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자료

[스크랩] 입다의 서원 - 사사기 소고에서 (김홍전 목사님)

baromi 2010. 8. 25. 07:29


전부 다 쓸 수 없어 일부만 옮겼습니다.


사사기 소고(小考) 2권 : P125-130 (1992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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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의 서원


이제 입다는 여호와께 무엇을 간구하고 무엇을 서약하였습니까?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11:30-31).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 크게 이기고 자기 집에 돌아올 때에 입다의 집 문에서 나와서 입다를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인 딸이었습니다(삿11:34). 이로 인한 입다의 탄식(35절), 또 그 딸이 벗들과 함께 산에 올라 두 달 동안 애곡한 것(37-38), 그리고 그녀는 일생 남자를 알지 못하고 동정녀로 죽었다는 사사기 기록은 이 장면을 읽는 많은 사람에게 입다가 그 딸을 죽여서 제물로 제단에 바쳤으리라는 상상(想像)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입다가 이 서약을 경솔히 행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입다의 간절한 기도는 길르앗 전체와 요단 서편에 사는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평안을 위하여 이 싸움을 꼭 승리하여야 하겠다는 것이요, 주께서 자기에게 승전을 주시면 그 다음에 자기는 여호와께 어떻게 하여 드리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서원을 입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듣는 데서 행하였는데 그는 미리 신중히 생각하여 두었을 것입니다. 그의 기원-곧 서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지금 전장으로 향해 가려는 길르앗군의 사기에 크게 관계가 있음을 입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잘 알고 있었을 입다


입다는 또한 모세의 율법서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쟁 직전에 입다가 길르앗인의 머리와 장관이 되자 곧 그는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도전해온 암몬 자손의 왕의 무리한 구실을 일일이 논박할 때 이스라엘의 출애굽사를 모세 율법서가 가르친 대로 인용하였습니다. 비롯 길르앗 장로들, 혹은 거기에 있던 레위인들의 조력을 입었을 듯하지만 입다의 논리는 훌륭하였고 그의 모세 율법서에 대한 지식은 우수했음을 충분히 추리케 합니다.


그러한 입다가 출전 직전에 이 서원을 드릴 때 “여호와께서 이 전쟁에서 저를 승전케 하시면 저는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사람을 잡아 제사를 올리겠습니다”라고 하였겠습니까?


지금 적은 암몬 자손들이나 암몬의 남방 인접국인 모압이 행하는 괴악한 이교 제사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을 잡아서 제사지내는 일”은 율법서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고 엄금한 범죄라는 것(레18:21, 신12:20,31, 신18:9-14)과, 자기 자식을 죽여 사신(邪神)에게 제사하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법(레20:1-5)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로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암몬 자손들이나 모압 사람들의 이 악풍-몰렉에게 자기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제사 드리는 짓-그 괴악한 범죄를 도무지 싫어하였고 이 악풍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배척을 받았습니다.


입다가 드린 서원의 말씀을 가리켜 입다가 인신(人身)으로 희생제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한 것처럼 곡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원의 말씀 가운데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라고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로써 입다를 폄론(貶論)한 것으로 생각합나다.


어떤 학자들의 견해


어떤 학자들은 이 서원의 말씀을 아래와 같이 해석합니다.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여기까지의 말은 입다의 집 문에서 나와서 입다를 영접하는 자는 아마도 한 인간이리라고 입다가 생각한 듯하고, 그것이 사람이면 입다 자기로서는 그 인간을 여호와께 돌리겠습니다. 하고 서약을 하였고, 그의 서원의 그 다음  말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라는 말씀은 입다의 생각에, 자기 집 문에서 그때에 뛰어나와 자기를 만나는 자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집의 양이라면 자기로서는 그 양을 이 번제물로 부적격자가 아닌 이상에는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서원을 드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주장이 그럴 듯하나 소나 양을 번제로 드리는 일이 이런 때에 입다가 서약의 내용으로 할 만한 현저하고 특이한 일이냐 하면 그런 것이 되지 못합니다. 소나 양이, 또 주인의 승전이 기뻐서 먼저 뛰어나와 이 개선 장군인 주인을 환영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입다의 서원에 대한 타당한 해석


그렇다면 이 서원을 어떻게 생각함이 가하겠습니까? 입다가 그 서원사(말씀)에 자기의 개선 귀가시에 자기 집 문으로부터 나와서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지명하지 않고 그 사람을 결정할 조건(조목)만을 말하고-이 경우 대개 자기 집안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그가 누구일는지 정하지 않고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받으실 사람을 자기 집 문으로부터 내어 보내어 주시기를 바라고 하나님께 의탁하고 있음을 여기서 봅니다.


그리고 자기의 승전 귀가를 뛰어나와 영접할 자는 인간이지 소나 양 같은 짐승은 아니게습니다. 입다도 “여화와께 돌릴 그 사람”의 선정을 하나님께 맡길 때도 짐승인 소나 양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번제로 드리겠다는 말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번제물이 짐승이라 하더라도 아무 종류의 짐승을 모두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유와 종류라야 하되 거기에 요구하는 자격이 있습니다. 또 제사 드림에도 자기가 할 일과 제사장이 할 일이 있고, 제사 드리는 장소, 제단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레1:1-17). 이는 제물 준비, 제사의 행위 등이 모두 깊은 뜻을 나타내는 까닭에 그렇게 절차가 필요하였습니다.


입다가 만약 소나 양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겠으면 제사의 법절차에 따라 드리겠지요. 결코 인간을 제물로 하여 드리는 제사도 제단도 없습니다. 그것을 입다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자기 서원의 조항에 부합하는 인물을 여호와께 돌리고(여호와의 것으로 하고) 입다가 그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고 했으면 그것은 “여호와께 돌려드리는” 입다의 행동과 마음에서 입다가 평소에 번제 드릴 때의 가지는 정신과 성심과 경배를 허가해 주시고 받아 주시옵기를 비는 것이었겠습니다.


입다가 승전하고 귀가했을 때 입다의 집 문으로부터 나와서 입다를 영접한 사람은 입다의 딸이었던 것은 여러분이 이미 아시는 사실입니다.


입다는 자기 딸을 서원대로-딸의 자의(自意)의 동의를 얻어서-“여호와께 돌렸”습니다. 이것은 입다의 딸이 부친의 서원을 하나님 앞에 허언(虛言)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자진하여 여호와를 위한 구별된 생애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부친의 서원에 동의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였습니다.


딸을 드릴 때의 입다의 심상


그와 동시에 입다는 자기 딸을, 마치 소나 양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릴 때의 심상(心想)으로써 주께 번제로 드리는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께 고하였습니다. 번제 드릴 때에 헌자(獻者)가 제물인 소의 머리에 안수(按手)합니다. 그것으로 그 제물이 헌자인 자기를 대신함을 표시합니다.


번제에서 제물이 전부 불태워져 여호와께 드림같이 번제 드린 자는 전적 헌신, 남김 없는 현상을 고백하고 실행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이렇게 입다가 그 딸이나 그 심상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하신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입다가 여호와께 서약한 대로 ‘여호와의 것’다운 온전히 구별된 생활로-아마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세속 일에 상관없이 일생 동정녀로 주께 완전 헌상한 사람으로 살아갔겠지요.


전설에는 입다는 그 딸을 위하여 외로운 곳에 집을 하나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딸은 그 집에서 일생 홀로 살았다고 합니다. 입다는 여호와께서 부르신 일, 곧 이스라엘의 사사의 직무를 충실히-주께 드린 서약을 이행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6년 후에 별세하였습니다(삿12:7)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구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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