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심자료

[스크랩] 거짓교사 김인찬목사의 위험한 교리를 폭로합니다(1)

baromi 2007. 4. 13. 11:02

 

                거짓교사 김인찬목사의 위험한 교리를 폭로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합동'에 속했다고 스스로를 목사로 자천하는 김인찬이라는 인물이 드디어 이곳 양무리카페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글이 몇편 올려지는 것을 보건데, 열심이 있는 모습이 있으되, 그 열심에 빛이 없는 듯 해서, 그냥 그 열이 식으려니 싶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마치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는 것인양 치부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몇 차례 대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전부터 그와 연관된 장동관이라는 사람의 신학을 주시하면서 살폈거니와, 그와 가까운 인연이 있는 듯한 이 김인찬이라는 이가, 다른 곳에서 활동하듯, 이곳 양무리마을카페에서 자신의 신학을 인정받으려는 듯, 활동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겨져서, 아래의 글을 시작해서, 그의 주장들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참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아랫글은 모두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세 부분으로 나눠서 비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의 글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인찬님)

 

1)예수는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육체로 죽었기 때문에 보편적 구원이 가능해졌다.


예수의 죽음은 모든 육체를 대표로해서 죽으셨다.

불신자든 신자든 인류의 모든 육체를 대표해서 죽은 것이다.

그 명백한 증거를 아래와 같이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영혼이 죽었던 것이 아닌 육체가 죽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인류의 두 대표들에 의해서 육체로 죽은 것이다.

이렇게 그는 모든 인류라는 죄인들을 위해서 육체로 죽은 것이 확실하다.(대표성)


예수는 모든 인류의 죄인들을 대표로 이 세상에 의인으로 보내어진 것이다.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인류는 죄인이지만 예수는 유일한 의인이었던 것이다. 유일한 의인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대표로 세워졌고 또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두 종류인 이방인과 유대인에게서 죽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과 유대인 그 모두를 위해서 죽은 것이며 나아가 모든 죄인들 가운데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선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보편적인 선택을 위해서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고 나아가서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종류의 인류에 의해서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임으로 선택할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같은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구원의 동일한 기회로 얼마든지 부르는 은혜)


a.예수는 이렇게 먼저 모든 육체와 원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육체 가운데서 죽으신 것이다.

b.그리고 자범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들이 심판되어 낙원과 음부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c.예수의 부활로 모든 영혼이 원죄가 없는 육체로 부활하여 자범죄의 기준으로 심판된다.

 

(홀리죠이)

 

'합동'의 목사이기를 자처하는 자로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심히 유감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기로, 합동총회는, "제한적 속죄론"을 믿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의 김인찬이라는 인물은, 선명하게도, "보편적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보편적 구원론'의 핵심은, 예수님이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죽었기 때문에,  "모든 죄인들 가운데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보편적인 선택이 가능해 진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글이 회색빛으로 가득한 것은, 그의 이런 표현들을 애매모호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윗글의 첫부분은, '보편적 구원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보편적인 선택이 가능해 진 것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보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임의로 선택할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선택'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인 것처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글을 계속 읽다보면 이상한 부분을 여러 곳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연 이 '선택'이 누구의 선택인가를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첫째로, 과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그 하나님의 선택이 김인찬씨가 말하는 것과 같이,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 선택의 권한이 주어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바로 영원전 당신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의한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엡1:4). 그가 구원받을 자를 택하신 것은, '영원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윗글에 나오는 '선택'의 의미를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본다면, 김인찬씨의 주장은, 하나님의 영원전 선택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윗글에 나오는 '선택'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그런 주장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합동'총회의 신학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차지하고라도 말입니다. 그의 주장은, 그렇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든지"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꼴이 됩니다. 바로 전형적인 '보편적 구원론', 혹은 보편속죄론을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전에는 선택의 가능성이 없도록 죄인들이 인간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 가능성의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주장이, 도덕적 감화론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신학자들의 속죄론에까지 이르게 되는지 아닌지는 좀더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이 점만 지적해 보아도, 그의 주장하는 꼴이 이상야릇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장하는 바도 아니고, 그가 속했다고 자부하는 '총회'의 신학도 아닌, 말 그대로 족보가 없는 신학을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제가 그의 신학이 위험하다고 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더 위험한 것은, 그가 예수는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더 집중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할 수도 있고, 뭔가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 같아서, 혹시 그런가 혼동될 수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김인찬목사가 이 문제를 어느 정도나 숙고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주장하는 바에 있어서, "예수는 육체만 죽었다"는 것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좀 집중해서 비판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의 영혼이 과연 죽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사람이라면, 1)복음서 기자인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는 구절의 의미와, 2)초대교회때부터 개진되어 왔던 기독론의 영혼과 의지의 갯수문제, 그리고 3)그리스도의 신인양성론에 대해서 유의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먼저, 그 순서를 거꾸로 해서, 1)신인양성론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예수의 "영혼"이 과연 신성에 속하는 것인가? 인성에 속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속해있다고 하는 '합동'총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참고서가 있다면, 바로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 의하면, '영혼'에 속한 '의지'(will)와 '의식'(consciousness)의 요소를, 그리스도의 person에 속한 것이 아니고, 그 nature에 속한 것으로 보고 있고, 또한 이렇게 보는 견해야말로 '교회'가 전통적으로 취해온 견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의지', '의식' 등이 소재하는 '영혼'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human nature)에 속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김인찬씨가 그리스도의 "영혼"이 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속한 요소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divine nature)에 속한 것이 죽지 않았다고 하거나, 그리스도의 인격(divine person)이 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옳은 이야기이고, 성경적이며, 고백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영혼"이 죽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성"(human nature)가 죽지 않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자체의 의미를 간과하고 무시하고, 그의 죽으심을 반쪽자리 죽음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주장하는 바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나 하면서 주장한다면, 오히려 더욱 크게 책망받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모른 채로 그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면,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견해는, 이런 논의에 대한 신학적 기본사항을 무시한 것 때문에 일어나는 주장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person과 nature에 대한 사항들을 혼동하기 때문에 오는 주장인 것입니다. 역사적 교회는, 이런 혼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이런 신학적 주장들을 잘 정리해 두고 있는데, 그것들을 김인찬씨는 조심스럽게 살펴보지 않으면서, 자기 주장을 펴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의 그의 '인격'(person)에 속한 것이 아니고, 그의 '본성'(human nature)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의 구속 자체를 무효화시키고 있는 것임을 잘 알기를 바라고, 또한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그의 주장을 경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아마도 김인찬씨는 저의 이런 지적을 듣고는, 예수의 인성의 "영혼"과, 신성의 "영혼"은 같은 것이라고 반박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주장은, 그의 주장이 얼마나 더 위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지는 기독론 논쟁에 있어서, 이런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예수의 영혼이나 의지가  도대체 몇 개냐 하는 등의 논의입니다. 만일, 김인찬씨가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예수는 하나의 '본성"(nature)만을 가지고 있어서, 그 본성의 영혼은 죽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주장하게 된다면, 그는 이런 논쟁들 중에서, Monophysitism에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주장을 칼세돈회의에서는 저주받을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two nature in one person의 공식으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리고 그 영혼 혹은 의지의 관계를 정리했던 것입니다. 김인찬씨가 이런 교회의 전통적인 고백에 익숙하다면, 함부로 이런 주장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심지어는 이런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기초해서, 더 이상야릇한 주장으로 확대된 거짓교리들을 퍼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어느 곳도 제대로 비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당하고 건전하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이곳 양무리마을카페에서는 그의 교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것인지를 이렇게 경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고하거니와 그의 주장이 더욱 나아가서, 교회의 역사에서 단죄되었던 aphthartodocetists같은 자들의 오류에 빠져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3)이제 세번째 "(예수의) 영혼이 떠나시다"는 성경구절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실은 헬라어원어를 들먹일 것도 없고, 이 구절과 앞의 두 논의들에서의 관련성도 검토해 볼 것도 없습니다. 이 구절은 분명히 예수의 죽음을 기술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분명하고 분명한 것은, 이 예수의 죽음을 기술하면서, 예수의 "육체가 떠나시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떠나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떠나시다"는 말이 '죽은 것이 아니다'고 항변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요? 신약성경에 '잠자다'라는 표현이 '죽었다'고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은 죽은 것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주장일까요? "죽었다'는 말을, '파괴되어서 완전히 없어졌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과연 합당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과연 예수의 육체는 죽었기 때문에, "파괴되어서 완전히 없어져 버렸던 것"일까요? 그렇게 육체가 파괴되어서 완전히 없어진 것처럼, 예수의 '영혼'은 '파괴되어서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이런 혼동스러운 질문들을 통해서, 김인찬씨가 노리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의 영혼이 떠나시다는 말을 예수의 영혼이 죽지 않았다고 하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예수는 과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일까요? 예수의 영혼은 파괴되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한 번도 저주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예수께서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완료형태!!!)하는 탄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서, 예수의 영혼이 죽지 않았다고 한다면, 모든 인간의 영혼도 불멸의 것이기 때문에(이런 개념이 플라톤에게 영향을 입은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차후에 비평하겠습니다!), 어떤 인간의 영혼도 또한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서라면, 인간에게는 도대체 구원이 필요도 없어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김인찬씨가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나 알면서, '예수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번째 그의 주장을 비평한 것을 정리합니다. 김인찬씨의 주장은, 보편구원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가 속했다고 주장하는, '합동'총회의 신학에 저촉됩니다. 둘째, 김인찬씨의 주장은, 예수의 "영혼의 죽음"을 부인함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변질,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질과 왜곡의 실상을 아래 부분의 비평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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