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글을 쓰게 된 배경
66권의 성경은 성경의 감동으로 보존하여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임을 믿습니다.
이 66권의 성경은 각각 시대와 다양한 필요를 따라 성령에 감동된 이들에 위해 저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소위 율법이냐 복음이냐의 문제로 치열한 글을 내용으로 담은 성경은
초대교회 전체가 아니라 그중 유대인들이 복음의 중심에 서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후 이방인들이 교회의 지도층을 이룰 때는
더이상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논쟁이 신약성경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즉 복음이냐 율법이냐는 것은 초대교회 초기의 할례파 유대인들과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 함께 거하게되었을 때 일어난 초기 논쟁임은 신약성경을 통해서도 쉽게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초대교회 초기 논쟁이
오늘날 다시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논의로 진행되는 것이
과연 복음의 진보냐 아니면 도리어 후퇴냐 하는 의문이 든 것이 이 글을 쓰게된 배경입니다.
2. 신약성경에서의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논쟁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은 구약에는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히브리서 등입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들인 에베소서 골로새서 등에서도
바울이 깊이 깨달은 계시의 복음이 소개되나
거기서는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논점으로 복음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보아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등을 바울이 쓸 때에는 이미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논쟁이 종식되었거나
더 이상 이방인교회들이 복음으로만이냐 율법도 구원에 개입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든지 였을 것입니다.
1) 히브리서의 복음과 율법
다만 히브리서는 다른 서신서에 비해서 좀 늦은 시기에 저작된 것으로 보는데
율법 하에서의 의식과 짐승의 피보다
더 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감과 그리스도의 보혈을 언급함으로서
이제는 율법보다 더 뛰어난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 바른 이해일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서의 제한적 속죄를 통한 묵시적 구원계시가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적 구원계시로 완전해졌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이러한 관점으로 기록된 것은 히브리서는 1차 수신자가 히브리인들이었기 때문이고
저자가 그당시 소위 이방인의 복음이라 불리었던 (오늘날 우리가 복음이라 부르는 그 복음) 복음을 가르치는 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신약성경에서 논쟁되는 율법이란...
그리고 바울의 2차 3차 전도여행 때에 저작된 것으로 알려진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고린도전서 등에는
그 당시에 복음이냐 율법이냐의 심각한 논쟁이 있음이
성경을 읽다보면 짐작이 됩니다.
거기서 말하는 율법이란
구약의 율법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해석한 탈무드를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이나 누구나 구약성경의 율법이 무용하다고 한 적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뛰어넘은 영의 법 그리스도의 법을 말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구원으로의 과정을 언급하고서 구약보다 더 깊은 계명으로 초대하고 있음을 바울의 서신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율법, 의문에 속한 계명과 묵은 것등으로 표현된 것은
구약성경을 해석한 해석의 계명들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관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해석의 오해를 가져와서 마치 구약의 율법이 무용하다는 식의 해석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이는 드러납니다.
우리가 잘아는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 라고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라는 형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회중)가 들은 것은 구약성경 자체가 아닙니다.
이는 구약성경을 해석한 바리새인들의 해석 즉 탈무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리어 구약말씀의 바른 해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준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율법보다 믿음이 먼저다 라는 근거를 아브라함 즉 구약성경에서 찾고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율법 아래에 살았던 이들도 사실은 믿음을 따라 살았다고 증거하는 11장의 내용에서
이미 구약에서도 믿음을 따라 살았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문제 삼은 율법이란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그 율법을 해석한 것을 받아들인 할례파 기독인들의 잘못된 구원론에 있음을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합니다.
3) 바울의 복음 로마서
신약성경 중 바울이 전파한 이방인의 복음이 가장 자세히 소개된 성경은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바울의 복음을 듣고싶어하던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미리 편지를 통하여 복음을 알려주어서
바울을 실제로 만났을 때 보다 그 만남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쓰여진 편지입니다.
이 로마서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가지고 가서 전달하고 읽어주었던 이는
겐그리아교회의 여집사 뵈뵈 였습니다.
즉 로마서는 여집사님이신 뵈뵈가 읽어주고 설명해줄 정도로 쉽게 써여진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를 너무나 어렵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음과 좀 반대적 상황이 보여서 아이러니합니다.
로마서는
인사와 주제설명 --- (롬1:1-17)
하나님의 유기(내버려두심) --- (롬1:18-32)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면 사람은 엉망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종교가 있다면 다른가? ---- (로마서 2장)
도리어 종교가 하나님을 바로 만나게 하는데 방해할 수도 있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 (로마서 3장)
믿을 것을 믿을 수 있다면 관계는 시작될 수 있다 ---- (로마서 4장)
의인은 믿을 수 있습니다.(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을 거꾸로 본 것)
그 믿음의 예로 믿을 수 없었던 것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경우를 듭니다.
화목 -------- (로마서 5장)
우리가 아직 연약할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되었을 때
예수님을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할 수 있습니다.
원죄(Original sin) ---------- (롬 6-7장)
죄가 주장하는(다스리는) 사람이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욕구가 생깁니다
이 죄인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와 이혼해야하는데 죄는 이혼 안해줍니다.
죄는 안죽으므로 내가 죽어야하는데 나를 대신해 예수님이 죽어주신 것입니다.
죽으면 더이상 죄의 남편과 함께 살 필요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의에 대해 산자로 살자는 뜻으로 세례 받읍시다.
성령의 법 --------- (롬 8장)
예수로 말미암은 자는 이제 죄의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성령의 법 아래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영적 원리를 유대인들은 안받아들이고 있다 -------- (로마서 9장)
전도와 선교의 원리 ----------- (로마서 10장)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탐내십니다. 그러나 강제로 하시진 않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건져주소서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은 믿음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고
이 믿음은 전하는 자가 있어 들어야 생기는 것이고
전하는 자는 보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영 버리시는 것일까? ---------- (로마서 11장)
유대인들이 이 값이 주시는 은총을 거절하니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다 주십니다.
이는 보는 유대인들이 질투가 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신명기 32장 21절)
그래서 마침내 유대인도 구원받아 구원의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헌신 --------- (로마서 12장)
구원론은 11장까지 완성되고 그 다음에 12장에서 헌신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시민윤리 ------------- (로마서 13장)
약한 사람을 배려하라 ------------ (로마서 14-15장)
문안 ------------- (로마서 16장)
우리는 복음을 구원받는데까지만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복음을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데까지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까지도 있는데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 받아서
전도하며
헌신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천국시민윤리를 따라 살며
약한 자들을 배려하는데까지가
바울의 복음입니다.
3. 정리하며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하셨던 것은
그들의 외식에도 있었지만
그들의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과잉해석하고 하여서
그들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무거운 짐을 지운 것도 있었습니다.(마태복음 23장2-4절, 누가복음 11장 46절, 마태복음 23장 15절)
오늘 우리의 복음과 율법의 논의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노한 눈으로 보시게된 그런 곳으로까지는 가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과연 우리의 논의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따라 살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아야할 주의 백성에게
믿음의 힘이 될까요?
아니면 도리어 짐이 될까요?
너무나 성경을 어렵게 해석하고
믿는 도리를 과잉 해석하여서
성경을 목회자가 아니면 보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복음과 율법의 논의가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쉽고 단순한 믿음의 도리를
더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주의 택한 백성이면 누구나 받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에베소서 2장 8-9절)
이 믿음의 도리를 받아들인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는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선하신 말씀을 따라 성령의 법을 따라 살도록 도와야하는 것도 복음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복음의 시작인 구원이 어떻게 주어지느냐는 문제에 머무르지 말고
복음의 진보가 이 논의를 통해서 나타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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