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합태산님은 아마도 총공회 측 분인가 봅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진합태산님께서 쓰신 덧글들을 볼때에 기본적으로 정리 되어야 할 것이 2 가지가 보였습니다.
첫째, 중생의 용어 정리와 이해
둘째, 언약과 그 적용의 범위에 대해
먼저 중생의 용어 정리를 하겠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교리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과거 초대교회서부터 청교도시대까지 이어져 왔던 <넓은 의미의 중생 or 연속적 중생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웨민신대원 조직신학 교수인 존 머레이로 부터 처음 시작된 <순간적 중생관>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생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냐... <과정>으로 이루어지냐의 문제이지 결론은 "영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한우리 등급변경▼
조회 206 07.10.06 08:37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1NyO/29
|
일단 "영이 살아난다"는 중생에 대해서 진합태산님은 기본구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진합태산님이 적용하신 기존신학용어인 <중생>은 순간적 중생관에 기본구원이라 적용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속적 중생관의 개념을 아셔야겠지요..
밑의 글은 과정 연속적 중생관과 순간적 중생관의 개념을 서로 비교하느라 쓴 글이었습니다.
글과 댓글들을 읽고 진합태산님이 알고 계신 기본구원과 어떻게 틀린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글은 영혼의 의사에 있는 글로 제가 연속적 중생관과 순간적 중생관의 개념을 잡으면서 쓴 글입니다.
아래의 글로 두 중생관의 차이가 이해가 안되신다면... 일단 기존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서정(효과적 부르심~영화)의 요소들에 대해
먼저 사전 지식을 습득하셔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들의 요소들을 미리 알고 있어야 밑의 글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미 등급변경▼
조회 62 07.10.06 08:37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1NyO/18
전통적으로 구원에 대해서 언급할 때..
소명, 중생, 칭의, 양자, 성화, 영황 등으로 언급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중생을 거듭남이라는 말로 말하기 때문에 거듭남 전에는 성화가 올 수 없으며 성화 전에는 영화가 올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특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하면서 세 가지 과정으로 간단하게 언급하기도 합니다. 즉 -부르심(소명), 칭의, 그리고 영화....
구원은 시간적으로 구분을 하나 성질적으로 구분도 합니다. 시간적으로 구분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즉 성경은 -구원을 이미 얻은 것으로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이루어야 할 것으로 -장차 받게 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순간적 중생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받은 구원의 단계들: 선택, 중생, 칭의, 양자됨 등이며.. -현재 이루어가고 있는 구원: 성화이고.. -미래에 받게될 구속: 몸의 부활로 성취될 영화라고 구분을 지을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성질적 구분은 -하나님이 우리 밖에서 이루신 것(선택과 대속 성취) -우리에게 이루신 것(칭의와 수양) -우리 안에서 이루신 것과 (중생)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것으로 구분합니다.(성화)
신자의 의지와 행위를 통하지 않고 이루시는 구원: 선택, 대속, 칭의, 중생, 양자, 부활 부분적으로 신자의 지정의와 몸의 활동을 통해 이루시는 구원: 성화
지금 카이로스님은 의의 구원의 순서적 이론으로만 구원을 논하기에 연속적 중생관이 마치 애매해 보이는 것입니다. 구원의 성질적 구분과 순서와 같이 연동해서 보셔야지만 연속적 중생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회 162 07.11.04 23:09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1NyO/84
토탈님이 누구신지요? 호기심이 갑니다. 아울러 초기중생(수태, 좁은 의미의 중생)을 거듭남으로 불러서는 안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토탈님이 언급하신 후크마나 벌콥도 좁은 의미의 중생을 거듭남이라고 불렀거든요..나머지는 다 동의합니다. 요일5:1절을 함께 검토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주일 지나고 뵙겠습니다. 복된 주일 되시기를....
holyjoy
한우리님께서 사용하시는 '넓다' '좁다'는 말의 정의와 토탈님이 사용하시는 그 말들의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것 같군요. 그 뉘앙스의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할 듯 싶습니다. 한우리님께서는 '좁다'는 의미를 '더욱 참되다'는 의미로, 토탈님은 '좁다'는 말을 같이 쓰면서도 '더욱 참된 중생 이전의 무엇'으로 규정하면서 쓰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1요5:1의 '난 것'을 설명할 때에도 그것이 '좁은 중생(거듭남)'인가 아니면 '넓은 중생(거듭남)'인가, 논의할 때, 이 '넓다', '좁다'라는 말의 개념규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거듭남'은 한글이고, 꼭같은 그 한글을 한자어로 바꾼 것이 '중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단어에는 특별한 의미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연속적 중생관과 순간적 중생관의 비교
위의 그림에서
(1) 검정색은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2) 연두색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3) 파란색은 성령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애쓰게 함으로 사람이 애쓰는 것을 표시.
(4) 빨간색은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첫째는 아시다 시피 순간적 중생관입니다.
두번째 그림은 연속적 중생관입니다. 위의 그림은 순간적 중생관의 일회적 성령의 사역과
연속적 중생관의 이회적 성령의 사역을 구분하기 위해서만 그린 것입니다.
즉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위에서 보듯 순간적 중생관에서는 성령의 단독적 역사가 단 1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일회적입니다.
그 1회가 순간적으로 일어날때 효과있는 부르심과 중생과 회심(회개와 믿음)과 칭의 이렇게
4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님의 말로는 셋트로...
즉 한박스 안에 들어있는 4가지 요소를 성령께서 한요소씩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한 박스채 통채로 일회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속적 중생관은 그것이 아니고
성령의 단독적 역사가 2회 일어나는데 바로 수태와 칭의때입니다.
이 2회 일어나는 기간은 "순간적"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순간적 중생처럼
순간적으로 일회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엄연히 2회 성령의 단독적 역사가 순간적으로
나타나서 한번 일어난 것 처럼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두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연속적 중생관입니다.
위의 그림은 순간적 중생관과 연속적 중생관의 성령의 독단적 역사의 횟수가
일어나는 것만을 염두해서 그린 것이고..
밑의 그림은 연속적 중생관이 어떠하다는 성질적인 면을 그린 것입니다.
위에서 연속적 중생관은 바로 위 그림의 밑에서 보듯이
수태와 칭의는 서로 분리가 된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계속적으로 연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혜성의 머리 부분이 수태라면.. 혜성의 꼬리 부분이 칭의라고 한
피터마스터스의 글과 같이 한 몸체처럼 보이지만 성령의 단독적인
역사하심은 초기와 칭의때.. 그리고 그 중간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사람들의 애씀이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애쓰게 만드시기에
사람이 성령의 목적을 향해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순간적 중생관에는 인간의 애씀이 전혀 없습니다.
연속적 중생관에는 회심을 위한 인간의 애씀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애씀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 마음에서 나오는 애씀이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기원한 노력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성화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화에서 신인협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독립적으로 하나의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까지 인도하시고 그 인도하심을 받아 인간은
애를 쓰는 것이기에 결국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한 어떠한 공로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회심의 과정에서의 인간의 애씀과 성화시의 인간의 애씀에 대한 개념은
아래의 덧글에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외의 경우이지만 한 순간에 중생이 일어났다고 할때..
순간적 중생관과.. 연속적 중생관은 차이는 아래그림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순간적 중생관은 한 순간에 1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순간적 중생관은 한 순간에 2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의 할점은 이 2회 역사는 중생이 2회 일어난다는 의미의 2회가 아닙니다.
시작과 완성.. 즉 수태와 칭의(출생)의 개념...
위의 글에 대한 덧글 들....
어떻게 보면 덧글들이 더 유용합니다.
홀리조이님의 리플 중에 [성경을 그런 식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님의 영혼을 위해서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바울, 고넬료, 루디아가 순간적으로 중생하였다고 해석하는 개혁주의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20:57 ] 라는 글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연속적 중생관으로 바울, 고넬료, 루디아의 구원순서를 설명 부탁합니다. 이 부분에서 설명이 되면 완전히 우리의 토의는 끝이 날 것 같습니다. 더이상 장황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네요 |
홀리조이님의 리플 중에 [성경을 그런 식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님의 영혼을 위해서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바울, 고넬료, 루디아가 순간적으로 중생하였다고 해석하는 개혁주의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20:57 ] 라는 글에 대해서 질문입니다.
연속적 중생관으로 바울, 고넬료, 루디아의 구원순서를 설명 부탁합니다.
이 부분에서 설명이 되면 완전히 우리의 토의는 끝이 날 것 같습니다. 더이상 장황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네요.
'조직신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Re:중생론과 성령세례에 대한 정리글 모음 (0) | 2010.03.11 |
---|---|
[스크랩] 죄인을 구원하는 효과적인 부르심과 회심(마틴 로이드존스) (0) | 2009.12.23 |
[스크랩] 거듭난 자의 죄 지음에 대한 호레이스님의 댓글 모음. (0) | 2009.09.09 |
[스크랩] 구원론 추가 질문입니다. (0) | 2009.07.13 |
[스크랩] 완전 성화는 가능한가? / 박영돈목사님 (0) | 2009.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