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사닥다리 환상과 언약구조연구
심층연구의 예:-야곱의 사닥다리 환상과 언약구조연구
작성자: 이대환
이 페이퍼는 본인이 98년 제작한 것입니다.
일견 살펴보니 오 탈자가 많이 있군요/
당시 만들때 유사 사본이 3-4개가 있는데 조금씩 다르고..
해서 그중 이것을 올렸습니다.
심층연구의 예로 사용해도 될 것입니다.
박사원(김지찬교수)에서 A+ 를 받은 것으로 제출 원본은
찾지 못했습니다.
제자 선교회 이대환목사
구조:
1 브엘세바에서 '떠나'
브엘세바는 아브람의 하란이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A. 아비 집을 )떠나
|
| +- B. 향하여 가더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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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해가 짐 11.a.
| | |
| | | +-D. 한 돌을 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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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 자더니 11.b
| | | | | 봄 1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
| | | | | 봄 2 천사를 봄 +- A. 나는 너의 하나님
| | | | | 봄 3 하나님을 봄 | +-B 내가 너와함께
| | | | | +---------------+ | | +-C. 하나님의 성취약정
+--+----+---+---+--------| 야곱과의 언약 | ----------+--+-+
| | | | | +---------------+ | | +-C' 야곱의 이행약정
| | | | | 깸 3 하나님의 임재를 각성 | +- B'하나님이 나와함께
| | | | | 깸 2 하나님의 두려움을 자각 +-A'. 하나님은 나의하나님
| | | | | 깸 1 하나님의 집을 각성
| | | | +-E'. 깨어 가로되(잠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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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 돌을 가져 기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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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아침에 일어나 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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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 머무름 : 기름을 붓고 세움 1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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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집을( ) 세움- 벧엘 19
하나님의 언약-야곱의 서원
하나님의 언약
1.제목: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위에 서서 )
A: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a;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3)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b;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4)
B: 내가 너와
a; 함께 있어
b;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c;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C;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야곱의 서원
2 제목: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B': 하나님이 나와
a'; 함께 계시사
b';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 28:20)
c';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A':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1)
a';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b';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2 )
이것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된다.
하나님의 언약과 야곱의 서원
+- A. 나는 너의 하나님
| 1 땅을 주리니
| 2 복을 얻으리니
|
| +- B.내가 너(야곱)와 함께
| | 1 동행
| | 2 보호
| | 3 귀환
1 | 2|
| | C. 성취약정(이루기까지 떠나지 안으리라) ----+
| | |3
| | |
| | |
| +- B' (하나님)나와 함께 계시면 |
| 1' 동행해주시고 |
| 2' 보호해주시고 |
| 3' 귀환케하시면 |
| |
+- A'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
1' 주신 땅을 성전으로 |
2' 주신 복을 십일조로 드림 |
|
|
C. 이행약정(이루기까지 떠나지 안으리라) ------+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 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3)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4)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서론:
위의 본문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는 사건에서 발단단한다. 이에 야곱은 집을떠나 자기를 보호해줄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는 길이었다.
이 과정에서 밤이 되자 광야에서 돌베게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언약을 맺는 사건이다. 여기서 야곱이 가는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 야곱이 찾는 집과 하나님이 보이시는 집 사이에 뚜렸한 대조가 있음을 볼수 있다.
주해
13 나는 여호와 -
하나님은 여호와 란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셨다. 이는 이 세계의 유일한 창조주라는 것을 가르치시는데 이는 야곱으로 하여금 다른 신들을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의 엄위로운 존재 자체는 불가해안 것이므로 그는 즉시 자기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덧붙여 말씀하심으로서 자기 종의 기증에 자신을 수용시키신다.
10-22 하나님의 태도
하나님은 최고의 권위자로서 자기의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보여준다. 이것은 야곱이 현재 바라지도 않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길도 아니 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만낙를 원하셨다. 천사의 수행과 모든 것을 대도아시고 그를 놀라게 하셨다는 것이다. 제한되지 않았다는 것은 책망이나 요구의 말씀은 단 한마디도 없고 오직 '나는 여호와니' 로 부터 아위의 물결만이 흘러 나온다.
하나님의 전개하는 시제와 공간적 이동도 특이하다.
먼저13절에서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광야의 누운 자리에서 부터 땅의 모든 곳 까지(13. 14)
개인에서 부터 모든 인류에게 까지 로 발전한다.
야곱의 서원
22. 십일조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그리고 언약에 대한 감사로 인하여 전혀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것이 예물로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예물은 제사의 제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자기의 것을 대속몰로 드리는 것과 통한다
그러나 야곱은 예물이 아니라 '돌려드리는 것' 으로 인식하고 있다. 십일조는 예물이 아니라 당연신앙적 행위로서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리는 고백적인 것이다. 감사와 하나님을 인식한 , 하나님을 알게된 올바를 귀결이다.
12 사닥다리- 오르락 내리락
한국의 사닥다리 개념 보다는 층계가 더욱 적적하다. (키드너. C.L.C ;218) 삼하20:15 슥1:10 욥1:6)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은 메시야적 사건과 관련된다 예수님께서 친히 요1:51에서서 자신에게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이 사건이 일어 난 것은 구약적 개념이지만 야곱을 지키는 천사가 잠든 야곱을 보다가 야곱이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을 보시고 기뻐서 천상에 올라 다른 천사에게 고하였다. 이에 여타 천사들이 메시야를 보기 위해 내려와서 보고는 올라간 것이다고 생각한다
13 그 위에 여호와께서 서서..
하나님과 온 하늘이 지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시는 이 장면에 열중해 있는 것이다. 땅 위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니믜 심부름을 다니는 천사와 여기에서 야곱을 친히 대하시는 하나님을 대조해 보여준다.
17 하늘의 문
바벨의 이야기와 효과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이름에 비추어 볼 때 더우 끄러하다.
바벨을 밥-일리 (Bab -ili) 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신의 문' 의 뜻이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Balral
( )그가 혼란시켰다 . 즉 인간이 수고한하여 계획하던 하나님의 문(바벨)은 허물어 버리고 다시 하나님에 의해 인간에게 열려진 '하늘의 문'을 대조해 봀 있다.
역사적 배경
브엘세바
브엘세바는 가나안의 국경지대 중 하나를 이루고 남쪽 사막을 향해 위치하고 있다. 야곱이 가고 있던 동부 지역헤서 아주 굉장히 먼 지역이었다.
하란 -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얼마간 거주 했던 곳이다. 경건한 노인 데라는 자기 아들을 따라가거나 여행길에 나선 자기 아들을 동반하여 가다가 하란에 이르러 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다른 아들 나홀도 그의 가족과 함께 그곳으로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 11 장에서 데라가 그의 아들 아브라함고 손자 롯, 그리고 그 자부 사래를 데리고 그들 자신의 땅을 떠났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홀이 그 당시에 본토 갈대아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할수 있다. 그러나 한편 모세는 라반이 하란에 거주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홀이 자기 부친을 몰인정하게 유기한 자로 정죄당할까 염려하여 나중에 자기 재물을 모아 가지고 그에게로 왔을 것 이라고 추측한다.
벧엘 ;
루스
루스는 편도 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주변에 편도나무가 많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한다.
또한 돌이키다 떠나다 돌아가다의 뜻이 있고 또 패역하다 악하다는 뜻도 있는데 여기서 연유하여 그 거민이 악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구조
본문의 구성은 집을 떠나는 야곱과 집(하나님의 , 벧엘)을 세우는 야곱 사이에서 야곱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구원의 과정이 잘 들어나 있다. 하나님은 사건을 전개해 가시면서 야곱의 관점을 하나님을 향하게 하셨고 이 사건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리잡고 있다.
언약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이며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언약의 관점에서도 평행대구법이 보여진다.
문법적
( 힌네) 꿈 속에서 야곱이 놀라는 광경을 를 세 번 반복함으로서 더욱 고조시킨다. :
볼지어다. 사닥다리를!
볼지어다. 천사를
볼지어다. 하나님을 ...
(알라우) 는 한글 개역처럼 그 위에(over Him) 으로 번역할수도 있으나 '그것 위에'(above it) 로 번역함이 더욱 좋다. (R.V., 루터 ..) 이렇게 함으로서 꿈이 더욱 깊은 상징을 함의하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왜 사닥다리이며, 왜 천사들인가 ? 왜 주께서 그것들 위에 계셨는가? 그것은 사닥다리와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중재하는 자로서 그 도구, 또는 매개체 위에 계심으로서 교제의 주권자이며 친히 주관하시는 것임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다.
이견해는 알버트 반즈의 견해를 수용한것이다.(Barnes Gen. : 674)
비평가들의 견해
은 성경에서 종종 어떤 성읍에 속한 산당(cult place)을 뜻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야곱이 산당에 들어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만약 정말 산당 이었다면 하나님이 그곳에역사하셨겠는가? 하나님은 산당을 가증히 여기신다. 그것은 단순이 어떤곳에 불과하다.
(메쉬라타우) 베게는 머리두는 곳이다. Edersheim 은 야곱의 돌이 갑자기 상승하면서 그 돌이 사닥다리 형태를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유익하지 않다. 하나님이 하신 꿈에 이상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보다 신화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매우 성경의 본 의미를 그르친다.
또한 돌에 대해서도 산당의 신성한 돌이나 베개중의 하나이다. 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 돌이 잠 중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꿈을 유발시키고 야곱은 놀라 깬다. 야곱은 신성한 돌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였음을 깨닳고 자신에게 저주가 올 것을 두려워하여 노한 신을 유화하기 위해 서원을 하였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이는 성경을 미신과 마술, 주술숭배 정령숭배 등의 개념으로 삼아 야곱의 행위를 원시 무속종교의 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이는 성경에 대한 모욕이다. 이는 언약의 내용이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백한데, 그것은 무속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잘못에 대한 신의 진노가 없다 오히려 범죄한 야곱을 나무라지도 않는 인자와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Edersheim 비평적 시각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성경은 단순한 황혼의 들녁에서 머리둘 돌 하나를 취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 스럽다.
기름 부은 돌:
어떤 이들은 Baetylian 의 돌 숭배 사고와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 돌 숭배 습관이 다소 광범하게 유행했다는 것으 사실이다. 그런 기름이 부어진 돌들은 헬라어로 바이툴로이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우연의 일치가 야곱의 경험을 그런 이교도의 관습과 동일시하면 않된다.
신학적 문제
1. 하나님은 사기꾼을 축복하시는가?
하나님은 거짖을 전문으로 하는 , 형도 아버지도, ..닥치는 대로 거짓을 일삼은 자를 축복하시는 것이 합당한가를 물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포기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신학적으로 예정된 사람은 어떻게 살든지 복을 받는가?
그렇수는 없다. 여기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처우는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니믜 은혜의확신과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곱은 가정과의 유대를 단절당하였고, 철저한 외톨이가 되어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여행중에 만날 어떤 어려움에 대해서도 보장된 것이 없었다.
주께서는 범죄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은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곤경중에 있는 죄인에게 은총을 말씀한다.
2. 야곱의 길과 하나님의 길
야곱은 자기의 길을 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그 길의 방향을 놓아가고 계신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하시겠다고 언약하고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우리의 길이 드려질 때 인생의 길이 보다 온전함을 알게 된다. '
3 .과연 여기 계시거늘 (하나님의 편재성)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이 단절되었다고 믿은 것 같다. 이유는 복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인이'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 이라고 생각했던것과 같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의 편재가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편재는 인격적 편재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디든 계신다는 말은 인간의 인격이 미치는 (피조물에 대한 편재도 무시하지 않은채) 삶의 자리를 말한다.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살았어야 했다. 그러면 그가 있는 모든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4.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것은 가능한가.- 서원은 조건부 약정인가?
'만일 .....게 해 주시면 ' 을 조건절로 본다면 역사상 가장 유치한 계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완벽한 보호 인도 장래에 대한 초유의 축복에 대해 야곱은 소유물의 십일조 정도를 드리겠다는 것이된다. 이것은 매우 유아적 발상이다.
'웨하야 야웨 리 레로힘' 은 귀결절로 볼수 없다.; 야웨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A.V, Luther)
반즈의 설교에 대한 견해:
이 본문은 허물투성이인 자녀르롤보시는 하나님의 사라이다 그 사랑은 하나니믜 편재가 그 자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예증해 준다.
ㅇ 요 1:51은 야곱의이 경험에 대한 분명한 암시이다. 다라서 본문은 그리스도는 하늘 버지와의 계속적인 교제의 완전한 구현이다 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방향에서 접근되어야 헐 것이다.
설교
거기 여전히 계신 하나님 -하늘 문은 여전히 열려있어요-
창28:10-22 327 / 324
생존,
일단 내가 살아 남아야 한다.
내가 이겨야 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머리가 따라 주어야 되!
혹시
당신도 이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야곱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심연(深淵)에는
두려움이 지배했습니다.
늘 쫓기며, 늘 피곤한
그가 주님을 잊은 동안에는
그러나 여전히 주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야곱의 자리에
혹시 이렇게 믿고 있지 않는가. 내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아침일찍 부터 영어 일어회화를 배우고, 토플을 걱정하고 ...
강한자가 되기 위해 숱하게 노력하는데 ...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기는 하는데 불안은 여전하다. 야곱이 그랬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보이시기 시작했다. 야곱아 너는 하란만 보이느냐? 혹 당신은 시험만 보고 있지 않는가.? 혹 인사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진 않는가?
하나님은 야곱을 하늘로 이끌어 가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의 조부의 하나님 아버지의 ;..... 땅의 모든 족속이 ..
땅이 몇번 나왔는가? 3번 나온다. 12절에는 본즉이 몇번 나오는가?
야곱이 하나님을 향하여 보고 보고 보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땅과 땅과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따.
정말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땅을 차지 하는 것이 무엇인가.?
현대 경영은 사람을 귀히여기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영원리는
땅만 보면 망한다. 내가 너보다 좋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의 결과는 내가 먼저 죽는다. 눈을 들어 위를 보고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보라보라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 땅당땅을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있겠다. 내가 너를 지켜 다시 돌아오게 하겠따. 하나님의 동행은 내가 하기 나름이아니다. 안전은 내게 있지 않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안전벨트 에어벡 안전운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최선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킴, 안전, 귀환케하셔야 한다.
'내가 언약한 모든 것이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말씀 보게, 깨닳게하셨따.
하나님은 잠에서 깨어나게(각성)하셨다. 여호와깨서 과영 여기 계시거늘 알지 못하였또다. 이에 야곱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기둥으로 세웠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야곱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브엘세바를 떠나 외가집으로 가고있따.
야곱은 외조부의 집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야곱은 깨어서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다.
야곱은 외가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하나님의 집으로 데리고 오고 있따. 하나님은 외가가 살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으로 오라고 하고 있따. 외가가
잠을깬 야곱이 여호와의 집을깨닳았다. 하나님께로나가는 길을알았다.
여기서 야곱은 3가지 각성한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진정한 두려움이다.
우리가 efudnj하는 것은 대부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원한다. 우리 두려움은 사는것에 있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할 것은 삶의 문제가 아니고 영적인 것이다.
돈벌어야 하는데 , 뭘먹고 살지 집세는 어떻게 내지..
하나님을 보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뵈온 두려움은 본질적인 것이다. 베드로는 나를떠나소서 말쌨다. 자신이 죄인을 각성, 이상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되었도다. .. 나는 죄인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뵈었다 나는 망했따. 나는 죽었다 ... 하나님을 뵈옵고 나서 우리만음의 악과 더로움, 황금우상 , 출세우상 자기 우상을 보아야 나는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땅에서 두려움이 생기거든 땅만 보지 말고 그곳에 내려진 사닥다리를 보라, 눈을 들어 천사를 보고 더올라가 하늘과 하나님이 열린문을 보고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라
절망이라는 자리는 사닥다리의 자리이다.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면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고 새 세계가 열린다.
예쁜 처녀가 건너편에서 오고 있다. 머리부터 만진다. 왜 그런게 상대방에 멋진 사람이 오고 있는데 우리는 먼저 내가 걱정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먼저 내가 걱정이 된다. 혹시 머리가 괜찬은지,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하나님 앞에 서면 먼저 내가 걱정이 된다. 내머리(머리속)가 보일것인데, 내 삶에 묻은 더러움이 , 내 손이 .. 그래서 거북의 목처럼 손을 숨긴다.
그러나 숨길수 없다는 것을 깨닳을 때 절망한다.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고 있지 않는가.
내 삶에 묻은 더러운 것이 보일건데.
마치 거북목처럼 삶에 붙은 더러운것과 악한 것을 감춘 .
하나님에 대한 진전한 인식은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래 더러운 것을 알기에 문제삼지 않는 것이다 더러워도 괜찬다는 것은 아니다.
2쩨로 진정한 집이 하나님에게 있는것인줄 각성했따.
. 외삼촌의 집이 아니라 , 하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이트에 와야 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예) 간첩들이 비트를 만들었다. 비트는 이스라엘 군이 만든 개인참호이다. 외삼촌이 바이트가 될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외삼촌은 바이트가 되어 주질 않았다. 오히려 속고, 당하고 있었따 그 곳은 비트가 아니었다. 야곱의 비트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에게 나아가야 진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이 바이트가 될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외삼촌을 끝없이 속이고 말았다. 결코 외삼촌이 비트가 되어주지 못했다.
당신의 비트는 어디인가?
열심히 일하면 비트가 될줄 믿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비크기 되신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오 바위요... ' 다윗이 여호와를 비트로 삼고 계신다. 땅의 비트는 무너져 깔리게 된다.
야곱은 아침일찍 일어나 베게하였던 돌을 취하여..
야곱은 잘려고 누웠으나 하나님은 잠자게 하지 않았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일어나....
이제는 현실세계이다. 기름을 붓고, 기름은 어디서 난것인가. 이것은 여행자의 비상약이다. 생명을 지키는 필수품이다. 야곱은 이 기름을 쏟아 부었다. 비트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알았기에 그 기름 자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있따.
야곱은 여기서 단을 쌓았다. 야곱은 그곳을 하나니믜 집으로 삼았다.
야곱은 외삼촌의 바이트로 가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바이트를 찾았다.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인식한다.
언약
하나님이 전을 삼겠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십일조를 드리겠나이다.
십이조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십일조는 인격과 삶이, 나의 안전이 하나님께 있는줄 알아서 드리는 것이다.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의탁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나의 안전한 바이트가 된다은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드리겠나이다.
십일조는 삶의 고백이 되도록 드려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야곱은 그 현실 현장에서 단을 쌓았다. 예배는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고 바쁜 업무속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시작되었다.
아침 묵상이 안되는 것은 아침이 너무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야곱은 일찍일어 났다.
야곱의 행위는 의도적으로 일찍일어난다 그리고 단을 쌓았다.
이는 감정적인 일이 아니었다.
결론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하나님을 보고 보고 보면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
당신이 만나야할 벧엘은 어디인가?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주로 실패하고 무너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닥다리가 내려와 있따. 그곳을 보라 그러면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우리가운데 계신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까지는 늘 피곤하게 살았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그곳에서 ㅍ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야곱처럼 은총받은 백성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잘 무너지고 실패하지만 주니므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거기 여전히 계신 하나님을 뵈옵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도적으로 일찍일어나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앞에서 삶을 드리고 시작하면 약속하신데로 지키시고 함께하신다는 언약이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
어리석을 땅만 보지 않고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되는 영적 세계가 열려지기를 원한다.
아멘-
야곱이 바로 이런 사람이 었다.
그러나 양곱의 마음엔 두려움이 미래 먹는 입는 귀환에 대한
속을것에 대한 두려움 ..
늘 쫒기는 tkfad 핀곤한 삶이었따. 그가 주님을 잊고 있는 동안엔
본무엔 뭘 말씀하시는 가
여호와 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따.
야곱은 가는 사람이다. 10 절/
그러나 야곱이 가는 길과 하나님이 가는 길은 다르다.
여기는 어디 인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야곱이 하란으로 가더니.
하나님은 같이 가고 있어떠 그런에 하나니믜 길과 야곱의 길은 다르다.
문학적 대조를 보이고 잇따. 11 절에 동을 취하여 잠을 자고 있따.
16절엔 잠을 깨고 있따.
이 두사이에 ( 잠-깸 ) 담긴 것이 보는 사건이드ㅏ.
뭘 보는가. 사닥다리 천사 하나님
점점 사닥다리가 올라가는것처럼 점점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발전 한다.
점점 땅을 보던 눈이 천사가 보이고 더욱 위로 볼수록 하나님을 보고 있따.
3야곱은 유숙하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깨우고 있따. 야곱이 못자도록 하나님이 깨우고 있따. 야곱은 하란으로 간다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다른 곳으로 가고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내길만 따라오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염두에 두고 일을 행하고 있따. 그래서 하나님은 믿을만 하다. 만약 하나님이 내 가는길만 따라오면 어떻게 될까? 비극이다.
심층연구의 예:-야곱의 사닥다리 환상과 언약구조연구
작성자: 이대환
이 페이퍼는 본인이 98년 제작한 것입니다.
일견 살펴보니 오 탈자가 많이 있군요/
당시 만들때 유사 사본이 3-4개가 있는데 조금씩 다르고..
해서 그중 이것을 올렸습니다.
심층연구의 예로 사용해도 될 것입니다.
박사원(김지찬교수)에서 A+ 를 받은 것으로 제출 원본은
찾지 못했습니다.
제자 선교회 이대환목사
구조:
1 브엘세바에서 '떠나'
브엘세바는 아브람의 하란이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A. 아비 집을 )떠나
|
| +- B. 향하여 가더니 10
| |
| | +-C. 해가 짐 11.a.
| | |
| | | +-D. 한 돌을 취하여
| | | |
| | | | +-E. 자더니 11.b
| | | | | 봄 1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
| | | | | 봄 2 천사를 봄 +- A. 나는 너의 하나님
| | | | | 봄 3 하나님을 봄 | +-B 내가 너와함께
| | | | | +---------------+ | | +-C. 하나님의 성취약정
+--+----+---+---+--------| 야곱과의 언약 | ----------+--+-+
| | | | | +---------------+ | | +-C' 야곱의 이행약정
| | | | | 깸 3 하나님의 임재를 각성 | +- B'하나님이 나와함께
| | | | | 깸 2 하나님의 두려움을 자각 +-A'. 하나님은 나의하나님
| | | | | 깸 1 하나님의 집을 각성
| | | | +-E'. 깨어 가로되(잠을) 16
| | | |
| | | +-D' 돌을 가져 기둥으로
| | |
| | +-C' 아침에 일어나 18a
| |
| +- B' 머무름 : 기름을 붓고 세움 18b
|
+-A' 집을( ) 세움- 벧엘 19
하나님의 언약-야곱의 서원
하나님의 언약
1.제목: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위에 서서 )
A: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a;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3)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b;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4)
B: 내가 너와
a; 함께 있어
b;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c;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C;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야곱의 서원
2 제목: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B': 하나님이 나와
a'; 함께 계시사
b';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 28:20)
c';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A':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1)
a';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b';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2 )
이것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된다.
하나님의 언약과 야곱의 서원
+- A. 나는 너의 하나님
| 1 땅을 주리니
| 2 복을 얻으리니
|
| +- B.내가 너(야곱)와 함께
| | 1 동행
| | 2 보호
| | 3 귀환
1 | 2|
| | C. 성취약정(이루기까지 떠나지 안으리라) ----+
| | |3
| | |
| | |
| +- B' (하나님)나와 함께 계시면 |
| 1' 동행해주시고 |
| 2' 보호해주시고 |
| 3' 귀환케하시면 |
| |
+- A'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
1' 주신 땅을 성전으로 |
2' 주신 복을 십일조로 드림 |
|
|
C. 이행약정(이루기까지 떠나지 안으리라) ------+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 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3)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4)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서론:
위의 본문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는 사건에서 발단단한다. 이에 야곱은 집을떠나 자기를 보호해줄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는 길이었다.
이 과정에서 밤이 되자 광야에서 돌베게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언약을 맺는 사건이다. 여기서 야곱이 가는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 야곱이 찾는 집과 하나님이 보이시는 집 사이에 뚜렸한 대조가 있음을 볼수 있다.
주해
13 나는 여호와 -
하나님은 여호와 란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셨다. 이는 이 세계의 유일한 창조주라는 것을 가르치시는데 이는 야곱으로 하여금 다른 신들을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의 엄위로운 존재 자체는 불가해안 것이므로 그는 즉시 자기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덧붙여 말씀하심으로서 자기 종의 기증에 자신을 수용시키신다.
10-22 하나님의 태도
하나님은 최고의 권위자로서 자기의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보여준다. 이것은 야곱이 현재 바라지도 않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길도 아니 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만낙를 원하셨다. 천사의 수행과 모든 것을 대도아시고 그를 놀라게 하셨다는 것이다. 제한되지 않았다는 것은 책망이나 요구의 말씀은 단 한마디도 없고 오직 '나는 여호와니' 로 부터 아위의 물결만이 흘러 나온다.
하나님의 전개하는 시제와 공간적 이동도 특이하다.
먼저13절에서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광야의 누운 자리에서 부터 땅의 모든 곳 까지(13. 14)
개인에서 부터 모든 인류에게 까지 로 발전한다.
야곱의 서원
22. 십일조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그리고 언약에 대한 감사로 인하여 전혀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것이 예물로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예물은 제사의 제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자기의 것을 대속몰로 드리는 것과 통한다
그러나 야곱은 예물이 아니라 '돌려드리는 것' 으로 인식하고 있다. 십일조는 예물이 아니라 당연신앙적 행위로서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리는 고백적인 것이다. 감사와 하나님을 인식한 , 하나님을 알게된 올바를 귀결이다.
12 사닥다리- 오르락 내리락
한국의 사닥다리 개념 보다는 층계가 더욱 적적하다. (키드너. C.L.C ;218) 삼하20:15 슥1:10 욥1:6)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은 메시야적 사건과 관련된다 예수님께서 친히 요1:51에서서 자신에게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이 사건이 일어 난 것은 구약적 개념이지만 야곱을 지키는 천사가 잠든 야곱을 보다가 야곱이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을 보시고 기뻐서 천상에 올라 다른 천사에게 고하였다. 이에 여타 천사들이 메시야를 보기 위해 내려와서 보고는 올라간 것이다고 생각한다
13 그 위에 여호와께서 서서..
하나님과 온 하늘이 지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시는 이 장면에 열중해 있는 것이다. 땅 위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니믜 심부름을 다니는 천사와 여기에서 야곱을 친히 대하시는 하나님을 대조해 보여준다.
17 하늘의 문
바벨의 이야기와 효과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이름에 비추어 볼 때 더우 끄러하다.
바벨을 밥-일리 (Bab -ili) 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신의 문' 의 뜻이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Balral
( )그가 혼란시켰다 . 즉 인간이 수고한하여 계획하던 하나님의 문(바벨)은 허물어 버리고 다시 하나님에 의해 인간에게 열려진 '하늘의 문'을 대조해 봀 있다.
역사적 배경
브엘세바
브엘세바는 가나안의 국경지대 중 하나를 이루고 남쪽 사막을 향해 위치하고 있다. 야곱이 가고 있던 동부 지역헤서 아주 굉장히 먼 지역이었다.
하란 -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얼마간 거주 했던 곳이다. 경건한 노인 데라는 자기 아들을 따라가거나 여행길에 나선 자기 아들을 동반하여 가다가 하란에 이르러 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다른 아들 나홀도 그의 가족과 함께 그곳으로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 11 장에서 데라가 그의 아들 아브라함고 손자 롯, 그리고 그 자부 사래를 데리고 그들 자신의 땅을 떠났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홀이 그 당시에 본토 갈대아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할수 있다. 그러나 한편 모세는 라반이 하란에 거주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홀이 자기 부친을 몰인정하게 유기한 자로 정죄당할까 염려하여 나중에 자기 재물을 모아 가지고 그에게로 왔을 것 이라고 추측한다.
벧엘 ;
루스
루스는 편도 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주변에 편도나무가 많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한다.
또한 돌이키다 떠나다 돌아가다의 뜻이 있고 또 패역하다 악하다는 뜻도 있는데 여기서 연유하여 그 거민이 악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구조
본문의 구성은 집을 떠나는 야곱과 집(하나님의 , 벧엘)을 세우는 야곱 사이에서 야곱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구원의 과정이 잘 들어나 있다. 하나님은 사건을 전개해 가시면서 야곱의 관점을 하나님을 향하게 하셨고 이 사건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리잡고 있다.
언약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이며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언약의 관점에서도 평행대구법이 보여진다.
문법적
( 힌네) 꿈 속에서 야곱이 놀라는 광경을 를 세 번 반복함으로서 더욱 고조시킨다. :
볼지어다. 사닥다리를!
볼지어다. 천사를
볼지어다. 하나님을 ...
(알라우) 는 한글 개역처럼 그 위에(over Him) 으로 번역할수도 있으나 '그것 위에'(above it) 로 번역함이 더욱 좋다. (R.V., 루터 ..) 이렇게 함으로서 꿈이 더욱 깊은 상징을 함의하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왜 사닥다리이며, 왜 천사들인가 ? 왜 주께서 그것들 위에 계셨는가? 그것은 사닥다리와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중재하는 자로서 그 도구, 또는 매개체 위에 계심으로서 교제의 주권자이며 친히 주관하시는 것임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다.
이견해는 알버트 반즈의 견해를 수용한것이다.(Barnes Gen. : 674)
비평가들의 견해
은 성경에서 종종 어떤 성읍에 속한 산당(cult place)을 뜻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야곱이 산당에 들어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만약 정말 산당 이었다면 하나님이 그곳에역사하셨겠는가? 하나님은 산당을 가증히 여기신다. 그것은 단순이 어떤곳에 불과하다.
(메쉬라타우) 베게는 머리두는 곳이다. Edersheim 은 야곱의 돌이 갑자기 상승하면서 그 돌이 사닥다리 형태를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유익하지 않다. 하나님이 하신 꿈에 이상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보다 신화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매우 성경의 본 의미를 그르친다.
또한 돌에 대해서도 산당의 신성한 돌이나 베개중의 하나이다. 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 돌이 잠 중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꿈을 유발시키고 야곱은 놀라 깬다. 야곱은 신성한 돌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였음을 깨닳고 자신에게 저주가 올 것을 두려워하여 노한 신을 유화하기 위해 서원을 하였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이는 성경을 미신과 마술, 주술숭배 정령숭배 등의 개념으로 삼아 야곱의 행위를 원시 무속종교의 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이는 성경에 대한 모욕이다. 이는 언약의 내용이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백한데, 그것은 무속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잘못에 대한 신의 진노가 없다 오히려 범죄한 야곱을 나무라지도 않는 인자와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Edersheim 비평적 시각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성경은 단순한 황혼의 들녁에서 머리둘 돌 하나를 취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 스럽다.
기름 부은 돌:
어떤 이들은 Baetylian 의 돌 숭배 사고와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 돌 숭배 습관이 다소 광범하게 유행했다는 것으 사실이다. 그런 기름이 부어진 돌들은 헬라어로 바이툴로이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우연의 일치가 야곱의 경험을 그런 이교도의 관습과 동일시하면 않된다.
신학적 문제
1. 하나님은 사기꾼을 축복하시는가?
하나님은 거짖을 전문으로 하는 , 형도 아버지도, ..닥치는 대로 거짓을 일삼은 자를 축복하시는 것이 합당한가를 물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는 포기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신학적으로 예정된 사람은 어떻게 살든지 복을 받는가?
그렇수는 없다. 여기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처우는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니믜 은혜의확신과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곱은 가정과의 유대를 단절당하였고, 철저한 외톨이가 되어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여행중에 만날 어떤 어려움에 대해서도 보장된 것이 없었다.
주께서는 범죄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은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곤경중에 있는 죄인에게 은총을 말씀한다.
2. 야곱의 길과 하나님의 길
야곱은 자기의 길을 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그 길의 방향을 놓아가고 계신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하시겠다고 언약하고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우리의 길이 드려질 때 인생의 길이 보다 온전함을 알게 된다. '
3 .과연 여기 계시거늘 (하나님의 편재성)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이 단절되었다고 믿은 것 같다. 이유는 복의 근원이 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인이'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 이라고 생각했던것과 같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의 편재가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편재는 인격적 편재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디든 계신다는 말은 인간의 인격이 미치는 (피조물에 대한 편재도 무시하지 않은채) 삶의 자리를 말한다.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살았어야 했다. 그러면 그가 있는 모든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4.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것은 가능한가.- 서원은 조건부 약정인가?
'만일 .....게 해 주시면 ' 을 조건절로 본다면 역사상 가장 유치한 계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완벽한 보호 인도 장래에 대한 초유의 축복에 대해 야곱은 소유물의 십일조 정도를 드리겠다는 것이된다. 이것은 매우 유아적 발상이다.
'웨하야 야웨 리 레로힘' 은 귀결절로 볼수 없다.; 야웨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A.V, Luther)
반즈의 설교에 대한 견해:
이 본문은 허물투성이인 자녀르롤보시는 하나님의 사라이다 그 사랑은 하나니믜 편재가 그 자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예증해 준다.
ㅇ 요 1:51은 야곱의이 경험에 대한 분명한 암시이다. 다라서 본문은 그리스도는 하늘 버지와의 계속적인 교제의 완전한 구현이다 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방향에서 접근되어야 헐 것이다.
설교
거기 여전히 계신 하나님 -하늘 문은 여전히 열려있어요-
창28:10-22 327 / 324
생존,
일단 내가 살아 남아야 한다.
내가 이겨야 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머리가 따라 주어야 되!
혹시
당신도 이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야곱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심연(深淵)에는
두려움이 지배했습니다.
늘 쫓기며, 늘 피곤한
그가 주님을 잊은 동안에는
그러나 여전히 주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야곱의 자리에
혹시 이렇게 믿고 있지 않는가. 내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아침일찍 부터 영어 일어회화를 배우고, 토플을 걱정하고 ...
강한자가 되기 위해 숱하게 노력하는데 ...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기는 하는데 불안은 여전하다. 야곱이 그랬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보이시기 시작했다. 야곱아 너는 하란만 보이느냐? 혹 당신은 시험만 보고 있지 않는가.? 혹 인사에만 촉각을 세우고 있진 않는가?
하나님은 야곱을 하늘로 이끌어 가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의 조부의 하나님 아버지의 ;..... 땅의 모든 족속이 ..
땅이 몇번 나왔는가? 3번 나온다. 12절에는 본즉이 몇번 나오는가?
야곱이 하나님을 향하여 보고 보고 보았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땅과 땅과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따.
정말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땅을 차지 하는 것이 무엇인가.?
현대 경영은 사람을 귀히여기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영원리는
땅만 보면 망한다. 내가 너보다 좋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의 결과는 내가 먼저 죽는다. 눈을 들어 위를 보고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보라보라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 땅당땅을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있겠다. 내가 너를 지켜 다시 돌아오게 하겠따. 하나님의 동행은 내가 하기 나름이아니다. 안전은 내게 있지 않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안전벨트 에어벡 안전운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최선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킴, 안전, 귀환케하셔야 한다.
'내가 언약한 모든 것이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말씀 보게, 깨닳게하셨따.
하나님은 잠에서 깨어나게(각성)하셨다. 여호와깨서 과영 여기 계시거늘 알지 못하였또다. 이에 야곱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기둥으로 세웠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야곱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브엘세바를 떠나 외가집으로 가고있따.
야곱은 외조부의 집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야곱은 깨어서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한다.
야곱은 외가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하나님의 집으로 데리고 오고 있따. 하나님은 외가가 살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으로 오라고 하고 있따. 외가가
잠을깬 야곱이 여호와의 집을깨닳았다. 하나님께로나가는 길을알았다.
여기서 야곱은 3가지 각성한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진정한 두려움이다.
우리가 efudnj하는 것은 대부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원한다. 우리 두려움은 사는것에 있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할 것은 삶의 문제가 아니고 영적인 것이다.
돈벌어야 하는데 , 뭘먹고 살지 집세는 어떻게 내지..
하나님을 보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뵈온 두려움은 본질적인 것이다. 베드로는 나를떠나소서 말쌨다. 자신이 죄인을 각성, 이상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되었도다. .. 나는 죄인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뵈었다 나는 망했따. 나는 죽었다 ... 하나님을 뵈옵고 나서 우리만음의 악과 더로움, 황금우상 , 출세우상 자기 우상을 보아야 나는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땅에서 두려움이 생기거든 땅만 보지 말고 그곳에 내려진 사닥다리를 보라, 눈을 들어 천사를 보고 더올라가 하늘과 하나님이 열린문을 보고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라
절망이라는 자리는 사닥다리의 자리이다.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면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고 새 세계가 열린다.
예쁜 처녀가 건너편에서 오고 있다. 머리부터 만진다. 왜 그런게 상대방에 멋진 사람이 오고 있는데 우리는 먼저 내가 걱정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먼저 내가 걱정이 된다. 혹시 머리가 괜찬은지,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하나님 앞에 서면 먼저 내가 걱정이 된다. 내머리(머리속)가 보일것인데, 내 삶에 묻은 더러움이 , 내 손이 .. 그래서 거북의 목처럼 손을 숨긴다.
그러나 숨길수 없다는 것을 깨닳을 때 절망한다.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고 있지 않는가.
내 삶에 묻은 더러운 것이 보일건데.
마치 거북목처럼 삶에 붙은 더러운것과 악한 것을 감춘 .
하나님에 대한 진전한 인식은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래 더러운 것을 알기에 문제삼지 않는 것이다 더러워도 괜찬다는 것은 아니다.
2쩨로 진정한 집이 하나님에게 있는것인줄 각성했따.
. 외삼촌의 집이 아니라 , 하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이트에 와야 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예) 간첩들이 비트를 만들었다. 비트는 이스라엘 군이 만든 개인참호이다. 외삼촌이 바이트가 될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외삼촌은 바이트가 되어 주질 않았다. 오히려 속고, 당하고 있었따 그 곳은 비트가 아니었다. 야곱의 비트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에게 나아가야 진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이 바이트가 될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외삼촌을 끝없이 속이고 말았다. 결코 외삼촌이 비트가 되어주지 못했다.
당신의 비트는 어디인가?
열심히 일하면 비트가 될줄 믿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비크기 되신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오 바위요... ' 다윗이 여호와를 비트로 삼고 계신다. 땅의 비트는 무너져 깔리게 된다.
야곱은 아침일찍 일어나 베게하였던 돌을 취하여..
야곱은 잘려고 누웠으나 하나님은 잠자게 하지 않았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일어나....
이제는 현실세계이다. 기름을 붓고, 기름은 어디서 난것인가. 이것은 여행자의 비상약이다. 생명을 지키는 필수품이다. 야곱은 이 기름을 쏟아 부었다. 비트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알았기에 그 기름 자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있따.
야곱은 여기서 단을 쌓았다. 야곱은 그곳을 하나니믜 집으로 삼았다.
야곱은 외삼촌의 바이트로 가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바이트를 찾았다.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인식한다.
언약
하나님이 전을 삼겠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십일조를 드리겠나이다.
십이조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십일조는 인격과 삶이, 나의 안전이 하나님께 있는줄 알아서 드리는 것이다.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의탁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나의 안전한 바이트가 된다은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드리겠나이다.
십일조는 삶의 고백이 되도록 드려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야곱은 그 현실 현장에서 단을 쌓았다. 예배는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고 바쁜 업무속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시작되었다.
아침 묵상이 안되는 것은 아침이 너무 다른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야곱은 일찍일어 났다.
야곱의 행위는 의도적으로 일찍일어난다 그리고 단을 쌓았다.
이는 감정적인 일이 아니었다.
결론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하나님을 보고 보고 보면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
당신이 만나야할 벧엘은 어디인가?
성도들이여 여러분이 주로 실패하고 무너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닥다리가 내려와 있따. 그곳을 보라 그러면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우리가운데 계신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까지는 늘 피곤하게 살았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그곳에서 ㅍ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야곱처럼 은총받은 백성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잘 무너지고 실패하지만 주니므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거기 여전히 계신 하나님을 뵈옵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도적으로 일찍일어나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앞에서 삶을 드리고 시작하면 약속하신데로 지키시고 함께하신다는 언약이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
어리석을 땅만 보지 않고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되는 영적 세계가 열려지기를 원한다.
아멘-
야곱이 바로 이런 사람이 었다.
그러나 양곱의 마음엔 두려움이 미래 먹는 입는 귀환에 대한
속을것에 대한 두려움 ..
늘 쫒기는 tkfad 핀곤한 삶이었따. 그가 주님을 잊고 있는 동안엔
본무엔 뭘 말씀하시는 가
여호와 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따.
야곱은 가는 사람이다. 10 절/
그러나 야곱이 가는 길과 하나님이 가는 길은 다르다.
여기는 어디 인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야곱이 하란으로 가더니.
하나님은 같이 가고 있어떠 그런에 하나니믜 길과 야곱의 길은 다르다.
문학적 대조를 보이고 잇따. 11 절에 동을 취하여 잠을 자고 있따.
16절엔 잠을 깨고 있따.
이 두사이에 ( 잠-깸 ) 담긴 것이 보는 사건이드ㅏ.
뭘 보는가. 사닥다리 천사 하나님
점점 사닥다리가 올라가는것처럼 점점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발전 한다.
점점 땅을 보던 눈이 천사가 보이고 더욱 위로 볼수록 하나님을 보고 있따.
3야곱은 유숙하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깨우고 있따. 야곱이 못자도록 하나님이 깨우고 있따. 야곱은 하란으로 간다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다른 곳으로 가고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내길만 따라오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염두에 두고 일을 행하고 있따. 그래서 하나님은 믿을만 하다. 만약 하나님이 내 가는길만 따라오면 어떻게 될까? 비극이다.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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