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신학자료

[스크랩] 칼빈의 기독교 생활 원리 (4부, 3장-4장) 중에서

baromi 2016. 6. 15. 09:05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훈계가 우리 자신의 부패한 본성과 맞지 않을지라도 아주 유순한 정신으로 그것의 가르침에 자신을 맡기어 그것의 교훈에 의해 다스림 받고 단련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본성에 반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 따라서 그 말씀이 내 배에 들어가 쓰디쓴 고통을 주리라는 점을 잘 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간구한다. '나의 본성을 꺾으시고 그 고통이 바다처럼 내 가슴에 넘칠지라도 그로 인해 다스리시고 단련하옵소서'


겸손과 온건의 법칙... 애매한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것 이상으로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심지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명령하시고 알게 하시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옮기는데만도 얼마나 큰 힘이 드는 일인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은 것을 주제 넘게 아는 체 하지 말자. 아는 체 하는 순간...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고 자기 의를 내세우게 되며 이웃 사랑은 영영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보시고 채점하시는 분, 그의 손과 심판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그 분의 목전에서 항상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계속적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품고 지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이스라엘, 그들 역사는 반역과 징계와 회복의 역사였다.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받은 존재들이 아님을 이스라엘 역사가 교훈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뿌리 깊은 나무 옆에 놓인 도끼처럼 우리 곁에 있음을 인식할 때, 어찌 회개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규례들은 너무나 중대하고 강력한 까닭에 몇몇 불경건한 사람들의 허물에 의하여 그 효능이 결코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규례들, 능력과 그 능력이 미치는 범위 등은 인간의 어떠함에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흠결이 있는 자를 들어 당신의 계획을 추진하실진대 그 누가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종종 흠결이 있는 자의 정당한 하나님 말씀의 대언에 대해 곱지 않는 시선과 비판을 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나름대로 비판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 그런 비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대언하는 자의 능력을 더 높기를 바라는 자기 욕심이 투영된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교회의 정화를 위해서라면 '공적인 배려'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이 교회 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기 위치에서의 개인적인 노력들이 요구된다.


박영선 목사는 자주 설교 중에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목회자나 장로 등의 직분자에게 떠넘기며 그들을 비판하지 말라. 그것은 아주 옹졸한 짓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말씀의 사역으로부터 유익을 얻고자 하면 겸손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심에 있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단연코 항상 '경멸할 만한 필연적 존재들'이요 흔히는 '비열하고 무가치한 사람들'이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도 연약한 자들이다. 그런 평범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언자로 삼아주셨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섭리를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께 오직 감사할 수 있을 뿐이요,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을 먼저 비난하기 앞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특권이 있음을 명심하고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안산) 회복의교회
글쓴이 : 김안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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