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2장.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인데, 바울사도의 설명이 특이하다.
1절에서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내가 너희에게 알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고 한다.
이런 '신령한 것'에 대한 관심이 13장을 지나서 14장까지 이어진다.
그 신령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예수는 주"라는 것이다. 그 은사와 직분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모든 은사와 직분이 제 자리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는 주"라는 것.
이 주와 연합된 몸으로서 '제일 좋은 길'은 '사랑'일 수 밖에 없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14장에서의 방언과 예언의 문제도 결론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33절)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적당히 하고 질서대로 하라'(40절)
는 것이다.
'방언'을 무시하지 말라. 비록 심리적인 방언이라도 존중해 줄 것.
하나님의 역사는 나의 이성을 뛰어넘는 것임에 분명하다. 질서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지, 방언을 무시하는 하나님, 조롱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방언을 금한 것이 아니라, '적당히 질서대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방언하는 자들 앞에서 그 가장 핵심적인 것을 확인하라. "예수는 주이시다"
그 핵심을 핵심으로 삼아서 적당히 질서대로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바울의 권면이고 주님의 권면이 아닐까?
며칠전 어느 부부가 찾아와서 부부간의 갈등을 말하는 중에, 상대방의 방언하는 것에 대해서 비하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삶이 그만하지 못한데, 왠 방언이냐는 식이었다. 노골적인 삶의 모든 모습을 알고 있는 서로이기 때문에 낯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신앙의 스타일을 그렇게 곡해해서 보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방언을 하든 하지 않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는 주이시다'는 것 아닐까?
그렇게 강조하였다. 부부가 진정으로 "예수가 주이시다"는 이 공통의 신앙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때에 오히려 갈등의 모든 것들이 점차 해결되어져가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에 그들이 눈물흘렸다.
신앙 안에서 부부의 갈등을 해소해가지 못함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그랬기를 바라고 그들을 위해서 또 기도하게 된다.
성령은 비둘기처럼 강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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