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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즐거움 The Pleasantness of Religion, 1723 잠 24:13-14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설교의 구조] 서론 본문의 목적과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목적은 자녀에게 왕국과 부와 명예를 상속할 자기 아들에게 지혜를 주어 평생을 지혜롭고 의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 교육하려함이다. 에드워즈는 꿀을 곧바로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꿀을 먹음으로 달콤함을 느끼는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맛봄으로 영적인 달콤함을 느끼게 된다. 아들에게 권면하는 것이다. 본론(DOCTRINE) 본론 부분에서 에드워즈는 서론에서 제시한 지혜를 누리는 방법에 대하여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해 나간다. 1. 적당하고 절제 있으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즐거움들을 누를 수 있다. 2. 악인은 악한 방법으로 추구하며, 두려움 속에서 즐긴다. 3. 악인의 즐거움은 슬픔과 고통으로 변하고, 마침내는 더욱 자신을 해치게 된다. 4. 죄에 대한 회개의 아픔이 클수록 회개의 기쁨은 더욱 크다. 5. 신앙인이 누리는 영적인 즐거움은 악이 누리는 것보다 훨씬 크다. 1)신앙은 영혼의 모든 기능을 바로 잡아 준다. 즉 모든 기능들이 조화를 이루게 한다. 2)지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탁월하게 되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무한히 탁월하신 하신 하나님을 봄으로 즐거워한다. 3)성도는 착한 일을 하는 것-하나님을 닮고 예수처럼 살며, 이성적인 피조물로서 행동하는 것이 기쁨을 얻는다. 4)성도는 탁월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음으로 즐거워한다. 5)성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탁월하심을 보고 즐거워한다. 6)성도는 하나님-세상의 통치자이시며 가장 탁월하신 분-이 자신을 사랑하시며 그분이 자신의 친구라는 생각에 즐거워합니다. 7)성도에게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보는 것은 가장 달콤하다. 8)신앙은 대인관계 속에서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도록 도와준다. 9)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즐기게 될 부활의 영광과 소망에 대한 큰 즐거움이 있다. 적용USE 1. 신앙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은 매우 크지만, 세속적인 즐거움은 더 큰 슬픔만이 있을 뿐이다 2. 불신자들은 내세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유익도 추구하지 않는다. 단지 외적인 즐거움만을 추고한다. 4. 신자들은 내세에서, 이 세상에서도 큰 보상이 따른다. 5. 신앙인의 탁월한 특징을 ‘자신의 체험으로 신앙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설교분석] 1. 비유적 특징 꿀: 하나님1)을 맛봄(체험 experience)으로 즐거움을 누린다. 이 설교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맛봄은 영적인 감각(sense)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밝힌다. 영적인 감각은 성령을 통해 가능하다. 육적인 사람들은 영의 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맛보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표현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noble(고귀한, 존귀한, 고상한) excellent(탁월한, 월등한) rational(이성적인, 합리적인, 분별력있는) intelligent(지적인) 2. 비교법 악인과 신자가 누리는 즐거움의 차이와 가치의 차이를 서로 비교하며 신자가 누리는 즐거움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3. 신학적 의의 이 설교는 성도와 악인을 예리하게 대조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성도와 악인들은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며 누리고 있다. 악인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쾌락을 추구하지만, 성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영원하며 영적인 쾌락들을 추구한다. 영적인 감각을 가진 성도들은 세상의 쾌락보다 하나님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탁월하심들을 더욱 즐거워하고 누린다. 이러한 주장은 이 세상이 쾌락을 분별없이 무감각하게 즐기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요, 자유라고 생각하는 세속적인 사고를 가진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무엇이 누리고 즐거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도전을 주고 있다. [설교의 배경] 1723년도 전후의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영적 생활 1721년 에드워즈는 칼빈주의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몹시 잔혹한 교리라고 생각했고, 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은 서로 조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고투 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이 자신의 선하신 주권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하시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이것을 확신뿐만 아니라 이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2) 그는 디모데전서 1장 17절을 읽다가 “참으로 영원하시며 모든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온 우주의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위대하심이 그의 마음에 충격적으로 파고들었다”3) 다음해인 1722년 8월부터 1723년 5월까지 8개월 동안 에드워즈는 뉴욕의 어느 한 장로교회를 섬겼다. 이곳에 있는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는 종말론적 역사에 대하여 주의 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어떤 면에서든지 그리스도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나의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나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나는 신문을 펼쳐 들고 끝까지 꼼꼼하게 읽으면서 혹시 내가 세상 속의 기독교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사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4) 조지 마스던은 이 당시의 에드워즈 설교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주의 깊게 잘 작성된 그의 설교는 이미 훗날 그의 설교를 특징짓는 탁월한 자질을 보여 주었다. 그의 성경적 전제에서 출발하여 그 명백한 진리가 어떻게 청중의 삶에 적용되어야만 하는지 추론하는 데에 어떤 허점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치밀했다. 놀랄 것도 없이, 가장 특징적인 주제들은 자신의 개인적은 영적 싸움을 반영하고 있었다”5) 1723년 4월, 단 8개월 만에 뉴욕에서의 목회를 끝내고 말았다. 교회는 재정부족으로 건물 유지비도 에드워즈의 사례비도 댈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6) 에드워즈는 당시의 슬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가슴은 그들 때문에 무너지는 것 같다. 내가 아주 많은 기쁜 날을 보낸 그 가정들과 그 도시를 떠날 때. 배를 타고 떠날 때, 나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시야에서 그 도시가 사라졌을 때, 아득히 멀어진 그곳을 우울하고 가라앉은 마음으로 바라보았다”7) 1723년 여름 내내 에드워즈는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석사 학위 논문을 끝냈다. 그리고 9월 20일 생일 한 달 전에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에드워즈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다소 주저했지만, 1724년 6월에 예일로 돌아갔다. 그 다음 두 해는 에드워즈에게는 영적인 폐허의 시간이었다. 지적인 지식은 늘어났지만, 영적인 안정은 줄어들었다. 사실 그는 [자서전]에서 “뉴헤이븐으로 간 후에 나는 종교적으로 낙심했다. 거룩함을 향한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추구로부터 내 마음은 벗어나 있었다”라고 교수로 지낸 당시를 표현했다. 이 당시 에드워즈는 무엇보다 자연철학에 대하여 심취했던 시기로 보인다. 마스던은 이 당시 뉴잉글랜드 지성인들은 수많은 창작물이 쏟아지던 시대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세계적인 문단들에서 발행하는 잡지들을 구독했다고 말한다. “젊은 에드워즈는 이 모든 저자를 열심히 탐구했다” 특히 로크와 뉴턴에 깊이 심취한 것을 보인다. 이러한 독서들은 후에 에드워즈에게 중요한 힘이 되는데 이러한 책들 속에 담겨진 이교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사상들을 섭렵했기 때문에 설교와 저술들을 통하여 확실하게 반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1723년은 에드워즈에게 유난히 영적인 고통이 더해진 시기로 보인다. 그의 결심문 57에 따라 “괴로워 하지 말자”고 다짐도하고 있다. 특별히 이 해는 라틴어 논문을 발표하는 해였으므로 불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 예일대 학장이었던 티모시 컬터학장이 졸업식날 공식적으로 국교회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영국의 국교회 재건(왕정복고)을 피해온 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특히 정통교리를 잃어버린 하버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세운 예일대가 배교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있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을 후 1년 후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졸업자를 대표하여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볼턴에서 작성된 설교들은 모두 밝고 긍정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그 중 잘 알려진 설교가 “신앙의 즐거움”(The Pleasantness)이다. 신앙에는 즐거움이 있지만 이 즐거움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절제하여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육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어리석은 이들이며, 영적인 즐거움은 육적인 것에 비해 훨씬 크다. 이 영적인 즐거움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맛보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교는 “중생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거부되는 거룩한 것들에 대한 영적인 깨달음”(A Spiritual Understanding of Divine Things Denied to the Unregenerated)이다. 이 설교에서 그는 중생하여 신자들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거룩한 것들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거룩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제6의 감각(Sense)을 가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그러므로 꿀의 달콤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맛본 사람이다” 이 후로도 끊임없이 교인들을 위로하고 화평할 것을 외쳤지만 볼턴의 농촌사람들은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음해 5월말 조나단 에드워즈는 예일대 교수직을 제안 받고 임시적으로 있었던 볼턴을 떠나게 된다. 신앙적 체험에 관한 소고들. 로크가 에드워즈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은 현대 에드워즈 연구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특히 1949년에 페리 밀러가 에드워즈는 로크의 경험주의를 철저하게 포용했다고 주장한 이후 더욱 그러했다. 에드워즈는 일찍이 존 로크의 인식론을 접했다. 그의 대학 시절에 작성된 노트는 로크의 [인간 오성에 관하여](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와 비판적인 씨름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계속적으로 그의 출판된 저술들에서 로크의 도움을 호소했다. 에드워즈의 최초의 전기 작가는 조나단이 예일 대학시절에 로크의 논문을 읽었을 때 너무나도 기뻐서 “가장 탐욕스러운 구두쇠가 새로 발견한 보고에서 금과 은을 한 줌 쥐었을 때보다”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읽었다고 기록했다.8) 에드워즈는 믿음의 영적 지식과 “맛을 보는” 감각 사이의 유사성을 이끌어 내기를 좋아했다. 마음의 인식은 “거룩한 맛보기” 또는 “마음의 기질”이다. 그것은 “탁월하고 거룩한 것을 영적으로 맛보는 것이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믿음을 “맛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경험이다.9) “간단히 말해, 인간의 말과 자연적 능력들이 모두 관계되지만 인간적 힘이 인간의 말에 내포된 신적인 탁월성을 경함도록 하는 것은 오직 성령뿐이다. 어떤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초월적 탁월성을 감지하는 경험을 할 때 이 설교와 그 설교를 듣는 사람은 위로 올려져 무한히 심오한 그 무엇에 참여하도록 허락받는 것이다. 즉 성육신하신 성자와 성령 사이의 상호 작용에 참여한 것이다.”10) “이 능력은 거듭난 인간 마음의 상상력이며, 물질적 존재의 진실된 실재성은 그들을 신성한 것들의 이미지나 그림자로 파악하는 거듭난 사람의 상상적 인 지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11) 본 설교는 청교도의 설교 형식을 빌려 오기는 했지만 교리적인 설교보다는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체험적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영적인 감각(Spiritual sense)이라는 주제는 계속하여 에드워즈의 글과 설교들 속에 발전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적 감각에 대한 관심은 후에 일어날 영적 대각성 운동을 신학적으로 변호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 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서에서도 ‘성경의 빛’ ‘신적이며 영적인 빛’ ‘그리스도의 탁월하심’ 등은 이러한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대표적인 설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일어나 이러한 영적 감각은 에드워즈의 부흥관을 보여준다. 그가 편집한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일기]와 [종교적 감정론] 등은 이러한 주제들을 변호하고 확증하는 일을 위해 기록된 것들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당시의 학문적 배경 18세기의 계몽사상은 신앙고백주의에 대한 반동이었다.12) 완곡한 표현으로 ‘열정’이란 언급된 전 시대의 종교적 광신에 대한 강렬한 반동이 조성되었다. 존 로크(John Locke)에 따르면, 열정은 “진부하고 자신만만한 두뇌의 자만”에서 생긴다고 했다.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는 그의 책 [휴디브라스]에서 “화를 잘 내고 변덕스러운, 썩은 본문들에 득실거리는 구더기 같은 분파들”, “머리에 달린 내장에서 자은 실에 매달려 있는 거미 성인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베인튼은 18세기를 몇 가지의 주제로 서술했다. 종교적 평화, 자연적 윤리의 추구, 탐구정신, 이신론, 과학과 철학, 기독교 신앙 대 이성, 부흥운동, 독일의 부흥운동, 영국의 부흥운동: 감리교, 뉴잉글랜드의 부흥. 그는 에드워즈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에드워즈는 산문 시인이었다. 계몽사상을 잘 알고 있었고, 로크와 뉴턴의 글을 인용했다. 칼빈의 전승에 서 있던 신학자였다. 신비주의자들의 전승을 이어받은 체험적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단순히 지옥의 구덩이 위에서 죄인들을 감질나게 만드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를 곡해하는 것이다.”13) “얼핏 보면 1500-1750년 사이의 기독교권의 지적인 생활은 계속적인 비기독교화의 추세(de-Christianization)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특히 자연 과학의 영역에서의 새로운 학문의 일부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기본이라고 생각한 그것과 상충되는 듯이 보였다. 이런 경향은 지구가 태양 주위는 도는 것이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 설’에서 뚜렷했다. 이 이론은 로마 카톨릭 교회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었다. 그러나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14) “청교도로서 양육되어 옥스퍼드에서 학업을 닦은 존 로크(1632-1704)...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전 생애를 통하여 그는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말년에는 상당한 시간을 성경 연구에 바쳤다. 그의 ‘기독교의 정당성’(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1695)이란 책에서, 성경은 인간의 이성이 혼자서 찾을 수 없는 진리와 기적으로 입증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성경의 중심적 메시지의 그 어느 것도 이성에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적 자체도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의 도덕적 교훈은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그는 이것들이 이성에 부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하고 널리 읽혀진 책인 ‘인간 오성(悟性)에 관한 시론’은 비록 의도적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상당수의 독자들을 완전한 회의주의로 몰아 넣었다.”15) 아이작 뉴톤(Isaac Newton, 1642-1727)은 갈릴레이보다 천문학과 자연과학에 더욱 기여하였다. 이 사람 자신은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과학적 발견은 어떤 자들에 의해 기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데까지 사용되었다. 18세기 중엽 이전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신론을 발전시켰다. 초기 이신론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영국 사람들이었다. 이신론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성과 부합하는 보편적인 종교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는 ‘우주의 조성자’(the Architect)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간에게 이성을 심어주었고, 그에게 도덕률을 주었고 이성에 부합하는 법칙에 의해 우주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도덕적인 법칙을 준수하는 인생에 의해 존경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이신론자들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이성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없는 종교적 신념이나 관습들은 미신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니 응당 배척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는 이신론자들이 기독교의 계시에서 비합리적인 요소라고 간주한 것들이 포함된다. 자연 법, 하나님의 법은 이성에 의해 통찰될 수 있으며, 이에 순종하여야 한다. 이성을 따르는 것은 미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 사색가’(a free thinker)가 되어야 한다. 즉 그는 모든 신앙을 이성의 법정에 출두시킬 수 있는 그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며, 그의 지성의 사용을 억제하려는 제약 요소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철저한 이신론자들은 도성인신(道成人身 the incarnation)이나 은총같은 기독교의 중심적 확신을 인정할 여지가 없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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