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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교도들의 성경관과 묵상 생활 /박한주목사

baromi 2008. 9. 19. 09:20

청교도들의 성경관과 묵상 생활

 

 

효은교회 박한주 목사


1. 청교도의 성경관

존 코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라”했다. 이를 위해 배고픔을 가져야 한 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있는 그대로 믿었다. 하나님이 만 일 진실로 말씀을 기록한 장본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속일 수 없고 그것은 오류가 없고 그것은 무오하 다. 거기에는 오류도 없고 상충되는 내용도 없다. 하지만 만일 오류가 발견 된다면 오리지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번역가운데 나타난 오류라 믿었 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종교적인 진리를 증거하는 기준이 된다. 사무엘 러더 포드는 “구약과 신약에는 도덕적 삶의 기준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교회 정치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고 믿었다. 교회의 교과서였다. 하나님의 교회 가 하나님 말씀의 울타리 안에만 있다면 교회들은 여러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 결정하는 데도 필요하다. 모든 상황에서 제시하지는 않지만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성도가 죄에 넘어질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니라 했다. 그들을 인도할 수 있는 일반적 규범은 성경에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일반적 규범’은 그들에게 중요했다.


청교도 설교자가 설교할 때의 원리는 원문을 연구하되 단어 하나 하나를 중요시 여기고, 뿐만 아니라 본문의 정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본문과 상황이 다른 성경의 내용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청교도들이 가진 것은 ‘믿음의 유추’라 했다.


존 오웬은 “성경의 내용에는 믿음의 구조가 있는데 그 구조가 다른 것과 상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가급적이면 은유적 해석은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힘든 본문은 유사한 것 가운데 이해하기 쉬운 것을 통해서 해석하도록 했다. 해석 시 난해한 부분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속의 메시지를 듣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강조했다. 본문과 문맥을 잘 공부하면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서 자신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아니라 성령께서 수문장이시다”라고 말하는 청교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교도들은 다른 사람이 제작한 주석을 통해서 도움을 얻었다. 초대 교부의 글에서 도움을 얻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는 것에 순복해야 함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성경해석학의 원리들은 우리의 생각 가운데 이미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청교도들이 우리 성경해석학의 원리를 제공해준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흥미 위주의 설교자들이 아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성경으로 가득찬 사람들이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이 가질 수 있는 실수 중 하나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면 다 될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2. 묵상의 의무와 필요성

6가지 이유로 묵상이 필요하다.

1)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명령하셨다. 충분 조건이다. 증거자료서 신명기 6:7; 시편 19:14, 119장; 요한 4:24; 엡 1:18 등 이외에도 많이 있다. 여호수아와 모세와 다윗이 그랬다. 신약에서는 마리아, 바울과 디모데가 그러하다.

2) 말씀을 읽을 때 직접 쓰신 편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시 119:48에 근거한다. 어떤 친구로부터 편지 받게된다면 아마도 다른 것을 옆에 두고 그것을 읽는다. 친구로부터 편지 받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다. 거듭해 읽기도 한다. 말씀이라는 것은 편지이기 때문에 흥미 있게 읽어야 한다. 말씀하시는 그것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다.

3) 묵상하는 성도는 견고한 성도이기 때문이다. 묵상하지 않으면 말씀에 고갈 되 약한 성도가 된다. 시 119:1에 다윗이 자기가 묵상하지 않으면 고통에 의해 죽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고통 속에 집어넣을 때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다면,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고 만다. 묵상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얻는다. 그래서 이사야가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한 자는 견고하게 설 수 있다고 말했다(사 26:3). 토마스 왓슨은 “묵상하지 않은 성도는 무기가 없는 성도와 같다. 대장장이가 도구가 없는 것과 같다. 묵상 없이는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말한다.

4) 설교된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묵상해야 한다. 만일에 설교를 들었지만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식을 먹을 때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 제대로 소화시키려면 잘 씹어야 한다. 설교를 잘 섭취해야 한다. 와이처는 “묵상 없는 천 편의 설교보다 묵상 있는 한 편의 설교보다 낫다” 고 말한다.

5) 묵상은 우리의 기도 생활을 묻는다. 말씀을 읽는 것과 묵상은 기도의 반 정도가 끝난 것과 같다. 기도의 효과는 말씀을 읽은 다음에 효과적인 기도가 나타난다. 읽다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주신다. 청교도들은 묵상의 바른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6)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 묵상해야 한다. 묵상은 우리의 중추 등뼈와 같다. 묵상을 하지 않은 성도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배우는 모든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 진리이다.

새가 둥지를 떠나면 알이 차가워져 새 생명을 태어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묵상하지 않으면 영적 애정이 식어진다. 갑작스럽게 교회 주일에 가면 세속적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묵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정해서 지켜야 한다. 정신이 가장 깨어있는 시간을 정하라. 어떤 분은 아침에 강하고, 어떤 이는 저녁을 선호한다. 언제 묵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정신으로 묵상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더 많은 묵상은 주일에 적용된다. 하나님은 그 날 영적인 훈련을 하도록 부르셨다. 교회에 다녀 온 후 집에 와서 설교 노트를 계속 숙고하며 묵상하라. 특별히 가족과 함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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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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