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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합하려면 신조부터 합하자

baromi 2012. 4. 6. 07:47

합하려면 신조부터 합하자

손성은목사(삼일교회, 부산)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하나라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과의 합의를 도모하는 일이 아니라, 총회와 총회와의 교제와 연합, 혹은 합동을 도모하자면, 단순히 마음이 하나되는 것 이상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고신은 성급한 합동으로 인하여 환원하게 된 쓰라리 아픔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만족스러운 합동이나 연합에 이르기 위해서 차분히 그 과정에서 일어나게 될 일들을 예상하며 합동의 원칙과 원리들을 숙의하되, 특별히 신앙의 원리에 대한 숙의가 선행, 혹은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총회란 “믿음에 관한 논쟁을 판단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공예배와 교회의 치리를 더 잘 정비하는데에 필요한 법칙과 지침을 제정하고, 행정오류에 대한 불평들을 접수하여 권위있게 재판”하고, “법령과 결정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한, 존경과 복종의 자세로 받아야 하는데, 이것들이 말씀과 합치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결정한 권세 연고로도 하나님의 규례 곧 말씀으로 그렇게 정한 규례로 받아야” 하는 그런 회의입니다. 이러한 직무를 가진 총회가 다른 총회와 연합 혹은 합동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발생하게 될 수많은 논쟁과 치리와 불평들을 권위있게 재판해가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에 대해 양측의 합의된 공통의 원리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공통의 원리가 없다면, 감정상 일단 하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조만간에 나눠서게 될 것은 불 보듯이 뻔합니다. 이런 공통의 기준이 바로 신조입니다. 합신과 고신으로 치자면 각각 교리표준의 머리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입니다. 문제는, 양측이 모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교리표준으로 삼고 있지만, 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라는 단어에 담고 있는 내용은 서로가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선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고신총회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조항이 모두 35장이며, 합신총회는 33장입니다. 고신총회는 끝부분의 34장과 35장, 곧 USA장로교회(PCUSA)가 1903년도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개정하면서 첨가한 장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합신총회는 받아들이지 않은 이전의 것을 교리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약간의 차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 차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과 신학적 지평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덮어둔 채로 합동이나 연합을 논의하는 것은, 어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같아질 공산이 큽니다. 합동과 연합을 제안하고 또한 받아들이는 양측의 생각의 저변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Who knows?), 이런 합동 혹은 연합의 논의가 하나님 앞에서의 것이며 통전적이고 진실된 것이 되려면, 이 신조들의 ‘약간의 차이’에 대해서 솔직히 대화의 테이블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 * *

 

이런 논의의 제기를 위해서 양측이 생각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있어서의 “약간의 차이”에 대해서 살펴보되, 먼저, USA장로교회(PCUSA)가 1903년도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개정할 때 크게 논의되었던 사항들을 대해서, 이런 개정에 반대하여 형성된 미국정통장로회(OPC)와 또한 이 미정통장로교회와 자매관계에 있는 아메리카장로교회(PCA)의 입장들을 살펴보고, 또한 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 1903년도에 개정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한국교회, 특별히 통합, 합신, 그리고 고신이 어떻게 이 신앙고백서를 받아들이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국장로교회 내에서 1903년도 있었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개정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첫째는, 맨 앞부분에 ‘선언적 서론’을 두어서,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 둘째, 고백서 내용자체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 그리고, 셋째, 마지막에 34장과 35장을 두어서 기존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강조가 약하다고 여겨지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를 각각 강조하는 것입니다.

 

1. ‘선언적 서론’

 

각주 3)에 있는 “선언적인 서론”을 보면, 가장 강조하는 욧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3장(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대해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작정이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교리와 조화롭게 주장되어야 하고 보편구원론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멸망할 사람들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죄인의 죽음도 원치 아니하신다는 가르침과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하며, 멸망당하는 것은 바로 멸망당하는 사람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둘째, 10장 3항의 유아시절에 죽은 자는 모두 구원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본문 자체를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선언적 서론”에서의 이런 유권해석의 주장에 의해서 개정되기 전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드러내고자 하였던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그 구원이 인간에게 달린 것처럼 해석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USA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개정에 들어가 있는 ‘선언적 서론’ 자체를 미국정통장로교회(OPC)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메리카장로교회(PCA)도 마찬가지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어떤 장로교총회도 이러한 미국장로교회(PCUSA)에서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선언적 서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통합측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런 ‘선언적 서론’에서 표방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재해석적 주장들이 맨 뒤에 첨가되는 35장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본문 수정 혹은 삭제

 

1903년의 USA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본문의 세 곳을 수정하거나 삭제합니다. 첫째, 16장7항의 '중생하지 않은 자의 선행은 죄된 것'이란 표현을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수정합니다. 둘째, 22장3항에서 ‘합법적인 권위에 의하여 부과된 선하고 바른 맹세를 거부하는 것은 죄다’는 문구를 삭제합니다. 셋째, 제25장6항에 나오는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제거하였습니다.

 

먼저, 이런 개정에 대해서 미국정통장로교회(OPC)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받아들이지 않고, 셋째, 곧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삭제합니다. 아메리카장로교회(PC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OPC와 PCA는 일치됩니다. 흥미롭게도, 한국교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이지만,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통합측은 이런 USA장로교회의 개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합신과 고신은 이런 개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모두 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곧,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조항도 모두 원래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정된 것을 부정합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부인하는 점에 있어서도 합신과 고신은 약간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합신과 고신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지만, 셋째, 곧 “로마교황은 적그리스도”라는 표현에 대해서 합신은 처음부터 줄곳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반면, 고신은 1992년 총회에는 “로마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였고, 2011년 총회에서는 그것을 분명하게 직술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어떠하였든 현재로서는 이 점에 있어서 고신과 합신은 일치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고신과 합신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있어서, 가장 큰 차잇점은 바로 34장과 35장의 첨가의 유무에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들의 첨가에 있어서 고신총회는 합동하고자 하는 합신총회보다는 오히려 통합총회와 더욱 교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입니다.

 

3. 첨가

 

1992년고신총회에서는 34장과 35장을 추가하면서 각각 "성령에 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하여"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이번 2011년총회에서는 그 장들을 각각 "성령", "복음"이라고 제목을 수정하였습니다만, 그 내용과 형식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로 각각 네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중 34장은 그 내용에 있어서 기존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성령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단지 앞의 1~33장에 기술되고 있는 여러 곳의 성령에 대한 언급들을 한군데 모아두고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강조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성령론에 대해서 가지는 관심의 정도와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성령론에 대한 관심을 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개정하던 시점1903년 이전)과 관계해서 본다면, 이것은 바로 1820년대의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1792 – 1834)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강조를 깃점으로 해서 시작된 미국교회내에 성령의 능력적인 은사에 대해서 관심이 폭발하던 때와 병행됩니다. 곧 성령의 인격과 구원케하시는 사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령의 능력과 그 은사들에 대한 관심은, 성령에 대한 일탈적인 관심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은사주의, 오순절계열의 운동들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35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신학적 일탈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 35장1항에는 “버림받은 온 인류에게 충분하고 다 적용되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생명과 구원의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음 당하실 때 그 위하여 죽으신 대상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버림받은 온 인류”라고 주장하는 알미니안신학의 주장을 함축합니다.

 

2) 35장2항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한 자기의 사랑과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구절로 요한복음3:16과 요한복음6:39,40절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는 알미니적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요한복음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 하고, 요한복음6:39,40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할 뿐, “만인이 구원받기를 열망”한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 한다는 구절로, 알미니안적 보편구원론 보다는 오히려 칼빈주의적 제한구속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정통적 개혁신학에서는 디모데전서2:4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구절의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은 개별적인 사람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35장2항은 알미니안적 신학의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3) 35장3항은 “회개하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머무는 자는 허물을 더 악화시키고 스스로의 과오 때문에 멸망한다”고 진술합니다. 이런 진술은 죄인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렸다기 보다는 인간편의 어떤 행위에 달린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죄인의 회개가 필요하지만, 이런 회개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은 채로 회개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이런 인상을 갖게 되고, 이런 인상을 갖게 하는 주장이 바로 알미니안신학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선언적 서론’을 한국장로교회의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일, 35장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 ‘선언적 서론’의 함축하는 바가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곧 한국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그 원래의 칼빈주의적 정신이 퇴색되고 알미니안주의화되어지고, 또한 오순절주의화되어져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 *

 

데이비드 웰즈는 그의 명저 『신학실종』에서, 우리들의 현대교회에 “현대성이 낳은 치유중심의 문화가 침투에 들어오면서, ‘신학’은 교리적인 내용을 상실해 버렸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고백하는 그 신조들을 부정한다기 보다는, 역사적 개신교회 신앙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주의(개혁주의!)교회의 삶이 무엇인가를 규정해주던 중심적인 자리에서 신조들이 점점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서 그 힘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조들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신조들을 강조하지 않고 또한 생활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이미 그 신조들의 내용은 점점 우리의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고, 단순히 립서비스만 던지는 대상이 될 뿐입니다.

 

고신총회가 그 교리표준으로 삼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34장과 35장을 첨가하였다는 것이 이런 신학실종의 형편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합신총회와의 연합이나 합동을 논의하면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하나됨을 위하여, 버려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이 무엇이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사전에 인격적이고 통전적인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솔직하게 그것을 협상의 테이블에 가져다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된 것을 지키길 힘쓰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복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17:11하반부)

 

(미주)

 

1) 고신측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31장2항. 합신측의 이 항에 대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교회의 사역 책임은 공의회와 협의회에 속한다. 이 모임에서 하는 일은, 1) 신앙 문제나 양심 문제로 인한 논쟁 해결, 2) 공예배와 교회 정치에 대한 규칙과 지도 원리 결정, 3) 치리회의 실책에 대한 불평과 고소를 접수하여 권위 있게 해결하여 주는 것 등이다. 위의 해결과 작정이 하나님의 말씀과 합치되는 한, 당사자들은 그 작정에 순종해야 된다. 그들이 순종할 이유 또 한 가지는, 교회의 공의회도 성경의 지시에 따라 설립된 권위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항목에 대한 영어원문을 참고로 싣는다: “It belongeth to synods and councils, ministerially, to determine controversies of faith, and cases of conscience, to set down rules and directions for the better ordering of the public worship of God, and government of his Church; to receive complaints in cases of mal-administration, and authoritatively to determine the same: which decrees and determinations, if consonant to the Word of God, are to be received with reverence and submission, not only for their agreement with the Word, but also for the power whereby they are made, as being an ordinance of God, appointed thereunto in his Word."

 

2)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허입과 관련해서, 고신총회는 1969년 19차총회에서 결정하였는데, 이 당시에는 34~35장이 없었는데, 합신총회가 창립되던 1981년경에는 34~35장을 첨가한 개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채택하였다. 이 채택과정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3) 합신총회는 1981년 창립되던 때부터 34~35장이 없는 개정되기 전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교리표준으로 결정하여서 지금까지 그것을 견지하고 있다.

 

4) 이런 개정은 세계적으로 일어난 신학적 논쟁에이 배경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미국, 영국, 스코틀란드, 호주 등의 장로교회논쟁들을 기술하고 있는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할 것: 브래들리 J. 롱필드, 『미국장로교회논쟁』(아가페문화사:1992); Leffers Loescher,『The Broadening Church』(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1954); 김홍만, “19세기말 미국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개정논의에 대한 고찰” KRJ 14(2010), 127~165; Ian Hamilton, 『The Erosion of Calvinist Orthodoxy』(Motor:2010) 등.

 

5) “선언적 서론”의 영문과 그 한글번역은 아래와 같다:

 

Declaratory Statement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1903)

While the ordination vow of ministers, ruling elders, and deacons, as set forth in the Form of Government, requires the reception and adoption of the Confession of Faith only as containing the system of doctrine taught in the Holy Scriptures, nevertheless, seeing that the desire has been formally expressed for a disavowal by the Church of certain inferences drawn from statements in the Confession of Faith, and also for a declaration of certain aspects of revealed truth which appear at the present time to call for more explicit statement, therefore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does authoritatively declare as follows: First, with reference to Chapter 3 of the Confession of Faith: that concerning those who are saved in Christ, the doctrine of God's eternal decree is held in harmony with the doctrine of his love to all mankind, his gift of his Son to be the propitiation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 and his readiness to bestow his saving grace on all who seek it; that concerning those who perish, the doctrine of God's eternal decree is held in harmony with the doctrine that God desires not the death of any sinner, but has provided in Christ a salvation sufficient for all, adapted to all, and freely offered in the gospel to all; that men are fully responsible for their treatment of God's gracious offer; that his decree hinders no man from accepting that offer; and that no man is condemned except on the ground of his sin. Second, with reference to Chapter 10, Section 3, of the Confession of Faith, that it is not to be regarded as teaching that any who die in infancy are lost. We believe that all dying in infancy are included in the election of grace, and are regenerated and saved by Christ through the Spirit, who works when and where and how he pleases.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선언적 서론(1903)

목사와 치리장로와 집사들은 안수 받을 때에 '교회의 정치 형태'가 제시하는 대로 성경의 내용을 조직적으로 진술한 본 [신앙고백서]를 받아들이고 채택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연합장로교회가 다음과 같은 유권적 선언문을 덧붙이는 이유는 교회가 본 [신앙고백서]의 어떤 항목으로부터 추론해 내면서 이 항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생각을 분명히 표현했기 때문이요, 지금에 와서 보다 명백한 진술을 요구하는 계시된 진리의 어떤 측면이 있음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본 [신앙고백서]의 제3장이 문제이다. 본 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론은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교리와 조화를 이루도록 주장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온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요, 하나님께서 찾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기꺼이 베푸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다음에 멸망할 사람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론은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죄인의 죽음도 원치 아니하신다는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도록 주장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를 위해서 충분한 구원을 마련해 주셨고, 이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요, 복음 안에는 모든 인간을 위해서 값없이 구원이 제공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해야 할 충분한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작정은 그 누구도 이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지 않으며, 아무도 자기 자신의 죄로 말미암지 않고는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

 

둘째로, 본 [신앙고백서]의 제10장 제3항을 살펴보자. 본 항목은 유아시절에 죽은 자는 누구나 멸망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유아시절에 죽는 모든 아이들도 은혜의 선택에 포함될 수 있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 중생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6) 이런 수정이나 삭제의 신학적, 교회론적 논의는 생략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관심에 따라서 추적해 볼 필요가 있는 의미있는 논의들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B.B. Warfield, "the Confession of Faith as Revised in 1903", 『Warfield: Selected Shorter Writings』Vol. 2(P& R: 1973)와 Warfield 저작전집10권 중에 있는, 『The Westminster Assembly and Its Work』(Baker Boo House Company:2003)는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개정과 관련해서 교리적 신학적 논의들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7) 1992년판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머리가 없다. 로마의 교황도 어떠한 의미에서든지 교회의 머리가 아니다. 누구든지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자신을 높이는 자와,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모든 자는 적그리스도요, 죄악의 사람이며,멸망의 자식이다”고 한 반면, 2011년판에는, “교회의 머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로마교황은 결코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교회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대적하고 자신을 높이는 적그리스도, 죄의 사람이며 멸망의 자식이다”고 하고 있다. 참고로 이 부분에 대한 영어원문을 올려둔다: "There is no other Head of the Church, but the Lord Jesus Christ: Nor can the Pope of Rome, in any sense be head thereof: but is, that Antichrist, that Man of sin and Son of Perdition, that exalteth himself, in the Church, against Christ, and all that is called God."

 

8) 데이비드 웰즈, 『신학실종』(부흥과개혁사:2006), 152.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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