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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발제문> 한국교회의 기도와 영성 - 일본고베신학교에서

baromi 2007. 1. 24. 09:02
한국교회의 기도와 영성

 

한국교회의 기도와 영성

 

孫 在 翼 (고려신학대학원 M.Div 2학년)

 

 

서론

 

한국교회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팎에서는 한국교회의 성장원인을 기도에 대한 한국교회의 열정 때문으로 분석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1] 실제로 그러하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영성에 있어서 미치는 영향은 어쩌면 말씀(설교)보다도 더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를 보는데 한국교회의 기도에 대해 살피는 것보다 쉬운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기도가 반드시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한국교회의 기도 역시 장단을 동시에 갖고 있다. 예컨대, 한국교회에서 말씀(설교)보다 기도가 더 중요한 듯 여겨지는 현상이라든지, 기도가 말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지 못하다는 점 등은 한국교회가 개혁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기도에 대한 열심은 일본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본 소고를 통하여서 한국교회의 기도가 한국교회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동시에 부정적 영향을 지적함으로써 일본교회 뿐 아니라 동시에 한국교회를 위한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본론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은혜의 공식적인 방편(methods)은 말씀, 성례, 기도[2]라고 할 수 있다.[3] 그 가운데 말씀과 성례는 기독교회가 여타 종교와 배타적으로 구분되게 갖고 있는 방편이지만, 기도의 경우 우리 기독교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방편을 자신들의 신앙과 연결시키고 있다.[4]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회의 기도가 다른 종교의 기도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의 경우 오랜 토속신앙이나 민간신앙의 영향과 불교, 유교 등의 이방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기도라고 할 때에 순전하게(purely) 기독교적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 내용에 대해서는 기복적인 경우들이 많이 있고, 그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성경에서 고유하게 찾아보기 힘든 면들이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새벽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 중보기도 등이다. 특히 그 가운데 새벽기도는 한국교회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방식인데, 이는 한국교회의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교회가 갖고 있지 않다는 면에 있어서 그 보편적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그 형식

 

첫째, 새벽기도에 대해 일반적인 방식을 소개하자면, 한국교회의 성도가운데 약 20% 가량이 매일 새벽기도에 참석한다. 매일 새벽 5에 교회에 모여서 간단한 찬송과 말씀선포 이후에 자유롭게 기도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5] 이 새벽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찾을 수 있다. 먼저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 본다면 단연 기도에 대한 열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새벽기도라고 하는 것은 한국교회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한국교회 성도만이 해 낼 수 있는 열심이기 때문이다. 밤문화와 파티문화에 익숙한 서양 기독교인들에게 이 새벽기도를 강요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농경문화에 익숙하며, 민간신앙의 영향에 따른 기도에 대한 열심으로 인하여서 한국교회는 새벽 5부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하는 열심을 보인다. 칼빈이 그의 삶 가운데 하루에 5시간씩 기도했다고 하는데,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적어도 시간적으로만 볼 때에 칼빈의 영성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에서는 과연 칼빈을 따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칼빈은 영성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연관시키는데,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내용이 과연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어느 정도 관련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기도의 내용의 상당수가 기복적인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 섭리 등과 관련된 기도라기보다는 개인의 안일과 평안, 축복 등을 두고 기도하는 예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칼빈이 말하듯 기도는 신자가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믿음의 주된 체험이다. 그러므로 그 기도의 내용은 단순히 개인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성경신학자 그레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는 좀더 강력하게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온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들이 성취되도록 기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외 다른 것은 모두 우상숭배이거나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반역 행위가 될 것이다.[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는 무속신앙과 민간신앙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새벽기도에 대해 간단한 부연을 곁들이자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인 19세기 말에도 이미 한국에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라는 그 ‘형태’가 있었다. 그것은 여성들의 종교성과 관련이 있는데[7], 당시 여성들은 매일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성미(誠米)를 바쳐서 기도하였는데, 그 방식이 길선주 목사에 의해 새벽기도와 접목이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8]

둘째, 통성기도는 한국교회에서 매우 특이하게 토착화된 기도방법인데, 제각기 자기의 기도제목을 두고 옆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각자의 큰소리로 기도하는 방법이다.[9] 이러한 기도방법이 나온 이유는 기도의 소리가 크면 하나님 앞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신앙에 기초한 것이며[10], 또한 이웃 성도를 고려하지 않는 공동체성을 상실한 개인주의 신앙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11] 그리고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는 한국민족의 특성과 무속신앙과 관련이 있는데, 한국민족의 특성이라고 하는 “한()” 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면에 반하여 통성기도는 기도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는 형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 소리로 기도해야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심령)을 보신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교회 성도들이 소리를 질러 기도할 정도로 하나님 앞에 매달린다는 측면은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여타 세계 교회들도 본받을 만 하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함께 기도하는 이웃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방해가 되는 기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러한 대표적인 기도 형태 이외에 다양한 기도형식이 한국교회 안에 유행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유행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여서 시기마다 다양한 것들이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관상기도, 침묵기도 등이 유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의도적인 기도형식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 땅밟기 기도라는 것이 있다. 이는 기독교에서 어떤 땅을 가지고자 할 때 그 지역에 가서 땅을 밟으면서 기도하는 것이나 선교지에 가서 땅을 밟으며 일종의 종교적 영역확보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12] 이는 구약성경, 창세기부터 사사기까지 등장하는 과 관련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데, 한국교회가 기도에 대해 보이는 그 열심이 때로는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그 형식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건전한 이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기도의 위대한 목적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바로 깨닫고 그분과 맺어야 할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포사이스)[13]

2) 기도는 우리의 성화와 진보, 혹은 경건의 성장의 한 측면이므로, 그것 역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의 열매로 이해해야 한다. (그레엄 골즈워디)[14]

3)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교회의 유익을 구하는 행동이다. (존 번연)

 

기도는 말씀, 성례와 더불어 은혜의 방편 가운데 하나이므로 말씀, 성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말씀과 성례를 기도와 연관짓는데에 매우 둔하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열심으로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훌륭한 공부가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15]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 내용 가운데에는 기복신앙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년특별기도회”,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 등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기도가 순전하게(purely) 기독교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증거라 하겠다. 필자가 일본교회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일본교회에도 신토의 영향을 충분히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러한 영향들이 한국과 일본, 특히 한국교회에 개혁신앙(Reformed Faith)이 제대로 정착되는데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한국교회와 일본교회가 공히 경계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요구를 마구마구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은혜의 방편인 말씀 선포와 성례를 기본으로 한 삶의 표현으로서의 기도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기도가 하나님의 교제라고 할 때 그것은 말씀선포와 성례가 함께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16] 그러므로 기도는 아무나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입교하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말씀을 통해서 꾸준히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자만이 가능한 것이다.[17] 기도는 단순히 개인을 위한 신앙의 방편이 아니라 종말론적 개념에서 교회를 굳건히 세우는 것이다.[18] 기도는 은혜의 방편이지 우리의 공로가 되지 못한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써 그를 찬양하기 위함이며, 그것을 통해 은혜의 감격을 누리게 된다.[19] 많은 시간을 들여 열심히 기도하는 인간의 종교적 행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이다.[20]

 

칼빈은 기도를 계시(말씀)과 연결지었고, 말씀은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를 통하여 기도 중에서 깨달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기도는 말씀과 긴밀한 연결이 상당히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와 일본교회는 칼빈과 개혁파 선배들의 가르침을 따라 기도를 기도로 개혁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론

 

일본은 한국보다 어쩌면 더더욱 이방종교의 양식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짙게 갖고 있다. 왜냐하면 신토의 영향이 아직도 강력하게 미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개혁파 교회는 한국교회와는 달리 개혁신앙의 유산을 잘 상속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사실 개혁주의 교회라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성경과 세속 전통의 미묘한 차이들을 걸러내는데에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스 아 켐피스’(Tomas a kempis, 1380-1471)는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과의 대화는 최고의 예술이다(Magna ars est conversari cum Deo)”고 하였다. 최고의 예술인 기도의 시간을 오랫동안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이 기도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선행된 기도가 더더욱 중요하다[21]는 사실을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일본교회까지도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말씀, 성례, 기도가 긴밀히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공급받는 우리가 되자.

 

 

 

 



[1] 일본교회는 한국교회와 비교할 때에 좀 더 긴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인구의 비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교회가 한국교회에 대한 부러움을 가질 지 모르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일본교회는 그 비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또한 고베신학교가 속한 일본 개혁파 교회의 경우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영향을 받아 건전한 신학과 신앙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덜 성숙한 한국장로교회에 대하여 낮은 자존감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만열과 같은 기독교 사학자는 일본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매우 높게 평가한다. <이만열, 한국기독교사특강, (서울: 성경읽기사, 1989).>

[2] 칼빈은 “믿음”에 대해 다루는 기독교 강요 제 3권의 20장에서 기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기도에 대해 정의하기를 “신앙의 최상의 실천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말한다.(Institutes .20.1)

[3]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Q.88.

[4] Graeme goldsworthy, Prayer and the knowledge of God, (Leicester: IVP, 2003), 옥배, “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서울: IVP, 2005), 19.

[5] 한국에서는 예수님께서도 새벽에 기도하셨다( 1:35)는 것을 근거로 새벽기도를 강조하는데, 이에 대해 성경신학자인 그레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는 복음의 관점이 아니라고 한다. Graeme goldsworthy, 17.

[6] Graeme goldsworthy, 77.

[7] 한국교회의 새벽기도 현장에도 보면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물론, 남성들은 출근을 해야 한다는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여성의 종교성과 관련된다고 보여진다.)

[8]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1900년대 초반에 길선주 목사에 의해 시작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9] 이덕주, “초기 부흥운동에 나타난 한국교회의 영적 각석”, 『크리스챤 신문』제2062 (2004, 2. 16.).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는 일반적으로 오순절 계통에서 주로 하는 방언기도와는 다른 형태이다. 한국의 통성기도는 제각기 하고 싶은 기도를 옆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하는 기도이다.

[10]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형식이 생기게 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Institutes .20.5)

[11] 청교도의 황제라고 불리우는 “존 오웬 목사”는 평생에 단 5차례만 소리를 내어서 기도했다고 한다.

[12] 땅밟기 기도는 최근 이슬람권 선교를 중점으로 하는 인터콥(Intercop)라고하는 선교단체에서 주로 실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이슬람 선교사인 김동문 목사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2007. 1. 8.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56)

[13] P.T.Forsyth, The Soul of Prayer, Regent college Pub., 2002, 이길상, 영혼의 기도, 복있는 사람, 2005, 131.

[14] Graeme goldsworthy, 16.

[15] Bene orasse est bene studuisse. (훌륭한 기도가 훌륭한 공부다) 마틴 루터

[16] 이러한 관점은 대륙의 개혁파와 약간은 구분되는 청교도-장로교 전통에서 온 것인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의 경우 기도를 감사의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보는 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기도를 설교, 성례와 함께 은혜의 방편으로 본다. 유해무, “기도: 은혜의 방편?, 『개혁신학과 교회』, 통권 9,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1999).

[17] Graeme goldsworthy, 55; 이광호, “기도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교회와 문화』, 통권 13, (서울: 한국성경신학회, 2004), 14.

[18]  이광호, 16.

[19] 이광호, 29. 유해무, “기도: 은혜의 방편?, 『개혁신학과 교회』, 통권 9,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1999).

[20] 이광호, 30. 화란 개혁파의 영향을 받은 유해무는 말하기를 “칼빈은 기도가 지닌 계시의 성격을 강조한다.”고 한다. 유해무, “기도: 은혜의 방편?, 『개혁신학과 교회』, 통권 9,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1999).

[21] 칼빈은 말하기를 “기도를 잘못 이해하여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면서 경솔하고, 몰염치하고, 무례한 태도로 합당치 못한 일을 하나님께 조르며 닥치는 대로 요구하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Institutes . 20. 5.)

출처 : 말씀사랑 교회사랑 책사랑
글쓴이 : 우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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