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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드워즈 1 - 복음주의적 회심/랄프 턴벌(Ralph G. Turnbull)

baromi 2008. 9. 17. 08:14

복음주의적 회심

 

랄프 턴벌(Ralph G. Turnbull)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영혼에 대해 관심을 많이 기울였으며 다양한 수련을 해왔습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


복음주의 진리의 계승자라는 위치에 설 사람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보다 더 합당한 이름은 없다. 그보다 더 전적으로 복음주의적 영성으로 충만했던 사람도 없었고, 그만큼 교리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확신했던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시험을 견디어낸 인물로서,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와 사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이고 신비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19세기의 역사학자 밴크로프트는 “지난 세기동안 뉴 잉글랜드 정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어떻게 고동쳐 왔었는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하는 일에 밤낮으로 정진해야만 한다”고 자신의 확신을 피력한 바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사이며 신학자, 철학자이며 문필가였으며,18세기의 문화적 배경에 반대한 인물로 여겨져 왔다. 그는 죄악을 저주하는 내용의 설교를 많이 했는데, 그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그를 미워했다. 에드워즈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아귀에 놓인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통해 문단과 설교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를 더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가장 조용하고 과장됨 없이 말씀을 전하던 설교자를 이런 식으로 거부한 것은 교회에 대한 공격이었다. 에드워즈에 대한 세평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이었다. 에드워즈의 설교에 공포와 보복에 대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에드워즈를 항상 그렇게 특정한 유형의 말씀만을 전하는 설교자로 평가하는 것은 불공정하고 악의적인 작태이다. 에드워즈의 설교가 언제나 듣는 이들을 위협하고 비판만 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설교는 당시 뉴 잉글랜드의 상황과 관련해서 평가되어야만 한다. 에드워즈당시 뉴 잉글랜드는 식민지에서 벗어난 상태였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식민지의 정신적 사회적 상황에 머물러 있었다. J.해루투니언은 당시 사람들은 죄악을 "비판하기보다는 죄악을 동정하게 했다"(“조나단 에드워즈 경건에 대한 연구”, Journal of Religion, 1931년 11월호 p.400)고 말했는데, 우리는 그의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들과 교회사가들이 에드워즈에 대해서 압도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단지 18세기의 역사를 평가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중역을 담당했던 18세기의 신학적, 철학적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연구의 범위를 그의 생애와 사역의 한 국면인 설교에만 국한시키겠다.


에드워즈가 펼쳤던 다양한 정신적 활동들은 동시대인들에게 비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종교적인 부흥운동기의 두드러진 지도자였으며 신학적 논쟁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 속에서 때로는 한 가지 본질적인 부분이 잊혀지기도 한다. 그것은 그가 한 일이나 저작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중요한 열정에서 솟아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의 이 중요한 열정이란 바로 영원한 복음의 선포자가 되고자하는 열정이었다.


에드워즈를 목회자와 설교자로서 평가하기 전에는 신학과 철학에 끼친 그의 공헌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다. 에드워즈가 남긴 값진 논문들은 목회 활동을 위해 묵상하는 가운데 거두게 된 열매이며 이러한 목회적 묵상은 복음주의적인 신앙의 뿌리에서부터,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체험으로부터 솟아난 것이다. 그의 신앙과 정신은 그가 설교자로서 24년 동안 회중들에게 선포했던 설교들을 통해서 표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인물을 목회자요, 설자로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에드워즈의 저작에서 발췌한 글들을 읽으면서, 그 글들을 통해 에드워즈 자신이 우리들에게 말을 하도록 하려는 데에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복음주의적인 영성이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종교란 개인적이고 영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종교이다. 에드워즈에 대한 논의도 이러한 종교를 알아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에드워즈는 내적인 빛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그의 설명은 듣는 이들을 청교도주의로 초대하고 경험적 종교의 진가를 드러내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충만한 기독교의모습을 드러내주었다.


에드워즈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온 청교도 정신의 전통을 명예롭고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뉴 잉글랜드를 세운 사람들은 그 들 앞에 놓인 위대한 미래를 향유할 가치가 있는 시점들이었다. 진실과 언어, 문학, 정부 그리고 종교와 같은 명예로운 전통이 융성했던 대표적인 시대에는 그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다. 이 열정적이고 경건한사람들의 목표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을 이어나가며, 사적인 생활에서나 공적인 생활에서나 성경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모들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인 티모시 에드워즈 목사는 커네티컷 강변 윈저에 자리 잡은 교회를 담당하고 있었다. 티모시는 한때 솔로몬 스토다드라는 목사 밑에서 사역했는데 조나단의 어머니는 바로 스토다드 목사의 말이었다. 그들의 가계는 영국으로 소급된다. 영국에서 살았던 조상들도 문화와 근면, 그리고 청교도적 절제로 삶을 이어나간 사람들이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더욱더 견고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이 경건한 가풍은 1703년 10월 5일 동 (東) 윈저에서 10남매 중 다섯째요, 유일한 아들인 조나단이 태어남으로써 그 정점에 다다랐다. 이 아이가 주변 환경으로부터 지울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모는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조나단 자신도 분명한 종교적 확신으로부터 힘을 얻는 소년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찍부터 복음주의적 경건이 명령하는 것들과 그 함축적인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신도 “아직 아이였을 때에도 나는 다른 아이들의 놀이에 흥미가 없었다. 나는 진지하게 배우며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했다…”(워세스터 편집 「조나단 에드워즈 저작집」Ⅰ.14쪽)고 회상한 바 있다.


이러한 유산의 영향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생활과 의무, 구원의 길, 그리고 현세와 내세에 변함없는 영생에 친숙하게 되었다. 이후 그의 저작과 사색의 대상이 된 모든 주제들은 가정과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래된 것들이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정은 그가 속했던 최초의 영적 교회이자 최초의 대학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사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었으며 그의 부모님들은 그가 만난 최초의 스승으로서 그에게 삶과 사명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에드워즈가 이미 청소년 시절에 처음으로 영적인 자극을 받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영적인 자극으로 인해 에드워즈는 인생 최대의 문제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 사람을 특별히 쓰시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그를 준비시키신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경우에는 문화적인 가정과 외아들에 대해 가족들이 쏟아주었던 관심이 그의 예민한 정신에 필요한 이상과 사고력을 키우는 훈련에 더 없이 값있는 요소로서 작용했다. 가정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에드워즈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보다 본격적인 학문의 훈련을 받을 충분한 자질을 갖춘 재목으로 자라났다. 그에게 있어서 어린시절은 내면의 영적인 투쟁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장을 기하는 시기가 되었다.


에드워즈가 12살 때 쓴 “곤충에 관하여”라는 수필이나 “무지개에 관하여”라는 관찰록에는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정확하게 기록할 줄 아는 한 소년의 빈틈없고 정밀한 정신이 드러나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한 평범한 소년의 모습도 보게 되는데, 놀이를 하는 에드워즈의 모습이란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놀라움으로 가득 찬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일찍부터 자기 안에 언제나 영혼의 경이로움과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머물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영원한 것들과 신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들은 최소한 몇 살이 되어야 하나님의 은밀한 속삭임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말했다. 세례 요한에게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성령이 임하여 계셨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이들과 같이 위대한 사명을 숙명으로 안고 태어난 인물이었을까? 우리는 이 놀랍고 빛나는 정신을 가진 인물이 행한 모든 일들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만 보아도 비범한 영성을 느낄 수 있는 한 특별한 인물이 뉴 잉글랜드의 거리를 활보했었다는 사실만은 믿을 수 있을 것이다.

1.출처가 별도로 명기되지 않은 인용들은 워세스터 편집판 에드워즈 저작집에서 따온 것이다

 

랄프 턴벌 박사가 쓴 「설교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보들 사람들과는 현저히 다른 삶을 살았던 한 뛰어난 뉴 잉글랜드 사람의 생애와 사역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연재될 이 글에서는 설교자 에드워즈의 다양한 특징들이 조명될 것이다. 탁월한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에드워즈는, 어떤 면에서는 자기가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저작이라고 할지라도 연구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따라서 턴벌 박사의 글을 읽는 독자들도 온건한 칼빈주의자이든 알미니안주의자이든 간에 그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진정한 유익을 얻고 강한 도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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