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 |
2007/05/12, 조회 : 275, 추천 : 0 |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분이자 교계 명사인 이동원 목사께 한인/한국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한 무명 인사가 쓰는 글이다. 혹자는 이런 글이 이번 뉴욕집회를 방해하고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필자는 온갖 잡다한 현대 영성에 노출돼 갈피를 못잡고 혼동을 겪는 한인/한국 교계의 고유성과 경건 수호를 위한 일심 밖에 다른 뜻은 없다. 한 개인을 때려잡겠다는 '마녀사냥' 유의 글이 아니다.
성령과 성경적 경건의 길을 속히 떠나고 있는 한국/한인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깊이 염려하며 피눈물 나는 이들이 안타까운 기도와 호소 속에서 그들을 대표하여 필자가 하는 고백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필자가 따라온 관례상 존대어미들은 생략한다. 두서 없이 쓴 글이어서 추후 정정될 여지가 있다.]
아멘넷 뉴스에 따르면, 귀하는 "세계의 수도 뉴욕에 사는 한국인 청년들이 부흥을 경험하고 한인교회에 부흥이 일어난다면 한국 교회는 이제 2007년 세상을 불 밝히는 부흥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과연 나쁜 말은 아니로되, 귀하가 이번 집회의 주 강사이기 때문에 이를 의식해서 한 말은 아닌가? 그렇다면 귀하가 세상을 불 밝히는 부흥의 진원지에 불길을 당기는 존재란 뜻으로 봐도 되는지..지나친 호언장담은 아닌가..? 귀하가 과연 한국인 청년들이 부흥을 경험하고 한인교회에 부흥이 일어나도록 해 줄 수 있는 그런 영성의 사람인가? 사실 사도들조차 그런 말은 쉽게 하지를 않았다. 파울은 아테네 변론 사건 이후 코린토 교우들 앞에서 두려워 떨었고 자신의 구원조차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길 바란 사람이었다.
귀하는 한국 교계 '최고의 설교자'란 절찬을 받아 왔다. 성령님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처럼) 역시 관상 영성을 조장해온 문제 언론을 통한 여론조사에서 받은 그 평가에서 자신감을 갖고, 거기 근거해 그런 호언장담을 하는 건 아닌가?
귀하는 다년간 한국 국내외에 관상 영성 보급에 앞장 서 왔다. 심지어 중국 당국의 거부감을 자아낼 정도로. 이처럼 '관상 전도사'로 목숨 걸고 뛸 만큼 과연 관상 안에 모든 진리가 있다고 믿는지?
귀하의 칼럼에 따르면, 연전에 부부 동반으로 샬렘 인스티튜트가 주최해 모 카톨릭 수도원에서 열린 받은 영성 지도를 받았는데.. 알고 보면 그 단체는 매우 친카톨릭적, 에큐메니즘 적, 종교다원적이고, 종교간 대화를 추구하며, 불교와 힌두교 등 타 종교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자는 이즘을 지녔음을 귀하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지는 않았는가? 그러지 않았다고 반증할 근거가 있는지.. 귀하의 칼럼에 따르면, 본인이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그 중요한 모임을 생각 없이 다녀오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거기서 그들의 '영성지도'에 순응한 귀하 부부는 그들과 같은 생각, 같은 종류의 영성을 지녔다고 봐도 되는가?
현대 관상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을 띠었음이 분명한 차제에..한국의 대표적인 관상가인 귀하를 한국서 가장 '성경적', '복음적'인 설교자와 영성가라고 하는 평가는 정상적인 것인가.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이라고 본다면 각각의 이유는 뭔가? 그런 평가가 낯 간지럽지는 않은가? 귀하는 그런 명사 수준을 지향하는가? 결국, 여론과 평가가 낳은 베스트 인물(figures), 베스트셀러 저술가들이 교계 영성을 이끌어한다고 믿는가?
귀하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한미준) 대표인데 한국 기독교의 미래가 관상 중심의 영성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가? 성경과 성령으로 보여주신 경건이 아닌 관상 영성이 기독교 영성의 표본/표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미준이 추구하는 영성은 결국 순수경건이 아닌 혼합영성은 아닌가? 왜 하필 외래 영성이어야 하나? 장댓재교회에서 시작된 한국교회의 미풍인 새벽기도의 신앙, 믿음의 절개를 지킨 주기철/손양원/한상동 등을 본받는 순교자적 경건이 아니라 왜 '외제' 영성이어야 하는가? 왜 중세의 카톨릭 수도사들, 종교다원주의자 토머스 머튼, 퀘이커 교도인 리처드 포스터 등의 영성을 우리가 굳이 따라야 할 절대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귀하는 관상을 지고의 기도 유형으로 생각하는가? 그런데 왜 성경은 관상과는 전혀 달리 말하는가?(본 필자의 글과 댓글 참조). 예수님의 기도는 왜 관상기도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가? 예수를 본받겠는가, 카톨릭 수사들을 본받겠는가? 귀하는 '이렇게 ..하라'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써왔는데 '이렇게 관상하라'도 쓸 예정인가? 아니면 쓰고 있는가? 이미 탈고했는가? None of my business인가?!
귀하가 그다지도 관상 영성을 즐기고 따른다면, 혼자 수도사가 되어 카톨릭으로 전향할 일이지, 왜 한국교회 전체, 더 나아가 해외에가지 수도원적 영성, 카톨릭적 영성을 보급하려 드는 것인가? 귀하의 지구촌교회에서도 새 신자 훈련과정의 하나로 관상을 권하던데 그들을 훈련시켜 세계 각국의 관상 선교사로 파송할 의도인가-마치 카톨릭의 관상지원단처럼?
귀하는 근래, 과거의 복음주의 노선과는 사뭇 다른 성향을 내비쳐왔는데, 성경과 성령 중심의 영성이기보다 비성경적/카톨릭적 영성을 표준(?)으로 보게 된 동기와 이유가 뭔가? 그리고 한국 교회의 영성을 왜 명사 중심의 영성으로 몰고 가는가? 명사들을 따르는 게 성령의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귀하는 파울이 예루살렘의 교계 '명사'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은 기억나는가?
귀하는 자신이 바라는 것처럼 성령께서도 관상을 적극 위하시며 세계에 폭넓게 보급되길 원하신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면 귀하의 영성 노선이 잘못되지 않았는가?
귀하는 리처드 포스터, 맄 워런, 특히 유진 피터슨 같은 관상가들을 영성의 '대가'로 받들고 있는데 귀하의 영성의 표준은 성경 인물 또는 성경 중심이라기보다 명사 중심 수준의 영성으로 봐도 되겠는가? 베스트셀러나 쓰고 인기를 얻는 것이 영성 대가의 표준인지, 아니면 성경/성령 중심이 표준인가? 피터슨/포스터/워런이 성경/성령 중심이라는 확신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귀하는 맄 워런도 그의 목적 영성 교과서 '목적에 이끌린 삶' 등에서 적극 인용한 바 있는 유진 피터슨의 번역 '성경' '더 메시지'(teh Message)의 부분적/전반적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안다면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는가? 성경의 권위를 높이긴커녕 성경과 저자이신 성령을 욕 뵈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를 들은 일은 있나? 그런 평가를 하찮게 생각하는가? '더 메시지'에서 메이슨적인 용어들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귀하는 포스터가 자신의 발언과 저술에서 열렬히 흠숭/예찬해온 머튼과 헨리 나웬 등이 신비가, 종교다원주의자, 일편 보편구원론자였고 마리아와 교황에게 충성한 이들이었음을 인정하는가? 포스터 자신도 퀘이커 교도로서 레노바레 이사진에도 퀘이커, 카톨릭 인사 등을 두는 등 노골적인 에큐메니즘적 어젠다와 향종교다원성, 종교간 조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여실함을 아는가, 시인하는가..그렇다면 귀하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가? 아니라면 그런 범주를 지향하는가, 지양하는가?
귀하는 크리스토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다는 성경의 경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의 문제인가? 머튼/나웬/포스터/피터슨 등이 모두 크리스토와 성경 진리 안에 철저히 입각해 있고 머물러있다고 보는가?
귀하가 이끄는 한미준은 한국 교회의 순결과 보존에 힘쓰는가, 아니면 비록 성경 원리에 어긋나도 과감하게 밀고 나가고 있는가? 귀하는 하용조 목사의 두란노서원의 다양한 영성서적들과 '목회와 신학'등 주요 매거진 , 신교 수도사 엄두섭 목사의 은성출판사 등 한국교계 출판사 다수가 무차별로 외래영성을 보급해온 사실을 잘 알지 않는가? 그런 무차별적 외래영성 수용 방향이 한국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보존해 나가는가?
귀하는 과거 "예수님도 성생활을 즐겼다"며, 성경에 정면 배치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대 망언과 주장을 담은 저서로 인해 '다빈치 코드'를 앞서고 능가하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침례교 총회 앞과 한국 교회 앞에서 사과 발언을 하고 관련 저서를 수거하는 등 입장 철회를 표한 바 있다. 과연 그 일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철저히 전향했는가, 아니면 행여 지금도 내심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와서 구구히/누누히 과거사를 들추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망언을 한 뒤 평생 참회하며 근신하고 겸허하게 사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겠기에 하는 말이다.
귀하는 귀하의 그 문제 발언과 비슷한 성향의 '다빈치코드'에 대해 혹 내심 호의적이진 않았는가? 귀하의 망언과 같은 견지는 고대의 '유다복음서' 유의 영지주의(그노시즘), 중세~현대의 시온수도회, 기타 연금술사, 헤르메티카, 신지학(테오소피),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메로빙왕조전통이나 일부 컬트/오컬트와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가?
귀하는 또 영화 '크리스토의 수난'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점수를 주었는데 그 영화가 프로-카톨릭적이고 정통 카톨릭으로의 개종을 유도한다는 것을 인지하는가? 깁슨 감독이 독일 에머리히 수녀의 저술물, '파티마의 비밀' 관련 수녀 등을 적극 참조한 사실은 아는가?
귀하가 추구하는 관상 영성은 실상 중세적 기독교 신비주의 성향은 물론, 종교다원주의적 성향, 심지어 메이슨 적인 소지를 안고 있음을 아는가, 느끼는가? 알고 느끼면서도 지향하는 이유는? 그래도 관상 영성은 끝내 성경적인가?
미국의 젊은 교회들 특히 떠오름교회(Emerging Church) 그룹은 관상은 물론, 성상기도, 미로명상(labyrinth), 요가 등도 나란히 곁들여 하고 있는데 귀하도 아마 그런 과정을 접하거나 목격했거나 참여했으리라. 워런, 떠오름교회의 대표적 지도자 브라이언 매클러렌도 적극 지지하는데 귀하도 그런 요소들을 지지하는가? 아니면 귀하도 사가에서 몰래 하는가? 귀하의 (샬렘 인스티튜트) 영성수련 과정 안에 그런 것도 포함돼 있었는지..귀하처럼 관상영성을 강조한다면 앞으로 한국교회에도 필수적으로 입수될 것이며(일부는 그러고 있슴) 거기 탐닉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온전한 일이며 성령의 거룩한 뜻인가?!
귀하가 새신자들의 훈련 과정에 거의 필수과목으로서 관상훈련을 시키면 그 영적인 결과에도 책임지는가? 일각에선 관상을 하다 완전히 잘못되기도 한다는데..성도의 영혼에 필수적으로 절대 유익하다는 절대적 확신이 있는가?
귀하는 관상을 강조하는 나머지 관상보다 더 성경적인 기도는 덜 강조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사도 파울이 코린토a 12~14장에서 거듭거듭 강조할 정도로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로 평가한 방언기도를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성경이 그토록 강조하는 도고(=중보기도)는 어떻게 보는가? 그 기도들이 관상보다 덜 중요한가? 귀하는 방언을 하는가..파울처럼 방언기도를 수시로 하는가? 방언기도의 영적인 특성이 관상과는 현저히 다름을 알 텐데? 관상을 더 영적인 기도로 보는가? 왜 관상처럼은 강조를 하지 않는가?
지구촌교회와 네트워크를 이루는 다른 지역의 '지구촌교회'와 목회자들도 귀하처럼 관상영성을 강조하는가? 적어도 웹상으로는 그런 낌새가 아니던데. 그런 '지구촌교회'들에 대해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으로 적극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갈 것인가? 그들이 귀하의 생각처럼 바뀔 것인가? 만약 그들이 귀하처럼, 귀하만큼 관상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귀하도 관상이 세계 교계의 '대세'를 이뤄가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관상은 현재 종교간 대화, 에큐메니즘, 더 나아가 카톨릭의 종파일치 운동, 다원종교, 뉴에이지, 궁극적인 종교단일화 등을 향해가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귀하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귀하와 같은 방향이라고 느끼진 않는가? 느낀다면 느끼면서도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계시록에 나타난 성령의 뜻(?)이여서인가?
귀하는 '신 바빌론 운동'에 참여함을 거부하는가, 아니면 참여할 터인가? 궁극적으로 적 크리스토의 도래를 기다리는 쪽인가? 관상 영성의 현 흐름이 적 크리스토화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귀하는..흠과 주름 잡힌 것 없이 순결한 예수 크리스토의 신부로서 교회가 참 신랑인 크리스토의 재림을 기다리기 보다는 적 크리스토의 도래를 더 흠모하는가? 귀하가 이끄는 교계의 현재 모습이 순결한 신부로서 완벽하다는 자신감을 갖는가? 스스로 갈등하는 자체 모순은 없는가?
필자는 한국 교계의 다른 영성의 '길라잡이'들처럼 귀하가 한국 교회의 순결성을 빨리 훼손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굳게 믿는다. 귀하가 만년에 관상 영성을 "이거다!"라며 골라잡아, 레노바레 한국 대표로서, 한국 교계 영성의 길라잡이로 자처하고 기여해온 모든 행동에 대해..그 결과/열매와 함께 하나님의 공의로운 평가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임을, 너무 늦기 전에 인식하는 슬기를 얻기 바란다.
너무 늦기 전.. | | | |