙인 인과론(因果論) 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 결과 뉴턴 식의 고전 물리학으로는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하고 그 법칙을 밝혀 낼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것은 곧 고전 물리학의 세계관적 근거가 되는 과학 합리주의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의 제기로 연구되었다. 이와 함께 건축, 음악, 미술, 문학 등의 분야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미적 기준}의 세계관적 근거에 이의를 제기하고 {문학, 예술작품의 기하학적 통일성}의 가치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어 갔다.
1950년대에 이러한 {혼돈}과 {파괴}와 {새로운 문학}의 시대적 흐름을 두고 아놀드 하우저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래 {포스트 모더니즘}은 문학과 예술 분야의 {최신 유행 사조}로 이해되면서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러한 포스트 모던적 혼돈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방황}이라는 성격과 {새로운 모호성} 새로운 방향을 향한 새로운 전진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흔히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후자의 {새로운 방향}이 동양의 전통사상과 매우 유사하거나 밀접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300년간의 {근대} 시대를 이끌었던 세계관과 시대 정신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고서 동양사상 등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이 시대의 새로운 정신이 포스트 모더니즘인 것이다.

 

2) 포스트 모던이즘 의 특징 및 주제들

▶ 첫 번째 특징은 불확정성(indeterminacy)이다. 불확정성이란 현대 문화의 여러 가지 특성들 - 애매 모호성, 불연속, 임의성, 반역, 곡해, 무작위, 해체, 변용 -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의 분열함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적 세계관에서는 절대성이란 없으며 삶의 다양성과 우연성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두 번째로는, 단편화(framentation)현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이 어떤 질서나 통합에 대한 동경과 향수로 가득한 채 그것들의 회복을 위해 단편화의 수법을 사용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 은 단편화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모더니즘에서는 자본주의 생산 관계 속에서 파편화 되어 가는 인간 삶의 총체화를 시도한다. 자본주의 속에서 예술의 상품화를 거부하는 것인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예술작품이 전반적인 상품유통 속에 편입되어 단편화를 위한 단편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 세번째는 탈정전화(脫正典化 decanonization)현상이다. 정전이라 함은 이제껏 고전이라 모셔져왔고, 혹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물(具顯物)처럼 생각되어온 것들이다. 그런데,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이런 것들이 한낱 지배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거나 서구 중심주의, 엘리트주의, 남성 중심주의의 표상이라며 비판한다. 이러한, 탈정전화는 필연적으로 대중주의를 탄생시킨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위 고급문화나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대중 속에 위치하는 예술을 지향한다. 그리하여 문학에서는 추리소설, 공상과학소설, 여성문학 등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도 코카콜라 병이나, 슈퍼맨의 만화를 이용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들이 높이 평가받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우선 진보적이다. 기존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반성하고, 한 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을 거부한다. 대중과 유리되는 예술을 지양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를 선택한다. 또한, 포스트 모던이즘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현대에서의 다양하고 복잡한, 그리고 파편화된 삶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는 realism의 재현(再現)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재현 자체 속에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며, 좋은 형식이 주는 기쁨을 거부하고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포스트 모던이즘은 비정치적, 비역사적인 성격을 가진다. 포스트 모던이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치는 관심밖에 있으며, 역사는 불연속 단절로서의 역사만이 존재한다.
이런 포스트 모던이즘은 신학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시도하는 자들을 만들어 내게 됐다. 슈라이터는 신학의 국지화를 신학의 상황화, 토착화, 미개화와 동일시하고 있다. 포스트 모던 사회의 신학적 주제는 후기 파토스(pathos)적 해체 요소를 지니고, 단편적이고 파편적(破片的)인 인식론적 집착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존 질서의 붕괴, 문화적 획일주의, 상대성, 탈 현대적 존재론적 질문, 공적 의사소통을 곤란케 하는 언어의 혼란, 위기의식의 고조와 더불어 나타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에 대한 기대와 전망 등의 특징 속에서 신적(神的) 질문에 관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사회 전반적 문화를 주도해온 서구의 합리적 담론형식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를 맞이하면서 이 신학의 주제는 생태계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창조론의 재등장, 자연에의 복귀론, 문명 비판론이 활기를 띄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모던이즘은 종교 다원주의를 출산하였다.

 

3) 종교 다원(多元)주의
절대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 해체는 화해와 관용, 평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이끌어 들인 반면에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의 붕괴를 통해 새로운 허무주의, 고립주의, 개인주의 속에서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타고 들어오는 다원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혼합주의와 다원주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의 신학자 린 센창은 기독교가 아시아에서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을지 몰라도 마음의 교두보를 확보하는데는 실패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아시아는 어느 대륙보다 타종교로부터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복음주의는 아직도 대체로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전혀 불가능하며 타종교는 정복해야할 우상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만인 구원론의 입장을 견지한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에 관한 이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독교 절대주의(배타주의), 종교 다원주의, 포괄 주의가 그것이다.
▶ 기독교 절대주의란 말 그대로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이다. 성서에는 사도행전 4장12절, 요한복음 14장6절이 그 전형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카톨릭의 입장, 개신교의 바르트와 크래머가 근래의 사례이다.
▶ 포괄주의란 {발전-완성}(성취설)의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입장은 타종교에 대해서 변증법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즉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말한다. {타종교 속에 있는 모든 진리는 본래 기독교의 것이다}라는 것이 그 전형적인 표현이다. 젊은 날의 어거스틴도 이런 입장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황금}은 간직해야 한다고 ,또 세계의 모든 진리의 관맥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이 입장은 누가-사도행전의 신학, 제2차 바티칸 회의, 순교자 저스틴, 그리고 최근에는 라너의 것이다.
▶ 종교 다원주의란 용어는 사실상 아직 의미 미 확정(未確定)의 것이다. 포괄주의와는 달리 참 종교를 하나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와 굳이 구별한다면 다원주의란 {궁극적으로는 형언 불가능한 하나의 신적 실재}를 믿고 있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길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WCC는 이미 1973년 방콕 대회에서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해 대화와 공존의 입장을 주장하였는데 지금은 노골적으로 종교 다원주의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말한다. 종교 다원주의는 일종의 종교 혼합주의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국교회나 보수적 교회는 이러한 혼합주의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4) WCC와 종교 다원주의 신학의 발전
W. C. C의 종교 다원주의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에딘버러 선교대회부터 지금까지 긴 역사를 통하여 발전 된 것이다. 타종교를 비교 종교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타종교에 동정적인 태도를 권하며 아울러 타종교 속의 소량의 진리를 인정한다. 이 대회의 종교신학은 종교적으로 실용적인 리출리즘과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종교사학파 트릴취의 상대주의가 영향을 미쳤다. 예루살렘 선교대회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유럽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세속주의의 위협이 강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공동전선을 펴야한다는 의견도 대두되었거니와 타종교의 진리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신학자 빌헬름 엔더슨은 예루살렘 대회의 이러한 종교 관용적인 태도에 대해 참석자들이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상대주의를 말하지 않았지만 신학적으로 비교 종교학파의 종교 역사적 상대주의의 영향이 분명히 나타났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이후 1938년 마드라스대회는 칼 바르트의 신 정통주의 신학이 W. C. C의 종교신학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르트 주의자인 화란의 헨드릭 크래머는 성경의 계시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성경적 실재론으로 표현하고 성경적 실재론은 타종교와 어떠한 연속성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의 복음을 성경적 실재론으로 표현하고 "역사적 기독교"를 종교가운데 하나로 간주함으로 결국 그의 논리도 기독교와 비기독교간에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것이 되었다.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크래머의 타종교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애매한 변증법적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대회는 크래머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1955년 국제 선교회는 W. C. C와 공동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살아있는 여러 종교"에 관한 주제로 공동연구를 시작하고 종교간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1961년 뉴델리 총회는 타종교에도 하나님이 역사 하심을 인정하고 타종교를 산 믿음(Living faith)으로 표현, 대화를 적극 권장함으로 전도는 대화로 대치된다.
1968년 움살라 총회는 처음으로 대화를 행동으로 구체화하기 위하여 5인의 다른 종교 지도자를 초청했는데 ,이후부터 WCC는 중요 회의 때마다 타종교인을 초청하여 사원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WCC의 대화의 신학은 교회 안(Intrumuros)과 교회 밖(ultramuros)를 구분하는 전통적 구원관을 배격하며 개종은 종교적 제국주의로 간주하고 교회 밖의 구원을 제창한다. 특히 WCC대화국 책임자 사마르타는 타종교에도 기독교가 발견한 진리가 있기 때문에 선교는 포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5)종교 다원주의의 근거
일반학자들과 신학자들은 각기 다른 근거에서 종교 다원주의를 주 장한다. 일반적 입장이 기초하고 있는 토대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 첫째,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는 신념이다.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의 상대주의를 주장한 19세기 종교사학파의 트륄치가 이를 대변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며 제각기 진리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으로 다른 어느 종교보다 더 휼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 둘째, 모든 종교는 동일하다는 신념이다. 즉 종교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적인 것, 문화적인 것, 시대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한다.
▶ 셋째, 모든 종교는 공동의 심리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이다. 모든 종교가 각 개인에게 공동으로 존재하는 심리학적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견해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무의식 속에 기원을 가진 심리학적 사건을 취급하여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부정한다.

 

6) 평가
포스트 모던신학(프레데릭 번햄 편)은 성서는 더 이상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규범적 원형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한 점과, 근대후기 세계를 위해서는 생명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간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복음주의적, 계시, 부활, 성서의 무오류성,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부인한다. 또 홍정수 교수의 [베 짜는 하나님]에서 "예수가 죽음으로써 다시는 불쌍한 동물들이 죽지도 않게 되었으니 그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물들을 위해서 죽은 것이다. 예수의 피 흘림은 상징적인 언어요, 그것은 그의 공생애 전체를 가르킨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피의 마술을 믿는 교회와 교인들은 각자 가져야할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p147)라고 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구속의 관점이 아닌 상징의 언어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왜곡하고 있다. 홍정수 교수는 "예수의 육체의 부활, 동정녀 잉태 등을 현실적 사건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은유의 문법으로 읽어야 한다. 이러한 견해의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독교라면 존재 가치가 의심스럽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학 방법이 보다 성서적이라고 주장함으로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부인하고 있다.
종교 다원주의는 비성경적인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 동시에 오류이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인도주의적 관점으로부터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문제에 접근하여 합리적으로 구원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진리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성경을 오도하는 것이다.
첫째, 모든 종교의 신이 이름만 다를 뿐이지 실제로 동일한 신이라는 주장은 비 성서적이다.
둘째,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의 계시 대신에 인간의 이성과 인도주의에 근거했다. 인간의 구원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원주의자들은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셋째, 종교 다원주의는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길과 좁은 문을 넓히려는 인간적인 시도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게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하였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 따라서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고 이를 다른 복음으로 대치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이다.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체계들의 자율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인 다양한 집단들의 구성, 혹은 다양한 사회의 여러 요인들의 공존적 상황에서 다원주의는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 곁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적 이어야 한다. 다른 종교에 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 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좁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종교간의 갈등을 피하려는 상황에서 공감적인 종교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독특성이 변질되거나 포기되어야만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할 때 그 구원이 기독교의 구원과도 같을 수는 없다. 구원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기독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기독교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성경의 진리를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타종교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개인적인 대화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개해야 된다. 특히 타종교 (불교, 유교, 도교, 신흥종교)가 수없이 많은 한국에서는 그들을 너그럽게 대하여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신자라도 성령의 열매를 보이지 못할 때는 역시"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말을 명심하여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적 조류에서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지키며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학의 역사와 흐름을 대강 짚어 보았다.
신학은 철학자의 사색처럼 신학 그 자체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신학은 교회의 사고(思考)와 예배와 생활 전체에 방향과 안내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와 신학은 도리어 어떤 특정한 이념과 정치사회의 구도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차원 높게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그 일차적 사명일 것이다. 다양한 신학이 나타나고 종교의 다원주의가 보편화됨으로 참된 진리를 지켜가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에 이르렀다. 신학은 선교를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창조의 목적대로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의 곳곳에서 억눌리고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통해서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한 백성이 되도록 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다. 신학교육은 바른 진리, 변치 않는 영원한 진리를 전하고 또 혼합적인 사상을 배격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