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교회
다음의 내용은 2009년 4월 30일 전북 익산의 전향교회에서 열린 독립개혁장로회의 제27차 사경회
(査經會)에서 강사로 초빙받은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의 최낙재 목사가 요한복음 20:1-31을 본문으로 하여 전한 강설(講說)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믿어서 신문 지면을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 독립개혁장로회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후서 5장에서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활에 이르고 부활을 확신하는 가운데 살아간다’ 하는 것과 ‘그러므로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과 사람이신 그리스도로 알고 복음을 전파한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고 다만 사람뿐이시라면, 그가 십자가에 달린 것이 만민에게 복이 될 턱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의로운 사람이요 공자와 석가모니와 소크라테스 같은 성자(聖者)라고 높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나타내는 구주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사시는 영광의 주가 아니시고 단순히 한 사람일 뿐이라면, 만민을 대신하고 나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아 줄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있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값으로 치자면 수천수만 명을 모아 놓아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주에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3). 예수께 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러므로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반드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영광의 주이심과 우리를 위하여 육신을 입으신 것을 전하였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성탄절을 지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부활절을 지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사랑과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기념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8:30,31 맨 끝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또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전한 것입니다. 이로 보면 사람이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그 표적(表蹟)도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도록 하려고 행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놀라운 표적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큰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와서 떡을 먹은 무리가 다음날 가버나움으로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그 무리는 그 표적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고 받아야 할 교훈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을 아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人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印) 치신 자니라”(요 6:26,27). 이 무리는 빈들에서 예수께서 기적적으로 떡을 주셔서 배불리 먹고서 ‘세상을 살아갈 때 당하는 양식 문제를 예수께서 잘 해결해 주시겠구나’ 생각하고 따랐습니다. ‘이런 분이라면 외국 군대를 물리치고 우리 민족을 독립시키고 평안히 살게 하실 만한 그리스도가 아니시냐?’ 하고 이 지상 생활과 현세 생활만을 생각하고 따랐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죽음에서 건지심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에서 구원을 받아 영생할 것은 생각지 아니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갈 것으로 마음이 가득하여서 표적을 표적으로 읽지를 못하였습니다. ‘양식을 구해서 굶지 않고 먹고 살아도 결국에는 죽지 않느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하고 말씀하셔서 영생에 이르는 길이 있음을 알려 주시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바로 그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건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넉넉히 먹이신 것을 보았으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전능하신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 우리를 넉넉히 구원하시고 영생하게 하시겠구나’ 하고 믿을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요 6:35,4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8,39),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하여 주셨는데도,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한다’고 유대인들은 수군거리고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다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요 6:42) 이렇게 세상의 이치를 내세우고 사람의 이성을 앞세워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이성이 무엇이라 말하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큰 표적을 보이셨으면 겸손히 그 표적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57,58). 영광의 주께서 세상에 오셔서 육신을 취하신 그 몸으로 죄인의 대속을, 대속의 큰일을 행함으로 이 은혜를 받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다시금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고 물러갔습니다. 이 무리들은 물러가서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외친 그 유대인의 무리와 합세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 몰두해 가지고, 이 세상 생활에 몰두해 가지고 죄를 많이 짓고 무지하게 되어서 하나님께서 큰일과 큰 사랑을 보여 주셔도 하나님의 표적도 깨닫지 못하고 멸망으로 달려가고 마는구나’ 깨닫게 됩니다. 보통 일반적인 일에 있어서 사람은 세상의 이치를 알아서 그 이치대로 행하고 사람의 이성의 판단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신에 빠지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히 표적을 보여 주셨으면 이것은 특별 계시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할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가르치신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토록 타락한 것을 보면 두렵기도 하고 슬픈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교회의 그릇된 성경 해석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자부할 텐데 로마 가톨릭교회가 무지와 어둠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의 표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빛을 찾지 못한다 하는 사실입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에요. 정진석 추기경은 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 사람이 2009년 1월 1일자 「중앙일보」의 기자와 대담한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관련된 부분을 읽겠습니다.
“물질, 그 자체가 행복을 좌우하진 않아요. 행복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겁니다. 물질을 가져도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을 가졌으면서도 그걸 초월하죠. 그런 사람들은 덕(德)이 있는 이들이죠.”
그 말끝에 정 추기경은 성경에 나오는 ꡐ오병이어ꡑ 일화를 꺼냈다.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아이들은 제외한 수치)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적(異蹟) 일화다. 정 추기경은 그 사건을 ꡐ기적ꡑ으로 풀지 않았다. 대신 ꡐ예수의 마음ꡑ과 ꡐ예수의 사랑ꡑ으로 풀었다.……
당시 예수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모인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성경에는 기록돼 있다.……
정 추기경은 예수가 올린 ꡐ감사의 기도ꡑ에 주목했다. ꡒ그게 어떤 기도였을까요. 그건 ꡐ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ꡑ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던 거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이 굶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나누고 남은 게 열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겁니다. 거기에 ꡐ오병이어ꡑ 일화의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ꡓ 그건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 그럼 ꡐ오병이어ꡑ 일화에서 예수가 보인 기적은 무엇입니까.
ꡒ성경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기적은 뭘까요. 다름 아닌 꼭꼭 닫혔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신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도시락을 나누게 하신 거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ꡓ
이것이 정진석 추기경의 오병이어 표적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표적을 보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하고서 이 표적의 교훈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감사 기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기가 그렇게도 어려워서 성경에 있지도 않은 도시락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성경에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도시락을 품에서 꺼냈다’는 기록은 있습니까? 이런 무가치한 해석을 하는 사람이 성직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빛을 얻지 못하며 소경이 소경의 인도를 받아서 따라가면 모두가 멸망의 구덩이에 빠질 것이 아닙니까.
16세기의 개혁자 칼빈 선생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불의와 무지가 가득하고 그런데도 그 안에 있는 그 많은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해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런 일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성직자들을 향하여 ‘짖지 않는 개’라고 했습니다. 개가 도둑이 오면 짖어야 할 텐데 도둑이 오는 것을 보고도 짖지 아니하면 그 개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무엇하러 그런 무익한 개를 키우겠습니까? ‘신부 - 주교 - 대주교 - 추기경 - 교황, 이렇게 층층이 있는 성직자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무익한 존재들이라고 공박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개혁자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진리의 빛을 비추고 4백 년이 넘고 5백 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렇게 어둡습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개신교(改新敎), 구교(舊敎) 아닌 신교(新敎)는 어떻습니까?장로교, 개혁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그 외에도 많은 교파가 있는데 로마 가톨릭교회에 비교해서 ‘신교’라 불리며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 같은 형제로 여기는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논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가령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비추어서 말하면 좋을 것입니다. ‘천국의 말씀이 전파될 때에 그 받아들이는 마음 밭이 어떠냐에 따라서 씨가 길가에 떨어진 경우, 돌밭에 떨어진 경우, 가시떨기 가운데 떨어진 경우와 같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경우와 같으면 천국의 열매를 낸다’ 하였는데, 이것은 ‘복음을 듣는 각 사람들이 어떻게 되느냐’ 함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복음을 들은 교회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비추어서 말한다면 두 가지 성질을 나타낸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한국 교회는 씨가 돌밭에 떨어진 경우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일본 식민지 시절에 한국 교회를 핍박할 때에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섬기는 그 신사(神社)의 우상에 참배하라 할 때에 거절하지 못하고 절하고 말았습니다. 소수의 순교자가 감옥에 가고 목숨을 잃고 하였지마는, 교회마다 신자마다 연약함을 나타내서 신사에 참배하였습니다. 생명 없는 우상에게 꾸벅꾸벅 절했습니다. 해방 후에 ‘회개한다’ 하였지마는 철저한 회개 없이 더러움을 씻지 못하고 그냥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족히 가르쳐져서 교회가 자라는 일이 없이 항상 어린아이 상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일이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실 때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 하셨는데, 복음으로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자를 세례 주어 교회에 들어오게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를 못하고, 또 교회에 들어온 사람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해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로 가르쳐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지를 못하였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라 하면서 그리스도를 잘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도 아니하여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식합니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거룩한 교회인가
가령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한기총(=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의 몇 목사님이 조문을 갔더랍니다. 가서 조문하는 말이 ‘로마 천주교는 우리의 큰집이 아닙니까’ 하였대요. 마틴 루터 선생이나 칼빈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교와 장로교 목사가 이런 무식한 말을 한다면 그들이 가르치는 교회는 얼마나 어둡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드님이 도성인신(道成人身)하여 사람으로 나시고 30세쯤 되어서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행하시며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의의 길을 걸으시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하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 그대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셋째 날에 하나님이 부활시키심으로 영화롭게 되사 승천하시고 지극히 높이워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장차 다시 오사 천하 만민을 심판하시리라, 이렇게 바로 알고 가르쳤다면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였겠습니까. 평소에 그리스도를 바로 가르치지 아니한 것 아닙니까? 영광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바로 알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 하는 구원에 관한 진리는 거기에 바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하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이 진리를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반대를 받았고, 마틴 루터 선생과 칼빈 선생이 이 진리를 전하다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핍박과 생명의 위협을 받고 고향에서 도망하여 평생 객지에서 살 수밖에 없었지 않습니까. 이게 다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가르친 때문에 그래요. 그 무지한 로마 가톨릭 세계에, 거기 신도들에게 이런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발견하고 깨닫고 이 진리를 가르치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런 개혁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을 가만두지 못하고 죽이려 한 거예요. 그런데 장로교회 목사가 ‘로마 가톨릭은 우리의 큰집’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그리스도를 잘 가르쳐 놓았다면 그 목사가 담임한 교인들이 그걸 듣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목사님, 무슨 말씀 하십니까?’ 할 것 아닙니까? 그가 가르친 교회가 무식하고 그런 말 해도 뭐, 잠잠하니까 그런 말을 하고 돌아다닌 거라 말이에요. 그 한 가지 예로써 ‘한국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을 짐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더 있습니다. 이런 소문이 교단 기관지의 한쪽 구석에 나고 그러고서는 그 후에는 조용합니다. 사설에도 난 것 아니에요. 그냥 어떤 몇 사람이 모여서 ‘그럴 수가 있는가?’ 해서 그렇게 자그마하게 신문에 났어요. 그러고서는 조용해요. 신교 전체의 신자나 목사들이 다 같이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닐 텐데 그냥 조용하고 이런 발언에 대한 문책이 전혀 없습니다. ‘장자(長子) 교회’라 ‘정통’이라 자부하면서 권징(勸懲)이 없고 교회가 통일되지 못하여서 이 교단의 태도가 과연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에요.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것인데 거룩한 교회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26 이하). 주의 양인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주께서 땅에 계실 때는 제자들이 주를 보고 따랐습니다. 가업을 버리고 따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를 보지 못하지만 믿고 따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성신의 가르침을 받고 믿고 사랑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과 그의 백성이요 양 무리가 된 우리 사이에는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였을 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陰府)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하셨습니다. ‘세상과 구별을 하여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겠다’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죄와 죽음이 지배하지만, 나를 따르는 자는 내가 거기서 구원하여 거룩한 교회 안에 두고 죄와 죽음이 가까이 못하게 하겠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하셔서 ‘세례 받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주께 생명을 받고 새사람으로 살며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 거룩한 백성으로 진리의 빛 가운데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께서 교회를 세우려 하셨을 때는 거룩한 교회를 세워서 세상과 뚜렷이 구별되게 하려 하셨습니다. 거룩한 교회에는 징표가 뚜렷이 있어서 누구든지 쉽게 ‘아, 여기 거룩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구나!’ 하고 알도록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선포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선포되고 가르쳐질 때에 ‘아, 여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 곧 세례와 성찬이 주님의 제정하신 뜻대로 잘 시행이 되어서 세상과 구별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자라 가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교회에 가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열매가 교회 안에 있도록 하셔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교회로, 거룩한 교회로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에 계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멀리하며 거룩한 생활을 하여 나가야 할 것이고, 그러다가 죄짓는 일이 교회 내에 발생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죄를 회개하게 할 것이고, 고칠 때까지 권고하고, 그래도 고집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黜敎)라도 해서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 유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표준으로 볼 때에 한국의 개신교회는 자신들이 ‘정통 교회’라 ‘장자 교회’라 말할지 모르지만 거룩한 교회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회는 항상 거룩한 것인데, 거룩한 교회가 아니면 교회인지 교회가 아닌지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과연 한국 교회는 세상인지 교회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꾸자꾸 타락하는 것을 볼 때에 두려운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교회에 ‘기도를 드릴 때는 이렇게 드려라’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새사람으로서 어떤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며 하나님께 이루어 주시기를 바랄 것인가 구할 때에 가장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소원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 소원으로만 아니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구하라. 교회의 공동의 기도로 삼아라’ 하신 것이에요.
신앙생활의 목표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것임
‘교회가 자꾸 타락하여 갈지라도, 나는 복음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으니 확실히 구원을 받았으니 죽을 때까지 이 믿음 버리지 않고 지켜서 구원을 얻어야지. 교회는 타락하고 교회 내에 죄가 많아도 나는 그냥 참고 믿음을 버리지 말고 꼭 붙들고 살면 되겠지’, 교회를 개혁할 힘은 없고 그대로 따라갔다가는 망할 것 같고 그러니까 그와 같은 생각을 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태도입니까? 그런다고 해서 믿음을 지킬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구원의 목적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지체(肢體)로서 같은 믿음을 가진 지체들과 함께 거룩한 교회를 이루어서 살아감으로 비로소 세상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 여기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하셨습니다. ‘너’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 하시고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죄짓지 아니하고 거룩한 생활을 힘써야 하겠지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렇게 개인적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고, 자기의 삶의 목표를 다른 지체들과 연합하여서 거룩한 교회를 세워 가는 데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야하겠다’ 하고서 신앙생활의 목표를 세울 때에 다른 지체와 연합해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데에 거기에 목표를 두어야 하는 것이에요. 성경의 많은 교훈이 그걸 가르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믿음도 유지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신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에요. 그냥 개인 한 사람이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참 착하다. 믿음을 버리지 않고 지켰으니까 착하다’ 그러시지 않는단 말이에요. 거룩한 교회를 세우기 전까지는 자기의 구원받은 것이 완성되지 아니한 줄로 알아야 할 것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가’, 성경에서 아주 풍부하게 가르치고 있으니까 부지런히 찾아서 거룩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최낙재 목사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
최낙재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한 뒤(B.D., Th. M.), 총회신학교와 합동신학교에서 수년간 가르쳤고, 1974년부터 지금까지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강설집으로는 『하나님의 나라』(1986, 성서유니온), 『영원한 안식과 주일』(1997),『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I(1999), II(2000, 이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혼인의 신성함』(1989),『구원이란 무엇인가』(1993), 『높이 되신 그리스도』(2003),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보라』(2007), 『창세기는 무엇을 말하는가』(전3권, 2008), 『출애굽기는 무엇을 말하는가』(전2권, 2009), 『민수기는 무엇을 말하는가』(전2권, 2009, 이상 성약출판사) 등이 있습니다.
독립개신교회와 최낙재 목사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하는 분은 성약출판사 인터넷 홈페이지(☞ http://sybook.org)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교회문제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존맥아더 / 목적이 이끄는삶에 대하여 (0) | 2009.05.27 |
---|---|
[스크랩] 난장판화 되어가는 예배 (0) | 2009.05.18 |
[스크랩] Re:Re: 역사의왜곡.. (0) | 2009.05.16 |
[스크랩] 김용두 목사의 <내가 너에게 불세례를 주노라>에 대한 분석 (0) | 2009.05.11 |
[스크랩] Re:세 가지로 먼저 분류를 하시면 혼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0) | 2009.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