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자료

[스크랩] 사도행전 주석 (행14:1-27) /존 칼빈

baromi 2009. 3. 3. 08:40

제 14 장



3절. 오래 있어……

그리고 주님께서 기적으로 복음을 증거해 주셨다고 본문이 전하는 말씀을 눈여겨보자. 이 말씀은 기적을 참되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첫째의 목적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적을 나쁘고 그릇되게 해석하는 자들이 되기가 쉬우므로 하나님은 이 기적이 악하게 사용되거나 그릇되지 않게 하시려고 자기의 말씀과 분리시켜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만일 기적이 어느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나타난다면, 첫째로 이는 희귀한 경우이며, 둘째로 이런 경우에 나타난 기적의 결과는 극히 보잘 것이 없다. 대개의 경우에 하나님은 이 기적들을 통하여 자기를 세상에 알리시기 위하여 혹은 그저 꾸밈없는 자신의 위엄 가운데서라기보다는 그의 말씀과 관련하여 이를 행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서 누가는 어떤 혼란스러운 신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고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게 되도록 기적이 복음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교황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행동하는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들은 기적만을 내세울 뿐 그 기적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을 공경하게 하지 않고 복음을 귀히 여기게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에 의한 기적은 복음을 충분히 그리고 순전히 권위있게 해주는 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된다.

9절.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잠시 후에 누가가 칭찬하고 있는 그 믿음이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생겨나고 있음을 우리가 알게 하려고 그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음을 먼저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이 하는 말을 듣는 순간에 그는 고침을 받고자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고침을 받게 될 것을 미리 약속해 주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고 계시지만 우리가 당장 얻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기대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자 한다. 그가 나음을 얻은 것은 그의 안에 계신 성령의 특이하고 특별한 역사였다.


그리고 이는, 다른 한편으로, 바울이 그의 안에 있었던 믿음을 보았을 때 바울 안에 계셨던 동일하신 성령님의 역사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병을 고침 받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앉은뱅이에게는 자기 은혜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시고자 뜻을 정하셨기 때문에 이 사람의 마음을 미리부터 준비시키셨으며 그가 이 새로운 체험을 갖도록 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는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범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앉은뱅이는 자신이 낫게 될 것을 믿었지만 치료의 은사를 받기 위한 준비는 그만을 위한 독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동일하게 자녀가 되는 영을 받는다. 그러나 이적을 일으키는 이 특별한 믿음은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믿음이 아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우리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란 믿을 수 없고 그것이 우리를 잘 속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얼굴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믿음을 확실히 인정할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그 사람의 믿음을 증명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그 앉은뱅이의 믿음은 성령의 은밀한 영감을 통하여 바울에게 보여졌다. 성령은 사도들이 이적을 행하도록 하신 안내자이며 교사이셨기 때문이다.

10절. 큰 소리로 가로되……

극히 믿을 만한 여러 옛 사본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사도들이 모든 기적을 일으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고자 애쓰고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쇄된 사본들 중에서는 일반적으로 읽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누가가 그렇게 기록했을 것으로 여긴다.

17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누가가 중요한 점에 관하여 말한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사도들이 자연의 비밀에 관하여 철학적인 방법으로 상당히 이치를 따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육을 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쉬운 말로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의 질서 안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분명하게 나타나셨다는 원칙적인 사실을 주장하고 있었다.

23절. 장로들을 택하여.

이 말씀을 볼 때 사람이 경건한 교훈으로 한번 교훈을 받고 믿음의 본질을 붙잡는다 하더라도 계속적인 진전을 못한다면 이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사도들을 보내실 뿐만 아니라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매일 전파되도록 목사들을 세우라고 명령하셨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떠난 후에 가르침이 중단되거나 잠잠해지지 않도록 각 교회마다 목사들을 세웠을 때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이 명령을 준행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교회가 항상 일하는 교역자를 세우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보실 때 그리스도인들로 인정되는 사람들은 일생을 통하여 제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임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는 본문에 나오는 '장로'를 가르치는 직분을 받은 자들이라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딤전5:17)을 보면 어떤 장로들은 단지 품행의 검열관들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각 교회 위에 세움을 받았다고 누가가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의 직무와 사도들의 직무는 구별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도들에게는 어느 곳에나 정해진 머무르는 곳이 없었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우면서 이곳 저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반면에 목사들은 자기 교회에 개별적으로 세움을 받았으며, 말하자면, 그 교회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들은 투표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헬라어 (케이로토네인)이란 말은, 사람들의 회의 때에 보통 그렇게 하듯이, 손을 들어서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교회의 저술가들은 명사 (케이로토니아)를 다른 의미로 사용할 때가 자주 있다. 즉 임직을 위한 엄숙한 의식인데 이는 성경 주에서 안수로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함으로써 목사 임직에 관한 합법적인 방법이 잘 설명되어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목사들을 세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독특한 직무를 가진 권한자들로서 그들을 향하여 독단적으로 행동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투표에 의하여 목사들을 임직시키게 했다. 그러므로 목사들을 세우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자유 선거를 했다. 그러나 어떤 질서없는 일이 있을 경우에 바울과 바나바는 의장처럼 사회를 했다. 이 방법에 따라서 우리는 라오디게아회의의 결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회의에서는 일반 교인들이 선거하는 것을 금했다.

27절. 이르러 교회를 모아……고하고.


누가는 주님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사실을 즉시 말하고 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파송되었지만 상황이 새로워진 사실은 실로 놀라왔다. 그리고 이 급한 변화는 유대인들만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교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전에는 더러웠고 하나님의 나라와는 관계가 멀었던 자들이 아브라함의 거룩한 씨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신기한 일로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실제적인 결과로써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아무런 목적도 없이 보내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믿도록 문이 열렸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복음이 실제적인 음성으로 그들에게 전파된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령의 빛에 의하여 믿음을 갖도록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실제적인 전도에 의하여 우리 앞에 열려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성령께서 내적으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 나라에 가까이 나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들이 받은 소명이 눈앞에 나타난 결과로써 하나님의 인정과 확증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의 믿음은 이를 확증하기 위하여 바울이 로마서(16:25)와 고린도 후서(3:7)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손으로 도장을 찍으신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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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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