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료

[스크랩] 나는 마귀에게 속고 있지 않는가?

baromi 2006. 6. 1. 11:39

영성과정을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다루어야 할 것이 있다.

사탄(악마, 마귀, 귀신)의 존재가 그것이다.
정화와 조명이 진행되면서 세 존재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다.

올라감과 나아감의 상태에서 겪는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힘으로써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한다.

반대로 내려감과 물러감의 상태에서는 자신의 감추어진 죄성의 실상들이 드러남으로써 자신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본 만큼 자신을 보게 되고 자신을 본 만큼 하나님을 뵈옵게 된다.

하나님 체험은 곧 자기 체험인 셈이다.
그런데 영성의 길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회복을 가로막는 세력이 끼어든다.

사탄(악마,마귀)의 세력이 그것이다.

영성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악마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중요하다

악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영성의 길을 갈수가 없다.
영성의 길은 삼각관계로 진행이 된다.

하나님과 나를 체험하는 만큼 악마를 체험하게 된다.

이 세 존재에 대한 체험은 서로 비례한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나를 알게 되고 또 악마를 알게 된다.

즉 영성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악마와의 싸움이 치열해진다는 뜻이다.

영성의 길이란 곧 악마와의 싸움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탄의 존재가 느껴지든 못하든 기독교 신앙의 길로 접어든 사람들은 다 악마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성의 길을 가는데 악마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

악마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악마를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A. 악마와 부딪히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여러 현상(환상, 환청 등)들을 체험했다고 말하는

반면 전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악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악마와 부딪혔던 경우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것을 전혀

겪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지만 이치는 아주 단순하다.

앞에서 다룬 불규칙한 나선형의 진행을 이해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회전반경이 작은 사람들에게는 환상이나 환청을 비롯하여 악마와 부딪히는 영적인 현상들이 경험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선형의 회전 반경이 큰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어느 것이 더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각 사람의 성격과 영적인 기질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뿐이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누가 더 영적인 진전이 빠르냐 와도 직접 관련이 없다.

누가 더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회전반경이 커져서 영적인 현상이 잦은 사람은 영적으로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현상의 체험이 주는 대단히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지는 것이기도 하다.

영적인 현상이 잦은 사람은 악마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영적인 현상이 잦은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며, 또 그런 현상을 찾아 구할 일도 전혀 아니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B. 악마와 부딪히는 단계들
악마의 세력과 부딪히는 것에도 단계가 있다.


1) 형상으로 다가오는 단계
최초의 단계는 악마의 세력이 어떤 형체를 가지고 접근하거나 아니면 어떤

이상한 현상(무슨 소리나 어떤 충격, 무서움, 소름끼침 등)으로 다가온다.

이런 일들은 기도나 예배 등의 신앙적인 활동을 열심히 할때 주로 나타나는데 그런 신앙적인 노력을 방해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이런 경우는 신앙생활에 대한 열심을 중단하면 그런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대한 열심을 지속하면 악마의 방해는 계속 된다.

처음에는 어떤 형체나 공포심을 자아내는 소리 등으로 간접적인 방해를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열심 있는 신앙적인 노력을 하게 되면 어떤 귀신이나 괴물, 짐승의 형체로 달려든다.

그래도 굴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이런 형체들과 본격적인 싸움을 하게 된다.

영성가(수도사)들의 일화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싸움은 악마의 세력이 외부로부터 어떤 형체를 가지고 공격해오는 단계이며 악마와의 싸움에서는 초보적인 것들이다.


2)영(靈)으로 다가오는 단계

이런 단계를 견뎌내면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이제는보이는 어떤 형체로서의 공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의 상태로 접근해온다.

영적인 공격은 형체의 공격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온통 마음과 생각을 지배해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대단히 위험하다.

여기쯤부터는 혼자서 이겨낸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이 상태를 이해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흔히 어떤 축사(逐邪)의 기도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축사는 귀신들린 사람에게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단계는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니라 악마의 세력과 영적인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 자신을 공격해오는 악마의 세력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공격당하고 있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단계가 어디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이런 이해가 선행되어야 그 어떻게 대처할지 그 방법이 찾아진다.

지난 1978년, 24살 때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마음과 생각을 파고드는 악마의 공격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예리한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에서도 대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접어두고 있다가 1993년에 다시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악마의 특징 중의 하나가 ‘집요함’이다.

마음과 생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끈질긴 공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공격을 당해보지 않고는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이 단계에서의 악마의 공격 역시 각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공격만이 아니라 공갈과 협박, 회유도 동반되어진다.

마음과 생각을 지배해오고 악마의 세력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 싸움에서 지면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릴 수도 있고, 또 회유에 넘어가면 영적인 현상들을 남발하는 사이비 교주가 되어 악마의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다.

악마는 사람의 힘으로 절대로 이겨낼 수가 없다.

악마와 부딪히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여야만 이겨낼 수 있다.


3) 악마의 영으로 채워지는 단계
이제 마지막 단계의 싸움이 남아있다.

영성의 체험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영(성령님)으로 채워지는 경험들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올라감과 나아감에서 이런 것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진 만큼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으로 온전히 채워지는 경험이 일어나는 것과 더불어 악마의 영으로 채워지는 경험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짐으로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악마의 영으로 채워짐으로서 악마를

 알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외부로부터 공격해오는 형체와 싸우면서, 또는 마음과 생각을 지배해오는 악마와

싸우면서 악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왔다.

그런데 이제는 악마의 영에 채워져 봄으로써 악마의 본성과 속성을 이해하게 된다.
악마의 영으로 채워지는 경험은 영적인 경험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순간이다.

악마의 영으로 채워진다는 것은 악마처럼 되어지는 경험이다.

악마가 주는 어떤 엑스타시와 독특한 상태에서 악마는 자신과 계약을 체결하자고 요구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의 회유와 유혹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우게 따라서는 이단의 괴수의 자리에 세워놓고 세상의 큰 권세, 영적인 어떤 능력, 따르는 수많은

무리 등을 보여주면서 자신과 손을 잡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악마의 영으로 채워진다는 것은 악마적인 엑스타시의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보다

더 높아져 있는 기고만장한 교만의 극치에서 느끼는 어떤 우월감, 또는 성적인 오르가즘의 순간과

유사한 어떤 엑스타시의 상태 등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태가 되어 있으면서 악마의 계약요청을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악마는 내가 거부한다고 신사적으로 물러가는 존재가 아니다.

거부할수록 끈질기게 매달리기 때문에 대단히 어렵다.

이런 경험은 하나님께서 악마의 속성을 경험으로 알게 하시기 위하여 허락하실 때 일어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겨내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셔야만 악마의 영으로 채워진 순간을 견뎌낼 수 있다.


C. 올라가는 원리와 내려가는 원리
영성의 길을 가려면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나?

그 대답은 악마의 속성을 알아야 가능하다

악마의 속성과 존재원리는 높아짐에 있다

악마는 높아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악마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낮아져서 섬기는 일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거짓 겸손은 흉내 낼 수 있지만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진실한 겸손과 섬김은

악마에게는 불가능하다.

악마의 영으로 채워지면 교만의 극단을 향하여 치닫는다.

하나님보다 더 높아져 있는 기고만장의 극치에서 오는 우월감에 빠져든다.

악마적인 엑스타시는 교만과 퇴폐적인 황홀감이다.

악마와 결탁한 사이비 교주들이 자칭 하나님이 되거나 혼음을 일삼는 것은 이런 때문이다.

악마의 영에 현혹된 사람들은 쉽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이 영적으로 아주 깊은 체험을 했다는 우월감에 빠져 있어서 누가 무어라고 하면
“너는 아직 영적인 것을 몰라서 그래”하면서 무시해버린다.

또 자신이 체험한 것과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에 빠져 있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악마의 속성은 높아짐 즉 교만에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에 채워지면 낮아지고 또 낮아져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이 된다.

성령님의 존재원리는 ‘낮아짐’과 ‘섬김’에 있다.

성령님으로 채워지면 낮아져서 섬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또 항상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영적으로 체험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혹시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끊임없이 점검하며 남에게 조언을 구하고 귀를 기울인다.
상대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다.

높은 자리, 가르치는 자리, 지배하는 자리 등은 스스로가 용납하지를 못한다.

직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리에 선다하더라도 섬김의 기회로 받아들일 뿐이다.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말구유에 누우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증거는 ‘구유에 누워계심’이었다.(누가복음 2:12)

또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섬기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가장 높으심과 다스리심은 낮아짐과 섬김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계시기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시며, 가장 작은 자로 섬기시기에 가장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가장 큰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비우시기에 온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신다.

하나님 면전에 서면 그분의 거룩하심 때문에 죽은 자와 같이 되거나 실제로 죽어버린다.

그러나 영성수련이 되고나면 하나님 면전에 서는 것은 물론 하나님 품 안에 안기며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내 안에 거하신다.

영성수련이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인데 이는 낮아짐을 말한다.

하나님처럼 다 비우고, 다 버리고, 가장 작은 자가 되고, 가장 낮은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면 된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 면전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을 뵈옵고도 살아남는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비움과 낮아짐과 섬김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영과 악마의 영은 이렇게 서로 존재양식이 다르다.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원리와 방법은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악마를 이기는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처럼 되면 된다.

악마를 이기려면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면 악마의 공격이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높이려는 생각과 마음을 가지는 자는 결코 악마의
공격을 피해가지 못하며 하나님 편에 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처럼 낮아지고, 작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지 못하듯이 낮아짐과 높아짐은 같이 있지 못한다.

악마를 이기는 힘은 악마를 제압하는 무슨 신비한 능력을 받아서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기만 하면, 가장 작은 자가 되어 섬기기만 하면 악마는 감히

접근을 하지 못한다.

악마를 제압하는 초자연적인 권세는 낮아짐과 섬김에서 나온다.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며 알리려 하는 자는 악마의 종노릇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사탄의 존재원리는 높아짐에 있고 성령님의 존재원리는 낮아짐에 있다.


D. 악마의 무기
악마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속임수’다.

이 속임수가 무서운 이유는 그 속임수를 간파하기가 사람으로서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악마의 속임수를 헤아리는 지혜는 하나님처럼 낮아지고 작아지고 섬기는 데에서 나온다

스스로가 낮아지고 비워져있지 않고서는 악마의 속임수를 명확히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세상일에서도 가짜는 진짜보다 더 좋아 보인다.

영적인 일에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능력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질 때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악마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게 된다.

영적으로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악마의 속임수가 분별이 되지 않는다.

악마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접근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적인 어떤 현상이나 체험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혼자서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앞서간 이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한다.

다시 반복하건대 절대로 쉽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초보자가 악마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것을 철칙으로 지켜야 한다.

자기 혼자 악마의 속임수를 간파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 생각 자체가 벌써 악마에 속고 있다는 증거다.

악마가 영적인 현상들로 현혹을 시킬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확신”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악마는 특별한 것을 좋아한다.
‘특별한 은혜’, ‘특별한 은사’, ‘특별한 능력’, ‘특별한 사명’, ‘특별한 사랑’ 등의 특별한 마음을

심어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자신이 ‘특별한 죄인’이라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않게 한다.


악마의 현혹에 넘어간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서 남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악마는 자신의 거짓 확신에 넘어간 사람들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들고 늘어진다.

그러기에 무서운 것이다.
영성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 특히 영적인 현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 물음을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 이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악마는 그만큼 무서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악마는 어김없이 파고든다.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E. 악마와 죄의 속성
악마의 속성과 타락한 인간의 죄성은 서로 일치하며 악마의 권세는 죄의 권세다.

악마가 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죄성의 정화가 되지 않은 사람이 악마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자신이 아직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캄캄한 어두움에 있는 사람이 얼굴에 묻은 얼룩을 알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자신에게 묻은 조그마한 티를 알아내려면 먼저 밝은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한다.
타고난 인간성 자체가 타락한 죄성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죄의 지배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죄의 화신인 악마의 지배 가운데 있는 셈이다.

악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악마의 세밀한 일들을 간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편적인 인간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생각과 감정의 변화와 마음들이 아직 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 마음, 감정의 변화 속에서 역사하는 악마의 속임수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악마와의 싸움이란 나의 밖에 있는 어떤 존재와의 싸움이 아니라 내 속에 들어있는 죄성, 즉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성의 초보자들은 악마의 존재를 자기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만 생각하게 된다.

 

악마의 존재가 실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악마는 내 속에 있는 타락한 죄성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악마와의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처음에는 자기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여겨지던 악마는 정화가 진행되어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면서 자신의 죄성과 악마의 속성이 일치함을 발견하게 된다.

영성의 수련이 여기까지 진행되면 가장 중요한 큰 고비를 넘기게 된다.
악마와의 싸움은 자신 속에 들어있는 죄성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가 악마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악마의 존재와 악마의 공격을 느끼고 있는 사람만이 악마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런 사람들은 나선형의 곡선이 크게 그려지는 사람들이다.

곡선이 작게 그려지는 사람들은 직접 악마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지만 악마 즉 죄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죄 즉 악마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케노시스 영성원

www.kenosis.or.kr

출처 :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글쓴이 : 차니미니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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