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스크랩] Re:Re:회심-칭의와 성령세례에 대한 추가 글...

baromi 2010. 3. 12. 10:23

 

holyjoy

오해는 바로 카이로스님이 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회개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한 것 잘 말씀하셨습니다. 연속적 중생관에서 그렇게 주장합니다. 동시에 오는 것입니다. 참믿음이 있어야 참회개가 되고 참회개를 하는 것은 참믿음이 있을 대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님께서는 회심 이후에 성령세례가 오는 것으로 보는데 그것은 개혁신학이 아닙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개혁신학에서는 회심의 순간에 곧 성령세례가 동시적인 것입니다. 칭의와 새출생의 순간, 입양의 순간, 그 모든 순간에 바로 하늘의 주님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그 사람을 세례주시는 것입니다. 물로 주는 세례가 아니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 18세기 이후의 낭만주의철학과 그 사조로 인해서 변질되기 시작하였고, 그 변질된 개념들을 은사주의계통의 사람들이 취하였습니다. 회심의 개념이 타락하기 시작했지요. 기독교의 타락이 시작된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07.08.14 18:59

 

 

Horace

나그네1님이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무엇보다도 연속적 중생관은, '새출생'과 '성령세례'를 일치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자가 '수태'한 것처럼 보여도 '새출생'에 이르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은 자가 '수태'하여서 '새출생'에 이르게 되는 것에는 성령의'특별한' 사역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단지, 성령의 특별하신 사역으로 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성령의 내주'와는 다른 것이라고 앞에서 제가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의 성령세례에 대한 관점은 양무리마을의 연속적 중생관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님들께서 '연속적 중생관'이란 용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로는 이런 '연속적 중생관'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신들의 중생관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줄 압니다. 만일 이런 용어나 개념들에 그 분들이 익숙하지 않다면, 그 분들이 이런 중생관에 익숙해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린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베푸시는 세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세례로서, 지금도 얼마든지 그 분의 택하신 자녀로서 구원받기로 예정된 이들에게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베풀고 계시는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성령세례와 성령의 내주의 시기가 모두 새출생과 동일한 시기이니, 성령세례 받으면 곧 성령께서 내주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것이군요? 성령세례 받고 나서 한참 후에 성령이 내주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와 동시에 성령의 내주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군요? 수태한 것처럼 보여도 새출생에 이르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하고, 수태하여서 새출생에 이르게 되는 것에는 성령의 특별하신 사역이 있는 것으로 보구요. 호 목사님의 글을 읽으니까 명쾌해지네요. 연속적 중생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07.08.20 22:34

 

 

 

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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