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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노회 발회식 선언문

baromi 2007. 4. 7. 08:15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노회 발회식 선언문

(大韓예수敎 長老會 總老會 發會式 宣言文)


인류(人類)를 통(通)하여 이루어지는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벗어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주검에 처(處)한 인생(人生)을 사망(死亡)에서 생명(生命)의 세계(世界)로 옮기는 십자가(十字架)의 도(道), 회개(悔改)와 믿음으로 구원(救援)을 얻게 하는 하늘의 복(福)된 소식(消息), 감격(感激)에서 넘쳐흐르는 회개(悔改)의 눈물은 우리들의 심령 골수(心靈 骨髓)를 녹여내고 있습니다.

성경(聖經)에 신앙생활(信仰生活)의 삼대요소(三大要素)를 1. 믿음과 2. 소망(所望)과 3.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恒常) 있을 것인데 그 중(中)에 제일(第一)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참 회개(悔改)가 없는 자(者)에게 참 믿음이 있을 수 없고, 참 믿음이 없는 자에게 소망(所望)이 있을 수 없고 하늘에 소망(所望)을 두지 아니한 자(者)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의 믿음은 십자가(十字架)의 승리(勝利)이며, 우리들의 소망(所望)은 하늘에서 빛나고, 우리들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심장(心臟)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회개(悔改)가 없는 자(者)에게 하늘의 소망(所望)이 있을 수 없고, 참 회개(悔改)가 없는 자(者)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창세(創世) 이래(以來)로 범죄(犯罪)한 인생(人生)이 죄(罪)와 사망(死亡)에 빠져 있는 것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붉은 피를 비롯하여 시대시대(時代時代)에 순교(殉敎) 성도(聖徒)들의 피로써 진리(眞理)를 계승(繼承)시켜주신 그 크신 사랑의 경륜(經綸)이 계승(繼承)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하신 이 사랑의 큰 경륜(經綸)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命令)이 내릴 때마다 순종(順從)하지 아니한 자(者)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그러하였고, 엘리야가 그러하였고, 요나가 그러하였고, 바울이 그러하였고, 칼빈이 그러하였은즉 오늘에 진리(眞理)의 종들과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이 지상명령(至上命令)이 내리고 있음도 틀림이 없는 사실(事實)일 것입니다.


중세기(中世紀) 암흑시대(暗黑時代)를 광명(光明)으로 변(變)하게 하여 진리(眞理)를 매몰(埋沒)하던 교권주의자(敎權主義者)들을 물리치고, 부패(腐敗)하여 세속적(世俗的)으로 흘러 나리고 있는 교회(敎會)를 바로 잡아 세우기 위(爲)하여 생명(生命)을 걸고 싸운 선지(先知)와 교부(敎父)들이며, 무수(無數)한 성도(聖徒)의 흘린 피가 오늘의 진리노선(眞理路線)을 계승(繼承)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선배(先輩) 칼빈 선생(先生)께서도 그 시대(時代)의 암흑면(暗黑面)을 깨치고 진리(眞理)를 바르게 세우기 위(爲)하여 개혁주의(改革主義)<복음화(福音化)>운동(運動)을 시작(始作)한 것이 곧 우리 장로교회파(長老敎會派)의 창시(創始)였습니다.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大韓예수敎長老會)는 칼빈 선생(先生)의 개혁주의(改革主義)로 이루어진 종파(宗派)이니 만큼, 우리들은 이 개혁주의(改革主義) 진리(眞理路線)을 떠나서는 장로파(長老派) 교회(敎會)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우리들의 신앙(信仰)에 만족(滿足)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정말기(倭政末期)에 그 무서운 탄압(彈壓)과 휘날리는 총검(銃劍)의 위협(威脅)이 많은 성도(聖徒)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여 신앙생명(信仰生命)을 유린(蹂躪)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우리들 중(中)에는 붉은 심장(心臟)에서 뛰노는 생명(生命)의 피가 진리(眞理)를 사수(死守)하기 위하여 혹(或)은 옥중(獄中)에서 죽어나고, 혹(或)은 6,7개 성상(星霜)의 옥중새활(獄中生活)을 감수(甘受)하였고, 혹(或)은 산(山)과 굴에서 흙투성이의 생활(生活), 혹(或)은 유린(蹂躪) 당(當)한 신앙지조(信仰志操)를 회복(回復)하기 위(爲)하여 통회(痛悔)의 눈물바다에 잠긴 자(者) 그 수(數)가 적지 않았습니다.

인생(人生)이 약(弱)한 자(者)라 범죄(犯罪)하였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 뿐 이리요. 시조(始祖) 아담때 부터 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범죄(犯罪)를 선조(先祖)에게 전가(轉嫁)시키고 무책임(無責任)하게 뻔뻔한 뱃심좋은 생활(生活)을 원하지 않습니다.

널리 세계교회(世界敎會)를 말하기 전(前)에, 한국(韓國)의 기독교회(基督敎會) 전체(全體)를 말하기 전(前)에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는 어찌되어있는가? 전술(前述)한 신학사상(神學思想)과 궤변(詭辯)으로 인(因)한 신앙노선(信仰路線)의 곡로(曲路)가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 헌법정신(憲法精神)을 떠나 이교파적(異敎派的)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수수방관(袖手傍觀)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이것이 신앙생명(信仰生命)을 붙들어 주는 참된 사랑이며, 장로교회(長老敎會) 교인(敎人)된 우리들의 연대책임감(連帶責任感)에서 나온 동정(同情)과 의분심(義奮心)일 것입니다.


일정(日政) 말기(末期)에 떨어뜨린 여호와의 영광(榮光), 유린(蹂躪)당한 성도(聖徒)들의 신앙지조(信仰志操), 상처(傷處)받은 심령(心靈)에 자가변호(自家辯護)와 자위적 논법(自慰的 論法)으로 시대(時代)의 병적(病的)인 소위(所謂) 진보주의(進步主義)라는 신신학사상(新神學思想)과 사이비(似而非)한 복음주의(福音主義), 허울좋은 보수주의(保守主義), 사랑을 요구(要求)하되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까지 사랑하여 달라는 화평론(和平論)과 타협(妥協)은 속화(俗化)되어가는 교권주의자(敎權主義者)들로 하여금 교회(敎會)를 현세생활처세(現世生活處世)의 도구(道具)로 삼기에는 편의(便宜)가 될지는 모르나 주님의 몸된 교회(敎會)를 믿음의 반석(盤石)위에 세우고 생명(生命)의 등대(燈臺)로 세워 죄악(罪惡)을 인(因)하여 암흑(暗黑)에 빠져있는 인생(人生)들에게 생명(生命)으로 인도(引導)하는 진리(眞理)의 횃불 노릇하기에는 합당(合當)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해방직후(解放直後)부터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가 장로회(長老會)헌법정신(憲法精神)으로 복귀(復歸)하자는 운동(運動)을 시작(始作)하여 그 방법(方法)으로 회개운동(悔改運動)과 신학사상(神學思想)에 치중(置重)하였고, 따라서 한국(韓國) 현실(現實)에 반영(反映)되는 사상문제(思想問題) 등(等)이었습니다. 이 부르짖음에 호응자(呼應者)도 적지 아니하였으나 오히려 비난(非難)과 비소(鼻笑)로 이 운동(運動)을 훼방(毁謗)하는 자(者)의 수(數)도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장로교회(韓國長老敎會)를 임시(臨時)로 대표(代表)하고 있다는 장로회(長老會) 현(現) 가설총회(假設總會)를 향하여 혹(或)은 충고(忠告), 혹(或)은 경고(警告), 혹(或)은 진정(陳情), 혹(或)은 항의(抗議)와 이의(異議) 등(等)으로 반성(反省)과 시정(是正)을 요구(要求)한 싸움은 결코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가 밉다든지 싫어서가 아니고 장중(掌中) 보옥(寶玉)같이 사랑함으로써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임시가설총회(臨時假設總會)는 교권주의(敎權主義)에 취(取)한 까닭인지, 난치(難治)의 병(病)에 걸린 까닭인지 모르나, 반성(反省)과 시정요구(是正要求)에는 격분(激憤)과 증오감(憎惡感)으로 반답(反答)이 있을 뿐이며 주종(主從)의 순서(順序)를 알지 못하고 옥석(玉石)을 구분(區分)하지 못하는 그들은 적반하장(賊反荷杖) 격(格)으로 우리를 이교파적(異敎派的)이라 하여 분리(分離) 단안(斷案)을 내렸다는 것은 일소(一笑)에 부치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우주통일원칙(宇宙統一原則)을 기준(基準)하여 한국(韓國)의 정치적(政治的) 통일(統一)을 기다리며, 한국장로회(韓國長老會) 종파(宗派) 단일성(單一性)과 한국장로회(韓國長老會) 임시행정기관(臨時行政機關) 단일화(單一化)를 위(爲)하여 최후(最後)까지 합동(合同)에 노력(努力)하여 보았으나 진리(眞理)안에서 하나이 되기에는 도저히 기대(期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법(不法)과 비진리(非眞理)와 불신앙적(不信仰的)인 무리들은 일(一)은 불법(不法)이 법화(法化)되었다는 것과 이(二)는 교권주의(敎權主義)를 진리(眞理)의 화신(化身)으로 여기며, 삼(三)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무시(無視)한 무조건적(無條件的) 사랑을 신앙(信仰)의 법칙(法則)으로 삼고있어 그 척도(尺度)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理由)로 우리들에게 대한 압박(壓迫)과 비난(非難)을 멎을 줄을 모르고, 날이 갈수록 기세(氣勢)를 뽐내고 있어 가인이 아벨을 대(對)한 것과 에서가 야곱을 대(對)한 것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 대(對)하는 듯한 감(感)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날의 서광(曙光)을 전망(展望)하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여 여호와의 지시(指示)를 기대(期待) 중 신학사상(神學思想)과 신앙노선(信仰路線)에 따라 교회(交會)행정(行政)이 갈라지게 된 것은 불가피(不可避)한 현상(現狀)을 이루어 놓고야 만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미련이 있던 통일(統一)기대(期待)는 접근(接近)될 여지(餘地)조차 없음이 간파(看破)됨으로 우리는 참다 못하여 열매없는 무화과(無花果)처럼 땅만 허비(虛費)하여 겉가지를 뻗어나가는 소위(所謂) 현(現) 임시가설총회(臨時假設總會)를 아낌없이 베어버리고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 헌법(憲法)대로의 전통적(傳統的)인 장로회총회(長老會總會)를 계승(繼承)하는 (법통(法統))총회(總會)를 준비(準備)하기 위(爲)하여 금일(今日) 본(本) 총노회(總老會) 발회식(發會式) 예배(禮拜)를 거행(擧行)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호(口號)는 진리(眞理) 투쟁(鬪爭)은 최후일각(最後一刻)까지며 전진(前進)이 있을 것뿐이고, 후퇴(後退)없기를 바라면서, 오 할렐루야 아멘

주후(主後) 1952年 10月 16日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 총노회(總老會) 선포문(宣布文) 기초위원일동(基礎委員一同)

주후(主後) 1952年 10月 16日 하오(下午) 9時 30分

본회(本會)를 대표(代表)하여 이를 장외(場外)에 선포(宣布)함.

대한예수교(大韓예수敎) 장로회(長老會) 총노회장(總老會長) 이 약 신(李 約 信)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로회 회록(제1-10회),1962,pp.11-14

 

 

출처 : 말씀사랑 교회사랑 책사랑
글쓴이 : 우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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