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예배는 가능한 것일까?
2007 5 28
권호덕 교수(백석대 기독신대원, 교의학)
요즈음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오가는 시간도 절약되고 또 설교를 골라 들을 수 있으며, 여행 중일 때는 편리하다고 한다. 물론 헌금은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한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는 기독교 관련 종교사이트가 5394개, 불교가 1439 그리고 천주교가 815개이다. 기독교가 이런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제는 이런 식의 예배는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일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면 인터넷 예배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또 만일 허용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에 허용될 수 있을까?
1. 인터넷 예배의 문제점
우선 인터넷 예배를 선호하는 자들은 자기 종교 만족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주일날 교회에 가기에는 거리가 멀고 또 시간도 없는데 집에서 인터넷으로 소위 설교를 듣고 종교성(宗敎性)을 만족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대개 이들의 경우 “하나님 중심적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여기저기로 가져가려고 한다. 그 속에는 지극한 편의주의적인 사고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에게는 성도(聖徒)의 교제(交際)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고 있다. 교회의 본질(本質)은 성도의 교제이다. 나와 다른 주님의 지체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식사하며 함께 교회를 봉사하는 것이 성도의 임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인터넷 뱅킹을 통해 헌금을 보내는 것만은 능사가 아니다. 물론 금전을 갹출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교회는 이것으로도 만족하지만 말이다.
말세에는 모이기를 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현대 사회, 포스트 모던시대 내지 뉴에이지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의 영역을 성(城)으로 담을 쌓고 먹을 양식과 밖으로 통하는 인터넷만 있으면 혼자 살려는 성향을 지닌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을 거추장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정신적인 자폐증(自閉症)에 걸리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의의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조승의 사건은 이런 사회의 병리 현상 가운데 하나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세상이 이처럼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족(自己滿足)을 위해 살 때 기독교인들은 더욱 다른 지체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쳐야 되는 것이다.
나아가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한 부분에서 반드시 봉사해야 한다. 이 한 부분을 봉사함을 통해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교회에서 할 일이 있어야 영혼이 성장하는 것이다. 이 세상 마지막에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터넷 예배를 선호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봉사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지체들과 연합하는 일도 매우 중요함을 가르친다. 주일날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며 서로 섬기며 봉사할 때 지상에서 천국을 사전에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예배는 이런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자기 마음에 드는 설교를 골라서 듣는다고 했는데, 이런 자세는 위험할 수도 있다. 모든 성도들은 자기들의 목자를 통해 영혼의 양육을 받는다. 목자는 양들의 영적 양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그들에게 먹인다. 성도들은 그 양식을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먹어야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러 극단적이기는 하나 이단적인 사이트에서 소위 오묘한 설교를 통해 미혹을 받으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현대 한국교회 문제는 교회가 집에서 멀리 있다는 데 있다. 자기 입에 맞는 설교를 원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사실 자기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참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교회가 자기 교회가 된다. 수많은 교회 버스를 동원해서 매우 먼 거리에서 거주하는 성도들을 자기 교회를 끌어 모으려는 재벌 교회는 성경적으로 볼 때, 사실 비정상적인 것이다. 자기 교회가 멀리 있는 경우, 새벽 기도 등 개인적인 기도 생활도 규칙적으로 할 수 없다. 매일 아침 그 먼 거리를 가서 새벽 기도회를 참석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또 시간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집 가까운 다른 교회에 가면 눈치가 보여서 기도 생활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지니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이다.
요컨대 인터넷 예배는 첫째, 하나님 중심적인 것의 반대인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똬리 틀게 만든다. 둘째, 성도의 교제를 막는다. 셋째,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할 일을 못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인터넷 예배는 결국 교회를 말살하려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게 할 것이다.
2. 인터넷 허용되는 경우
선교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복음이 들어갈 수는 모슬렘 지역이나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지역에는 인터넷을 예배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되면 처형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언젠가 종교의 자유가 실현될 경우 모든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예배하며 주님의 몸의 지체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과도기 차원에서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질병으로 인해 교회에 전혀 나올 수 없는 성도들은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 역시 목회자나 다른 교인들의 심방도 받고, 또 다른 지체들과 전화를 통해 상호 교제를 나누며 성도 간의 교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 인격에 기형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3.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1) 초대형 재벌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 교회의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목회자들의 영적, 지적 수준이 평준화 되도록 신학 교육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누가 목회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해서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만족을 충족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신학교육을 위한 장학금이나 교육 설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2) 성도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교육을 잘 해야 한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공동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수행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을 봉사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가 실현되어야 하는 공동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3) 교회내 계급주의 타파.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 계급의식이 많이 있다. 부자는 부자들끼리,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가난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 끼리 상통한다. 이것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부자는 없는 듯이, 지식이 많은 사람은 모르는 듯이 하며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인 것이다. 이렇게 계급주의 의식이 존재하는 한 교회는 천국이 아니고 따라서 교회에 갈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로이드 존슨 목사는 심지어 자기 설교를 녹음하는 것까지도 금지했다. 이는 예배 시간에 역사하시는 성령은 녹음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7 5 28
권호덕 교수(백석대 기독신대원, 교의학)
요즈음 상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오가는 시간도 절약되고 또 설교를 골라 들을 수 있으며, 여행 중일 때는 편리하다고 한다. 물론 헌금은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한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는 기독교 관련 종교사이트가 5394개, 불교가 1439 그리고 천주교가 815개이다. 기독교가 이런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제는 이런 식의 예배는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일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면 인터넷 예배의 문제점이 무엇일까? 또 만일 허용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에 허용될 수 있을까?
1. 인터넷 예배의 문제점
우선 인터넷 예배를 선호하는 자들은 자기 종교 만족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주일날 교회에 가기에는 거리가 멀고 또 시간도 없는데 집에서 인터넷으로 소위 설교를 듣고 종교성(宗敎性)을 만족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대개 이들의 경우 “하나님 중심적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여기저기로 가져가려고 한다. 그 속에는 지극한 편의주의적인 사고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에게는 성도(聖徒)의 교제(交際)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고 있다. 교회의 본질(本質)은 성도의 교제이다. 나와 다른 주님의 지체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식사하며 함께 교회를 봉사하는 것이 성도의 임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인터넷 뱅킹을 통해 헌금을 보내는 것만은 능사가 아니다. 물론 금전을 갹출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교회는 이것으로도 만족하지만 말이다.
말세에는 모이기를 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현대 사회, 포스트 모던시대 내지 뉴에이지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의 영역을 성(城)으로 담을 쌓고 먹을 양식과 밖으로 통하는 인터넷만 있으면 혼자 살려는 성향을 지닌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을 거추장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정신적인 자폐증(自閉症)에 걸리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의의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조승의 사건은 이런 사회의 병리 현상 가운데 하나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세상이 이처럼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족(自己滿足)을 위해 살 때 기독교인들은 더욱 다른 지체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쳐야 되는 것이다.
나아가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한 부분에서 반드시 봉사해야 한다. 이 한 부분을 봉사함을 통해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교회에서 할 일이 있어야 영혼이 성장하는 것이다. 이 세상 마지막에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터넷 예배를 선호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봉사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지체들과 연합하는 일도 매우 중요함을 가르친다. 주일날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며 서로 섬기며 봉사할 때 지상에서 천국을 사전에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예배는 이런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자기 마음에 드는 설교를 골라서 듣는다고 했는데, 이런 자세는 위험할 수도 있다. 모든 성도들은 자기들의 목자를 통해 영혼의 양육을 받는다. 목자는 양들의 영적 양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그들에게 먹인다. 성도들은 그 양식을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먹어야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러 극단적이기는 하나 이단적인 사이트에서 소위 오묘한 설교를 통해 미혹을 받으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현대 한국교회 문제는 교회가 집에서 멀리 있다는 데 있다. 자기 입에 맞는 설교를 원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사실 자기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참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교회가 자기 교회가 된다. 수많은 교회 버스를 동원해서 매우 먼 거리에서 거주하는 성도들을 자기 교회를 끌어 모으려는 재벌 교회는 성경적으로 볼 때, 사실 비정상적인 것이다. 자기 교회가 멀리 있는 경우, 새벽 기도 등 개인적인 기도 생활도 규칙적으로 할 수 없다. 매일 아침 그 먼 거리를 가서 새벽 기도회를 참석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또 시간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집 가까운 다른 교회에 가면 눈치가 보여서 기도 생활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지니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이다.
요컨대 인터넷 예배는 첫째, 하나님 중심적인 것의 반대인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똬리 틀게 만든다. 둘째, 성도의 교제를 막는다. 셋째,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할 일을 못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인터넷 예배는 결국 교회를 말살하려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게 할 것이다.
2. 인터넷 허용되는 경우
선교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복음이 들어갈 수는 모슬렘 지역이나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지역에는 인터넷을 예배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되면 처형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언젠가 종교의 자유가 실현될 경우 모든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예배하며 주님의 몸의 지체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과도기 차원에서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질병으로 인해 교회에 전혀 나올 수 없는 성도들은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 역시 목회자나 다른 교인들의 심방도 받고, 또 다른 지체들과 전화를 통해 상호 교제를 나누며 성도 간의 교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 인격에 기형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3.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1) 초대형 재벌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 교회의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목회자들의 영적, 지적 수준이 평준화 되도록 신학 교육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누가 목회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해서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만족을 충족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신학교육을 위한 장학금이나 교육 설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2) 성도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교육을 잘 해야 한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공동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수행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을 봉사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가 실현되어야 하는 공동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3) 교회내 계급주의 타파.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 계급의식이 많이 있다. 부자는 부자들끼리,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가난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 끼리 상통한다. 이것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부자는 없는 듯이, 지식이 많은 사람은 모르는 듯이 하며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인 것이다. 이렇게 계급주의 의식이 존재하는 한 교회는 천국이 아니고 따라서 교회에 갈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로이드 존슨 목사는 심지어 자기 설교를 녹음하는 것까지도 금지했다. 이는 예배 시간에 역사하시는 성령은 녹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Herman 원글보기
메모 :
'교회문제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잘못된 질문에 잘못된 대답-부흥과 개혁카페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0) | 2007.06.19 |
---|---|
[스크랩] Amyraldism은 도대체 무엇인가? (0) | 2007.06.06 |
[스크랩] Re:유창윤, 장동관님이 종교적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0) | 2007.05.21 |
[스크랩] UBF의 핵심문제 (0) | 2007.05.19 |
[스크랩] 도올은 도올이되, 썩돌일 뿐이다 (0) | 200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