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찬송가의 역사와 한국찬송가 <1>
이천진 목사 (이화여자대학교병설 영란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교목)
한국 교회는 1892년에 처음으로 「찬미가」를 발간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찬송가를 발간하였고, 이제 ‘21세기 찬송가’의 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찬송가공회는 ‘21세기 찬송가’에 한국 찬송 128곡, 외국 찬송 519곡을 수록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찬송가공회는 한국 찬송이 128곡 수록된다고 밝히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 찬송이 128곡 수록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찬송가’, ‘한국인 찬송가’, ‘한국찬송가’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찬송가를 모두 ‘한국찬송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한국찬송가는 한국인의 영성이 담겨 있는 신앙고백을 한국인의 영성이 담겨 있는 한국적 가락에 따라 부르는 찬송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국찬송가는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사용했던 한국 교회 찬송가의 역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찬미가(1892년), 찬양가(1894년), 찬미가(1895년), 찬숑가(1908년), 신정찬송가(1931년), 합동 찬송가(1949년), 개편 찬송가(1967년), 통일찬송가(1983년)에 나타나 있는 한국찬송가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표1>
번호 |
년도 |
편 자 |
제 목 |
곡수 |
특 징 |
교 단 |
1 |
1892 |
존스, 로드웨일러 |
찬미가 |
27 |
가사만 있는 한국교회 최초의 찬송가 |
감리교 |
2 |
1894 |
언더우드 |
찬양가 |
117 |
한국인 작사 찬송 7곡 (이유선은 9곡 주장) |
장로교 |
3 |
1895 |
존스, 아펜젤러 |
찬미가 |
81 |
한국인 작사 찬송 4곡, 번역 찬송 비판, 한국 찬송 주장 |
감리교 |
4 |
1908 |
조선 예수교서회 |
찬숑가 |
266 |
한국고유곡조 5편(Korean Music) 10,11,12,13,40장, 창가 형태 |
감리교 장로교 |
5 |
1931 |
감리교 장로교 연합공의회 |
신정찬송가 |
314 |
한국인 작사 찬송 7곡, 한국 고유 곡조 5편, 모두 탈락 (조선인 위원들에 의해) |
감리교 장로교 |
6 |
1949 |
한국 기독교 연합회 |
찬송가(합동) |
586 |
한국인 작사 찬송 6곡, 한국화 퇴보 (2.2%→1%) |
감리교 성결교,장로교 |
7 |
1967 |
찬송가 위원회 |
찬송가(개편) |
600 |
한국화 강조, 한국인 작사, 작곡 27곡 (4.5%) |
감리교 성결교,장로교 |
8 |
1983 |
한국찬송가 공회 |
찬송가(통일) |
558 |
한국인 작품 18곡, 개편 찬송가에서 9곡 감소 |
전 교단 |
1. 찬미가(1882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찬송가는 1892년에 감리교의 선교사 존스(George Heber Jones) 목사와 로드웨일러(Louis G. Rothweiler)양이 공편한 수형본의 소책자 「찬미가」였습니다. 이 「찬미가」는 감리교회 전용 찬송가로서 악보가 없이 가사만으로 되어 있는 찬송가였습니다. 이 찬송가에는 번역 찬송 27곡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율과 관용어의 사용이 문제가 되어서, 감리교 선교부 연례회의 명에 따라 1895년 그 개정판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찬미가」는 여전히 번역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895년에 발간된 「찬미가」서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역으로 적절하고도 가납될 만한 찬송가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한 찬송가의 번역을 가지고 줄곧 며칠씩 골치를 앓으며 애쓰고, 겨우 한 줄 정도 해놓고 불완(不完)에 끝인 경험들을 다하고 나서, 우리는 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곧 이 한국 사람들 틈에서 그들 마음 그대로 솟구치는 가락으로 노래할, 그들 자신의 찬송가 작곡 작사자들이 나와야 하겠다는, 그런 다짐이었다.
선교사들은 서양의 찬송가를 한국교회 찬송가로 사용하기 위하여 번역하면서 1895년에 이미 번역 찬송가의 한계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한국인의 마음에서 솟구치는 가락’, 즉, 한국인의 신앙 고백을 한국적 가락에 따라 부르는 ‘한국찬송가’를 제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895년의 「찬미가」에 한국인의 것(무명 한국 여인/ 53장)이 하나였던 것이 1897년에 2판을 내면서 한국인의 것이 2장(배재학당 학생/ 제87장, 이화학당 여학도/ 제89장) 추가되었고, 1900년 「찬미가」에 이화학당 여 학도가 지은 ‘성탄일 찬미가’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중에서 17곡(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16곡에 남궁억이 작사한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포함)외에는 모두 ‘번역 찬송가’입니다. 1895년에 선교사들이 한계를 인정한 ‘번역 찬송가’를 100여 년 동안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2. 찬양가(1894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언더우드(H.g.Underwood)는 1894년에 한국 최초로 가사와 악보가 공존하는 찬송가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찬양가」에는 전 117장 중, 한국인 작사의 찬송이 7장 들어 있었습니다.(4장, 29장, 38장, 61장, 93장, 113장, 115장) 조숙자 교수는 “이 찬송가에는 초기 교인들의 토착신앙의 고백이 들어있다”고 하였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는 감리교와 장로교가 합동으로 찬송가를 편찬하기로 했었는데, 장로교의 언더우드가 감리교와 사전 협의 없이 단독으로 「찬양가」를 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감리교는 「찬양가」의 사용을 거절하고, 1895년에 「찬미가」를 편찬하였습니다. 그런데 감리교가 「찬양가」의 사용을 거절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칭호 문제였습니다. 한국의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은 ‘하나님’을 마땅한 칭호로 주장하고 있었는데, 언더우드(H.g.Underwood)는 「찬양가」에서 ‘하나님’이란 이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개신교나 한국의 로마 가톨릭 및 성공회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칭호가 한국 재래 종교의 것이라 해서 ‘여호와’로 부르는데 다들 동의하고 있었고, 언더우드 역시 그 이론에 찬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장감 선교사들은 ‘하나님’을 마땅한 칭호로 주장하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자신의 소견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중략) ‘하나님’이란 이름은 전혀 사용하지를 아니하였다.
「찬양가」는 ‘한국 재래 종교의 것’이라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거부한 찬송가였습니다. 그리고 찬송 번역 편집에 관여하였던 밀러(F. S. Miller, 1866-1937)는 “한국인들은 운율이나 약강조의 상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 하나 그 때마다 일러주면서 일을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이 컸다”고 번역 찬송가의 한계를 인정하였습니다.
가장 컸던 난관은 한국어가 약 강조 운율에는 맞지 않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음절에 악센트가 있는 단어가 거의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음절의 단어를 거의 모든 행의 첫머리에 놓아두게 되었다. 단조로울 것이야 두말할 것 없다. 차라리 모든 약강조의 찬송을 빼어 버렸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밀러(F. S. Miller)가 이야기하는 ‘약강조의 찬송’이라는 것은 ‘못 갖춘마디의 음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에는 정관사가 있기 때문에 못 갖춘마디를 사용하여 두 번 째 음절에 오는 명사에 악센트를 줍니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정관사가 없기 때문에 한국 전통 음악에는 못 갖춘마디의 음악이 없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들은 못 갖춘마디의 정관사 부분에 한 음절의 단어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의 405장(나같은 죄인 살리신)을 보면, 다음과 같이 부르고 있습니다.
나 / 같은 / 죄인 / 살리 / 신 주 / 은혜 / 놀라 / 와 /
잃 / 었던 / 생명 / 찾았 / 고 광 / 명을 / 얻었 / 네 /
위에서 보면, ‘신 주’, ‘었던’, ‘고 광’, ‘명을’ 같은 한국말에 없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못 갖춘마디의 음악을 번역하면서 나타난 것입니다. 밀러(F. S. Miller)는 이것을 지적하며 못 갖춘마디의 찬송을 모두 제외할 것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우리말에 자연스러운 노래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나같은 / 죄인 / 살리신 / 주 은혜 / 놀라와 /
잃었던 / 생명 / 찾았고 / 광명을 / 얻었네 /
그래서 제임스 게일(J. S. Gale)은 1895년 찬양가와 찬미가의 곡과 가사들을 보고, 서양 음악 조 글에 억지로 맞추어 놓은 조작된 가사의 인상이 가실 길 없고, 따라서 전인적 혼의 감회가 결여된 공백 때문에 찬송 본래의 의미가 시든다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1897년에 가서 그는 한국교회의 토착의 고백이 기도와 찬양에 나타나야 하며, 거기 이 겨레 본래의 소재성과 긍지가 감싸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897년에 제임스 게일(J. S. Gale)은 이미 한국인의 신앙고백과 영성을 한국적 가락에 따라 부르는 ‘한국찬송가’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3. 찬숑가 (1908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1908년에 한국 교회 최초로 감리교와 장로교가 연합으로 예수교서회를 통하여 266장의 「찬숑가」를 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찬숑가」는 우리 나라 고유의 가락으로 노래 부를 수 있다고 단서를 단 찬송을 5편(제10장-14장) 실었습니다. “놉흔일흠 찬숑고”, “하님이텬디고”, “가가길과치”, “젼능신아지의크신공뎍드러보쇼”, “여호와의 보좌압혜”가 그것들입니다. 권태희는 1935년 2월 27일자 ‘기독신보’에 실린 “찬송가 재개편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 5곡이 비록 단순한 곡이지만, 한국인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곡이라고 격찬하였습니다. 1908년, 한국 교회에는 한국적 가락에 따라 부르는 ‘한국찬송가’가 5곡이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 「찬숑가」의 3분의 1은 19세기 미국 보수계의 부흥운동 찬송가에서 전용(轉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게일은 이렇게 비판하였습니다.
이 「찬숑가」의 찬송들은 손 댈 수 없으리 만큼 절망적입니다. 이것들은 그저 찬송가 원본에 있는 사상들을 될수록 다 압축해 넣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그렇게도 많은 한국말들을 서양가락의 철형(iron-clad)에다가 잔인하게 틀어박아 놓았습니다. 이런 방법은 찬송가 역사상 일찍이 들어 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고서도 좋은 찬송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한국말과 서양가락의 부조화는 그로브(P. L. Grove)에게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적인 측면에서 아주 철저한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찬송을 들으면 ‘비참한 생각까지’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날, 한국인의 노래가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는, 그런 찬송을 하나 들었다고 합니다. 그 찬송의 곡조는 “Auld Lang Syne”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한국인의 음성을 분석하고, 한국인에게 맞는 가락은 “반음정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한국 전통 음악의 음계가 5음계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Auld Lang Syne”은 영국 민요이지만, 음계가 5음계였던 것입니다.
1915년에 이미 그로브(P. L. Grove)도 한국 교회 찬송가는 한국 전통 음악의 음계를 사용하는 ‘한국찬송가’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한국찬송가를 찾아 떠나는 네 번째 여행입니다. 여행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였습니다. 콜럼부스는 인도로 여행하다가 대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콜럼부스는 그 대륙을 인도로 생각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디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대륙이 오늘날의 아메리카 대륙입니다. 콜럼부스의 여행은 위험이 뒤따르는 여행이었지만 마야문명, 잉카문명, 아즈텍 문명을 아메리카문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은 하느님의 여행입니다. 하느님은 하늘의 세계에서 땅의 세계로 여행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Incarnation, 성육신 사건입니다. 하느님의 여행은 땅의 세계를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시켜 나가는 구원의 역사를 창조하였습니다. 예수의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 이 멋진 여행에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위험이 있었지만 부활사건을 통하여 ‘기독교’라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였습니다. 바울의 아시아와 유럽으로의 선교여행, 이 여행에도 박해와 위험이 뒤따랐지만, 바울의 여행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국찬송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 위험이 뒤따르는 힘든 여행이지만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번 네 번째 여행에서는 세 번째 여행에 이어서 한국교회 찬송가의 역사 속에서 한국찬송가를 발견해 보려고 합니다. 세 번째 여행에서는 찬미가(1892년)와 찬양가(1894년) 그리고 찬숑가(1908년)에서 한국찬송가를 찾아보았고, 이번 네 번째 여행에서는 신정 찬송가(1931년)와 합동 찬송가(1949년), 개편 찬송가(1967년)에서 한국찬송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표1> 한국교회 찬송가의 역사
번호 |
년도 |
편 자 |
제 목 |
곡수 |
특 징 |
교 단 |
1 |
1892 |
존스, 로드웨일러 |
찬미가 |
27 |
가사만 있는 한국교회 최초의 찬송가 |
감리교 |
2 |
1894 |
언더우드 |
찬양가 |
117 |
한국인 작사 찬송 7곡 (이유선은 9곡 주장) |
장로교 |
3 |
1895 |
존스, 아펜젤러 |
찬미가 |
81 |
한국인 작사 찬송 4곡, 번역 찬송 비판, 한국 찬송 주장 |
감리교 |
4 |
1908 |
조선 예수교서회 |
찬숑가 |
266 |
한국고유곡조 5편(Korean Music) 10,11,12,13,40장, 창가 형태 |
감리교 장로교 |
5 |
1931 |
감리교 장로교 연합공의회 |
신정찬송가 |
314 |
한국인 작사 찬송 7곡, 한국 고유 곡조 5편, 모두 탈락 (조선인 위원들에 의해) |
감리교 장로교 |
6 |
1949 |
한국 기독교 연합회 |
찬송가(합동) |
586 |
한국인 작사 찬송 6곡, 한국화 퇴보 (2.2%→1%) |
감리교 성결교,장로교 |
7 |
1967 |
찬송가 위원회 |
찬송가(개편) |
600 |
한국화 강조, 한국인 작사, 작곡 27곡 (4.5%) |
감리교 성결교,장로교 |
8 |
1983 |
한국찬송가 공회 |
찬송가(통일) |
558 |
한국인 작품 18곡, 개편 찬송가에서 9곡 감소 |
전 교단 |
4. 신정 찬송가(1931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1931년 6월 감리교와 장로교의 연합으로 「신정 찬송가」가 간행되었습니다. 선교사 연합 공의회 편찬, 조선야소교서회 발행이었습니다. 장수는 314장이었는데, 반 이상이 「찬숑가」에서 편입되었고, 70여장은 「청년찬송가」에서 선택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인 창작 찬송(가사) 6편이 실려 있었습니다.(89장, 126장, 195장, 230장, 158장 등)
그런데 편찬 과정에서 한국의 옛 곡을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이 때, 한국적 가락의 찬송에 대한 한국인 위원들의 반대로 한국적 가락의 찬송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외국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한국적 가락을 제거했다는 사실은 사대주의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당시 평양신학교 음악 강사였던 권태희는 구 찬송가 중 10장에서 14장까지의 우리 곡조 찬송을 제거한 것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습니다.
그것이 비록 단순한 곡으로 되었을지라도 조선인의 표현인 곡만은 사실입니다. 나의 이상하는 찬송가는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 울 곡, 우리들의 정조(情操)에 맞는 시가(詩歌), 즉 우리의 신앙시인, 신앙악가를 통하여서 나온 성가입니다. 노래는 민족성을 초월하는 동시에 민족성에 따라 특성이 있습니다. 만일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노래라면 그것은 노래가 아닙니다.
권태희도 이미 1935년에 한국인의 신앙고백을 한국적 가락에 따라 부르는 ‘한국찬송가’, 그리고 한국인의 영성을 불러일으키는(“마음을 움직이는”) ‘한국찬송가’를 주장한 것입니다.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음악교수였던 박경호도 가사 문제에 있어서는 조선의 문인과 시인에게 맡겨 조선 사람이 부르기에 적당한 노래를 만들고, 곡조 문제에 있어서 곡조 선택은 조선 사람의 음악적 경향을 잘 이해하는 음악 전문가에게 맡겨 달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김교신도 「신정찬송가」를 비판하였습니다. "이것이 과연 개정인가 개오인가. 신앙없는 음악가의 찬송가 편찬과, 조선 말 모르는 박사의 성서 개역과 이런 것이 모두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니 반도의 영계도 탄식하지 않는가."
「신정 찬송가」는 선교사들 주도의 것이요, 따라서 민족 주체성을 무시하였다는 비판이었습니다.
5. 합동 찬송가(1949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1949년 한국 교회 최초로 감리교, 성결교, 장로교의 공동 찬송가인 「찬송가」(합동)가 간행되었습니다. 이 찬송가는 총 586장으로 이루어진 찬송가였습니다. 이 찬송가의 편찬 원칙 중 하나는 각 교단의 주체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찬미가 서문뿐만 아니라, 밀러(F. S. Miller), 제임스 게일(J. S. Gale), 권태희, 그로브(P. L. Grove), 박경호, 김교신 등도 민족의 주체성이 담겨 있는 ‘한국찬송가’를 주장하였지만, 이 찬송가는 민족의 주체성은 외면하고 교단의 주체성만 강조하였습니다. 한국적 가락을 제거한 「신정 찬송가」의 사대주의적 정신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신우는 이 찬송가를 이렇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 찬송가를 합본한 합동 찬송가는 약 55%의 복음가를 포함한 찬송가가 되었다. 그 외에도 별다른 연구 없이 합본한 관계로 같은 곡조에 유사한 가사의 찬송이 중복되었고, 많은 수의 복음가, 외국 국가와 민요, 세속 곡조 등이 비판 없이 편집 발행되어, 전에 출판된 장로교와 감리교가 사용한 찬송가에 비교하면 아주 수준 낮은 찬송가가 되었다.
감리교의 「신정 찬송가」, 성결교의 「부흥성가」, 장로교의 「신편 찬송가」를 합본하면서, 이 찬송가에 「부흥성가」에 수록되어 있었던 미국의 복음가와 외국민요 등이 유입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찬송가에는 외국의 국가와 외국의 민요 곡조가 많이 수록되었습니다. 외국 국가의 곡조를 사용한 것은 프랑스 국가(379장), 영국 국가(468장), 독일 국가(465장)이고 외국 민요 곡조로는 영국 민요 “Annie Laurie”(75장), “Auld Lang Syne”(262장), 미국 민요 "Old Black Joe”(200장), “Swanee River”(206장), “Battle Hymn”(376장), 독일 민요 “O Tannenbaum”(241장), “Die Lorelei”(372장), 독일의 투린지아 지방 민요 “Lynde”(266장) 스페인 민요 “추억”(308장) 등입니다.
이렇게 한국의 국가와 민요는 부르지 않으면서, 외국의 국가와 민요를 찬송가로 부르고 있는 것은 사대주의인 것입니다. 이러한 찬송가의 사대주의는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6. 개편 찬송가(1967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1967년 감리교, 기독교 장로교, 예장, 성결교가 연합으로 「찬송가」(개편)를 간행하였습니다. 개편을 할 때에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었습니다.
1. 중첩된 것은 단일화한다.
2. 국가, 민요 등의 곡조와 가사 등은 재검토한다.
3. 종류별로 편찬하는 데 유의한다.
4. 예배용 찬송을 보강한다.
5. 특정 예배 때에 사용할 찬송을 보강한다.
6. 우리 찬송(한국 가사와 곡조)을 보강한다.
7. 교독문을 보충한다.
8. 가사를 모두 검토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찬송가를 개편하면서 세운 원칙 중 8번, 즉 우리 찬송(한국 가사와 곡조)을 보강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찬송가에는 한국인 작사의 찬송이 25장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표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인 작곡의 찬송은 27곡입니다. 개정 원칙 8번에 따라 우리 찬송(한국 가사와 곡조)을 보강한 것입니다.
<표2> 개편 찬송가에 있는 한국인 찬송
번호 |
장 |
가사 첫 줄 |
작사자 |
작곡자 |
통일찬송가 곡 | |||||
1 |
27 |
하늘에 가득찬 |
김정준 |
곽상수 |
||||||
2 |
55 |
고요히 머리숙여 |
서정운 |
곽상수 |
삭제 | |||||
3 |
67 |
주는 나를 기르시는 |
최봉춘 |
장수철 |
||||||
4 |
86 |
고요하고 거룩한 |
임성길 |
장수철 |
삭제 | |||||
5 |
172 |
어둠의 권세에서 |
마경일 |
박태준 |
삭제 | |||||
6 |
212 |
어둔 밤 마음에 잠겨 |
김재준 |
이동훈 |
||||||
7 |
213 |
인류는 하나되게 |
홍현설 |
안신영 |
삭제 | |||||
8 |
214 |
눈물밭에 떨어진 |
고황경 |
이동훈 |
삭제 | |||||
9 |
237 |
어서 돌아 오오 |
전영택 |
박재훈 |
||||||
10 |
298 |
성부여 의지없어서 |
Charles Wesley |
나운영 |
삭제 | |||||
11 |
321 |
캄캄한 밤 사나운 |
김활란 |
이동훈 |
||||||
12 |
337 |
캄캄한 밤중에 |
오 빈 |
나운영 |
삭제 | |||||
13 |
379 |
이전에 주님을 |
정용철 |
이유선 |
||||||
14 |
387 |
부름받아 나선 이 몸 |
이호운 |
이유선 |
||||||
15 |
401 |
눈을 들어 어이할꼬 |
석진영 |
박재훈 |
번호 |
장 |
가사 첫 줄 |
작사자 |
작곡자 |
통일찬송가 곡 |
11 |
321 |
캄캄한 밤 사나운 |
김활란 |
이동훈 |
|
12 |
337 |
캄캄한 밤중에 |
오 빈 |
나운영 |
삭제 |
13 |
379 |
이전에 주님을 |
정용철 |
이유선 |
|
14 |
387 |
부름받아 나선 이 몸 |
이호운 |
이유선 |
|
15 |
401 |
눈을 들어 어이할꼬 |
석진영 |
박재훈 |
|
16 |
402 |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
남궁억 |
이동훈 |
삭제 |
17 |
461 |
눈물의 골짜기에서 |
안신영 |
김두완 |
삭제 |
18 |
463 |
네 맘과 정성을 |
정용철 |
곽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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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464 |
지금까지 지내온 것 |
sasao |
박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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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473 |
주 예수 흘린 피 |
박태준 |
박태준 |
삭제 |
21 |
482 |
나 이제 주님의 |
이호운 |
박태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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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488 |
하늘가는 밝은 길이 |
소안련 |
안신영 |
삭제 |
23 |
533 |
어머님의 사랑보다 |
주요한 |
구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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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538 |
산마다 불이 탄다 |
임옥인 |
박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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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545 |
사철에 봄바람 |
전영택 |
구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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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546 |
미더워라 주의 가정 |
문익환 |
곽상수 |
삭제 |
27 |
565 |
가슴마다 파도친다 |
반병섭 |
이동훈 |
이 개편 찬송가는 이렇게 민족적 자긍심을 살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예배 중심의 찬송이 대거 편입된 점, 피안적 종말론 신앙의 찬송이 감소되고 현세적인 선교의 사명을 노래하는 찬송이 기축을 이룬 점, 어린이와 젊은이 그리고 가정의 화목을 노래하는 등 역사적 신앙의 신학적 전환을 이루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찬송가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강신우는 “객관적인 면에서 「개편 찬송가」는 한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찬송가”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찬송가는 토착화를 지향한 찬송가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인 작곡 찬송이 27곡, 한국인 작사 찬송이 25곡이 수록되어 민족적 주체의식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국 전통 음악의 선법에 따라 작곡한 곡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98장(성부여 의지 없어서), 379장(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482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은 전인평의 한국 전통 음악 선법에 의하면, 제3선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538장(산마다 불이 탄다)은 제2선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찬송가를 회복하는 이러한 노력은 1983년에 간행되는 통일 찬송가에서 다시 좌절을 겪게 됩니다. 다음 다섯 번째 여행에서는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통일 찬송가에서 한국찬송가를 찾아보겠습니다.
한국교회 찬송가의 역사와 한국찬송가 <2> 한국찬송가를 찾아 떠나는 다섯 번째 여행입니다. 미국의 작가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는 1952년에 「노인과 바다」라는 중편 소설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걸작 중의 하나이며,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샌디에고’라는 노인은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를 합니다. 그는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처음 40일에는 한 소년이 같이 있었지만, 40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은 부모의 명령에 따라 다른 배로 가버렸습니다. 어느 날, 노인은 홀로 바다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고기 한 마리를 낚았습니다. 고기가 워낙 커서 노인의 배는 고기한테 끌려 다녔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와 싸워 두 번째 밤이 밝을 무렵 겨우 그 고기를 끌어 올려 배에 붙들어 매었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귀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어 떼의 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노 끝에 칼을 잡아매고 상어와 싸웠습니다. 항구에 돌아왔을 때, 고기는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판잣집 안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한참 뒤,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소년과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또다시 얼굴을 침대에 대고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소년이 곁에 앉아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잠든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7. 통일 찬송가(1983년)에 나타난 한국찬송가
1) 통일 찬송가의 구조
2) 통일 찬송가에 있는 외국 세속 노래
이와 같이 종교개혁 당시 세속곡이 찬송 곡조로 사용되었던 경우가 흔히 있으나 이것은 그 당시의 특수한 사정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합동 찬송가에 외국 국가나 외국 민요의 곡조가 찬송 곡조로 사용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contrafacta는 찬송시의 주제적 아이디어를 세속의 노래에서 빌려 왔을 뿐이고, 음악은 찬송가로 회중이 부르기에 알맞게 전문 음악가에 의해 새롭게 편곡되었다.
a) 통일 찬송가에 수록된 외국 국가
b) 통일 찬송가에 있는 외국의 세속가요
c) 통일 찬송가에 있는 외국민요
d) 통일 찬송가에 있는 외국 오페라 곡
e) 통일 찬송가에 있는 수록된 외국 교향곡
f) 통일 찬송가에 있는 미국 소방대원 행진곡
g) 통일 찬송가에 있는 외국 피아노 곡
h) 통일 찬송가에 있는 미국 학교 노래책의 곡
3) 통일 찬송가에 있는 타종교 찬송과 일본인 찬송
a) 타종교 찬송
b) 일본인 찬송
4) 통일 찬송가에 대한 비판
한국찬송가를 찾아 떠나는 여섯 번째 여행입니다. 이번 여행은 한국교회 찬송가 역사에서 한국찬송가를 찾는 마지막 여행입니다. 이번 여섯 번째 여행에서는 한국교회 찬송가 역사 여행을 정리하면서, 아직 정식으로 출판한 찬송가는 아니지만, 한국 찬송가 공회에서 시제품으로 출판한 21세기 찬송가(2001년)에서 한국찬송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8. 21세기 찬송가(2001년)와 한국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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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ast12410&logNo=152389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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