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자료

[스크랩] 마가복음-심상법

baromi 2005. 8. 26. 08:01

마가복음
1. 서론: 역사적 고찰

마가복음은 과거 오랫동안 해석자들과 설교자들에게 천대를 받아 왔던 정경내의 한 복음서였다. 그것은 다른 복음서들(특히 마태복음)에 비해 문체가 지나치게 간결하며 거칠 뿐 아니라 역사적 신빙성과 가치가 적다는 이유(마가복음의 권위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학적으로나 설교에 있어서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Martin 1973:29-30). 그러다가 `마가복음의 우선성`(Markan priority)이 논의되면서 마가복음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공관복음 연구의 신데렐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적 관심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의 설교는 공관복음의 다른 어떤 설교보다도 여전히 마가복음내의 자체적이고 역동적인 메시지를 제공하지 못한 채 마가복음은 다른 공관복음 설교의 보조적 기능(즉 단순한 인용과 대조의 기능)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것의 근본 이유는 복음서를 단순히 `예수님의 생애의 전기`로 간주함으로써 - 역사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 이 경우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에 비해 예수님의 생애 사건들이 많이 삭제된 요약 정도로 이해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Martin 30-31).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기사도 없고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나 다른 가르침도 다른 공관복음서들에 비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기사도 생략 혹은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마가복음은 계몽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19세기 때까지는 교회 내에서 비록 정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다른 복음서(특히 마태복음)의 그늘가운데 가려진 채 자신의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마가복음에 대한 연구는 역사비평의 도래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긴 하였지만 그것은 주로 다른 공관복음서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였다. 이러한 논의는 자연적으로 마가복음의 문학적 분석(자료분석)과 신학적 모티브들에 대한 연구(복음서내의 다양한 양식들과 교회의 사회적/신학적 정황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양식비평적 연구)로 이어졌고 마침내 편집비평에 들어와서 비로소 복음서 자체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마가복음은 더 이상 다른 복음서들의 그늘에 가려있지 아니하고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 복음서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마가복음이 쓰여진 정황에 대한 고려와 함께 그것의 구조적이고 문학적인 특징과 기능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다. 이것은 마가복음을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사도적 전통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저자가 자신의 청중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문제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해답을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적절하게 다룬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Best 1983). 즉 마가복음은 마가복음의 특별한 상황에 처한 독자(청중)들에게 예수님의 생애의 이야기를 다시 새롭게 말함으로써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 경우 `내러티브`(narrative)로서 마가복음의 장르(genre)에 대한 이해는 마가복음의 해석과 설교에 있어서 적절한 틀과 통찰을 제공해 준다(Shim 1994a &b).

2. `내러티브`로서 마가복음의 장르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

이미 많은 학자들(Hirsh; Barton; Osborne; Ryken; Tolbert; 등등)에 의해 논의된 대로 특정한 본문의 타입(장르)에 대한 인식은 특정 본문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선결적 해석작업임이 분명하다. 성경을 포함해서 어떠한 인간의 글(본문)이란 결코 의도 없이 쓰여지지 않는다. 결국 인간(성경저자를 포함)이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글을 통한 의미전달(의사소통)의 효과를 위해 특정한 종류와 타입에 따라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본문의 장르에 대한 이해는 그 본문을 어떻게 읽고, 그 속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Tolbert 1989:48; Morgan & Barton 1988:4).

마가복음의 해석역사(수용역사)를 관찰해 볼 때 마가복음은 주로 예수님의 생애의 `역사 그 자체`(history itself)를 의미하는 `전기`(傳記)와 교회의 `[복음적] 선포`를 의미하는 `케리그마`로 이해되어 왔다. 이 둘의 견해에서 복음서의 역사성에 대한 문제는 역사비평과 관련하여 언제나 `뜨거운 감자`로 논의되어왔다. 특별히 전자의 극단적 이해는 마가복음을 지나치게 역사적으로 입증하거나 재구성하기 위해 다른 공관복음서와의 불일치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논의들(본문이 침묵하고 있는 연대기적 세부사항이나 특정 장소의 역사적 확증 그리고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한 여행경로에 대한 세부적 이해 등등)을 지나치게 다룸으로써 본문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놓쳐버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후자의 극단적 이해는 마가복음을 철저히 공동체의 정황적 산물 - 사회적-문학적 산물 - 로 간주함으로써 해석자(설교자)에게 참신한 신학적 의미를 던져 줄지는 몰라도 그 동안 전통적 교회가 지켜온 복음서의 역사성을 무시하거나 배격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최근 고대 그라코-로망 세계의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관례를 고려한 문학비평의 해석학적 발전은 마가복음의 장르이해를 보다 통합적이고 통전적으로 제시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 `내러티브`(narrative)로서 마가복음에 대한 이해는 마가복음의 해석을 본문자체의 세계(narrative world)에 근거한 보다 통전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전달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Shim 1994b). 물론 여기서 `내러티브`란 고대 서사시(epic)을 중심으로 논의된 고대 내러티브에 대한 보다 광의적 정의인 `전통적 스토리를 다시 말함`(the [re]telling of a traditional story)에 기초한 것으로 복음서의 내용
(content)과 형식(form)을 모두 고려한 장르인식을 말한다. 여기서 마가복음의 내용인 `전통적 이야기`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 혹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사도적 전통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을 `다시 말함`(retelling)이란 그러한 예수님의 생애 스토리를 단순히 똑같이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repetition의 의미가 아님) 그것을 청중의 상황에 비추어서 복음서의 저자가 어떤 관점과 의도를 가지고 `말함`(telling), 즉 `새롭게 말함`을 의미한
다. (최근 `龍의 눈물`의 TV사극이 과거 이조의 초대역사를 다루면서도 이것이 오늘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과 제언들[내각제냐 대통령 중심제냐]을 해 주는 `다시 말함`의 효과가 바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르인식은 역사성에 기초한 복음서의 내용(what)에 대한 강조와 함께 그것의 전달방식인 형식(how)을 잘 고려한 것으로 여기에는 저자의 관점과 의도와 청중에 대한 수사학적 효과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동시에 나타난다. 이점은 복음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전통적] 이야기(story)를 자신의 청중들의 상황(문제)에 비추어서 적절하게 다시 말함(retelling)으로써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의미를 청중에게 보다 생생하고 역동적이며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결국 내러티브로서의 장르인식은 해석자(설교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역사적 생애 스토리에 기초한 복음서 자체의 작품세계(narrative world)에 대한 탐구와 그것의 담화기술들과 수사학적 효과들(narrative techniques & rhetorical effects)을 관찰하게 해줌으로써 복음서를 단순히 예수님의 생애의 `역사 그 자체`나 `케리그마`에 대한 지식을 주는 것 이상으로 취급하게 해 준다. 즉 마가복음을 `내러티브`로 읽을 때 해석자(설교자)는 예수님의 생애(교훈과 사역)에 대한 교훈을 그 당시의 청중의 상황가운데 새롭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반응하는 다양한 종류의 인물들(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무리들 그리고 익명의 신앙적 인물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저자의 견해를 따라 평가함으로써 오늘날 독자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가운데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즉 제자도)를 극적으로 교훈해 준다. 이 경우에 해석자(설교자)는 마가복음을 통해 1세기의 예수님이 살았던 팔레스타인의 그 역사적 세계에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가복음의 청중이 살았던 세계 가운데서 그것들이 가진 의미들을 이해하고 경험하게 됨으로써 현재의 자신이 처한 현실세계와 밀접하고 생동적인 관계속에서 보다 풍성하고 극적인 신앙적 경험들과 도전들을 갖게 된다. 즉 저자(엄밀한 의미에서 해설자[narrator]임)의 인도(설명과 해석과 판단)에 의해 독자(해석자/설교자)는 자연스럽게 복음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뿐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독자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됨으로써 `감정이입`(empathy)과 `공감`(sympathy), 그리고 `반감`(antipathy)의 다양한 독서경험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독자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조우하게 됨으로써 적절한 신앙적 가치거래의 경험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내러티브`의 장르이해는 마가복음의 역동적 의미와 그것의 수사학적 효과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해석적/설교적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해줌으로써 독자들(해석자들/설교자들)의 독서효과를 극대화시켜준다. 이 말은 마가복음의 작품세계가 갖는 독특한 구조적 의미와 그것의 의미효과를 파악하게 함으로써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들과 구별된 독특한 교훈을 찾도록 도와준다.

3. 마가복음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상징적 의미

마가복음은 단순히 1세기 팔레스틴의 세계를 알려주는 역사적 문서로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기에 그려진 마가복음의 작품세계는 마가의 청중의 세계에 대한 신앙적 교훈을 위해 그려진 세계이기도 하다. 곧 1세기 예수님을 중심으로 팔레스틴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세계에 기초하여 극적으로 묘사된 마가복음 자체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의 사건들을 기술한 마가복음의 작품세계는 통상적으로 스토리세계가 갖는 특정한 인물들과 배경들, 그리고 사건들로 구성된 세계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서술하는 과정에 있어서 신앙공동체로부터 전수 받은 전통적 신앙에 근거한 저자의 관점과 의도에 따라 예수에 대한 수많은 생애 사건들 가운데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선별(collection)하고 [재]배열([re-]arrangement)하고
[어느 정도] 문학화(literalization)하는 과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참고. 요 20:30-31). 이 말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장소와 시간들(`배경들`이라고 부름)과 사람들(`인물들`이라고 부름), 그리고 사건들에 대한 묘사는 1세기 팔레스틴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관점과 의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줄거리(plot)에 따라 기술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적 이해는 마가복음에 묘사된 인물들과 배경들과 사건들은 1세기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내의 특정한 역사적 인물들과 장소들과 사건들에 대한 언급(역사적 의미)이지만 마가복음의 작품세계 안에서와 마가의 청중의 세계 안에서 그것이 갖는 상징적/문학적 의미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됨을 잘 시사해 준다. 즉 여기에 나오는 인물과 배경과 사건들은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마가가 의도한 교훈을 극적으로 묘사해 주는 문학적/수사학적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와 부가적으로 마가복음내의 어떤 인물들과 배경들과 사건들은 구약의 배경들과 사건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의미들(예표론적이고 구속사적 의미들)을 가질 뿐 아니라 초대교회 공동체가 겪고 있는 수많은 신앙적 사태(事態)들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의미들(성레적 의미들과 환란가운데 처한 마가의 청중의 모습과 그에 따른 신앙적 교훈을 가진 의미들)을 가진다. 특히 마가복음에서 광야( ), 바다( ), 산( ) 그리고 길( )과 성전( )에 대한 언급들은 바로 이점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Mouser; Lane; Donaldson; Van Iersel; Stock; Swartley; Malbon; 등등). 그리고 이러한 배경들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광야의 시험; 급식이적; 바다를 잠잠케 하심; 소경을 고치심; 벙어리를 고치심; 변화산 사건; 산 아래의 이적; 무화과나무의 저주사건과 성전청결; 등등)은 구약 속에 제시된 많은 상징적 의미들을 가진 사건들(광야의 세대와 중보자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돌봄; 바다를 건넘; 산에서의 계시; 성전을 통한 참된 예배와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의미들로 연상시켜 준다. 아마도 그 당시의 신앙공동체는 이러한 견해에 기초하여 마가복음을 이해하고 설교하였을 것이다.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3번이나 반복하여 언급된 [갈릴리] 바다 가운데 배 안에서 - 때론 예수님과 함께(막 4:36이하; 8:14이하) 때론 그의 약속과 함께(막 6:45이하) - 제자들이 보여 준 불신앙의 연약한 모습들(두려워 함[막 4:40-41]; 두려움과 의심[막 6:49-52]; 깨닫지 못함8:16])은 마가의 청중(공동체)의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바다`는 악의 세력에 의한 수난/시련과 죽음을 상징하며, `배`는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는 보른캄의 해석을 보라.) 그리고 깊은 밤에 주님은 가룟 유다의 배반가운데 잡혀 넘기워지고 이제 산헤드린 법정인 대제사장의 뜰 안에서 두려움 가운데 부인과 저주의 시련에 직면하여 불쬐는 베드로의 모습(막 14:54, 67)이나 부활의 메시지를 받은 여자들의 두려워하는 모습(막 16:7)은 이것을 읽는/듣는 마가의 청중에게 그들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비추어 주는지도 모른다. 이 경우 막 8:34-38의 교훈과 그리고 막 13:9-13의 언급은 마가의 청중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희미한거울과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한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1세기의 예수님 당시의 역사적 인물들이지만 또한 마가복음의 작품세계에 나오는 인물들로서 마가의 구성/줄거리(plot)에 따라 묘사된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전체 마가복음의 구성/줄거리(plot)를 이해하고 그와 관련하여 그 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마가복음의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그 구성/줄거리(plot)에 대한 이해와 함께 마가가 특별히 선별하고 배열하고 묘사한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이 경우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순종의 모습을 중심으로 막 4 장의 씨뿌리는 비유에 나타난 네 종류의 밭(길 가;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땅)의 반응과 모습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치가 된다(Tolbert 1989).

4. 마가복음의 구조이해: 중심단락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특정한 장소들(광야; 바다; 산; 길; 성전)과 관련하여 사건들의 구조적 배열은 마가복음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특별한 통찰을 던져준다(Van Iersel 1982, 1983, 1989; Malbon 1979. 1982, 1986, 1993). 화란의 카톨릭 신약신학자인 Van Iersel(1989:20)은 마가복음에서 언급된 중요한 장소들(광야; 갈릴리; 길; 예루살렘; 무덤)과 관련된 구조분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타이틀(1:1)
(A1) 광야에서(1:2-13)
(y1) 첫 번째 연결점(1:14-15)
(B1) 갈릴리에서(1:16-8:21)
(z1) 눈멂 -> 눈뜸(8:22-26)
(C) 길에서(막 8:27-10:45)
(z2) 눈멂 -> 눈뜸(10:46-52)
(B2) 예루살렘에서(11:1-15:39)
(y2) 두 번째 연결점(15:40-41)
(A2) 무덤에서(15:42-16:8)

위의 구조분석은 마가복음에서 언급된 장소가 갖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구심성 교차병렬구조가 샌드위치기법과 함께 잘 어우러져 그 구조적 중심이 `길` 단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결국 이 중심단락에 반복된 `길`에 대한 언급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예수님의 길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길이 마가복음 전체의 중심된 메시지를 반영해 주는 `주제적 중심단어`(thematic keyword)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이해와 함께 (엘리야와 관련된) 세례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이 수난(suffering)의 의미를 가진 특별한 헬라어 단어인 ` `(잡힌/넘기워진)와 관련하여 구조적으로 반복하여 묘사되고 배열된 모습(막 1:14; 9:31과 10:33; 그리고 13:9)이라든가 마가복음의 중심단락(막 8:22[27]-10:52)에서 구조적으로 3번이나 반복되게 나타나는 배열(막 8:31; 9:31; 10:33-34)등에 대한 이해는 수난(suffering)에 강조를 둔 기독론과 제자도에 대한 저자의 의도로서 마가복음의 중심된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참고. Perrin 1974, 1982). 뿐만아니라 이 중심단락(막 8:[22]27-10:52)에서 반복되게 나타나는 `길에서`( )라는 단어(막 8:27; 9:33, 34; 10:17; 10:32; 10:46, 52)와 함께 `쫓다`/`따르다`( )는 단어(막 8:34; 9:38; 10:21, 28, 32; [10:38;] 10:52)는 위의 수난에 대한 강조와 함께 마가복음의 기독론과 제자도의 중심된 메시지를 이해하는 핵심단어들로 제시되어진다(Best). 여기서 제시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주어진 수난의 메시아의 길(메시아직)에 대한 계시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길(제자도)에 대한 많은 교훈들(자기부인과 희생; 섬김과 봉사; 교제와 연합; 급진적 자기성찰; 기도의 삶; 소유에 대한 이해)은 고난 가운데 있는 마가의 청중들에게 충격적 메시지로 전달된다. 특별히 이 `길` 단락에서 극명한 대조가운데 예증으로서 나타난 율법을 앎에 능한 부자청년의 모습("[버리고] 따르라"는 주님의 부름에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여 돌아간 부자청년)과 거지 소경 바디매오의 모습(시력이 회복되자 자신의 모든 것인 겉옷을 버리고 그 길에서 주님을 따른 바디매오)은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모습(제자도)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의 마음속에 막 8:34-38의 말씀과 함께 잘 각인시켜 준다. 특별히 이 단락에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예언과 함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인자의 어록인 막 10: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은 이웃과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사람(어린아이; 소자;가난한 자들)을 섬기기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한 진정한 제자도("나[주님]과 복음을 위한" 구체적 삶)의 의미를 비추어 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5. 마가복음의 중심주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설교하는데 무엇보다도 마가복음의 중심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막 1:1은 마가복음의 중심주제가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제시해 준다.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마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족보나 그의 탄생기사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천둥 같은 선언조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이 구절은 마가복음의 내용을 함축하는 마가복음의 표제어로서 곧 마가복음의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한 이야기가 마가복음의 중심주제임을 알려준다. 즉 마가가 선별하여 제시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역들을 통한 그의 신분(기독론)에 대한 바른 이해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마가의 청중이 가져야 할 바른 삶(제자도)의 골격이 되는 이해이다. 이점에 있어서 마가복음의 전반부(1-8장)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적사역을 통해 제자들이 바른 깨달음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여부가 자주 논란이 되었고(막 4:12, 23; 7:14, 18; 8:17-21) 결국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소경과 [귀머거리와] 같은 상태에 있음이 드러나게 된다(막 8:17-21).

 

여기서 우리는 `눈`과 `귀` 그리고 이와 관련된 `본다`,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와 같은 단어들의 잦은 반복들과 함께 소경과 귀머거리를 고치신 이적사역의 이중기록들(막 7:31-37; 8:22-26; 9:14-29; 10:46-52)이 이러한 의미를 가중시키고 있음을 발견한다.

마침내 중반부에서 복음서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질문("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이 제자들에게 주어지고 여기에 베드로의 답변("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이 있은 후에 비로소 예수님의 수난예언이 소개되었다(막 8:27-31). 그러나 이점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거절(책망)함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격렬한 책망을 받는다(32-33절). 이어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자신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교훈하셨다(막 8:34-38).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이해는 그의 가르치심과 이적사역 그리고 수난의 사역을 바로 깨달음으로써 되어져야 하며 이것은 단순히 외관상으로 들음과 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따름으로 이어져야 함을 마가는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곧 `듣고 따름/순종`(부자청년의 부정적 예[막 10:17-22])과 `보고 따름`(소경 바디매오의 긍정적 예[10:46-52])이 동시에 이루어 져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는 능력적인 사역을 함과 동시에 그는 수난의 길을 가야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독자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러한 계시는 예수님의 공사역의 시작에서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주어졌고(막 1:11) 이 아들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메시아(그리스도)의 이적적 사역을 행하는 그리스도로서 입증되어 졌고(막 8:29), 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적 계시는 고난의 사역에 대한 예언이 있은 지 얼마 후에 비로소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산에서 주어졌다(막 9:7).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는 이 계시(비밀)는 수난과 부활의 때까지는 여전히 베일에 감추어 진 채 진행되다가(막 9:9) 마침내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신 후에 백부장(최초의 이방인)에 의해 비로소 공개적으로 고백되어졌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이적사역과 수난사역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는 마가복음의 중심된 주제이고 이를 올바로 깨닫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즉 주님과 복음을 위해 고난(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이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논란은 마가복음을 통해 반복하여 나타나면서(막 1:1; 1:11; 3:11, 30; 4:41; 5:7; 6:3; 6:14-16; 6:49; 8:27-29; 9:7; 14:61-62; 15:2-5; 15:18, 31; 15:39) 스토리 내에서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갈등과 서스펜스를 일으키며 흘러가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Kingsbury 1983:47-119, 1989:31-61; Shim 1994a:107-110). 그러므로 이제 마가복음을 통해 수난 받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는 복음(막 1:1)을 깨달은 독자는 결코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두려움가운데 있을 수가 없고 믿음과 순종 그리고 봉사(섬김)와 희생의 제자도로 나아가야 함을 마가는 여러 등장인물들(제자들; 베드로; 수로보니게 여인; 부자청년; 거지 소경 바디매오; 성전의 과부; 향유 부은 여인; 부활의 메시지를 받은 여인들)을 통하여 극적으로 교훈해 간다. 여기에 마가복음의 중심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논란의 의도가 있다. 결국 독자는 마가복음의 스토리를 읽으면서/들으면서 막 8:29에서 제자들에게 던져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는 동일한 질문에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를 요청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신분을 중심으로 한 중심주제를 가지고 마가복음을 통전적으로 읽게 될 경우 우리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과 함께 참된 기독론과 그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인 제자도의 다양한 삶(믿음; 순종; 섬김과 봉사; 소유에 대한 문제; 연합; 기도; 자기성찰; 참된 정결; 등등)에 도전 받게 된다. 이러한 읽기는 비록 기독론을 중심으로 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구심적 접근) 주님의 제자로서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여러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을 통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점(원심적 접근)을 가지고 있다.

6. 결론: 바른 설교를 위한 최근의 마가복음 설교의 동향과 책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마가복음의 설교는 마가복음에 대한 적절한 해석에 기초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전기로 이해하여 역사적 세부사항을 재건하고 파악하는데 주력하거나 도덕적 교훈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마가복음이 말하는 중심된 주제인 <예수가 누구 신가?>를 중심으로 마가복음 자체의 세계를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마가복음의 스토리의 흐름을 따라 마가복음 자체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추구하려는 통전적 읽기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와 함께 마가의 청중의 상황에 대한 본문중심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가복음에 나타난 구약적 이해는 마가복음의 의미를 풍성하게 간파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특별히 해석자(설교자)는 마가복음에 묘사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의 저자의 관점과 의도를 따라 구성된 줄거리(plot)를 먼저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저자의 관점과 의도를 따라 구성된 줄거리(plot) 파악이 있은 후에 해석자(설교자)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을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에 비추어서 분석하고 이들 인물들 사이의 관계들을 비교(유사와 대조)하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제자들과 종교지도자들; 예수님과 베드로; 부자청년과 바디매오, 그리고 제자들; 향유 부은 여인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가룟유다; 성전과부와 종교지도자들; 수로보니게 여인과 제자들; 등등. 이러한 인물분석과 이해는 오늘의 청중들의 삶과 자연스럽게 접촉시켜주는 촉매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인물분석과 이해는 마가복음의 중심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에 대한 논란과 깊은 관계를 가지면서 마가복음의 설교를 보다 기독론적이고 제자도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마가복음연구에 있어 최근의 많은 책들은 이점을 잘 반영해 주는데 그 중 몇을 소개하자면 미국 리치몬드의 유니온 신학교의 성경학 교수인 Kingsbury의 책인 The Christology of Mark(1983)과 Conflict in Mark(1989); Rhoads와 Michie의 공저인 Mark as Story: An Introduction to the Narrative of a Gospel(1982); F. Matera의 What are They saying about Mark?(1987); M. A. Tolbert의 Sowing the Gospel: Mark`s World in Literary-Historical Perspective(1989); Van Iersel의 Reading Mark(1989) 등의 책들은 마가복음의 구조와 문학적 이해를 돕는 책들이고 그리고 편집비평 이후 마가복음의 제자도에 대한 책들로서는 영국의 글래스고대학의 성경학자인 E. Best의 Following Jesus: Discipleship in the Gospel of Mark(1981)과 Disciples & discipleship: Studies in the Gospel according to Mark(1986); A. Stock의 Call to Discipleship: A Literary Study of Mark`s Gospel(1982); D. Sweetland의 Our Journey with Jesus: Discipleship according to Mark(1987)등이 있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구약적 이해를 돕는 훌륭한 주석책으로서는 W. Lane의 The Gospel of Mark(1974); A. Stock의 The Method and Message of Mark(1989); J. Marcus의 The Way of the Lord: Christological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in the Gospel of Mark(1992)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의 흥미로운 강해설교에 가까운 주석책으로서는 남침례교 신학교의 성경학자인 Garland의 Mark: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1996)가 있다. 그 외 많은 책들은 필자의 학위논문에 소개된 참고문헌들을 참고하라.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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