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에 대한 예장 통합측 연구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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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통합측(총회장 이광선 목사)은 제91회 총회에서 예장 합신측이 '위험한 사상'으로 규정한 이윤호 목사의 가계저주론에 대해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함으로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해야 한다”는 이단대책위원회의 보고를 그대로 채택했다.<편집자 주>
2. 신관의 문제 그리고 조상들의 죄가 저주가 되어 후손에게 대물림된다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하나님의 영적 원리”(92 쪽)로서 “하나님 자신도 자신이 정한 법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108 쪽)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우주의 법칙에서 자유하므로 죽은 자도 살릴 수 있고 자신이 정한 율법에서 자유하므로 율법을 범한 자일지라도 무조건 용서하시는 절대 자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계저주론은 자신이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주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심코 한 말은 자녀를 통해 저주의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104쪽)고 한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는 마귀와 마귀의 역사를 저주하고, 포르노를 저주하고, 근친상간을 저주하라고 가르친다(159 쪽). 가게에 흐르는 저주는 저주로 끊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방법으로 저주하실 수 있는 분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리요”(민 23: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행한 저주는 실제적인 효력이 없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행한 저주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가계의 저주로 실행된다거나, 저주를 저주로 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의로운 심판의 저주를 행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전형적인 샤만(black Shaman)의 흑주술(black Masic)로서 비성서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3. 기독론 및 구원론의 문제 이러한 가계저주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영적인 것으로 제한하지만, 예수는 분명히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 3:6)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우리를 심판하실 그리스도께서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의 모든 저주와 심판을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육의 온전한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혼과 육신은 세상과 사탄의 공격 및 조상의 죄로 인하여 대물림된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131 쪽)가 있고 그 방식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저주로 끊는 축사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육신과 혼의 구원은 영의 구원과 다른 방식으로 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중구원론은 구원론의 왜곡이다. 성경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롬 8:1~2)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이미 영육간에 전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곤고함과 환란과 핍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고 하였다. 그래서 날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했으며, 저 천국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함으로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롬 8:24, 요 5:24)고 하였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내가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안식이 없나이다”고 고백하였다. 따라서 가계저주론은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을 약화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사는 복음적인 신앙의 도리를 가계의 저주를 끊는 일시적이고 편협하고 도구적인 미신으로 전락시킨다. 4. 귀신신앙의 문제 그리고 ‘가문의 영이나 성씨의 영’ 외에도 공유의 영, 복수의 영, 마약의 영, 죽음의 영, 슬픔의 영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잡다한 영들의 존재 역시 성경에도 없는 비기독교 주장히여 이로 인해 영적인 불안감과 영적 미혹에 빠지게 한다. 심지어 개인상담과 기도를 통해 5대 조상의 유밸로 인한 복수의 영이 가계에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28 쪽)고 하는데 본인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5대조 조상의 문제를 알아내는 것은 점쟁이나 복술가의 행동이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가증하게 여긴다고(신 18:9~14) 가르친다. 5. 축사기도문의 문제 가계저주를 끊는 처방으로 제시된 여러 기도문에는 성씨 귀신 등을 ‘대적하노라, 선포하노라, 추방하노라, 금하노라, 명령하노라’(185 쪽) 등등의 명령형의 유사 주문(呪文)이 뒤섞여 있다. 메릴린 히키의 기도문에도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동시에 ‘사탄과 귀신의 세력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악령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묘사된다(282~283 쪽). 무엇보다도 이들이 제시한 기도문에는 기도의 대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씨귀신을 비롯한 온갖 악한 영과 귀신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하나님에 대한 간구와 귀신에 대한 저주가 동일한 기도문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 신앙과 귀신 신앙을 혼돈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보다는 비정상적인 영적 두려움과 미신적 귀신신앙으로 미혹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저주의 성경에 따라 서로 다른 무수한 기도문을 제시하여 마치 이러한 기도문 처방이 주님이 가르치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합소서”라는 주기도문보다 더 효력이 있는 일종의 유사주문(呪文)과 같이 사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6. 운명론의 문제 물론 인간의 여러 고통에는 유전적 기질적 요인과 가정 환경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두 조상들의 죄의 결과인 저주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자연 생태적 환경적 요인과 사회 정치 환경적 요인도 허다하다.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잘못이나 범죄로 인한 것이 더 많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가계저주론은 자신의 잘못을 조상의 탓으로 돌려 운명론을 부추기며, 자신의 죄책을 회피하여 예수께서 요구하신 ‘회개’를 거부하고 오히려 죄악된 생활에 안주하게 한다. 성서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고후 5:17)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인도 과거의 죄, 그것도 조상의 죄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계저주론은 모든 고통을 가계의 저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조차 부정한다. 예수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 대해 조상의 죄나 자신의 죄 때문이냐는 바리새파의 저주론을 거부하고, 그 소경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요 9:2~3). ··· 이처럼 성서는 가계저주론과 다르게 고난은 모두 저주가 아니며, 믿음 안에서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가르친다. 7. 연구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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